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출신의 화가 루벤스(1577~1640)는 바로크시대 최고의 거장으로 꼽힌다. 그의 걸작 중 하나가 영국 햄프턴 왕궁 천정에 그린 ‘왕의 계단’이다. 이 그림은 가까이 보면 흐릿하고 잘못 그린 것 같은데 10여 미터 아래서 보면 오히려 또렷해지고 아름답게 보인다. 루벤스가 궁내 한가운데까지 못가고 그저 맨바닥에서나 멀찌감치 올려다봐야 할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기법으로 그렸기 때문이다.누구나 볼 수 있게 그려진 괘불멀리서도 선명한 아름다움 특징서민 배려서 비롯된 대중적 면모1652년 조성된 안심사 괘불은석가불 설법 담은 영산회상
충청북도 괴산군에 유서 깊은 명찰 각연사(覺淵寺)가 있다. 각연사 둘레에 높다랗게 서서 병풍마냥 둘러싼 보개산(寶蓋山)도 이 지역의 명산이다. ‘보개’란 부처님 머리 위에 놓인 일산(日傘)인데, 1세기 무렵 인도에서 불상이 처음 나타날 때부터 표현된 오래된 장엄이다. 다시 말하면 우뚝 솟은 산들이 부처님이 있는 절 주위를 일산마냥 두르고 있다는 의미다. 이 보개는 조선시대에 와서 법당 안으로 들어와 불상 위에 장엄되는 ‘닫집’으로 형상화 되었다. 어떤 이는 각연사 주위 산들의 이름을 보면 칠보산·보배산·덕가산 등이지 ‘보개산은 없다
세상에 나타난 숱한 종교와 사상들은 어느 특정한 민족이나 지역에서만 꽃피운 한계를 갖는 게 대부분이다. 세계를 아우르는 국제성과 영속성이 부족한 것이다. 아시아만 예를 들어봐도 중국의 도교와 노장사상, 일본의 신교와 신사(神社)문화가 그러했다. 반면에 불교를 비롯해 기독교와 가톨릭교 그리고 이슬람교 등은 어느 한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로 전파되며 세계종교로서 더욱 발전되어 나갔고 지금도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아마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 할 것 같다. 특히 불교는 인도에서 출발하여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다양
불교공예 중에서 가장 손길이 많이 가고 정성스럽게 만들게 되는 것이 사리장엄(舍利莊嚴)이다. 사리장엄이란 탑에 봉안된 불사리를 담은 용기들을 말하는데 병·호·합·상자 등 여러 형태로 만들어진다. 불교공예 대부분 공양이나 예불을 올릴 때 사용되는 공양구(供養具)로서 그 자체가 불상이나 불화 같은 경배의 대상은 아니다.2007년 발굴된 온전한 사리장엄백제의 수준높은 미술문화 증명“무령왕릉 이후 최고 발굴” 평가유리 아닌 금제 사리병 주목받아 청동제 사리함에 새겨진 명문은해석 차로 연대논쟁 불러 오기도백제 자체 기술로 제작된 유물가장 오
불교미술 가운데 본질적으로 가장 화려하게 만들어지고 꾸며지는 것이 사천왕상(四天王像)이다. 대체로 불보살상이나 다른 불교조각 등은 모두 외형이 검박하고 부드러운 표현으로 일관되게 마련이다. 불상에 내재해 있는 자비와 위엄 그리고 섬세함도 이런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 있다. 그래야 불보살 본래의 면목에도 부합하고 이를 본 사람들도 감복해 귀의하는 마음이 우러나기 때문이다.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사천왕상소조 아닌 목조상으로 희소가치1515년 조성기록 명확히 전해져신라·고려 양식 전통 갖추면서조선 후기 양식 선도하고 있어불교조각사 비중 매우
오래된 작품에는 전설이 뒤따르곤 한다. 작품이 뛰어날수록 그것을 만든 배경에 얽힌 전설은 꼭 있기 마련이다. 이 같은 전설은 작품의 감상에 묘미와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된다. 그런데 어떤 작품에는 전설이 곧 역사요 사실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역사책에 차마 그대로 다 싣지 못할 이야기가 입으로 전해져 전설로 남은 경우가 왜 없겠는가. 이런 전설은 다른 형태로 ‘기록’되니, 책이 아니라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설의 내용과 작품의 분위기와 양식이 일치하는 사례가 곧잘 있으니, 그 중 하나가 바로 충주 미륵리에 있는
