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나이에 제14대 달라이라마에 즉위한 텐진 갸초의 삶은 험난했던 티베트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959년 중국의 침략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인도로 망명한 이후 그는 오로지 티베트 민족의 염원을 대변하고 전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그의 사상과 행동은 단지 티베트의 이익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고 발전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중국인들에 대해 증오보단 그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면서 세상 모든 이들에게 자비·관용·용서·평화의 가치를 역설해 왔다. 그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지도자
“절밥 먹은 지 30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알았다. 시작의 고통이 클수록 인생의 밑거름이 충분해진다는 것을, 크게 넘어진 고통은 훗날 위기를 버틸 힘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문이 두려움일 수도 있다. 설령 그런 상황에 놓일지라도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조금만 시간을 내어 내면을 바라보자. 진정한 깨달음은 늘 시간이라는 다리를 억지로 붙잡고 절뚝절뚝 뒤늦게 찾아오는 법이니까.”‘청년출가학교’와 고3 수험생을 위한 ‘청춘캠프’ 지도법사, BBS불교방송 ‘좋은 아침 원영입니다’를 진행하며 수많은 청춘에게 긍정의
불교에 입문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갖는 선입견은 ‘어렵다’이다. 교리가 방대할 뿐 아니라 용어 자체도 난해해 들어도 혹은 책을 읽어도 쉽게 뜻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런가 하면 오랜 기간 불교를 공부한 이들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인가?” “중도는 무슨 의미인가?” “일체유심조의 진짜 뜻은 무엇인가?” “묵조선과 간화선은 어떻게 다른가?” “모든 존재에 불성이 있다면서 왜 선사들은 ‘무(無)’라고 하는가?” 등의 질문을 받을 때면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게 만만치 않다. 다양한 개론서와 불교 입문서가 즐비하지만
다비(茶毘)는 사체를 화장(火葬)하는 것으로,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인도에서 행해지던 장례법 가운데 하나다. 인더스문명의 장례에서 출발한 다비는 부처님이 이 의식을 통해 일생을 회향하면서 불교의 장례법으로 정착됐고, 불교가 유입된 이후 한국에서도 다비의 전통이 이어져 왔다. 특히 다비는 부처님의 지혜와 맑은 가르침이 스며 있고, 불교의 문화사적 의미와 죽음관 등이 결집돼 있어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무형문화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에 이르러 일부 큰스님의 입적 때만 단발적으로 봉행되고 전통 다비의례 전승자들이 줄면서 다비 전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을 살피고 자기가 이미 한 일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시도해 보세요. 자신은 이미 아름다운 것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많은 일을 이루었음을 깨달을 겁니다.”지난해 12월 방한한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 캉쎄르 린포체가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제대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안내한 법문집을 펴냈다. 책은 불교의 근본 번뇌 가운데 하나인 탐심에 대해 분석하고 어떻게 탐심을 다루어야 하는지를 설명한 것으로, 일종의 ‘탐심 사용 설명서’이다. 그에 따르면 욕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원한다’는 마음으로, 어떤 대상을 ‘내
“세상은 이미 만들어져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기쁨도 슬픔도 어느 누가 주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 역시 자신이 만들어서 느끼는 것입니다.”예산 수덕사 주지를 지낸 옹산 대선사가 세수 80세를 맞아 에세이 ‘그대 있어 나라의 복이로다’를 발간했다. 스님은 팔십 년의 삶을 돌아보며 “지나온 인생은 마치 기차에서 뒤를 돌아봤을 때의 느낌과 같다”고 했다. 타고 갈 때는 직진이라 여기고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반듯하지 않았음을 발견한다. 지금도 실제로는 굽어진 길을 가면서 반듯하게
불교에서 자주 쓰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마음’이다. 형체가 없어 보이지도 잡을 수도 없지만 마음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삶이 바뀐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마음을 바로 알게 되면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끝없는 자유와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마음을 공부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음공부는 그동안 알고 있던 모든 것, 붙잡고 있던 모든 것을 떠나 새롭고 낯선 길을 걷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부인에게는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끝까지 바른길을 가도록 인도해 줄 안내자가 필요하다. 책은 무심선원 김태완
