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배운 우리의 고대역사는 어린아이의 머리로도 늘 미심쩍음이 일곤 했었다. 지금의 경상도 진한 땅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며 내건 국명을 새로운[新] 그물[羅]을 펼치듯 널리 국력이 퍼져가길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신라(新羅)라 하였으며, 새로운[셔,설] 벌판[벌]에 도읍을 정했으니 서라벌(徐羅伐)이라 하였다고 들었으니 말이다.사실 신라와 서라벌 정도까지야 어린백성이 그러려니 하고 들었던 것이 사실인데, 나라의 왕을 뽑는데 떡을 베어 물게 하여 그 이빨자국이 큰 사람을 왕으로 삼았기에 그 명칭을 잇금 혹은 이사금이라고 했다는 말은 역
조계종단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에는 공덕의 크고 작음을 견주는 비유가 등장한다. 즉 “갠지스강 모래알 숫자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들을 칠보로 가득 채워놓고 이를 여래께 보시하여 얻을 공덕”이 그 하나요, “‘금강경’ 가운데 최소한 사구게송 하나라도 받아 지녀 남에게 일러주었을 때 얻을 공덕”이 또 다른 하나다. 이 경우에 뒤의 공덕이 앞의 공덕보다 크다 하였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칠보(七寶)로 가득 채워놓은 것이라면 삼천대천세계가 아니라 인천 세관창고 서너 개 분량만 되어도 어찌 경전의 게송 한 수 외워서 전해주는 공덕만 못하
현대의 불교에선 명상(冥想 혹은 瞑想)은 별도의 개념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에 남방불교의 위빠사나(vipaśyanā)와 북방불교의 선나(禪那, dhyāna)로 분류되어 발전해왔음은 물론, 특히 북방의 선나는 다양한 사상과 결합되어 다채로운 명상법으로 전승되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남방은 사제(四諦)와 십이인연(十二因緣)을 관하는 것, 무상‧고‧무아를 관하는 삼수관(三隨觀), 신‧수‧심‧법을 관하는 사념처관(四念處觀) 등의 초기불교 수행법이 상좌부전통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북방은 교종에선 천태의 일심삼관(一心三觀)과
유사 이래 불교의 나라였기에 일상생활의 말 가운데 녹아있는 불교용어가 많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익히 쓰던 어느 한 단어가 새롭게 확인되는 순간 ‘이 말도 그랬나?’라며 자못 흥미롭게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생활 속의 불교용어는 대부분 한문에 기반하고 있는데, 최소한 일상생활의 용어인 경우엔 이미 의미만 충분히 전달되었으면 굳이 그 단어의 한문이 어떤지, 특히 불교의 교리적인 내용이 어떻게 담겨있는지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그래도 우리가 명색이 불교도이자 불제자라면 정말 다반사로 사용되는 용어 가운
옛날 왕사성에 부상 장자와 청제 부인은 외아들 나복과 유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장자가 죽고 가세가 기울려고 하자 나복은 재산을 삼분하여 승가에 부친의 복덕을 빌 것과 집안에 쓸 것은 모친에게 맡기고, 나머지를 가지고 먼 지방으로 장사를 떠났다.청제 부인은 본심이 사특하여 아들이 떠난 후 승가에 공양도 않은 채 온갖 삿된 제사와 본인의 쾌락에 재물을 허비하였다. 이윽고 나복이 큰 재산을 모아 돌아오자 청제 부인은 미리 준비하여 아들을 속이려 하였으나 거의 탕진한 재산에 나쁜 물이 든 생활태도로 이내 들통이 나고 말았다.“
불교에서 형상화시켜놓은 세계의 모습은, 허공에 거대한 바람바퀴[風輪]가 휘감아 돌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그 위에 물바퀴[水輪]와 쇠바퀴[金輪]와 땅바퀴[地輪]가 세로로 쌓여져있고, 땅바퀴 위에 가로로 9산(山)8해(海)가 펼쳐져있으며, 그 중앙에 있는 산이 수미산이다. 수미산 위로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하늘이 비상비비상천까지 세로로 펼쳐져있으니, 풍륜부터 비상비비상천까지를 하나의 수미세계라 일컫는다.그렇다고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모습이 바로 인도의 유일한 세계관인 것은 아니다. ‘위싀누뿌라나’란 책에 언급된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이
