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심유주 즉위비주-만약 머문다면 사실은 머물지 못하는 것이다.’세상은 끝없이 변한다. 젊음이 늙음으로, 고움이 미움으로, 건강이 질병으로 변한다. 부귀가 빈천으로 명예가 치욕으로 변한다. 희·락·애(喜樂愛)가 노·애·오(怒哀惡)로 변한다. 기쁨·즐거움·사랑이 성남·슬픔·미움으로 변한다. 나뭇잎이, 흐르는 강물 위에 내려앉으면 사실상 앉은 게 아니다. 강물 따라 끝없이 흘러가므로 앉아도 앉은 게 아니다. 우리 몸과 마음도 그러해서 일촌광음(一寸光陰)도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시공에서 시간을 공간을 붙잡고 잠시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때가 언젠지 아무도 모르는 아주 먼 옛날에, 가리왕이 사냥을 나갔다. 따라간 궁녀들이 눈에 보이지 않자 찾아 나선 왕은, 그들이 동굴 속의 선인과 함께 있는 걸 보고 분노하며, 선인의 온몸을 칼로 갈가리 잘랐다. 그런데 선인은 증오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선인이 전생의 부처님이다. 욕됨을 잘 참아 인욕선인이다. 속된 말로 참기달인이다. 하지만 불자들이 곤경을 당할 때 흔히 스스로 위로하듯이, 전생의 업이기 때문에, 즉 마땅히 받아야 할 일이기에 증오가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니다. (금강경은 그렇게 수준이 낮지 않다. 인천교(人天敎)
불고수보리 여시여시. 약부유인 득문시경 불경불포불외 당지시인 심위희유.사람은 누구나 정체성에 의지‘자기’ 없다는 건 엄청난 공포금강경 듣고도 두려움 없으면범 모르는 하룻강아지 불과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네 말이 맞고 또 맞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얻어 듣고도, 놀라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참으로 보기 드문 사람이다.공포는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다. 팔정 희로애락애오욕구(喜怒哀樂愛惡慾懼) 중 하나이다. 생명체의 최고의 목적은 생존이다. 그래서 생존에 위협을 당하면 공포를 느낀다. 맹수·원수·기아·지진·홍수·자연
이때 수보리는 이 가르침을 듣고 그 뜻을 깊이 이해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 그러더니 부처님께 말했다. 희유한 일이옵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심오한 경전을 설하였사오나, 제가 지혜의 눈을 얻은 이래로 지금까지 이런 경전은 얻어 들은 적이 없사옵니다.시공이 변하고 의식 변하면그에 걸맞는 새 깨달음 필요‘금강경’ 중 가장 감동적인 구절이다. 어느 종교경전에도 이처럼 순결한 장면이 이처럼 순결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평소에 자기 깜냥으로 지혜의 눈을 얻었노라고 자부했건만, 그래서 더 이상 나의 지성을 자극할 말은 없을 것이라고
‘이때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전을 무어라고 부르고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은 금강반야바라밀이라 부르고 받들어 지니어라.’마음 맑으면 몸으로 드러나행복한 마음 미소로 나오듯32상은 부처님 마음의 현현이름은 경전의 얼굴이다. 이름을 잘 지어야 대의가 잘 드러난다. 이름은 침묵이 아니지만, 진리를 드러냄에 있어서, 단 한 마디만 하므로 침묵에 가깝다. 하지만 우레와 같은 한마디이다. 시경명위금강반야바라밀(是經名爲金剛般若波羅蜜). 모든 걸 잘라내는 금강석처럼, 반야바라밀의
‘또 수보리야. 이 경전이나 사구게를 설하는 곳에는 모든 사람들과 천인들과 아수라들이 모두 탑묘(塔墓)처럼 공양을 할 것이다. 하물며 수지독송(受持讀誦)하는 사람이랴. 이런 사람은 으뜸가는 드문 공덕을 지었음을 알라.’설산동자가 자신 던진 것처럼몸을 바쳐야 얻어지는 게 진리진리 설해지는 곳에 불탑 있어법(法)을 듣는 것은 희유한 일이다. 부처님은 설산동자 시절에 한 구절 법을 듣기 위해 몸을 바쳤다. 어느 날 야차가 중얼거렸다. ‘제행무상 시생멸법.’ 우연히 그 말을 엿들은 동자가 다음 구절이 궁금해졌다. 날이 갈수록 참을 수 없어