절이 하나의 열린 박물관이라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경내 안팎이 신앙과 예술이 어우러지고 조화된 독특한 문화재로 장엄되어 있고, 산자락에 고즈넉이 자리한 절 주변에는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니 이 속에 있으면 저절로 기운이 샘솟는다. 자연과 점점 멀어져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만한 치유의 공간도 없을 것 같다. 절을 들어설 땐 잔뜩 지치고 허허롭던 마음이 절을 둘러보고 되돌아설 땐 넉넉하게 채워진 마음과 가뿐한 걸음으로 산문을 나서게 된다. 볼 게 많고 느끼는 게 많은 공간이 바로 절이다.사찰은 하나의 열린 박물
화려와 절제는 미술 표현의 두 축이다. 화려함은 미술의 원초적 목적인 장식과 꾸밈을 위한 필수적인 외연(外延)이고, 절제는 고양된 미의식의 고상한 침묵이다. 화려하기만 해서는 산만해지기 쉽다. 반대로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절제만 한다면 그건 철학이지 미술은 아니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야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한다. 불교미술에도 기본적으로 화려와 절제의 조화가 필수다. 우리 불교미술은 선종의 영향으로 적어도 고려시대 이후로는 절제라는 측면이 조금이라도 더 강조된 편이다. 그중에도 탑은 늘 절제의 미가 최고덕목으로 간주되었던 분야다.
미술이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적 표현이라는 정의는 르네상스 이후에 나타난 인식이다. 미술이 발생한 배경을 기능 면에서 이해한다면 사실 ‘알림’과 ‘기억’이라는 목적이 더 컸는데 이를 위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글자보다는 그림이 훨씬 대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전통 기법 따르는 섬세한 묘사그림 자체로 회화적 가치 출중김정희·권돈인이 지은 찬문엔학문·예술서 이룬 뛰어난 경지고스란히 드러나 깊은 감흥 전해선사의 가르침·모습 담아내는진영의 본래 목적에 충실히 부합미술의 여러 장르 중에서 이런 기능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분야
예술을 뜻하는 Art의 어원은 ‘어깨’라는 뜻의 Arm이다. 튼튼한 어깨와 솜씨 있는 손길로 잘 만든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공예’ 또는 ‘기술’을 의미했다. Art는 대략 18세기 말에야 지금처럼 예술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공예는 ‘힘’을 의미하는 독일어 Kraft에서 파생된 Craft로 대체되었다. 어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공예의 특질은 예술이라는 바탕 위에 기능성과 편리성이 더해진 데 있다. 조각이나 회화 등 여타 분야보다 공예 작품이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불교미술로 보면 이 기능성
장엄(莊嚴)은 불교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사전적으로 ‘웅장하며 위엄 있고 엄숙함’을 뜻하는 이 말은 ‘훌륭하게 배열한다, 짓는다, 꾸민다’는 의미인 산스크리트어 ‘vyu -ha’에서 비롯되었다. 장엄이라고 하면 흔히 채색이나 도안 같은 장식(裝飾)을 먼저 떠올릴 것 같다. 그런데 장엄은 장식에서 나아가 상징이고 도설(圖說)이기도 하다. 장엄을 잘 해석하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얻을 수 있으니, 어쩌면 불교미술을 해석하는 ‘키워드’는 양식이 아니라 장엄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불교미술에서 장엄이 가장 잘 표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환란은 끊이지 않았던 외세의 침략일 것이다. 강화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어 왕조가 외세에 버티는 최후의 보루 노릇을 했다. 한편으론 그만큼 외적의 침략 앞에 그대로 노출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등사(傳燈寺) 같은 명찰이 온전히 전하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전등사의 여러 건물들은 충실한 중건과 수리에 힘입어 오늘날에도 그 원형이 대부분 보존되고 또 다른 많은 유물들도 전해와 역사의 보고 역할을 단단히 해내고 있다. 그 중에도 대웅보전은 조선시대 중기에 지은 유서 깊은 건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