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말 떠났지만 말할 수 있기도 하다두 극단 떠나야지 方外에서 노닐 수 있어화쟁(和諍)에서 쟁(諍)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살펴보면 말씀 언(言)변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쟁은 말로써 옳고 그름을 가립니다. ‘쟁(諍)’에서 말씀 언이 빠져 버리면 전쟁의 ‘쟁(爭)’이 돼버립니다. 부부싸움도 그렇지요. 말로 할 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심해져서 베개가 날아가고 그러면 전혀 문제가 달라지지 않습니까. 말이 빠져 버리면 아주 심각해져 버립니다.오늘날 철학에서도 언어에 대한 부분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일찍부터 언어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언어라는 그 자체가 대단히 편하지만 이를 절대시해서 언어의 늪에 빠지면 마치 진흙에 큰 코끼리가 빠지듯이 언어의 늪에 빠져 버리
근기·때 강조…Yes와 No 절묘한 사용합리적이면서 인간적인 면의 조화 추구 원효를 사랑한 민중들은 그의 이름을 신성시 했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기를 원했다. 북한산 원효봉도 그래서 생긴 이름 중 하나다.원효가 ‘같다’라고 한 것은 ‘서로 다른 것’을 가마솥에 넣어서 부글부글 끓여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마디로 획일화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만약 서로 다른 견해로 다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원효는 이 경우 상대방의 뜻에 맞춰서 예스(Yes)와 노(No)를 하는 ‘순불순설(順不順說)’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습니다. 예스와 노를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면서 예스라는 겁니다. 또 상대방 뜻과 다르게도 말하고 다르지 않게도 말하는 ‘비동
양 극단 긍정-부정 포함하는 논리 전개다른 것 똑같이 만드는 획일화는 反화쟁이번에는 『금강삼매경론』의 한 구절 살펴보고 원효의 화쟁론에 대해 계속 설명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서당화상비편 탁본. 이 비는 신라 애장왕(800~808) 때 원효의 후손인 설중업이 원효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앞의 두 구는 속제를 녹여 진제로 만들어 평등의 뜻을 나타낸 것이요(前之二句 融俗爲眞 顯平等義)아래의 두 구는 진제를 녹여 속제로 만들어서 차별의 문을 나타낸다.(下之二句 融眞爲俗 顯差別門)이것을 총체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진실되다 속되다라고 말하는 것은 둘이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도 아니다. 그러므로 둘이 아니기 때문에 곧 그것은 일심이고 하나를 고수하지 않기 때문에 본체를 들어 둘로 삼아 이와 같이 이름해서
화쟁은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천의 문제당대에도 극찬…고려 때는 화쟁국사 시호 선덕여왕 3년(634)에 창건된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 원효는 이곳 분황사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여러 저술을 펴냈다.이번에는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화쟁에 대한 이해는 참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화쟁은 서로 다치지 않고 화해롭게 지낸다는 것인데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효의 화쟁사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관심을 가져왔지만 정작 원효의 화쟁을 규명해내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도, 또 어느 정도 규명해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듯 보이는 것도 화쟁이 언어의 문제가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입
원효는 세속에 살되 물들지 않았던 범행장자“작은 규율 어겨도 타인 위해선 적극 실천해야”계율의 굴레에서 자유로웠던 원효와 혜공의 전설이 깃든 포항 오어사 전경.이번에는 먼저 「보살영락본업경소」 서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이제중도(二諦中道)는 곧 건너갈 길이 없는 나루며,현묘하고 현묘한 법문(法門)은 더욱 들어갈 문이 없는 진리이다.갈만한 길이 없기 때문에 유심(有心)으로 행할 수 없고,들어갈 만한 문이 없기에 유행(有行)으로 들어갈 수 없다.그러나 대해에는 나루가 없지만 노를 저어 능히 건널 수가 있고,허공에는 사다리가 없지만 날개 치며 높이 나를 수 있다.이로써 알라.길이 없는 길은 곧 길 아님이 없고,문이 없는 문이 곧 문 아님이 없음을.문 아님이 없기에 일마다 현묘한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한국불교사상 가장 자유로운 계율 해석계를 알기에 오히려 계를 넘나들 수 있어 서당화상비가 발견된 경주 고선사지. 지금은 수몰되어 3층탑만이 경주박물관에 옮겨져 남아있다.오늘 살펴볼 내용은 원효가 윤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윤리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윤리’를 가장 현실적으로 다뤄온 종교는 유교라 할 수 있습니다. 유교는 그야말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유교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종교가 소위 ‘계(戒)’를 통해서 이를 매우 강조해왔습니다.그런데 대체적으로 계나 윤리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아주 박제화되고, 정예화되고, 교조주의로 흘러 도그마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의 대부분의 종교가 이