10여년 전에 나온 블랙코메디 영화에서 동네 폭력배로 등장하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사소한 일로 경찰에 구금되며 잡범 취급을 당하려하자 앞서 저질렀던 일까지 실토하며 자신들을 잡범이 아닌 중범죄자 건달로 취급해달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다. 깡패나 건달이나 그게 그거지 다를 게 뭐 있냐는 경찰의 말에 “멋있잖아요! 향기를 쫓아다니며 풍류를 즐기는 무리라는 게…”라고 답한다. 그들은 최소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행패와 난동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사전적인 내용보다는 ‘건달’에 대해 들은 바가 많은 것 같다.건달(乾達)은 산스끄리
흔히 ‘파라미타’ 혹은 줄여서 ‘바라밀’이라고도 일컫는 ‘바라밀다’는 산스끄리뜨어 빠라미따(pāramitā)의 소리 옮김인데, ‘피안으로[pāraṁ] 건너가는[√i] 상태[tā]’를 의미한다. 이것은 대표적으로 ‘금강경’의 경명에도 나타난다. ‘금강경’은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能斷金剛般若波羅密多經, vajracchedi kāprajñāpāramitāsūtraṁ)’의 줄임말로서, 그 의미는 ‘금강석도 끊어버리는 지혜로써 피안으로 건너가는 상태를 서술해 놓은 경전’에 해당한다.인도의 아리안족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인더스문명은 그 활동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국왕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정성어린 공양을 올렸다. 특히 기원정사를 환히 밝히는 고관대작들의 화려한 공양등불은 이를 지켜보는 가난한 여인 난타에겐 부러움을 넘어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게 하였다. ‘나는 전생에 무슨 업보를 지었기에 부처님을 뵙고도 등 하나 공양할 수 없을까.’하루 구걸하여 하루를 먹고사는 난타는 그날 온종일 구걸한 한 푼의 돈으로 주림을 해결하는 대신 부처님께 등불공양으로 올릴 기름을 사러 갔다. 구걸하던 노파가 기름을 사러온 것을 이상하게 여긴 기름가게 주인은 그 사연을 듣고 감동하여
개항기 중국에서 미국의 국명을 한문으로 ‘미이견(美利堅)’이라 하였는데, 이는 America의 몇 가지 음역 가운데 하나로서 ‘me’ 부분에 강세가 들어간 까닭에 첫 음이 생략된 것이다. 부파불교에서 최고의 수행자로 여기는 아라한(arhat)도 이와 유사한 경우로서, 전체가 음역된 것이 아라한(阿羅漢)이요 첫 음이 생략된 것이 나한(羅漢)이다. 그런데 무턱대고 첫 음을 생략하면 의미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으니, 아미타불(阿彌陀佛, amitābha)의 경우 ‘아미타(amita, 가늠할 수 없는)’에서 ‘미타(mita, 가늠할
‘성문’이란 말에는 ‘연각・보살’이란 말이 항상 뒤따른다. 연각(緣覺, 스승 없이 홀로 정법을 깨달은 성인)과 보살(菩薩, 깨달음을 이룬 중생)이 대승불교를 상징하는 명칭이라면, 성문(聲聞)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초기불교와 부파불교의 출가제자를 일컫는 말로 주로 사용된다. 보살이라는 용어는 불교 이전의 여타 인도사상에선 보이지 않다가 초기불교와 부파불교에서부터 이미 보이기 시작하지만 그 개념이 강조되고 내용이 풍부해진 것은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다. 그런데 그에 반해 ‘성문’이란 개념은 약간의 의미 차이를 지니긴 하지
때는, 당시 새로 나왔다는 ‘딱풀’이 이야기에 등장하고 삼청교육대가 언급되니 1980년대 초반에 해당한다. 이는 지방의 어느 도시에 있는 성당에서 있었다는 일로 한 가톨릭신자가 본당 주임신부님에게 입은 은혜와 관련된 이야기이다.신혼 초의 한 젊은이가 의협심에 친구를 돕다가 삼청교육대까지 한 차례 다녀온 뒤로는, 그렇잖아도 넉넉지 않은 살림에 다니던 직장에서도 쫓겨나서 동네 작은 극장에서 허드렛일이나 거들며 울분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집안 살림을 책임지게 된 그의 아내는 항상 시장 난전에서 하루를 거의 보내다시피 하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