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반야심경’을 ‘틀로서의 사성제’에 담아 고성제·멸성제·집성제라는 각 항목에 배당해 보았다. 따라서 이제 남은 것은 도성제인데, ‘반야심경’의 도성제를 논하기 전에 대승불교 경전이 도성제 문제를 다루는 일반적인 경향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대승 경전 멸성제 중시하고초기 경전은 도성제 중시해경전대한 믿음과 수지독송은취약한 도성제에 대한 대응법대승불교 경전은 도성제를 제시하는데 있어 소극적이다. 필자의 이 견해를 반박하는 분이 있다면 나는 그분에게 묻고 싶다. “대승불교 경전을 대표하는 3대 경전인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
지난주에 설명한 내용을 이어받아 ‘반야심경’을 ‘틀로서의 사성제’에 담아 보다 알기 쉽게 풀어보기로 하겠다. 단, 이 풀이는 필자의 해석에 의한 것으로서 이 풀이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일체고액은 고성제에 있고걸림없음은 멸성제로 표현모든 문제는 자아로 시작‘나’ 있는 한 문제도 남아 고성제:문제대승불교에서 보살은 겉으로는 중생이지만 실제로는 부처님인 권현보살(權現菩薩)과, 실제로나 겉으로나 아직은 중생인, 그러나 매우 높은 경지의 성인인 지상보살(地上菩薩)로 분별된다. 여러 경전에서 관자재보살은 권현보살로 등장
‘반야심경’은 불교인들이 의식을 거행할 때마다 독송하는 매우 중요한 경전이지만 우리 불제자들에게 이 경전은 매우 어려운 경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야심경’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이 경전에 나오는 공(空)·무(無)·불(不) 등의 부정사(不定詞)들이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반야심경’ 속 부정사는초월적 멸성제 가리켜경전 속 깨달음 경지는생멸·정구·증감이 없어먼저 ‘반야심경’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생멸(生滅)을 부정한다. 이어서 그 역시 보통 사람들로서는
지난주에 필자는 사성제를 ‘틀로서의 사성제’와 ‘내용으로서의 사성제’로 분류했다. 그런 다음 틀로서의 사성제는 비단 불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루는 보편적인 이치임을 말했다. 그에 비해 내용으로서의 사성제는 불교의 사성제와 기독교 등 다른 종교의 사성제가 다를 수 있다.틀로서 사성제는 사절판 그릇인간은 이 그릇에 문제 담아 소소한 작은 문제들이 아닌모든 문제 총괄하여 다룰 뿐구절판이라 불리는 음식 그릇이 있다. 하나의 비유로서, 이 구절판을 사절판으로 바꾸면 그것이 틀로서의 사성제가 된다. 사절판의 첫 번째 구역에 사고팔
팔만대장경에 설해져 있는 법문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시지 않았더라도 알려져 있는 법’과 ‘부처님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진 법’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팔만대장경에는 불살생, 불투도 등의 계율이 설해져 있는데, 이는 부처님만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현자들이 설한 진실, 즉 ‘부처님께서 설하시지 않았더라도 알려져 있는 법’이다. 그에 비해 오온, 십이처, 연기법, 삼십칠조도 등은 ‘부처님께서 설하시지 않았다면 중생이 알 수 없는 법’이다.문제, 원인, 해결, 방법의사성제는 보편적인 진리무고집멸도의 반야심경은‘고’ 없다면 설할 수 없어
한국불교에서 ‘반야심경’은 불교를 안내하는 문(門)과 같은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경전이다. ‘반야심경’이 탁월한 경전이라는 것은 이 경전이 역대의 선지식들에 의해 높이 상찬되었고 중시되었다는 점, 한국과 대승불교권을 넘어 서양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을 보더라도 분명하다 하겠다. 그렇지만 이 경전이 불교를 안내하는 문의 역할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아함경 그대로 이해해야대승불교 미래구상 가능바른 이치 전하는 언설은모두가 다 부처님 가르침‘반야심경’은 불제자가 되려는 사람이 읽기에는 너무 깊고 너무 어렵다. 비유적으로 볼
팔정도를 수행법의 기초로 삼고 있는 상좌불교는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체계이고, 육바라밀을 수행법의 기초로 삼고 있는 대승불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팔정도가 보통 사람들이 따라가기 좋은 수행 체계라는 것을, 그에 비해 육바라밀은 아주 뛰어난 사람에게 알맞은 수행 체계라는 것을 의미한다.‘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개념만 강조하는 한국불교육바라밀도 팔정도와 같이첫 덕목 개념반야로 바꿔야팔정도는 보통 사람들이 따라가기 좋도록 불교적 인생관을 먼저 이해한 다음(정견) 그 이해를 숙고하도록 하여 결심하고
