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학 개론 포교는 신심을 키워 몸과 마음을 다해 보살의 삶을 살고 성불의 길을 걷자는 것이다. 성불의 길 가운데 신심의 촉발 내지는 강화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그 무엇을 해도, 그 어떤 수행을 해도 항상 거론되는 것이 강한 신심이다. 대체 신심이란 무엇이며 신심을 확고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또 신심은 과연 어떤 내용이며 어떻게 자라게 해야 할까. 신심이 강해야 법당에도 자주 나오고 부처님을 자주 찾게 된다. 신심의 중요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신심이 중요함은 잘 알지만 어떤 경우에 신심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자. “내가 너를 믿는다”는 얘기를 한 번 음미해보자. 이 광활한 우주는 혼자서 살수는 없는 세상, 그 누군가의 도움이
▲포교학 개론 현실과 영원의 접점은 어디일까? 엘리아데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종교에서 의식(ritual)은 속(俗)에서 성(聖)의 세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통과의례다. 종교에서 의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종교자체가 의식을 바탕으로 성립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인들 가운데 의식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이 현실과 영원의 접점이라면 종교의식을 통한 한 생각이 이쪽과 저쪽을 구분 짓는 분수령이라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 등장하는 갖가지 의식에 대한 연구는 이 같은 점에 있어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각종 의식으로 종교행위가 성립하고, 그 같은 의식이 종교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라면 의식은 얼마나 중요한
▲포교학 개론 스필버그에게 기자들이 물었다. “당신의 영화 소재는 특이하다. 어디서 영화의 소재를 찾는가?” “나는 인간의 공통적인 관심사에 대해 주목한다. 인류 공통의 관심사라면 죽음과 영혼의 문제 그리고 저 하늘에 빛나는 별들과의 상관관계 아닌가. 그들이 인간의 영혼을 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는가.” 거장다운 대답이다. 그래서 쉰들러 리스트가 나왔고 ET라는 영화가 나왔다. 선방수좌들에게 참선의 궁극을 물으면 두말 할 나위 없이 생사해탈, 생사요달, 견성성불이라 대답한다. 죽음의 극복이야말로 불교의 근본과제 중 하나요. 생사요달, 생사해탈의 문제는 모든 수행자들의 공통과제다. 포교에 있어서도 죽음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선결과제다. 이 땅을
포교를 하면서 대단히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한 통찰이다. 불교는 마음을 바탕으로 전개되는데 마음은 보이지 않는 차원이면서 현실과 영원을 관통한다. 자연히 삶과 죽음의 문제가 함께 다뤄질 수밖에 없다. “생사일여(生死一如)”라 하신 부처님 말씀이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예에서와 같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하나인 것이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어떻게 함께 다룰 것인가.현실의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후세계 영가들의 문제, 중음신 내지는 귀신들로 불리는 보이지 않는
▲ 포교학 개론 불교는 마음이다. 마음과 마음이 하나 돼야 부처님이 나투신다. 포교는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잇는 숭고한 작업이다. 설법으로도 할 수 있고 의식으로도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예술품으로도 각종 불교문화도 그 중요한 몫을 해내고 있다. 마음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는 곳에 부처님이 계시고 감동이 있다. 포교는 부처님 가운데 하나 되는 감동의 세계다.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역량이 바로 포교의 중요한 성공요인이 될 것이다. ‘신심명’의 가르침에 “신심불이 불이신심(信心不二 不二信心)”이라 하신대로 진정한 신심 가운데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어야하고 믿게끔 해야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있듯 믿음이 없는 곳에 감동이 있을 수 없
▲ 포교학 개론 사람들은 조직에서 나서 조직 속에 살다가 조직 속에서 죽는다. 가정도 조그만 조직이고 학교도 사회도 온통 조직이다. 종교단체도 예외일 수 없다. 각 종교들을 보아도 교황이니 추기경이니 하는 위계에 따른 계급이 있고 교회도 주임목사, 부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조직이 있다. 절도 종정, 총무원장, 본사주지, 말사주지 등 모두 승랍에 따른 위계를 갖는다. 부처님께서도 영산에 계실 때 십대제자가 있었고 16성이 있었고 오백성 독수성 천이백대아라한 등이 있었다. 신도들 중 종교단체에 무슨 조직이 필요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에 자기 신심으로 나오면서 무슨 위계질서가 필요하냐 강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에 혼란을
▲ 포교학 개론 태양은 온 천하를 비춘다. 빛이 안 드는 곳은 죽음이다. 부처님께서는 빛이요, 등불인 법을 믿을지언정 사람을 믿지 말라하셨다. 사람이 사람을 실망시키기에 사람을 믿다보면 신심도 떨어지고 부처님도 멀리하게 된다하셨다. 실제 자기가 따르던 사람이 속으로 돌아가 버리면 실망해 부처님을 멀리하게 되고, 자기가 따르던 사람이 사람들에게 비난을 사게 되면 속이 상하고 실망해 신심이 약해진다 하셨다. 그래서 사람을 믿지 말고 광명인 법을 믿고 따르라 하셨다. 백번 천번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법당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부처님이나 법이 좋아 나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스님보고 오는 것 아니겠는가. 절도 많고 교회도 많고 성당도 많은데 하필 왜
