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세계적 규모의 금융위기와 그로부터 촉발된 경제 불황은 그 원인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특히 이른바 ‘세계화’와 ‘경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각국정부와 기업은 물론, 개인들조차 ‘세계화’와 ‘경쟁’이라는 낱말을 입에 달고 다니듯 했고, 마치 그것만이 살 길이고 그것만이 융성한 생활을 보장하는 길인 듯 믿고, 앞뒤 가릴 것 없이 그 길로 달리다가 커다란 암벽(岩壁)에 부딪치게 된 셈이다. 세계를 무대로 한 치열한 경쟁이 날로 가속화되고, 그 경쟁에 지지 않을세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보니 경쟁의 순리와 도덕성은 약자의 진부(陳腐)한 말처럼 돼버린 것이 오래이다. 그러고도 탈이 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잘못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
2009년이라는 해가 밝은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나고, 엊그제로 소한(小寒)까지 보내고 나니 이번 겨울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 것 같다. 새해가 밝으면 으레히 개인으로서는 나름대로 새해의 꿈을 키우고, 회사나 단체는 새해에 펼칠 사업의 계획을 세운다. 또 나라는 나라대로 그 해의 시정방향을 확립하여 이제 막 문을 연 새해를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내려는 생각을 다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새해 들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의 인사로 덕담(德談)을 잊지 않음으로써 서로가 화합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예사이다. 인심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이만만 하면 좋을 성 싶다. 특히, 금년은 동양에서 말하는 기축년(己丑年)이어서 이른바, ‘소’의 해이다보니, 세계적으로 경제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처지에서
동지가 지나고 나니 2008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해도 앞으로 열흘이 채 남지 않았다. 다른 해 같으면 송년회를 하느니 제법 야단법석을 떨 만도 한데, 올해의 연말은 비교적 조용한 것 같다. 하기야, 송년회를 하지 않아도 어차피 2008년의 달력은 다하는 것이고, 해넘이니 해돋이를 보지 않아도 매 한가지 해가 매일 우리 머리 위에 뜰 것이니 크게 아쉬울 것도 없다. 오늘도 가까운 외척이 일부러 전화를 걸어와 벌써 한해가 다 간다고 푸념 섞인 아쉬움을 말한다. 마치 소중한 것이 간곡한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훌쩍 떠나기라도 하는 듯이 안타까워한다. 어디 그 사람만의 일인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과연 세월이 가는 것인지? 가면 어디로 어떻게 갔다는 이야기인지? 선뜻 종잡을 수 없는 말이다. 사실 세
사람들이 모여 앉으면 의례히 경제 불황에 대한 걱정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이른바 펀드나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은 투자한 원금이 반 토막이 났다고 한심어린 소리를 하는가 하면,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미 건축한 아파트의 거래가 없음은 물론 새로운 일 꺼리가 없고 은행에서의 자금융통조차 어려워 하루하루의 부도를 막는데 온 신경을 다 쓴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일을 하고도 자금이 돌지 않아 도산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한탄한다. 경제계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누구 하나 마음이 편한 사람이 없고, 살만 하다고 어께를 펴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문자 그대로의 경제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1980년대부터 ‘세계화’, ‘국제화’라는 소리가 높아지면서, 마치 그것만이 살길인 듯 모든 것을 이 말에 맞추려고 애를 쓰던 것이 엊그제의 일 같다. 그런데, 지금 모든 나라들은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몰려 허덕이고 있으니, 경제위기도 세계화된 셈이다. 미국의 월 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금융경색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의 금융시장에 파급되었고, 그것은 곧 실물경제를 마비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금융은 혈액순환과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어서, 금융이 제대로 돌지 않으면 경제가 경색된다는 것은 마치 피가 제대로 돌지 않으면 건강상태가 망가지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그렇다고 당면한 경제위기를 세계화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세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경제위기의 파급효
자동차의 오디오에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아주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출근길이나 퇴근길, 차 속에서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 나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클래식 FM과 같은 음악 전용 채널을 아주 좋아한다. 고전 음악은 우선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몰입할 수 있어 좋고, 서로 다른 여러 악기들이 조화롭게 내는 소리를 통해 세상을 배울 수 있어 좋다. 또 주변의 잡다한 소음을 막아주어서 좋고, 아무리 들어도 실증나지 않아서 좋다. 독주곡의 경우와는 달리 교향곡이나 협주곡은 여러 종류의 관악기와 현악기가 동원되어 각기 다른 소리를 내면서도 전체로서 조화된 아주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낸다. 하나하나의 악기의 소리를 살리되 두드러지지 않고, 전체의 소리가 합일되지만 각각의 소리를 알맞게 나
