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발흥하였다. 이는 대승불교가 부파불교의 비판자였음을 의미한다. 비유하면 대승불교는 부파불교라는 여당에 대한 야당의 위치에 서 있었다.선명함은 좋아 보일 수 있지만극단은 중도적 진실 잃기 쉬워초기·부파·대승불교·선까지융합해 미래 불교 향해 나가야아무리 훌륭한 여당일지라도 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올릴 수는 없는데, 야당은 그 부족한 부분을 비판한다. 예를 들어 여당이 국정의 10개 분야 중 5개 분야를 잘 운영하고, 2개 분야를 중간 정도로, 3개 분야를 잘못 운영할 경우 야당은
지난주에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인 조계종의 표준 수행법인 화두선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필자가 내린 결론은 화두선은 보통을 훨씬 뛰어넘는, 최상승 근기를 가진 이들을 위한 수행법이라는 것이었다. 비유로 말하면 화두선은 대학원대학교 과정과 비슷하다. 대학원대학교에 진학하려면 대학교를 마쳐야 하고, 대학교에 진학하려면 고등학교를,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중학교를,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초등학교를 마쳐야 한다. 불교 수행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화두선은 이중 대학원대학교만을 개설하고 있으므로, 우리 불교는(조계종은) 그 아래 단계
한국불교의 중심은 조계종이며, 조계종의 종지는 종명에 잘 나타나 있다. 조계종이라는 종명에서 조계는 조계산을 의미하고, 조계산은 혜능대사가 주석했던 곳이다. 조계종은 혜능대사의 법에 준거하여 불교를 이해하고 수행한다는 것을 표방하는 종명인 것이다.화두선은 우수한 수행법이지만보통 사람은 접근조차 어려워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이성적인 바탕의 수행법 필요혜능대사는 그분의 가르침에, 부처님의 말씀에만 붙이게 되어 있는 ‘경’이라는 글자가 붙게 되었을 정도로 동북아시아 불교에서 매우 높이 존숭되어 온 분이다. 중요한 것은 그분에서 시작된
기독교는 한국에 전파된 이래 여러 대학교를 창립하였다.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사학만이 아니라 수많은 신학대학교를 설립하여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를 선교하기 위해 노력하였다.불교의 특징은 기독교와 달리신앙만이 아닌 수행법에 있어위덕대 설립한 진각종 같은구체적인 수행법 중심 삼아야그렇다면 불교는? 1996년도에 위덕대학교가 창립되기 전까지 불교에 근거를 둔 대학교는 동국대학교와 승가대학뿐이었다. 대학교를 넘어 일반 사회에 끼친 결과로 보더라도 기독교의 불교에 대한 우위는 분명해 보인다. 병원과
지난주에 대승 경전들이 깨달음을 이루는 수행법(도성제)보다는 수행의 결과 도달하게 되는 열반의 경지(멸성제)를 설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말했는데, 이와는 달리 집성제에 집중하는 대승 경전(학설)들도 있다. 밝은 불교 지향하기 위해선마음분석과 수행법 함께해야미래위해선 사성제 기준으로대승경전 위대한 부분 모아야집성제는 중생의 마음을 분석하여 중생이 왜 번뇌에 휩싸이는지를 밝히는 부분이며, 이 부분에서 대승불교는 초기불교보다 매우 심오한 유식학(唯識學)을 내놓았다. 그런데 유식학에도 문제는 있다. 유식학은 마음을 분석하는 집성제 부분에
대승 경전들은 깨달음을 이루는 수행법(도성제)보다는 수행의 결과에 도달하게 되는 열반의 경지(멸성제)를 설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3대 경전을 통해 살펴보자.3대 경전, 멸성제 집중하느라상대적으로 도성제에는 취약환자에 비유, 멸성제는 ‘건강’‘치료’ 위한 집성제 힘 쏟아야먼저 ‘화엄경’은 법계가 얼마나 중중무진(重重無盡)한지를, 그러면서도 어떻게 무애(無碍)한지를,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분은 형상으로 나타난 화신을 넘어서는 근본으로서의 법신임을, 나아가 부처님의 몸은 시방법계에 충만해 있음을 설한다. 즉 ‘화엄경’
