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木千章五月涼(고목천장오월량)小樓八尺一爐香(소루팔척일로향)讀殘數紙還抛却(독산수지환포각)瞌睡居然是坐忘(갑수거연시좌망)‘일천 고목은 오월에도 서늘 여덟 자 작은 누각에는 하나의 향로. 읽다 남은 몇 장 다시 던져버리니 앉아서 잠든 이것이 좌망이로구나.’ 이숭인(李崇仁, 1349~1392)의 ‘현성사에서 글을 읽다가(玄聖寺讀書)’.화가 유숙(劉淑, 1827~1873)이 발을 멈췄다. 작은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 그리고 담아놓은 먹물을 꺼냈다. 그저 적은 양의 먹만 있으면 충분했다. 다시 앞을 바라봤다. 한 스님이 등을 구부리고 앉아
月磨銀漢轉成圓(월마은한전선원)素面舒光照大千(소면서광조대천)連臂山山空捉影(연비산산공착영)孤輪本不落靑天(고륜본불락청천)‘달이 은하수에 갈려 점점 둥글어지고 흰 얼굴에서 빛을 흩뿌려 대천세계를 비추는구나. 팔 이은 원숭이들 헛되이 달그림자 잡고자 하나 외로운 둥근 달은 본래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네.’ ‘석문의범(釋門儀範)’ 중 관음예문(觀音禮文).“큰일이야! 하늘의 달님이 물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어. 세상이 어두워지지 않게 어서 꺼내드려야 해!” 대장 원숭이의 외침이 숲의 정적을 깨웠다. 후두둑 후두둑, 얽키고 설킨 나무를 헤치며 주변
本是山中人(본시산중인)愛說山中話(애설산중화)五月賣松風(오월매송풍)人間恐無價(인간공무가)‘본래 산속 사람이라서 산속 이야기 말하길 좋아하네. 오월의 솔바람 팔고 싶으나 사람들 그 값 모를까 걱정이구나.’ ‘선종송고연주통집(禪宗頌古聯珠通集)’ 중 ‘게송 네 번째(偈頌其四)’.옛날 깊은 산속의 고승을 찾아간 선객이 깨달음에 관해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고승의 하루 일상이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텃밭을 가꾸고, 세끼 밥을 먹고, 한 잔의 차를 마시고, 잠을 청했다. 매번 같은 대답에 싫증이 난 선객이 말했다. “깨달음에 대
富貴猶經五鼎飡(부귀유경오정손)貧窮自足一簞食(빈궁자족일단사)等是浮休百歲間(등시부휴백세간)此何爲失彼何得(차하위실피하득)‘부귀하나 오정 음식 되레 가볍고 빈궁하나 대그릇 밥 만족한다네. 백 년간 떠돎은 다를 바 없으니 이것이 어찌 잃음이 되고 저것이 어찌 얻음이 되리오.’ 충지(冲止, 1226~1292)의 ‘우연히 쓰다(偶書)’.‘쇠똥 화로에서 향내 나다(牛糞火爐香)’. 중국 근대 화가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가 지은 자서전의 제목이다. 그가 추억하는 어렸을 적 집안은 늘 가난했다. 양식이 바닥난 빈 아궁이에는 빗물이 고이고
觀心見性徒自勞(관심견성도자로)似蟲撲紙驢年去(사충박지려년거)爲報含元殿上人(위보함원전상인)莫問長安在何處(막문장안재하처)‘마음 보고 본성 깨달음은 다만 스스로 고생만 할 뿐, 종이에 부딪히는 벌레는 나귀의 해에야 나가겠네 그려. 이르노니 함원전 위의 사람이여, 장안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지 말게나.’ 권필(權韠, 1545~1612)의 ‘제하여 천인상인에게 주고, 아울러 동악의 학곡에 부치다(題贈天印上人, 兼柬東嶽鶴谷)’.사찰 바람에 물든 풍경 소리는 어디로 갔던가. 엄숙한 좌선당 뜰의 한바탕 소란이 산사를 흔든다. 남전보원(南泉普願, 74
呼呼呼入妙(호호호입묘)念念念歸眞(념념념귀진)呼念相交處(호념상교처)如來卽現身(여래즉현신)‘부르고 불러 입묘(入妙)를 부르고 외고 외워 귀진(歸眞)을 염송하나니. 호불과 염불이 서로 만나는 곳에 여래께서 곧 몸을 드러내신다네.’ 치익(致益, 1862~1942)의 ‘염불(念佛)’.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은 가끔 한 승려와 함께 삼거(三車, ‘법화경’ 비유품에서 말하는 우거·녹거·양거)를 이야기하곤 했다. 얼마간 지내면서 보니, 그의 규범은 마치 가을 하늘의 밝은 달빛에서 얻은 듯했고, 마음은 여름날의 푸른 연꽃 빛깔을 닮
