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를 이야기할 때 선종과의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선종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시공의 한계를 초월한 초연성을 갖고 있다. 깨달음이 일종의 경계로 본다면 사물을 보다 초월하는 것으로 그림으로 보면 어떤 형태나 표현, 구체적인 묘사를 통한 것이 아닌 그 경계를 넘어서는 표현과 행위 그자체가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스며들다. 스며듦은 따듯함이다. 먹과 물과 종이처럼 나와 대상의 이어짐이다. 계절이 오고 또 가고 꽃이 피고 지듯 스며듦은 자연의 속도이다.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이다.’(2019년 5월 조순호
최근 다양한 작가들이 작가 개인의 경험과 동시대성을 담아내 시대적 공감과 다양한 인물화의 폭을 넓히고 있다. 미술이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시각예술이라는 측면으로 볼 때 현대 작가들의 인물화 속에는 다양한 현대의 인물이 등장한다. 최근 젊은 여성을 그린 새로운 측면의 ‘미인도’가 등장하는 것 또한 그러한 경향의 일환이다. 젊고 발랄한 현대여성의 미인도는 대중의 인기를 함께 누리고 있기도 하다. 작가 ‘고찬규’의 작품은 다른 의미의 시대성을 보여준다. 한국화의 전통 채색화 기법과 과슈와 아크릴을 사용하기도 하여 인물화의 현대성을 추구
정진용 작가의 풍경그림에는 옛 궁궐이나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건물들이 등장한다. 장엄한 느낌을 주는 옛 건물인 궁궐을 통해 권위와 욕망의 상징적 공간을 역사적 의미를 더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어떤 공간에 들어설 때 사람들은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행동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처럼 작가는 공간의 의미를 그림을 통해 확인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한 광화문사거리의 풍경 속에 등장하는 집들은 현대의 건축물들이 아니다. 옛집들이 빼곡한 도성 안의 풍경은 사실과 현재의 풍경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작가의 상상과 사료를 기반으로 한다.
우연히 만난 권봄이 작가의 작품 ‘Circulation’은 단순하고 명료한 색감으로 이 봄에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더구나 크고 작은 원형의 조형이 기분을 명랑하게 한다. 칼같이 쌀쌀한 바람 틈으로 햇볕은 따뜻하다. 그늘이 아닌 햇볕이 비추는 길로만 다니면, 봄이 온 것을 실감하고 이 새로움이라는 단어에 마음 뿌듯이 기대감도 올라간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에 대한 기대감. 생애주기의 연령대마다 계절에 대한 느낌도 다르고, 마주하는 삶에 대한 태도나 일을 풀어가는 자세도 달라진다. ‘Circulation’이라는 단어는 ‘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본 게 거의 20년쯤 전의 일이다. 그때 한생곤 작가에 대한 이미지는 문인으로 치면 방랑시인 같은 느낌이었다. 작품도 헐렁하다고 해야 하나,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은, 억지로 무엇을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닌 그런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작가의 개인전 소식을 접하고 만난 작품들은 훨씬 깊이가 있었다. 시간과 연륜의 효과이기도 하겠지만, 무조건 시간이 흐른다고 작품의 깊이가 쌓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연륜은 작가가 열심히 치열하게 자기 고민을 해온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초기의 작품들도 자연을 닮은, 혹은
한양 성곽길 3코스를 따라 오르다 보면 고갯마루쯤 되는 곳에 중구청 소속의 문화공간 ‘THE 3rd PLACE’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전시와 모임, 예술교육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마주한 조은령의 작품은 공간에서 영감받아 공간 속에 자신의 작품을 조용하고도 잔잔하게 녹여내고 있다. 오랫동안 동양미술의 화제였던 사군자를 주제로 오래된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에 조화롭게 사군자의 정신을 돌아보게 한다. 조은령의 작품에서 두 가지 놓치지 말아야하는 감상포인트는 현대적이고 화려한 도시에 존재하는 오래된 주택의 옛 기