기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경전은 경전을 설한 주인공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은 고대에는 녹음기나 영상 촬영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고, 전하지 못하는 것은 가르침을 어떤 것을 넣고 뺄 것인지, 어떤 것을 앞에 어떤 것을 뒤에 배치할 것인지 등을 통해 편집자의 견해가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이해·생각·결심·실천 연결 명백한 사성제 팔정도 체계정견·정사 경전으로 대치한 육바라밀 수행법엔 보완 필요 대승 불교인들이 보기에 전승되어 오는 경전들은 부처님의 가르
한국불교가 포함된 대승불교의 경전들은 어마어마한 양을 종교적 실천에 할애하고 있고, 그를 본받아 한국불교 지도자들의 설법 또한 어마어마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실천과 관련된 그 어마어마한 말씀들이 실제 현장에서는 미약한 결과를 나타낸다. 경전과 설법이 크면 클수록 실천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약화된다는 의미이다.이해·결심·실천 이어지는단순한 사성제 팔정도 체계장대하지만 실천 저하시켜설법 풍토도 이젠 바꿔야말이 많은 사람보다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 실천력이 강하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사실이다. 말은 미약한 실천을 메꾸려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를 중심으로 하는 테라와다불교는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로 대표되는 대승불교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그 힘이 ①통일된 교리, ②현실성, ③명상 수행에 있다는 점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그중 ①에 대해 2회에 걸쳐 논의했으므로, 이제는 ②현실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육바라밀과 팔정도 성패실천 여부에 달려 있어테라와다 불교 실천력으로한국불교 약점 보강해야필자가 현실성을 거론하는 취지는 종교의 실천성과 관련해서이다. 종교는 단지 믿기만 하는 체계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 체험에 이르고자 하는 체계
지난주 남방불교는 교리가 잘 통일되어 있는 데 비해 북방불교에 속하는 한국불교는 교리 통일이 잘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똑같은 불교라는 이름 아래에 있지만 한 지도자는 언어의 효용성을 긍정하는 데 비해 다른 지도자는 언어의 효용성을 부정하고, 한 스님은 제법의 공성(空性)을 말하는 데 비해 다른 스님은 실상(實相)을 말하는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신자들은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웃종교와 경쟁 앞서다른 종파와 경쟁 심화하나의 교리로 합의된남방불교 기반 참조해야이런 상황
지난 주에 위기에 처한 대승불교를 위해 남방불교, 기독교를 비롯한 타종교, 인류의 역사 발전을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말했다. 그중 가장 먼저 테라와다인 남방불교를 살펴보기로 하자.테라와다는 갇힌 진리 아닌국경 넘어서는 보편적 진리확고부동한 합의인 사성제로한국 역시 미래불교 준비해야테라와다 불교는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를 중심으로 하는 불교이며, 라오스, 베트남(베트남 불교에는 대승불교도 신봉되고 있다) 등도 이 불교권에 속한다. 테라와다 불교의 중심 국가에서 불교는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의 신자를 확보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지난주에 대승불교에는 다양 다기한 사상이 있다는 것, 그것은 불교 사상이 찬란해졌다는 긍정적인 면과 함께 신자들이 마음을 한 사상에 오롯하게 집중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부정적인 면이 있음을 지적했다.신도 감소, 신심 저하 등북방불교 위기 처해대승불교 문제 타개 위해이웃종교 대한 검토 필요이 두 면 중에서 전자에 의해 21세기 현재 북방불교가 보유하고 있는 성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북방불교의 모습은 희망적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북방불교를 대표하는 나라는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이다. 이 중 중국불