‘수보리야, 너에게 진실로 묻노니, 만약에 선남자 선녀인이 갠지스 강 모래 수만큼의 우주를 가득 채운 보석으로 보시하면 그 복이 크다고 생각하느냐?’‘금강경’은 물질세계에서 영적세계로 점프케 하고35억년 정체성 때려부셔무한한 자유를 선사한다물질적 보시와 정신적 보시는 차원을 달리한다. 물질적 세계에 살던 사람에게 정신적 세계의 열림은 거듭남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충격적인 세계이다. 기독교 복음서에서 죽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거나, 육체를 지닌 채로 승천하거나, 군사를 일으켜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재건하거나, 천군(天軍)을 거
수보리 비여유인 신여수미산왕. 어의운하 시신위대부? 수보리언 심대세존 하이고 불설비신 시명대신.조금이라도 상이 있으면결코 중생 구할 수 없어법에 머문다고 할지라도집착이기에 괴로움 불러 사람들은 몸이 큰 것만 치지 마음이 큰 것은 간과한다. 아이들은 몸이 더 크면 다른 아이를 이기지만, 커감에 따라 이기려면 꾀가 즉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충분히 성장하면 외적 마음인 사회적 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사회적 제도 속에서, 사회적 제도를 통해 획득한 힘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그중 최고봉이 왕 등 권력자이다. 하지만
시고수보리 제보살마하살 응여시생청정심.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이생기심.그러므로 일체에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라. 모양·소리·냄새·맛·촉감·현상에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라.(마음은 지향성(志向性)이라 어딘가에 머물지만 색·성·향·미·촉·법에 머물지 마라.)첫눈 반한 사랑은 육체 반응마음의 눈 결코 빠르지 않아첫눈 반한 사랑 지속 되려면마음의 눈에도 들어야 한다모양에 머물다 크게 당하는 수가 있다. 본시 아름다움이란 잘 작동하는 것이다. 건강한 것이 잘 작동하는 법이므로, 건강한 것이 아름다움의 기원이다. 잘 작동하
수보리 어의운하 보살장엄불토부. 불야세존. 하이고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본능이 아닌 합리적 감정은이성이며 지혜의 다른 이름불경 나오는 이성적 이야기개체 벗어난 이타주의 키워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더 나아가 의식하지 않고, 하는 장엄불토가 최고의 장엄불토이다. 뒤탈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를 내세우면 밖으로는 사람들의 인정·칭송을 기대하고, 안으로는 교만한 마음을 내어, 결국 실망·분노·시기·질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그만 선행일지라도, 타인의 선행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에게 아상이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거대한 선행이랴.철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석재연등불소 어법유소득부? 불야세존. 여래석재연등불소 어법실무소득.법을 얻었다는 생각 있으면여전히 분별심 남아있는 것구별해 임의로 이름 붙여도일체 흐름은 영속적 이어져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까마득한 옛날에 연등불 회상에서 얻은 법이 있을까? 아니옵니다. 얻은 법이 없사옵니다.’법을 얻었다는 생각이 있으면 아상(我相)에 사로잡힌 것이다. 주객(主客)이 공(空)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볼 때, 깨달음은 연기현상(緣起現狀)이다. 일체 배움과 인식도 연기현상인데 하물며 깨달음이랴. 그래서 얻은 바 법이
불교가 커짐에 따라, 부유한 상인들이 귀의자가 됨에 따라, 수행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좋은 음식을 대접했다. 이런 음식을 거부하고 항상 예외 없이 걸식에 의존하는 게 상행걸식이다.초기불교는 출가자 의식주 12두타행으로 확실히 정리대승불교, 내적요소로 발전출가 불교수행자들은 모두 아란야행을 할 의무가 있었다. 아란야는 적정처(寂靜處)란 의미로서 마을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있어야 한다. 세속의 소란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하고, 걸식하기에 너무 멀어도 안 된다. 불교수행은 외적환경에 휘둘리는 걸 피해야 한다. 아직 수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