龍吟枯木猶生喜(용음고목유생희)髑髏生光識轉幽(촉루생광식전유)磊落一聲空粉碎(뇌락일성공분쇄)月波千里放孤舟(월파천리방고주)‘고목에 용이 우니 외려 기쁘기만 한데 해골에 빛이 나니 알음알이 되레 깊어져만 가네. 벽력같은 소리에 허공은 가루처럼 부서지고 달빛 천 리 물결에 외로운 배 한 척 떠 있다네.’ 인오(印悟, 1548~1623)의 ‘향엄이 대나무를 치다(香嚴擊竹)’.찬 새벽인 듯 짙은 골안개가 암자 주변을 감싼다. 서늘한 기운 느낀 선사가 긴 대나무 있는 앞마당으로 나왔다. 쓱 쓱, 고요한 자연 중에 일정한 빗자루질 소리가 듣기 좋게
佛在爾心頭(불재이심두)時人向外求(시인향외구)內懷無價寶(내회무가보)不識一生休(불식일생휴)‘부처는 네 마음속에 있는데 지금 사람은 밖에서만 구한다네. 안에다가 값 매길 수 없는 보물 품었건만 알지 못하고 일생을 놀기만 하는구나.’ 일선(一禪, 1533~1608)의 ‘은선암에 머물며 우연히 읊다(留隱仙偶吟).’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화상은 당나라 때의 고승이다. 불가에 출가하기 이전의 행적은 분명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과거를 통해 입신양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과거를 보기 위해 장안으로 가던 중에 한 여관에 머물
一抹輕煙遠近山(일말경연원근산)展成淡墨畵圖看(전성담묵화도간)目前分外淸幽意(목전분외청유의)不是道人俱話難(불시도인구화난)‘멀고 가까운 산에 한 줄기 스친 엷은 안개 진실로 엷은 먹으로 이루어낸 그림 보는 듯하네. 눈앞 뜻밖의 맑고 그윽한 풍경 도반이 아니면 함께 말하기 어렵구나.’ 다이치(大智, 1290~1367)의 ‘봉의산 산속에 머물다, 하나(鳳山山居一)’.산중에 살면 사람은 세 가지 즐거움을 얻는다. 첫 번째는 날마다 새로운 맑은 햇살과 투명한 달빛 담긴 산속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즐거움이고, 두 번째는 개울 소리, 바람 소리
滄海何難測(창해하난측)須彌豈不攀(수미기불반)趙州無字話(조주무자화)鐵壁又銀山(철벽우은산)‘푸른 바다 깊이 재는 것이 무엇이 어렵고 수미산을 어찌 오르지 못하겠냐마는. 조주의 무자(無字) 화두만은 쇠와 은으로 된 절벽과 산이로구나.’ 무주(無住, 1623~?)의 ‘혜 선사에게 보이다(示慧師)’.선객(禪客)은 누구나 하나의 화두(話頭)를 지니고 살아간다. 화두는 문자 그대로 말보다 앞서가는 것이다. 즉 언어 이전의 내 마음을 잡는다는 의미로 풀어낼 수 있다. 선객이 마음을 잡으면 곧 깨달음에 이른다. 그 길에 이르도록 참선하며 진리를 찾
金剛山聳海東濱(금강산용해동빈)峯黙溪喧各自眞(봉묵계훤각자진)堪笑老僧斯不識(감소노승사불식)飢虛爲道謾勞神(기허위도만로신)‘동쪽 바다에 금강산 높이 솟았으니 고요한 산봉우리 시끄러운 시내도 저마다 참되구나. 우습구나, 늙은 스님은 이 이치 모르고 굶는 것을 도로 여겨 정신만 힘들게 하네.’ 보우(普雨, 1509~1565)의 ‘벽곡하는 늙은 스님에게 주다(寄辟穀老僧)’.햇수로 7년, 만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삶의 번뇌를 끊어내기 위해 ‘고행림’에 들어갔던 샤카족의 젊은 사내가 깡마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얼굴을 감싼 지저분한 수염과 넝쿨
打破無明混沌胚 廓然寂滅絶追求(타파무명혼돈배 확연적멸절추구)能開境界乾坤闢 閑放虛空日月流(능개경계건곤벽 한방허공일월류)亘古亘今何變易 不增不減遍圓周(긍고긍금하변역 부증불감편원주)森羅萬像於中現 妙用縱橫且自由(삼라만상어중현 묘용종횡차자유)‘무명을 깨부수어 혼돈을 잉태하고, 텅 빈 적멸 되어 추구함을 끊었다네. 능히 경계 여니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고, 한가로이 허공에 놓아둔 해와 달이 흘러오네. 예나 지금이나 어찌 변하겠는가, 더도 덜도 않고 두루 둥글어 널리 미치네. 삼라만상이 그 안에 나타나니, 종횡으로 묘한 쓰임 또한 자유롭구나.’ 원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