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수미산의 본디 모습이 여여 ▲돈황 막고굴 112굴. 問 如上所說 納須彌芥 毛呑巨海 旣唯一心 須彌爲復入芥子 不入芥子. 若言入 經何故云 須彌本相如故 若言不入 又云 唯應度者 見之. 문 : 위에서 말한 대로 겨자씨가 수미산을 거두고 터럭이 큰 바다를 삼키는 것이 오직 한마음이라면,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들어간다면 경에서는 무엇 때문에 “수미산의 본디 모습이 여여하다.”라고 말합니까? 만약 들어가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또 “오직 깨친 사람만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가는 것을 본다.”라고 말합니까? 答 若有所入處 卽失諸法自性 若言不入 又成二見. 又 或云 小是大家之小 大是小家
있음과 없음 집착하는 것은모두 함께 삿된 소견일 뿐밖 없는 지극한 큰 모습이안 없는 지극히 작은 모습 ▲돈황 막고굴 57굴 관세음보살. 77.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들어간다 輔行記 釋云. 且約一念刹那心所起 故言小也. 卽此一念 具足法身一切佛法 卽是能容須彌之大. 大小常遍 理事無礙 本來相卽故. 所以 不斷煩惱 而入涅槃. 只指凡夫一念刹那心 具足難思法身之體 本來相在故. ‘보행기’에서 말하였다.한 생각 한 찰나의 마음에서 일어남을 기준하므로 ‘작다’고 말하지만, 이 마음에서 법신의 온갖 부처님 법을 다 갖추고 있으니 그대로 수미산의 크기를 담을 수 있다. ‘대(大)’와 ‘소(小)’가 늘 두루 하여 ‘이(理)’와 ‘사(事
▲수월관음상(모사). 11~13세기. 둔황연구원. 75. 선과 악이 불사다 現相品云 爾時 諸菩薩光明中 同時發聲 說此頌言 諸光明中出妙音 普遍十方一切國 演說佛子諸功德 能入菩提之妙道. 乃至 逆順善惡 無非佛事 如從二乘至佛是順行 從地獄至魔王是逆行. 又 如釋迦純行善 調達純行惡 身子志誠信 善星堅不信等 姸醜同歸 無非佛事. ‘화엄경 여래현상품’에서 모든 보살이 광명 속에서 동시에 소리 내어 게송으로 말하였다.모든 광명 그 속에서 묘한 소리 울려 나와/시방세계 빠짐없이 온갖 국토 두루 하여/불자들이 가진 공덕 남김없이 설파하니/깨달음의 오묘한 도 들어갈 수 있었다네. 또한 나아가 “보살행을 실천하거나 실천하지 않거나 선과 악이 모두 부처님의
향기로운 불국토 ‘향반’모든 중생에게 먹여도끝내 다 먹일 수 없어 ▲법화경 화성유품(모사). 8세기 전반. 둔황연구원. 72. 모두 한마음의 뜻이니 問 夫成佛本理 但是一心者 云何更立 文殊普賢行位之因 釋迦彌勒名號之果 乃至 十方諸佛國土 神通變現 種種法門. 문 : 부처가 되는 본디 이치가 다만 한마음일 뿐인데, 어찌 다시 문수나 보현의 행과 위치를 ‘인(因)’이라 하고 부처님 명호를 가진 석가나 미륵을 ‘과(果)’라 내세우며, 나아가 시방세계 모든 불국토에서 신통으로 온갖 법문을 드러내는 것입니까? 答 此是無名位之名位 無因果之因果. 是心作因 是心成果 是心標名 是心立位. 普賢觀經云 大乘因者 卽是實相 大乘果者 亦是實相
범부는 보통 사람들을 말하고가르침 듣고 깨달은 이는 성문연각은 십이인연 얻은 사람이요보살은 밝은 지혜·자비 수행자 ▲녹색타라(모사). 13~14세기. 둔황연구원. 70. 모든 지위에는 차별이 없다 不思議佛境界經 云. 爾時須菩提 又問言 大士 汝決定住於何地 爲住聲聞地 爲住辟支佛地 爲住佛地耶. 文殊師利菩薩言 大德 汝應知 我決定住於一切諸地. 須菩提言 大士 汝可亦決定住凡夫地耶. 答曰 如是. 何以故 一切諸法及以衆生 其性卽是決定正位 我常住此正位. 是故 我言 決定住於凡夫地也. 須菩提 又問言 若一切法及以衆生 卽是決定正位者 云何建立諸地 差別而言 此是凡夫地 此是辟支佛地 此是佛地耶. 文殊師利菩薩言 大德 譬如世間以言說故 於