지난주까지 대승불교가 발흥하게 된 배경과 대승불교의 성격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그렇게 출발한 대승불교는 어떤 결과물을 내놓았던 것일까?상반된 사상들 공존하게 돼 교판상석으로 새로운 접근도 칠성 등 문화 요소 수용하며 사상의 일목요연함은 희석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먼저 대승불교라는 이름 안에 다양한 사상이 포함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 다양한 사상들은 지금까지 논의한 배경과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 때문에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 ‘대승불교’라 부르게 된 것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세 위격으로 분별된다.중생 곁 남아 공덕 쌓으며부처님 이룬 수메다 수행자나 자신부터 챙기기 보다는남 위해 먼저 살 것 발원① 무상정등각자(無上正等覺者, Samāsambuddha): 스스로의 힘으로 최고의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 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asamyaksambodhi)을 성취하신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은 무상정등각자이시며, 석가모니 부처님께 기(記)를 주신[授記] 과거 부처님으로서의 연등불 또한 무상정등각자이시다. 연등불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까지 모두
불교는 인도의 전통종교를 적정주의(寂靜主義)로 비판하며 성장하였다. 적정주의는 남과 관계를 맺는 시간을 낭비라고 여기고 가능한 많은 시간을 자신을 위한 명상에 할애하는 주의이다.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적정주의는 대자적(對自的)인 면을 강조한 나머지 대타적(對他的)인 면을 등한시한 문제점이 있었다.신자와 소통 등한시한부파불교 비판하면서대승불교인, 신자 입장서이타 강조하는 불교 모색불교가 발흥하던 당시 인도에는 전통종교로서 브라만교(힌두교)가 있었고, 브라만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명상을 통해 사마디(samādhi)를 성
대승불교 경전들은 기존의 불교를 소승(小乘)이라 비판하고, 자신들이 제시하는 불교를 대승(大乘)이라 선언하고 있다. 대승은 큰 탈것을 의미하고, 큰 탈것은 남과 함께 나아감을 의미하며, 남과 고통과 이익을 함께하며 나아가는 것을 불교는 보살행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대승은 곧 보살승이다.부처님과 제자 아라한은전생 공덕서 큰 차이 있어대승인들 수메다 보살의이타 정신에 큰 감동받아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보디삿트와를 음역한 말로서, 보디(bodhi)는 깨달음을, 삿트와(sattva)는 중생을 의미한다. 즉, 보살이라는 말의 본뜻은 ‘장
오늘날 불탑은 사찰 내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부처님 당시에는 달랐다. 부처님께서는 입멸을 앞두고 제자 승려들에게 자신의 장례 문제는 재가신자들에게 맡기고 “너희는 수행에만 매진하라”고 말씀하셨고, 이에 따라 부처님께서 남기신 사리는 사찰이 아닌 전국 각지 시내 중심가에 세워진 탑에 봉안되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불사리탑 앞에는 공양물들이 쌓이게 되었고,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불탑 관리하던 신자들열정적으로 개혁 투신시대의 흐름 받아들여 능동적으로 적극 대응시간이 더 흘러 불멸 후 500년경이 되었을 때 승려들은 철학
학자들은 부처님께서 살아 계셨던 당시의 불교와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백 년 경까지의 불교를 근본불교(원시불교) 시대로, 그 이후 400 년 동안 불교 교단이 20개 교파로 나뉜 시기를 부파불교 시대로 분류한다. 대승불교는 부파불교를 비판하면서 출현하여 초기, 중기, 후기에 걸쳐 800여년 동안 세 번째 시기를 이루었다.초기불교 수혜·증혜 중시 부파에선 사혜가 중심되며 직관적 통찰이 지혜 대신해 깨달음서 멀어지는 부작용 부처님께서 살아 계시던 당시 불교인들은 부처님을 직접 뵙고 신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높은 경지를 성취할 수 있었다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불사리탑 주변에서 활동하던 불교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입멸하신 후 엄청난 양의 사리를 남기셨는데, 당시 인도인들은 성자가 남긴 사리를 모시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 때문에 부처님 사리를 누가 모셔갈 것인지를 두고 여덟 개 종족 간에 다툼이 일어났고, 도나라는 브라만이 이를 화해시켜 동등하게 분배가 이루어졌다.부처님 입멸 후 불사리 분배아소카 의해 전역으로 퍼져믿음 중시하는 재가자 중심대승은 꿈·열정·의지 결합체부처님의 사리를 모셔간 종족들은 자신들이 사는 도시 한가운데에 탑을 세우고 불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