절을 찾아가는 날, 세상은 먼지가 점령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건너온 미세먼지가 태양마저 가렸다. 먼지 묻은 햇살은 이내 묽어져 흐물거렸다. 먼지는 땅 위에 서 있는 모든 것들에게 스며들었다. 하늘도 들도 길도 희미했다. 우리 마음도 그럴 것이다. 끊임없이 날아드는 먼지에 잔뜩 때가 끼어있을 것이다. 마음의 먼지만 닦으면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이 구원되었음을 알 터이지만 먼지를 둘러쓰고 무엇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찾고 있다. 날마다 미세망상의 습격을 받으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저 흐린 세상도 결국 인간의 마음이 혼탁하기 때문이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섬 전체가 유적이다. 어디를 가도 이야기가 묻혀있다. 역사 속의 강화도는 유배지이거나 쫓기는 무리의 은거지였다. 나라가 융성할 때는 숨어 있다가 누란의 위기를 맞으면 솟아올랐다. 강화도로 건너온 사람들은 외롭고 아팠다. 그래서 산마다에 많은 사찰이 세워졌고, 절마다에는 그들의 비원이 서려있다. 강화도엔 국운 따라 부침을 거듭했던 천년 고찰이 밀집해 있다. 내년이면 창건 1600년을 맞는 적석사(주지 선암스님)를 찾아갔다.마을을 빠져나오자 절로 가는 외길이 나타났다. 산등성이마다 잔설이 희다. 산길
과거를 동여매는 일은 아무래도 쓸쓸하다. 갈수록 인간들은 시간을 쪼개고 그래서 뾰쪽해진 시간에 찔린다. 허겁지겁 달려온, 아슬아슬했던 길들을 눕혀 놓고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다시 새해가 밝았다. 따지고 보면 생성과 소멸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누군가가 미래인이듯 우리도 누군가의 미래인이다. 어둠이 빛이고 빛이 어둠이다. 우리가 끌고 온 것들을 모두 어둠 속에 묻었다. 저무는 해를 보며 손을 흔드는 것은 결국 우리를, 나를 떠나보냈던 것이다. 지난 ‘나’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기에는 겨울 산사가 제격이다. 서울 근교의 천년
패륜의 업 닦고자 했던세조의 간절한 발원에문수동자 화현한 도량 한국전쟁 당시 전소 위기한암스님 목숨 걸고 막아 명저 ‘선방일기’의 탄생지화두 든 선객 바뀌었어도구도의 열기는 변함 없어 ▲오대산 상원사가 눈에 잠겼다. 계곡의 물소리조차 덮었다. 시끄러운 것, 번잡한 것, 욕심으로 뒤섞인 것들은 모두 내려놓고 순백, 욕망을 털어낸 무채색이 되어 발을 들여야 할 것이다. 마침 첫 눈이 왔다. 눈길을 달려 오대산에 들었다. 법향이 그윽해서 누구라도 옷깃을 여미는 성지이다. 수정암, 사자암, 미륵암, 관음암, 지장암 등과 더불어 온갖 생명붙이들이 적멸보궁을 향해 경배하고 있다. 눈은 하염없이 내려 계곡
‘신기한 굴레’라는 이름 물살 다스린 설화서 유래 고려말 유림의 탄압으로밀양으로 향하던 나옹선사신륵사 이르러 돌연 입적선사 흠모한 이들 모이며조선 초기 명찰로 급부상 “천성산 살려라” 단식하던지율 스님 몸 의탁 하기도4대강 토목공사 강 유린에여주팔경도 수몰 될 운명 ▲신륵사는 ‘신기한 미륵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를 다스렸다’는 창건 설화가 전해질 만큼 여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절이다. 고려 말 나옹선사가 유림의 탄압으로 낙향하다 이곳에서 입적한 후 선사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모이며 사격이 커졌다. 신륵사(주지 현담 스님)는 여강(驪江: 남한강 상류) 곁에 있다. 여강은
통일신라때 범일 국사 창건 보물 석탑서 다라니경 발견소조삼존불 동양 최대 규모 김시습이 생 마쳤던 고찰무진암 가는 언덕에 시비 문학관 조성…창작 산실로 "매월당 설잠 김시습을 3년 후 장사지내려 빈소를 여니 얼굴빛이 산 사람 같았다. 승려들이 모두 놀라‘부처’라고 탄했다." ▲시국이 수상할 때면 무량사 경내가 분주했고 이곳에서 세 번의 역모 모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비에 젖은 무량사는 한 폭의 수묵화였다. 그 속에 안기면 누구나 풍경의 일부가 됐다. 무량사, 곱게 늙었다. 마음 속의 부여는 애틋하다. 찾을 때마다 부여는 야트막하다. 그만그만한 길에 그만그만한
100여 가람 품었던 가야산백제 최대 ‘불교문화 특구’ 최고 명당지 찾던 흥선군사찰 불 태워 부친 묘소로 최대 철불 출토 보원사도 쇠락하여 논밭으로 전락 내포가야산 성역화 불사는 마애불 미소 담는 ‘마음공사’문화재서 신행 공간으로 변모 ▲내포 가야산 자락에 남아있는 보원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철불이 출토되었을 만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대가람이었다. 어느 때, 어떤 이유로 쇠락하고 폐사 됐는지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다. 서산마애삼존불은 천 년 넘게 웃고 계신다. 그 웃음이 넉넉하여 ‘백제의 미소’라 부른다. 바위는 투박한데 미소는 맑다. 미소는 아침 저녁으로, 또 계절에 따라 다르다.