허망하게 이름과 형상을 세우면 범부이름과 형상이 다 공인 줄 알면 성자 그릇들의 크기와 부피가 다르더라도허공은 평등하게 담겨 차별이 없다 ▲구법승도. 9세기. 둔황. 국립중앙박물관. 68. ‘종경’이란 바람을 만나지 못한 배는 問 絶待眞心 本無名相 云何成佛 又作異生. 云隨順世法 立此假名 又 因何法而得成立. 문 : 온갖 개념이 끊어진 참마음은 본디 이름과 모습이 없는 것인데 어떻게 부처님이 되고 또 중생이 됩니까? 만약 세상의 법을 수순하여 임시로 이런 이름을 내세운 것이라면 무슨 법으로 성립됩니까? 答 實際理中 本無凡聖可得 以一切衆生 迷無性理. 以無性故 不覺起妄 於眞空中 妄立名相 故名爲凡 了名相空 復稱爲聖. 凡聖之號 因五法成 猶如幻化
▲미륵과 보살, 유림석굴 제25호굴, 중당시기 북쪽 벽. 66. 눈앞에 그 무엇도 없어야 부처님을 본다 問 一念成佛 已入信門 如何得目前了了分明而見. 答 目前無物 是眞見佛. 如文殊師利巡行經 以經中說 文殊遍巡五百比丘房 皆見寂定 因以爲名 最後難舍利弗 以顯甚深般若. 문 : 한 생각에 부처님이 되어 믿음의 문에 들어간 것을 어떻게 눈앞에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까?답 : 눈앞에 ‘그 무엇’도 없어야 이것이 참으로 부처님을 보는 것이다. 이는 ‘문수사리순행경’에서 말한 내용과 같다. 경 가운데 “문수가 오백 비구의 방을 두루 돌며 모든 곳에서 ‘고요한 마음자리[寂定]’를 보았다.”라고 말한 내용을 취해 이 경의 이름을 붙였는데, 맨 마지
망념이 공인 줄 알면고통과 즐거움 경계에집착하는 마음 안 내 ▲달마대사혜가단비도. 일본 동경박물관 소장. 62. ‘깨달음의 도가 곧 마음’이라고 말한 것은 問 菩提卽自身心者 云何敎中說 菩提者 不可以身心得. 答 夫言菩提之道卽心者 乃是自性淸淨心 湛然不動. 蓋是正覺無相之眞智 其道虛玄 妙絶常境. 聰者 無以容其聽 智者 無以運其知 辯者 無以措其言 像者 無以狀其儀. 以迷人不了 執色陰爲自身 認能知爲自心 故云 菩提者 不可身心得也. 문 : ‘깨달음’이 곧 자신의 몸과 마음인데, 어떻게 ‘깨달음’이란 ‘몸과 마음으로써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치십니까?답 : ‘깨달음의 도가 곧 마음’이라 한 것은 ‘자성청정심’을 말하니 맑고 고요
▲안중식作. 대환희도. 간송미술관 소장. 58. 범부와 성인의 개념을 떠난 마음 肇法師云 萬事萬形 皆由心成 心有高下 故丘陵是生. 又云 佛土常淨 豈待變而後飾 蓋是變衆人之所見耳. 是以 衆生見爲土石山河 皆是自業之影起 菩薩純爲妙慧 卽是眞智之所爲. 離凡聖心 無眞俗境. 승조(384~414) 스님은 “온갖 일과 온갖 모습이 다 마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마음에 높고 낮음이 있으므로 온갖 차별이 생긴다.”라고 하였다. 또 “부처님의 국토는 늘 맑고 깨끗한데 어찌 이것이 변하기를 기다려서 그런 뒤에 아름답게 꾸민다고 하는가. 대개 중생의 소견이 변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중생의 견해로 흙, 돌, 산, 강을 보는 것은 모두 스스로가 지은 업의 그
▲필자미상. 나한도. 대전 자광사 현수 스님 소장. 20. ‘공(空)에 집착하는 병’ 또한 ‘공(空)’이다 天台淨名疏 釋不觀色不觀色如不觀色性者. 不觀色者 心如幻師 幻作種種色. 若知幻師是誑 則不得所幻之色 今色從心 幻師幻出 尙不得此心 何處見有此色 故不應觀色. 不觀如者 若見色與如異 是則泯色入如 今不見色如之別 故不觀如. 不觀性者 卽不觀佛性 不觀色是空俗 不觀如是空眞 不觀佛性是空中道. 천태의 ‘정명소’에서 ‘유마경 아축불품’에 나오는 “색(色)을 보지 않고 색여(色如)도 보지 않으며 색성(色性)도 보지 않는다.”라고 한 것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색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마음은 요술사와 같아서 허깨비로 온갖 색을 만들어낸다. 만
김정희 作. 명선. 간송미술관 소장. 52. 임시방편으로 가르치는 알음알이와 다르기 때문 李長者論 云. 此華嚴經 十住爲見道 十行十向十地十一地爲加行 修行令慣熟故 佛果於初. 先現 以普賢悲願 令智悲大用 慣熟自在故 以自如來根本普光明智先現故. 始終本末 總無延促時日分劑故. 以法身根本智 如實而言 不同三乘權敎情所解故 皆須約本而觀之. 畢竟佛果慣習已成 普賢行已滿. 一往 但以敎化一切衆生 爲常恆 從初至末 無始無終 無成無壞. 但以普遍十方一切六道 以智對現利生 爲永業也. 당나라 화엄학자 이통현(635-730) 장자가 논(論)에서 말하였다.‘화엄경’에서는 십주(十住)를 ‘진실한 도의 흐름을 보는 견도(見道)’로 삼고 십행(十行)과 십회향(十回向) 및 십지(十地)와 십