해가 바뀌고 설과 입춘, 대보름까지 년 초 주요 기념일들을 지내고 나니 벌써 삼월이 목전이다. 본격적인 2019년 한 해가 시작되는 듯하고, 뭔가 주변을 정리하고 환기시켜 새 기운을 받아야만 할 것 같다. 사람의 뇌는 기본적으로 어떤 현상, 혹은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해가 바뀌어 한 해를 구상하면서도 그렇고, 주변에 벌어지는 많은 일들, 아이를 키우면서 가족 간에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해보면 나부터도 부정적인 생각 투성이다. 벌어지지 않은 일들에 대한 안 좋은 상상과 걱정을 번뇌라고 한다면 현대인들은
오랜만에 시원하게 여백을 살린 순수 담백한 수묵화 한 점을 만났다. 오랜만이라는 건 요즘은 이렇게 수묵으로만 그린 그림이 드물고 더구나 산수를 주제로 하는 작가도 드물고, 전통을 잇고 있지만 구태의연하다기 보다는 현대적인 느낌도 드는 작품이 드물다는 뜻이다. 눈 덮인 산자락에 범상치 않은 바위의 모습과 뒤편으로 보이는 소나무 가지를 보니 실제 그 능선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제목도 지리산 영신봉이니 작가가 직접 산에 올라 그 감동을 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4년 전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해 두 번쯤 종주를 완료하였다고
조선시대 화원화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미인도를 연상시키는 이 여인의 모습은 조선시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이미지로 묘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비단위에 세필로 섬세하게 인물을 표현하는 김선정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는 주로 종이가 아닌 비단을 바탕으로 작업을 한다. 종이보다 씨줄, 날줄 사이에 공간이 있어 붓의 표현이 더 섬세하고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다. 씨줄, 날줄 사이의 공간을 아교와 백반을 녹인 물로 채우고 그 위에 색감을 내기 위해 흐린 채색을 여러 번 발라 색감이 올라오게 만드는 기나긴 작업과정을 거친다. 인물만을 표현하
고고미술벽화부터 등장하는 동물과 식물 그림은 주술적이거나 기원과 상징의 의미가 담겨있다. 전통회화에서 오랫 동안 다루어 왔던 영모화(翎毛畵)의 영모는 본래 새의 깃털을 의미하던 것인데 후에 동물의 털까지 의미가 확장돼 보통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영모화라고 부른다. 삼국시대 유물에 남아있는 동물형상 역시 순수한 감상용이라기보다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감상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은 고려시대 이후 전칭작 이양도(二羊圖)에 이르러서다.조선 중기 종실화가이면서 개와 고양이의 모습을 따뜻하게 표현한 화가 이암, 고양이를 많이
‘공간인식 : 보다’로 시작한 이윤빈 작가의 개인전에서 처음 작품을 접했다. 그림들은 담백한 수묵 담채기법으로 실내 풍경과 외부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20대 작가의 수묵화는 어떤 느낌일까. 전통회화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표현방법이 궁금했다.수묵화는 그림을 그리는 재료이기도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철학을 담고 있기도 하다. 서양회화의 시작은 투시법과 빛과 그림자, 명암법을 활용해 사물을 똑같이 보이게 묘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반면 수묵화는 전혀 다른 기준과 방법으로 접근한다. 동양의 자연관에 기인하여 산수화는 고원(高遠),
얇은 종이 한 장 한 장 쌓여 한 권의 책이 되듯, 하루하루가 쌓여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는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책처럼 지혜와 깨달음도 더 커지면 좋으련만 시간이 간다고 저절로 더 지혜롭거나 저절로 깊이가 생긴다거나 현명해 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나이가 드는 것과 현명해 지는 것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아야 지혜와 현명함이 생기는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음을 닦는 일처럼 작가는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신을 단련시키며 깊어져 간다. 백지혜 작가의 작품을 긴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