“상대 종교에 대한 믿음, 혹은 이해는 힘들지라도 (스님인) 제가 신부님, 목사님, 교무님과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것은 상대 종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모습은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앞으로 다른 종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종교는 아마 미래 사회에서 남아 있지 못할 것입니다.”세계 최초로 4대 종교성직자로 구성된 ‘만남중창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진 스님은 1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종교간 갈등과 대립이 만연한 오늘날 서로 다른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신라말 대표적인 고승 범일(810~889)국사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당시 새롭게 유행하던 선불교를 배우고 귀국해 강릉 굴산사를 중심으로 구산산문 가운데 하나였던 사굴산문을 개창한 뛰어난 선승이었다. 동시에 민간 신앙에서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역을 수호하는 신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의 주신(主神)이기도 하다. 한국불교사에서 생불(生佛)이나 보살로 추앙되는 고승들이 더러 있지만, 민간 신앙에서 주신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책은 불교계 전방위 지식인으로 불리는 자현 스님이 선종에 뿌리를 둔
붓과 달리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인고의 과정이다. 몇 번의 칠로도 하나의 대상을 표현할 수 있는 붓과 달리 펜은 0.05mm의 가늘고 섬세한 선을 수십만 번 이상 긋는 작업을 되풀이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대상이 완성된다. 그렇기에 펜화 작업은 자신의 내면을 찾기 위해 스스로 궁지로 내모는 수행의 과정에 비견되기도 한다. 책은 김유식 작가가 전국의 전통사찰 53곳을 돌며 자신의 눈에 비쳐진 사찰의 풍경을 가는 펜으로 옮기고, 스님들을 만나 사찰 설화나 전각 및 문화재 속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를 취재해 엮은 것
사찰 불화나 각종 문화재 속에는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호랑이, 거북이, 사슴, 원숭이 등 실제 존재하는 동물들부터 용이나 봉황처럼 상상 속 동물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동물을 볼 수 있다. 보는 이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드는 이런 상상 속 동물들을 흔히 ‘환상동물’이라고 부른다. 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는 환상동물 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생명체도 있다. 동양판 천둥의 신 ‘토르’라고 할 수 있는 뇌공신, 거북 몸통에 스님 얼굴을 가진 화상어, 두 개의 사람 머리가 달린 환상의 새 공명조, 등에 기묘한 무늬가
“법보신문은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불교 언론사입니다. 대다수 언론사가 사주에 의해 운영되면서 정파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등 언론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지만, 법보신문은 직원들이 직접 운영하는 독립언론으로, 독자들이 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도록 정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공익법인 일일시호일을 설립해 이주민을 비롯해 소외된 이웃들을 돕는 등 불교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회향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법보신문은 불교계에서 꼭 필요한 언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정병택 법무법인 유한 에스앤 변호사가 법보신문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하며 이
중국 화엄종 제4조 청량국사 징관 스님의 사상을 집중 조명한 정엄 스님의 저술 ‘중국화엄사상 연구’가 2021년 일본어로 출간된 이후 올해 3월 한국어로 번역된 데 이어 중국어로도 번역돼 출간됐다. 국내 학자의 저술이 한·중·일 3개 국어로 번역돼 출간된 것은 이례적이다.정엄 스님은 12월13일 군포 정각사에서 음력 11월 초하루법회를 열어 ‘중국화엄사상연구’ 한·중·일 3개 국어 번역 출간을 기념하고 이를 부처님께 고하는 고불법회를 봉행했다.‘중국 화엄사상 연구’는 정엄 스님이 1991년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해 도