김홍도 作. 남해관음도. 간송미술관 소장. 짓는 업 있어 과보도 받지만주체를 찾을 수 없어 공이다 마음과 경계에 집착하게 되면끝내는 깨달음을 증득 못한다 45. 집착을 벗어나야 참으로 본다 問 三寶如虛空相 非見聞之所及者 敎中云何 說見道又稱見佛. 答 約本智發明 假稱名見 非眼所睹. 唯證乃知 離見非見 方名眞見. 문 : 허공 같은 삼보(三寶)는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도(道)를 본다’거나 ‘부처님을 본다’고 가르치십니까? 답 : 근본지(根本智)가 환하게 드러남을 일러 임시방편으로 ‘본다’ 하는 것이지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니, 이는 오직 증득해야만 안다. ‘본다’거나 ‘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집착을 벗어나야 비로소 ‘참으로 본다’고 한
깨달음 자체는 돈과 점 모두 떠나분별 끊어진 곳에서 지혜는 드러나 부처님의 지혜광명은 법계에 충만해기댈 것도 머무를 것도 올 것도 없다 41. 제석천에 올라가는 것 유숙 作. 오수삼매도. 華嚴經云 不離覺樹 而昇釋天者 疏釋 云. 佛得菩提 智無不周 體無不在 無依無住 無去無來. 然以自在卽體之應 應隨體變. 緣感前後 有住有昇 閻浮有感 見在道樹 天宮有感 見昇天上 非移覺樹之佛而昇天宮. 故云 不離覺樹 而昇釋殿. 『화엄경』에서 “보리수 밑을 떠나지 않고 제석천에 올라간다.”고 말하는 내용을 『화엄경소』에서 풀이하여 말하였다.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의 지혜와 그 바탕은 법계에 두루 하여 기댈 것도 머무를 것도 없으며 가고 올 것도 없다. 그러나 그 바탕에서 자유자재로 인연에 감응하여 그 인연
하나의 진리를 자기 식으로 나누니부처님의 방편 온갖 것으로 나타나 박한 근기로 묘유를 무상으로 알고눈 없어 다른 곳에 부처 있다고 해 통도사 응진전 천정화. 40. 여러 모습의 부처님 問 若一切衆生 卽心是佛者則 諸佛 何假三祇百劫 積功累德方成. 문 : 만약 모든 중생 그 마음 자체가 부처님이라면, 모든 부처님은 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에 걸쳐 공덕을 쌓고 나서야 성불하는 것입니까? 答 爲復學一乘實法 爲復趣五性權機. 此論自證法門 非述化儀方便. 且楞伽經說有四佛 一化佛 二報生佛 三如如佛 四智慧佛 隨機赴感 名之爲化 酬其往因 名之爲報 本覺顯照 名爲智慧 理體無二 故曰如如. 답 : 일승(一乘)의 참다운 법을 배울 것인가, 아니면 중생의 수준에 맞는 방편에 나아갈 것인가? 여
알음알이 사라지고 지혜가 드러나면그 자리서 부처님 지혜와 하나가 돼 중생이 부처 지혜 본디 갖추고 있어마음 떠나 부처 찾으면 이것이 집착 39. 부처님의 지혜를 성취하니 김정희 作. 불이선란. 개인 소장. 淸涼華嚴疏 曰. 經云 了知境界 如幻如夢 如影如響 亦如變化. 若諸菩薩 能與如是觀行相應 於諸法中 不生二解 一切佛法疾得現前 初發心時 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知一切法卽心自性 成就慧身 不由他悟者 夫初心爲始 正覺爲終 何以初心便成正覺. 故云 知一切法 卽心自性故 覺法自性 卽名爲佛故. 經頌云 佛心豈有他 正覺覺世間 斯良證也. 斯則 發者 是開發之發 非發起之發也. 『화엄경』을 풀이한 『청량소淸涼疏』에서 말하였다.경에서 “온갖 경계가 허깨비나
38. 신통은 반야를 장애할 수 있다 김홍도 作. 절로도해. 간송미술관 소장. 問 若不具神變 將何攝化.문 : 만약 신통변화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무엇으로 중생을 교화할 수 있겠습니까? 答 若純取事相神通 有違眞趣. 如輔行記云 修三昧者 忽發神通 須急棄之 有漏之法 虛妄故也. 故止觀云 能障般若. 何者 種智般若 自具諸法 能泯諸相. 未具已來 但安於理 何須事通. 若專於通 是則障理. 又 不唯障理 反受其殃 如鬱頭勝意之徒 卽斯類矣. 답 : 만일 겉으로 드러나는 신통력만 취한다면 불법의 참뜻을 찾아가는 것과는 어긋난다. 이는 『보행기』에서 “삼매를 닦는 사람이 홀연 신통이 생겨도 이를 재빨리 버려야 하니 신통은 유루법(有漏法)으로 허망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지관