광주민주항쟁 치열했던 5월부처님오신날 시위대 찾아가음식 나누며 그들과 함께해 광주시민 마음 탁발 하고자84년 ‘무등민족문화회’ 창립진보단체에 용기·영감 전해 민중 의식 일깨운 사람들이도량에 남긴 삶과 이야기는어떤 성보보다도 귀한 보물 ▲어머니산 무등의 끝자락에 서 있는 문빈정사. 1980년대 이 땅의 민주인사들은 문빈정사에 머물며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야기 했다. 지금도 문빈정사에서는 '인권과 정의가 흐르는 세상이 정토'라는 원력이 성성히 살아 숨쉬고 있다. 지난 봄 한반도에 전쟁 공포가 엄습했다. 남과 북이, 또 미국이 ‘말(言) 전투’를 벌였다. 백성들은 뒷전이었다. 동족을 향해 쏟아
조선 인조 때 축성에 동원됐던 충청 출신 승군 주둔지로 창건대웅전보다 요사가 컸던 이유산성 내 사찰은 사실상 수용소병자호란 후 승번제 생겨 면천 1975년 원인 모를 화마로 소실옛 사진 토대로 복원해 놓으니 국유지라며 거액 변상금 부과 천신만고 끝 소유권 되찾아와 의승군 추모 무차회 봉행으로400여 년 아픈 역사 씻어내고평화 깃든 품 넓은 도량 발원 ▲1975년 발생한 원인모를 화마로 소실되었던 장경사는 1958년 찍은 전경 사진을 토대로 복원됐다. 아픈 역사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정갈하고 예쁜 도량이다. 남한산성(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가는 길은 젖어 있었다.
신라 경순왕 때 대경선사 창건천년 세월 지나며 퇴락한 암자로 1984년 법장 스님 주지 부임사찰 중흥 100일 기도 끝나자서쪽 하늘에 붉은 기운 가득삼선암서 서광사로 이름 바꿔유치원 건립…진신사리 봉안 상좌 도신 스님 스승 뜻 이어삼층 법당 준공 등 불사 지속 ▲ 서광사 주지 도신 스님은 전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상좌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만큼이나 노래에 대한 애정이 깊은 도신 스님에게 언젠가 스승이 던진 “네 노래는 무언이냐 유언이냐?”는 물음은 이생에서 반드시 풀어야할 화두다. 지난 부처님오신날에 부처님은 어디로 다시 내리셨을까. 오월의 산사는 싱그럽다. 산 위에서는 녹음이 흘러내리고, 풍경을 흔드는 바람은 어
통일신라 시대 창건 됐으나 조선 개국 이후 반대파 모여 새 세상 도모한 ‘은둔의 산’전답몰수·화재 등 부침 겪어 1854년 경허 스님 출가 인연만공·보월·금오·월산 스님근대 선풍 중흥조 법맥 이어져 주민보다 먼저 마을로 다가가는‘포근한 사찰’이 미래의 청사진 비가 내렸다. 봄비는 확실히 다르다. 세상 구석구석을 닦아낸다. 가늘어도 그 빗줄기를 타고 온갖 새 울음이 내려올 것이며, 그 울음은 온갖 새 잎들을 춤추게 할 것이다. 비가 그치면 볕은 곱고 봄날은 화사할 것이다. 의왕시 청계동 마을버스 종점에서 내렸다. 부처님오신날 봉축 연등이 마을까지 내려와 있었다. 연등을 따라 올라갔다. 산사로 가는 길을 벚꽃
무학대사 달보고 깨달아사찰 이름 ‘간월’로 전해낙조 ‘서산3경’으로 꼽혀 1941년 만공 스님이 중창성철·원담 스님 등 수행처 선방·기도처·요사 짓고자연석으로 도량 주변 장엄암자 품에 사는 생명들에게자유 찾아주는 것도 불사 ‘최고 명승지’ 속명 대신‘최고 기도도량’ 거듭나길 ▲간월암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이다. 해가 지면 달빛은 앞 바다 도량에 고인다. 사진 제공 간월암. 천수만 북쪽에 붙어있는 간월도, 그 앞에 조그만 섬 하나가 있다. 밀물 때는 섬이었다가 썰물 때는 뭍이 되는 작은 섬에 부처를 모셨다. 섬 전체가 절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암자, 간월암(주지 정암 스님)에 갔다. ‘달을 본다(看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