민중들에 의해 신통력 갖춘 도인으로 찬양-윤색한중일에 지대한 영향…日 원효 생애 다룬 저술도무덤에서의 하룻밤은 훗날 원효 스님을 동아시아 불교사의 위대한 성사(聖師)로 만들었다.(『화엄연기회권』中) 원효의 대중교화는 그의 학문적 성과나 사상적 깊이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황량하고 거친 세상이라는 들판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의 묵정밭을 일구고 가꾸는 일이란 보살행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원효가 만난 사람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밭가는 노인과 산골의 몽매한 사람, 그리고 광대, 백정, 술장사 등 시중사람들과도 어울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리의 아이들이나 부인들까지도 원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의 익살과 웃음, 노래와 춤 등은 삶에 지친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신나는 일이었고, 잠자는 영
정기 국회 개정 추진 불교 관련 법안들 제17대 국회가 9월 1일 제256회 정기국회 개회식을 갖고 100일 간의 회기에 들어갔다. 열린 우리당 불자 의원들의 모임인 이타회(利他會·회장 윤원호 의원)와 한나라당 불자회(회장 이상배 의원) 등의 불자 의원들이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거나 불교계가 각 당에 개정을 요청한 법률안에 대해 알아보았다. ‘일하지 않고 표를 확보하기 위해 불심만을 좇는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 온 불자 국회 의원들이 과연 올 정기 국회에서는 불교계를 위한, 사부대중이 청원한 관련 법안의 개정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까. 정기 국회에 앞서 지난 6월 ‘일회성 佛心잡기가 아닌 불교를 위해 일하는 불자 의원으로 거듭나겠다’는 원력을 세웠던 열린 우리당 이타회와 한나라당 불자
고인돌, 고분과의 형평성 문제 입법 불가 ‘문화재 보존 기금법’으로 변경 상정 추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직접 입법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교계 안팎 언론으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은 ‘폐사지 보존법’은 현재 법리적인 내용 및 방향에 관한 검토를 끝내고 올 정기 국회 상정을 목표로 법안의 이름과 내용 등 기본적인 틀을 마련한 상황이다. 폐사지 만을 보존하기 위한 특별법은 고인돌이나 성곽, 고분 등과의 법리적인 보존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데다 관련 법안과의 상충 문제가 있다는 데 착안해 현재 법안의 이름을 ‘문화재 보존 기금법’으로 하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폐사지의 보존을 위한 기금을 쓸 수 있도록 하게 한다는 것이 이 법안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교계 안팎의 언론들이 깊이 검토하
100부 240권 저술…각권마다 불교사의 명저의천은 ‘용수-마명 보살만이 원효의 짝’ 극찬사람들과 어울려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원효 스님. 그는 성과 속을 넘나들며 수많은 중생들을 불법의 세계로 이끌었다. 『화엄연기회권』원효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것은 그가 뛰어난 학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비문에는 “그가 일체의 도리를 모두 다 통달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은밀하고 미묘한 이치를 연구하고 분석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송고승전』의 저자 찬녕(贊寧)은 학승으로서의 원효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습니다.원효는 진리의 성을 용감하게 공격하고, 문진(文陣)에서 종횡무진 당당히 분투해서, 나아갈 뿐 물러서는 일이 없었다. 삼학(三學)에 두루 통하여 그 나라에서는 만인지적(萬人之敵)이라고 했
조계종은 8월 30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사찰출토문화재 보존·관리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조계종은 “사찰출토문화재는 해당 사찰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문화재청은 “현행 국가 귀속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사찰 출토 문화재 보존·관리 공청회 현장중계 8월 30일 열린 사찰출토문화재 보존·관리 공청회에서 문화재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찰 경내에서 출토된 유물은 해당 사찰뿐 아니라 불교계의 종교적 정통성과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유산으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돼 있어 관련 기관과의 분쟁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소유권 분쟁의 해결을 위해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조계종 총무부장 현고 스님)
“현존 사찰의 경내지에서 출토된 불교문화재조차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구시대적인 문화재 관리 정책이다. 사찰박물관이 속속 생겨나고 이에 따라 사찰의 문화재 보존관리능력이 향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찰출토문화재를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비능률적인 문화재 관리 정책이다.” 이번 공청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동국대 문명대 교수는 “과거 불교계가 사찰 박물관 등 문화재를 보존, 관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지 못해 사찰 경내지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국가에 귀속시킬 필요가 있었지만 최근 사찰박물관이 속속 생겨나고 또 출토 유물을 보존,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만큼 이제는 사찰 출토문화재를 불교종단에 귀속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문 교수는 이어 “그 동안 국가주도형 문화재 관리정책은 문화재보존과 관리 측