생멸 없는 자신의 성품을 보게 되면부처님과 다름없고 만법근원과 같아 선과 악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면자연스레 마음 본질 들어갈 수 있어 37. 한 생각에 온갖 법이 수행터 심사정 作. 절노도해도. 개인소장. 如悟入宗鏡中 成佛不離一念. 若前念是凡 後念是聖 此猶別敎所收. 今不動無明 全成正覺故 華嚴論云 如將寶位 直授凡庸 如夜夢千秋 覺已隨滅. 傅大士 白梁武帝云 今欲將如意寶珠 淸淨解脫 照徹十方 光色微妙 難可思議 意欲施於人主 若受者 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故知 若一念決定信受者 不隔刹那 便登覺位. 如維摩經云 維摩詰言 然汝等便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是卽出家 是卽具足. 종경 속에서 깨달으면 부처님이 되는 것도 한 생각을 벗어나지 않는다.
부처님은 중생의 부처요중생은 또한 부처님 중생 마음바탕 하나로 같아도중생에겐 어리석음 되고부처에겐 깨달음이 된다 36. 온갖 법이 부처님의 도 전남보성대원사 극락전의 벽화. 百門義海 云. 發菩提者 今了達 一切衆生 及塵毛等 無性之理. 以成佛菩提智故 所以 於佛菩提身中 見 一切衆生 成等正覺. 又 衆生及塵毛等 全以佛菩提之理成衆生故 所以 於衆生菩提中 見佛修菩提行. 是故 佛是衆生之佛 衆生卽佛之衆生. 縱有開合 終無差別. 如是見者 名菩提 心起同體大悲 敎化衆生也. 『백문의해』에서 말하였다.“깨달음이란 지금 모든 중생의 번뇌 속에 ‘결정된 성품이 없다’는 ‘무성(無性)’의 이치를 환히 아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가진 깨달음의 지혜를 이루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깨달음 속에서 모든 중생이
34. 성불의 이치는 무엇인가 問 夫釋迦文佛 開衆生心 成佛知見 達磨初祖 直指人心 見性成佛 若體此一心 云何是成佛之理. 문 :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생의 마음을 밝혀 부처님의 지견을 이루었고, 달마 대사는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자신의 성품을 보아 성불한다고 하였는데, 만약 이 한마음을 체득하는 것이라면 성불의 이치는 무엇입니까? 答 一心不動 諸法無性 以無性故 悉皆成佛. 華嚴經 云. 답 : 한마음은 움직이지 않으니 온갖 법에 결정된 성품이 없어 ‘무성(無性)’이고, 온갖 법에 결정된 성품이 없어 ‘무성’이므로 모든 것이 다 성불한다. 이 내용을 『화엄경』에서 보현과 묘덕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佛子 如來 成正覺時 於其身中 普見一切衆生成正覺 乃至 普見一切衆生入涅槃. 皆同一性 所謂無性. 無何等性.
열반송. 일지 이홍기 作. 30. 하나의 마음으로 원융하기 때문 以理在一爲內 在多爲外 事亦以一爲內 以多爲外. 何故 如是 一多內外 相遍相在 而無障礙. 唯是一心圓融故. 寄理事以彰之 以體寂邊 目之爲理 以用動邊 目之爲事. 以理是心之性 以事是心之相 性相俱心 所以 一切無礙. 이법(理法)이 하나로 모아질 때는 마음 안쪽 작용이 되고 여러 갈래로 나타날 때는 마음 바깥쪽 현상이 되며, 사법(事法)도 하나로 모아질 때는 마음 안쪽 작용이 되고 여러 갈래로 나타날 때는 마음 바깥쪽 현상이 된다. 어째서 이와 같이 일(一)과 다(多), 내(內)와 외(外)로 서로 두루 존재하면서도 장애가 없는 것인가? 오직 하나의 마음으로 원융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마음이 이법과 사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