“월암당 정대 대종사는 일찍이 근대 선문의 고봉정상(高峰頂上)이었던 전강영신 선사의 문하에서 축발(祝髮)한 이래, 평생 이사무애(理事無礙)한 원융의 삶을 살아간 대종장(大宗匠)이었다.”(신흥사 회주 무산오현 스님)“총무원장으로 계실 때 혼란스럽던 종단을 안정시키고,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건립하면서 종단 발전의 초석을 다진 업적은 모든 종도들이 길이길이 감사해야 할 일이다.”(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정대 스님은 대한민국에, 불교계에 그리고 나에게도 영원히 살아계신 큰 어른이다.”(박지원 전 국정원장)월암당 정대 대종사는
만다라 아티스트이자 만다라심리연구소장인 저자가 창의적인 만다라 도안에 흥미로운 설명을 덧붙여 독자들이 내면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컬러링 심리치유서다. 만다라(Mandala)는 ‘마음의 중심’ ‘본질’이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만다(Manda)’와 ‘완성하다’ ‘공간화한다’는 의미의 ‘라(la)’가 합쳐진 단어다. 따라서 ‘만다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본질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해 표현한 그림, 도상, 공간 등을 의미한다. 만다라는 고대 인도의 영적 전통과 불교 의식을 위해 조성된 수행 도구 가운데 하나로, 밀교수행 전통을
“이 세상 모든 생명은 서로 도울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과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인생의 숨겨진 아름다움과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설법으로 또는 책으로, 때론 방송으로 위로와 용기, 지혜를 전해온 국민 힐링법사 정목 스님이 에세이 ‘사랑은 사랑으로 돌아옵니다’를 출간했다. 책에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출가해 보살핌이 필요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생의 스승과 길 위의 인연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이 책은 평생 유식과 대승사상 연구에 전념하다 올해 8월 91세 일기로 별세한 오형근 동국대 명예교수가 박화문 교수와 공동 집필한 마지막 저서다.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난 오 교수는 1960년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하면서 불교학자의 길을 걸었다. 특히 1963년 근현대 불교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동화 박사로부터 유식 강의를 듣고, 유식학 연구에 매진하기로 발원했다. 이후 동국대 대학원에서 유식학을 전공해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국대 강사를 거쳐 1977년 동국대 전임강사로 부임해 유식학과 관련한 70여편의 논문과 저서를
탄허당 택성 대종사는 대강백이자 선사로 근현대 한국불교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선지식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불교뿐 아니라 유교와 도교 경전을 섭렵했고 방대한 화엄학 관련 자료들을 집대성한 ‘신화엄경합론’을 발간해 ‘화엄경’의 대중화를 이끈 화엄학의 대가이기도 했다. 그랬던 스님의 일대기가 탄신 110주년, 열반 40주년을 맞아 소설로 재탄생했다. 저자는 한국 문단에서 대표적인 불교 소설가로 정평이 나있는 백금남 작가다. 그는 1985년 삼성문학상과 1987년 KBS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십우도’
인류가 다른 생명체들과 차별되는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언어의 사용이다. 언어를 통해 진리를 사유하고 인식하고, 소통한다. 또한 언어를 통해 문명과 문화를 형성하고 발달시켰고, 이를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활용해 그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언어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 그 자체와의 접촉을 오히려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언어는 대상을 지시하거나 상징할 뿐 대상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밝은사람들연구소가 11월18일 개최한 학술연찬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엮은 것이다. 언어가 가지는
11월29일 ‘전법합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소신(燒身)한 조계종 전 총무원장 해봉당 자승 대종사는 한국불교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든든한 문중의 뒷배도 없이 50대에 총무원장에 선출됐고, 숱한 저항과 도전 속에서도 재임에 성공해 8년 임기를 꽉 채운 첫 총무원장이었다. 총무원장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상월선원 천막결사, 만행결사, 인도순례 등을 진행하면서 전법을 통한 한국불교 중흥에 앞장서는 등 현대 한국불교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자승 스님은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19세 되던 해 조계종 3·9대 총무원장을 역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