대승불교는 육바라밀을 수행법으로 제시하고 있고, 따라서 대승불교에 수행법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수행법이 누구나 실천 가능하도록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는 지금 낮은 차원의 수행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초기불교는 수행법을 초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모두 제시한다. 그에 비해 대승불교는 마지막 단계―박사(석사)를 취득하는 대학원 단계의 수행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팔정도서 선정 이루는 정념육바라밀엔 정념 강조 없어구체적 설명없는 선정법으로구체적인
지난주에 필자는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에는 ‘아함경’과 ‘팔리경’에 보이는 것 같은 구체적인 수행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감히 그렇게 말했다, 겁도 없이 감히!철저한 검토 후 받아들임이부처님 제자다운 바른 태도끊임없는 자기 사상 비판이구도자를 전진하게 만들어여기에서 필자는 ‘겁도 없이 감히!’에 대해 잠깐 말할 필요를 느낀다. 먼저, 지면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하기 위해 필자로서는 큰 용기를 내야만 했다는 점을 말해야겠다. 필자의 이 주장은 자칫 대승불교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질 수
지난주 ‘반야심경’을 ‘틀로서의 사성제’에 담아 고성제·멸성제·집성제라는 각 항목에 배당해 보았다. 따라서 이제 남은 것은 도성제인데, ‘반야심경’의 도성제를 논하기 전에 대승불교 경전이 도성제 문제를 다루는 일반적인 경향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대승 경전 멸성제 중시하고초기 경전은 도성제 중시해경전대한 믿음과 수지독송은취약한 도성제에 대한 대응법대승불교 경전은 도성제를 제시하는데 있어 소극적이다. 필자의 이 견해를 반박하는 분이 있다면 나는 그분에게 묻고 싶다. “대승불교 경전을 대표하는 3대 경전인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
지난주에 설명한 내용을 이어받아 ‘반야심경’을 ‘틀로서의 사성제’에 담아 보다 알기 쉽게 풀어보기로 하겠다. 단, 이 풀이는 필자의 해석에 의한 것으로서 이 풀이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일체고액은 고성제에 있고걸림없음은 멸성제로 표현모든 문제는 자아로 시작‘나’ 있는 한 문제도 남아 고성제:문제대승불교에서 보살은 겉으로는 중생이지만 실제로는 부처님인 권현보살(權現菩薩)과, 실제로나 겉으로나 아직은 중생인, 그러나 매우 높은 경지의 성인인 지상보살(地上菩薩)로 분별된다. 여러 경전에서 관자재보살은 권현보살로 등장
‘반야심경’은 불교인들이 의식을 거행할 때마다 독송하는 매우 중요한 경전이지만 우리 불제자들에게 이 경전은 매우 어려운 경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야심경’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이 경전에 나오는 공(空)·무(無)·불(不) 등의 부정사(不定詞)들이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반야심경’ 속 부정사는초월적 멸성제 가리켜경전 속 깨달음 경지는생멸·정구·증감이 없어먼저 ‘반야심경’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생멸(生滅)을 부정한다. 이어서 그 역시 보통 사람들로서는
지난주에 필자는 사성제를 ‘틀로서의 사성제’와 ‘내용으로서의 사성제’로 분류했다. 그런 다음 틀로서의 사성제는 비단 불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루는 보편적인 이치임을 말했다. 그에 비해 내용으로서의 사성제는 불교의 사성제와 기독교 등 다른 종교의 사성제가 다를 수 있다.틀로서 사성제는 사절판 그릇인간은 이 그릇에 문제 담아 소소한 작은 문제들이 아닌모든 문제 총괄하여 다룰 뿐구절판이라 불리는 음식 그릇이 있다. 하나의 비유로서, 이 구절판을 사절판으로 바꾸면 그것이 틀로서의 사성제가 된다. 사절판의 첫 번째 구역에 사고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