법보신문이 창간 20주년을 맞이했다는 것은 크게 축하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첫째로 법보신문이 생일을 맞이했다는 뜻에서이고, 둘째로 법보신문이 성년에 이르렀다는 뜻에서이며, 셋째로 법보신문이 교계의 어엿한 정론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뜻에서이다.태어난 것은 모두 생일이 있기 마련이고, 생일이 있다는 것은 곧 그것이 태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생명 있는 것이거나 생명이 없는 것이거나를 가릴 것 없이 태어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일이고, 거룩하고 신성한 일이다. 무릇 태어난 것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라고는 하나, 태어남으로써 존재하고 존재함으로써 그 나름의 구실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언론이 차지하는 기능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언론기관의 탄생은 참으로 다양한 사회적 의미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듯이, 생겨난 것 치고 변하고 사라지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성주괴멸(成住壞滅), 곧 생겨나 있다가 언젠가는 부서져 사라진다. 사람이 그렇고, 나라가 그렇고, 우주에 널려있는 별들이 그렇다. 그러니, 나머지 것들이야 말할 나위조차 없는 일이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위해서 불로초를 찾아 온 나라에 사람을 풀었다는 진시황이나 유럽에까지 위세를 떨친 칭기즈칸도 수명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멸망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졌던 로마제국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도 언젠가는 그 수명이 다하여 초신성(超新星)의 처지를 겪게 마련이다. 이것이 우주의 진리요, 자연의 법칙이며,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쳐 밝히신 제행무상(諸行無常)다. 세상은 지금 세계
사람이 살다보면 예상하지 않은 결과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흔히 ‘우연’이나 ‘운’에 돌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우연이니 운이니 하는 것은 사람들이 무지(無智)하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쓰는 말일뿐이다. 따라서 우연이니 운이나 하는 말은 그 나름의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체도 알 수 없는 그 우연이나 운이라는 것에 곧잘 매달린다. 그러고는 결국 그 ‘운 타령’을 하게 된다. 연전(年前)에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뜻하지 않게 달라이라마 존자를 직접 만나 뵌 일이 있다. 그때 나는 달라이라마 존자에게 “이처럼 존자를 다시 뵙게 된 것은 정말 우연한 일입니다”라고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요새 불가의 모습이 예사가 아니다. 조계종 총무원은 지난 7월 30일 “이명박 정부가 종교편향을 말아달라는 불교계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또 한 번 참담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성토성 논평을 내고, “경찰청장의 사퇴와 정부의 공식사과,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또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전국 2000만 불자들의 염원을 담아 대규모 규탄대회를 비롯, 승려대회를 개최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조계종 산하 전 사찰의 산문폐쇄도 불사하겠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8월 27에는 조계종뿐 아니라 천태종, 태고종 등이 범불교적으로 서울광장에서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를 개최하기로 해 불교계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정부 규탄대회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
이 세상에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나(我)’라고 내세울 만한 실체도 없는데, 하물며 ‘내 것(我所)’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생물이거나 무생물이거나를 가릴 것 없이 어느 것 하나 본래부터 그대로의 실체를 지니고 있는 것은 없다. 만물은 인연이 닿아 여러 인자(因子)가 모여서 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화엄경』 십인품(十忍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모든 법을 살펴보건대 모두 인연에 따라 일어난 것이다(觀察一切法 悉從因緣起). 바로 불가(佛家)에서 이야기 하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사람들은 무지의 소치로 자기를 포함해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그 꼴로 존재하는 실상(實相)으로 여기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매일의 생활을 이
참된 것,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찾아 헤매지만 그리 쉽게 잡히질 않는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는 말이 있다. 등잔 밑에 어둡다는 말인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밝을 듯한 곳이 오히려 가장 어두우니 말이다. 너무 가깝고 쉬우면 도리어 찾아내기 힘든 예가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허상(虛像)에 매달려 일희일비(一喜一悲)를 거듭하는 나날을 보내면서, 망상의 끈을 놓지 못한다. 결국 무명에 찌든 알량한 지식과 경험에 뿌리박은 관념적인 삶 때문에 매일 매일이 얼룩지고, 무명 때문에 생긴 오해로 인하여 다툼이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우리는 나뭇잎은 푸르다고 한다. 그러나 나뭇잎의 참 빛깔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나뭇잎이 푸르게 보
얼마 전 일간 신문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보도된 일이 있다. 지난 6월 12일 강원도 태백시장이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天祭壇)에서 천제단의 훼손을 막지 못한 데 대한 용서를 비는 고유제를 올렸다는 것이다.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은 신라시대부터 하늘과 단군 성조께 민족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오려온 곳으로,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28호이다. 그러한 오랜 역사와 민속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천제단의 일부가 5월 27일 특정 종교의 신도들에 의해서 훼손됐다는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관할 시장으로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죄스러운 심정을 하늘에 고하고 앞으로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짐하는 고유제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웃지 못 할