▲포교학 개론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가능한 한 의견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부처님께서도 화합승(和合僧)이란 말씀을 강조했듯 신도들과의 화합이란 면을 항상 유념해야한다. 아무리 의견을 모아도 부정적인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법당을 운영해 나가려면 여러 사람들의 조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도움을 얻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하는 비전 제시와 함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란 청사진이 중요하기에 법사 자신이 미래에 대한 입지가 확고해야 한다. 장기적 측면과 단기적 계획이 정해져야 한다. 그 같은 계획이 있어야만 신도들
▲ 포교학 개론 오래전 구청장이 청소년관계 위원을 부탁해 구청 ‘청소년관계자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때 구청 관계자로부터 “강남 유흥단지에서 미화원들이 하루 새벽 수거해오는 향정신성의약품 이른바 필로폰 등을 주입한 주사기가 하루 한가마 정도나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부분 청소년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해서 더욱 놀랐다. 요즈음 들어 회자되고 있지만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가 워낙 현란하게 변하다 보니 청소년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태도 과거와는 딴판이다. 교회나 성당에서는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또 전문가들도 대단히 많다. 하지만 주지스님이나 사찰 종사자 가운데 청소년들의
▲지광 스님의 포교학 개론 그대는 포교를 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다 얘기하는가.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신 후 말씀하셨다. “참으로 기이하도다. 저들의 마음 가운데에도 나와 똑같은 지혜와 덕이 있는 것이. 다만 번뇌와 업장에 덮여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구나.” 부처님은 성불하실 때 어디 먼 곳에서 부처님을 모셔와 성불하신 것이 아니다. 위대한 조사스님들께서 견성성불하실 때 어디 저 먼 곳에서 부처님을 모셔와 견성성불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의 마음 가운데 덮여있던 번뇌와 망상 업장을 걷어내고 찬란한 빛이 되신 것이다. 우리들 모두의 마음 가운데 광명의 부처님 계심을 몸과 마음을 다해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전법사들이 포교를 하면서 가
▲포교학 개론 출가한지 여러 해가 흘렀어도 계속되는 기이한 현상이 하나있다. 어린시절 하도 많이 보아서인지 멍하니 앉아있으면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이 나도 모르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부처님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매일 바라보며 수십년을 수도 없이 기도를 올려왔는데도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고 슬며시 떠오른다. 어린시절 무수히 교회를 드나들며 끊임없이 찍어댔던 영상이 의식 속에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어린시절 종교생활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때문에 나는 유치원, 초·중·고, 대학생들을 위한 불교교육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생각 끝에 큰 마음을 먹고 분당에 유치원을 하나 개원했다. 8·90년대 어린이·청소년, 대
▲포교학 개론 반포지역 초등학교 육성회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다. 육성회 내 교인들이 많으니 불교가 이렇다는 것을 얘기해 달라는 몇몇 불자 육성회 간부들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교장실에 들러 주변을 둘러보니 각종 도표들이 붙어 있었다.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전체 학생 종교 분포도였다. 1800명 학생 가운데 압도적인 수는 개신교였다. 재학생 가운데 종교를 가진 학생이 절반인데 그들 중 50% 가량 되는 것 같았다. 그 다음이 가톨릭이었고, 불자 학생은 20%도 채 안됐다. 불자 학생이 적어 기분이 상했다는 말이 아니다. 전체 학생들 가운데 약 절반가량이 종교가 없다는 사실에 눈길이 갔다. 대형교회가 즐비한 강남! 엄청난 개신교세를 자랑하는 강남! 그럼에도
▲포교학 개론 포교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무엇보다 먼저 씨를 뿌리고 시간을 기다려야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거둔다. 시간을 낚는 강태공의 마음이 필요할 때도 있다. 성실해야겠지만 너무 조급해서는 안 된다. 금방 뭐가 되는 법이 있는가. 개척자의 자세가 절실하다. 최소한 얼마의 기간은 버틸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준비가 선행돼야만 한다. 또 모든 시작은 어렵고 힘겨운 법 아닌가.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포교를 시작하는 사람치고 쉽게 되리라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성불할 때까지 고통을 떠날 수 없다. 부처님께서도 마지막까지 악마와 싸우지 않으셨던가. 이기심의 악마가 박멸될 때까지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세세생생 부