이번 공청회에서는 불교계의 사찰출토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을 해당 사찰에 주기 위해 관계 법령을 개정해야한다는 주장에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운용의 묘를 살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반박 주장이 제기돼 열띤 토론이 전개됐다. 전 문화재연구소장 조유전 교수는 “문화재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비록 사찰에서 출토된 문화재라고 할지라도 넓은 의미에서 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이어 “사찰출토문화재 소유권이 문제가 돼 법의 개정을 요구한다면 고분출토 문화재의 소유권도 문제가 될 것이며 각 사안마다 법 개정이 요구될 것”이라며 “문화재 관리에 대한 운용의 묘를 살린다면 보존과 활용이 조화롭게 될 것인데 구태여 법을 개정해서까지 소유권을 주
지난 8월 22일 현등사는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사리구’일체를 돌려달라며 민사조정 신청을 냈다. 그러나 삼성측은 선의취득이라며 공개할 수도 반환하지도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교계에서는 삼성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현등사 사리구 반환될 수 있나 “사리는 인체 일부… 선의취득 될 수 없어” 지배적 삼성문화재단이 현등사에서 도난된 사리구 일체〈사진〉를 점유하고 있는 것과 관련, 교계에서는 삼성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며 현등사 사리를 즉각 반환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지난 8월 23일 성명을 내고 “삼성 문화재단은 현등사 사리구 일체를 즉각 반환하라”고 주장했다. 중앙신도회는 성명서에서 “불가(佛家)에서 사리는 대선사님들
현등사 사리구는 경기 시도유형문화재 제 63호인 현등사 3층석탑〈사진〉에 봉안돼 있던 것으로 사리 2과, 수정 사리호, 은제 원통 사리함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원통 사리함에는 1470년 영응대군(세종의 아들)의 부인, 사위 딸이 시주해 현등사 3층 석탑에 보관했다는 명문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 사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기록에 의하면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 인도승려 마라가미(摩羅訶彌)가 포교를 위해 신라를 방문하자 왕이 크게 기뻐하며 이 절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당시 사찰 이름에 대해서는 전하지 않는다. 그 뒤 수백 년 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1210년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주춧돌만 남은 절터의 석등에서 불이 꺼지지 않고 있음을 보고 중창해 ‘현등사’라 했다고 전한다.
“삼성에 도난 됐던 현등사 사리구를 돌려 달라는 것은 당해 사찰 주지에게 맡겨진 소임이며 당연한 권리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현등사 사리구를 삼성이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사리구가 반환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설 것입니다." 지난 8월 22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현등사 주지 초격〈사진〉스님은 “사리는 옛 스님의 인체를 화장한 후 습골을 통해 만들어진 성보(聖寶)이기 때문에 거래를 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따라서 삼성측이 선의취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스님이 현등사 사리구가 도난 된 사실을 발견 한것은 지난 2002년. 당시 조계종 25교구 본사 봉선사가 말사에 대한 문화재 일제조사를 실시하면서부터다. 이를 통해 스님은
요석과 사랑은 파계 아닌 의도된 몸짓‘생이지지’는 잘못…평생 정진한 수행자경주 분황사에 모셔져 있는 원효대사 진영.원효는 44세이던 문무왕 원년(661년)에 다시 도당유학의 길을 나섰습니다. 물론 이 때도 의상과 함께였습니다. 그런데 원효는 남양만이 멀지 않은 직산의 어느 옛 무덤 속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송고승전』의 ‘의상전’에 전하는 원효의 오도(悟道) 설화는 다음과 같습니다.원효와 의상은 중도에 심한 폭우를 만나 길 옆의 토감(土龕) 사이에 몸을 숨겨 회오리바람과 습기를 피했다. 다음날 날이 밝아서 보니, 해골이 있는 옛무덤이었다. 궂은비는 계속 내리고 땅은 질척해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또 연도의 벽 중에 머물렀는데, 밤이 깊기도 전에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 놀라게 했다
동국대 김상현 교수는 삼성출판박물관아카데미(교장 김종규) 주관으로 지난 8월 17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삼성출판박물관에서의 원효사상을 주제로 첫 강의를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열리는 이번 원효사상 강좌에서 김 교수는 원효(617~686)를 역사적, 문화적, 사상적, 종교적인 다양한 접근을 통해 한국불교의 새벽을 연 ‘인간 원효’를 규명한다는 계획이다. 본지는 원효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원효 강좌’를 정리, 매주 게재한다. 편집자 김상현 교수는 '원효는 원(願)이라는 갑옷을 입고 수행과 학문에 부지런히 정진했던 위대한 인물로 중생들의 영원한 사표'라고 강조한다.천부적 재능-불같은 열정 지닌 대학승‘화쟁의 논리-자유인 몸짓’아로새겨야원효는 삼국간의 전쟁과 통
경기도 가평 현등사(주지 초격 스님)는 8월 22일 현등사 ‘사리구’ 일체를 돌려달라며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서울서부지법에 민사조정신청을 냈다. 현등사측은 신청서에서 “현등사 3층 석탑에 봉안되어 있다가 도난 당한 사리구를 현재 호암미술관에서 점유·보관하고 있다”며 “사리구에 ‘현등사’라는 명문이 있어 삼성문화재단이 장물인지 모르고 취득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원 소유자인 현등사에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현등사 사리구는 사리 2과, 수정 사리항아리, 은제 원통 사리함으로 이루어진 문화재로 현등사 3층 석탑(시도유형문화재 63호) 안에 보관돼 온 것이다. 이 사리구의 은제 원통 사리함 표면에는 1470년 현등사 탑 개수 때 영응 대군(세종의 아들)의 부인, 사위 딸의 시주로 봉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