구태여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들출 것도 없이, 이 세상에 고정(固定)된 것은 하나도 없다. 작게는 미립자에서 크게는 우주에 이르기까지, 유형적인 재물에서 무형적인 명예에 이르기까지, 경제 상황에서 철학적 사고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어렸을 때 이 우주는 궁극적으로 파동(wave)과 입자(particle)로 이루어진 것인데, 모든 물질은 입자인 원자로 구성된 것이라고 배웠다. 과연 그렇다면 인간의 육신을 비롯한 모든 것을 구성하는 최하 단위인 원자는 입자라는 고정된 것이 되는 셈이고, 결국 만물에 고정 불변의 것은 없다는 이치에 대한 예외가 된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근래의 양자물리학에 의해서 밝혀졌다. 원자를 이루는 극미립자인 양자, 광자, 전자, 중성자 따위는
이른바 대운하 사업을 반대하며 스님들을 비롯한 각 종교계 성직자 20여 명이 운하건설예정지를 따라 100일간의 도보순례를 마치고 지난 5월 19일 서울로 돌아왔다. 이를 계기로 5월 24일 순례단이 동참한 가운데 종교계를 비롯한 시민단체 구성원들이 참석해 대운하 사업 백지화를 촉구하는 범국민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들은 한결 같이 자연과 생명 그리고 나라의 미래를 살리기 위해 대운하 사업 계획은 없던 일로 돌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매스컴의 보도에 의하면 국민 60%이상이 반대하고, 18대 국회의원 당선인 85%가 사업의 폐기 또는 보류 의견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국민의 목소리가 이처럼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요직에 있다는 사람들은 대운하 사업의 타당성을 변명하거나 요리저리 합리화 시키
새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있은 정부기구 개편의 결과로 일부 부처의 통폐합이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폐합되는 부처에서는 아직 쓸만한 비교적 새 것인 집기류를 폐품으로 처리했는가 하면, 그대로 있는 부처에서도 새로 부임하는 장관들의 멀쩡한 책걸상이나 집기들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느라 사들인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을 폐기처분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새 정부에서 단행한 정부기구 개편은 작은 정부와 능률적인 행정을 표방한 대선 공약의 실천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행정의 낭비를 막고 경비절감을 도모하려는 데에 첫째 목적이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조차 없는 일이다. 그러한 좋은 뜻에서 이루어진 정부기구 개편이 일부 공무원들의 방만한 살림살이로 말미암아 멀쩡한 책걸상 등을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들여놓는 어처구니없는 작
한동안 귀를 따갑게 하던 총선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도 있지만, 신묘하기 짝이 없는 선거결과가 나왔다. 인위적으로 만들기조차 힘들 정도로 묘하고 의미 있는 선거결과를 통해 모른 척 말 없이 있는 매서운 민심을 절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아직도 속을 못 차리고 선거결과를 제각기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고, 특히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갖가지 말장난을 하는 예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원래 정치에 몸을 담는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인격과 능력을 걸고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복지를 위해 이바지 하겠다는 결의의 표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선거 때면 후보자들은 의례히 자기가 당선되면 지역발전을 위해, 선거인의 이익을 위해
선거철을 지나면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모난 말들을 많이 들었다. 정당은 정당대로, 후보자는 후보자대로 절제되지 않은 말로 거침없이 상대방을 비난하다보니, 좋던 싫던 그 소리가 육성으로 또는 매스컴을 타고 우리의 감각기관에 와 닿는다. 그것을 듣는 사람으로서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이마에 주름이 하나쯤은 더 늘었을 것 같다. 하기야, 국회의 의석을 차지하고자 하는 당자(當者)로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마음의 여유가 있을 이 없고, 어떻게 해서라도 당선되고 보자는 생각뿐일 것을 짐작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제까지만 해도 정당을 함께 하던 동지나 국회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던 동료 또는 개인적으로 서로 흉허물 없이 지내던 친구가 의석 하나를 놓고 다투다 보니, 태도를 표변하여 언제 알
매년 봄철이 되면 불청객이 찾아들어 걱정꺼리를 더하곤 한다. 중국 북부와 몽고지방에서 편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황사가 그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황사가 매년 조금씩 심해지고, 또 황사의 계절이 길어진다는 데 있다. 올해도 벌써 황사의 영향으로 남부지방의 일부초등학교에서는 입학식을 조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까지 이르렀다는 보도가 나오고, 기상청은 금년에는 황사현상이 더욱 심할 것임 예고하고 있다. 황사는 몽고와 중국 북부에 있는 고비사막과 내몽고지방 황토고원의 건조한 지표(地表)가 이른 봄철의 거센 바람에 깎여 올라 편서풍을 타고 날아온 것으로, 멀리는 일본을 거쳐 미국 서해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그 위력은 짐작할 만하다. 중국 북경에서 비행기로도 서너 시간의 거리에 있는 서울에서 매년 봄철이면
“남대문아! 네가 죽다니….”우리의 국보 1호 남대문이 잿더미로 바뀌는 참담한 일이 일어나자, 수많은 시민들이 그 안타까움에 눈시울을 적시며 가져다 놓은 하얀 국화꽃 더미위에 놓인 어느 어린이의 편지 제목이다. 지난 2월 10일 저녁 국보 1호인 남대문이 한 치인(癡人)의 방화로 불에 타 무너져 내리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남대문의 본명은 그 편액에도 뚜렷이 나타나 있는 것처럼 숭례문이다. 조선 초 태조 7년인 1398년, 3년간의 역사 끝에 완성된 것이지만, 현재의 건물은 그 뒤에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1447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근 6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숭례문은 그 동안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끄떡없이 견뎌냈을 뿐 아니라 6·25동란도 무사히 이겨낸 국보중의 국보다. 국보 1호인 남대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