▲포교학 개론 불교에서는 흔히 불종자(佛種子)라는 말을 많이 쓴다. 부처님의 씨란 말일게다. 부처님의 종자를 많이 뿌려야 많은 부처님께서 등장하실 테니까. 그러면 부처님의 종자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뿌려야만 하는 것일까. 부처님께서 “법이 불이요. 불이 법”이라고 하셨다. 결국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 가르침에다 비겨보면 부처님의 법문 즉, 부처님의 가르침이 불종자일 수밖에 없다. 부처님의 법문을 끊임없이 펼쳐야 무량중생들의 마음 가운데 부처님의 종자, 보리의 종자를 많이 뿌리는 것이 된다. 성실한 농부가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을 거두는 것처럼 끊임없이 법문을 펼치는 사람은 마음 가운데 부처님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아 그 공덕은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부
▲포교학개론 신도들은 자신들의 시주금이 보람 있게 쓰여 지길 원한다. 단 한 푼이 들어와도 그 쓰임새가 보람 있게 쓰여 졌음을 알려 줘야한다. 세속인들의 주된 관심사는 무엇인가. 재물과 색(色)아닌가. 재물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중요할진대 그들의 시주금이 어떻게 쓰여 지는지는 당연히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들 사찰이나 포교당의 경우는 어떤가. 교회나 성당보다 오히려 주지의 재량권이 크다. 여타 종교는 장로니 뭐니 해서 지켜보는 눈도 많고 관리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그런데 사찰이나 포교당들은 신도들에게 자신들의 시주금이 보람 있게 쓰여 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가. 그 해결책으로 이웃돕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포교학 개론 대통령이 무릎을 꿇었다 해서 얘기가 분분하다. 종교와 정치의 문제는 참으로 풀기 어려운 난제 중의 하나다. 정치라든가 언론 등은 모두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만큼 종교와의 관계는 그들의 성장 발전에 지대한 변수일 수밖에 없다. 포교 역시 정치와 언론 등과 중요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가름하기에 대중을 포용하고 있는 종교와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가져가야한다. 어느 유력한 정치인과의 대화 한토막이 기억에 새롭다. 자신이 오랜 세월 정치인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확실한 우군은 종교단체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선거나 정치인들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포교학 개론 1984년 강남의 어느 허름한 상가를 보증금 500만원, 월세 15만원에 얻었다. 어느 한 신도의 사무실을 인수받은 것이다. 지금도 조그만 포교당에서 하늘을 우러르며 꿈을 키우고 계신 포교사 분들이 계시리라. 그때 내가 얻은 장소는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어 목탁소리를 못내 게 하는 바람에 온통 방음장치를 하고 하늘도 볼 수 없었다. 그저 일년 중 반은 서울에 살고, 나머지는 산에 들어가 살다 나올 심산이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포교에 하드웨어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자해서다. 강남의 대형교회라든가 굴지의 교회들이 과거 하나같이 천막교회였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한국불교는 선조들에게 너무도 찬연한 유산을 물려받아
▲포교학 개론 흔히 입소문이란 말들을 한다. 어떻게든 입소문이 나야한다. 강남에서 상품을 띄워야지 전국으로 퍼져간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상품을 띄우고 싶어도 소비자들이 시큰둥하면 상품의 생명력은 그것으로 종을 치고 만다. 과연 어떤 상품이 뜨게 되고 대박이 나는가? 아무 상품이나 대박이 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준비에 준비를 거듭한 상품이 일종의 트렌드라 부를 수 있는 시절인연을 만나 대박을 치는 것이다. 종교를 상품에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갖가지 종교의 백화점과 같은 대한민국에서 시대의 흐름을 타야하고 무언가 특징 있는 메시지가 없어서는 진가를 인정받기 힘들다. 종교학에 보면 탁월한 종교지도자들이 등장해 시절인연 따라 한바탕의 바람을
▲포교학 개론 부처님의 전법은 깨침을 바탕으로 한 대자비의 실천이었다. 깨달음을 전하신 팔만장경은 그 내용 모두 지혜방편과 자비실천의 탁월한 방법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의 포교사들이 부처님 같은 깨달음과 지혜 그리고 대비방편을 갖출 수가 있는가? 이 세상에 부처님 같으신 분이 또 있을 수 있겠는가? 부족하고 또 부족한 군상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래도 의미 있는 포교가 될 것인가. 투철한 마음으로 부처님 가르침 따라 사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철저히 부처님을 따라 걷는 삶속에 부처님의 모습이 투영될 것이고 부처님의 말, 부처님의 생각, 부처님의 행동이 점차 드러날 것이다. 부처님을 닮아가려는 수행자의 삶 가운데
▲포교학 개론 부처님께서는 끊임없는 극복 속에서 일생을 보내셨다. 출가 후에는 깨달음을 위한 악마와의 싸움이었고, 성도하신 뒤에는 바라문 등 이교도들과의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또 데바닷다의 반역을 비롯한 수많은 고초를 특유의 자비심과 수행력으로 극복하셨다. 부처님뿐 아니라 각 종교의 창교주들 역시 끝없는 배신과 반대세력에 의한 박해 등을 극복하면서 무진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예수는 가롯유다로 상징되는 배신자들 뿐 아니라 기존의 종교세력들에 의한 박해로 결국 생명을 잃었고, 마호메트 역시 아부·사프르 등의 배신자들은 물론 메카의 기존 종교세력과의 싸움으로 메디나로 피신하는 등 박해를 겪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포교의 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