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논란이 있는 제주 근현대불교사 쟁점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려 이목이 집중됐다.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이사장 효덕·원장 혜달 스님)가 10월16일 제주 휘슬락호텔 세미나장에서 ‘근대제주불교 역사 그리고 그 진실을 찾다’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는 그간 한국불교사에서 크게 조명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최근 역사왜곡 논란이 있는 제주 근대불교 쟁점을 집중 탐색하고자 마련됐다.첫 주제발표에 나선 이성수 동국대 박사(불교신문 기자)는 일제강점기 언론(매일신보·동아일보·조선일보·조선중앙일보) 보도에 나타난 봉려관 스님의 새 행
성철 스님은 근현대불교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해인사 방장과 조계종 종정을 지내서만은 아니다. 출재가자를 막론하고 수많은 이들이 성철 스님의 영향으로 화두를 든다. 매일 능엄주를 외고 힘겨운 삼천배 정진을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인다.성철 스님은 그 자체로 마르지 않는 깊은 우물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에서부터 만화, 소설, 평전은 물론 국내외 학술논문과 박사학위 주제로도 자주 다뤄진다. 작가와 연구자들의 눈에 비춰지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불퇴전의 수행자로, 가야산 호랑이로, 자비의 화신으로, 출중한 사상가로
최근 대법원이 순천 선암사 차 체험관 철거 소송에서 1·2심 판결을 뒤집고 파기환송을 결정한 것과 관련해 조계종 중앙종회가 사법부를 겨냥해 강한 유감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중앙종회는 “상식 이하의 판결을 내린 김상환 대법관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했다.중앙종회 의장단 및 상임분과위원장은 2월24일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정체성을 부정한 것일 뿐 아니라 한국불교를 또 다시 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시대착오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중앙종회는 성명에서 “대법원은 최고의 법원으로 정치적 중립성과 국민의 기본권 보호,
불교계 지성문화를 선도하는 법보신문이 올해도 참신한 연재와 심층보도를 선보인다.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은 통찰력을 갖춘 스님, 학자, 작가, 사회활동가, 예술인 등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사들이 필진으로 나선다. 이들은 교학, 문화재, 역사, 교육, 신행, 수행 등 관련 글을 통해 독자들의 안목을 크게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논설위원과 시론 필진들의 따스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은 독자들을 정견과 정사유 길로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창간 초기부터 독자들에게 불교사상 고취와 교리 이해를 높이는데 앞장서 온 법보신문이 올해는
한국 근현대불교사에는 불교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고승이 있었다. 그 고승들의 고뇌와 행적은 기록과 증언에 의해 해석되고 불교사에 편입된다. 1967년 4월24일 발간된 ‘동산대종사 석영첩(錫影帖)’은 근대불교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기존 어록집, 행장기에 사진집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으며, 법어·일기 등을 수록해 고승의 일상을 세세히 보여줬다. 또 고승 법어집과 문집 발간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근현대불교사 이해를 넓힐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김광식 동국대 문화학술원 특임교수가 최근 ‘항도부산’(제40호)에 게재한 ‘
2019년 11월11일, 9명의 스님들이 들어선 상월선원 철문이 굳게 닫혔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녹아버려도 좋다”며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 서원한 스님들이었다. 그 누구라도 해제 전에 비상문을 박차고 나간다면 조계종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스님들이었다.위례 천막결사는 숱한 화제를 낳았다. 그럴 만 했다. 불교증흥을 발원한 역대 선지식들이 사찰에서 결사를 결행한 적은 있었지만 도심 벌판에 천막법당을 짓고 결사를 단행한
“나 이제 갈란다. 너무 오래 사바에 있었어. 그리고 다시 통도사에 와야지.”1965년 10월3일 한낮, 근현대 통도사의 중흥조로 널리 알려진 구하 스님(九河, 1872~1965)은 출가 이후 삶의 대부분을 보낸 영축산 통도사로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열반에 들었다. 세수 94세, 법랍 81세였다.통도사 역사에서 구하 스님이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스님은 통도사 주지를 14년간 맡으면서 통도사의 면모를 일신했다. 특히 통도사와 통도사 산내 암자의 재산을 일원화 해 회계를 투명하게 했으며 이렇게 모인 정재를 바탕으로 통도사가
“너와 내가 하나요. 만물중생이 다 한 몸이요. 세계만방 모든 나라가 하나다. 이 세상 삼라만상이 한 송이 꽃이니라.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조선 땅이 세계일화의 중심이 된다.”35년간의 일제 억압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은 다음날, 가야산 남쪽 끝자락인 덕숭산에 머물던 수행자들도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독립 소식에 만공 스님(滿空, 1871~1946)은 상좌에게 붓과 무궁화꽃 한 송이를 가져오라 일렀다. 상좌가 그것들을 가져오자 만공 스님은 붓을 잡고 무궁화 꽃잎에 정성스럽게 휘호했다.‘세계일화(世界一花)’어느 제자가 고개를 갸웃거
1960년대 스님, 재가법사, 불자교수들의 원력에 힘입어 사찰에 청년회가 속속 생겨나고 대학에도 불교학생회가 만들어졌다. 이들 젊은 불자는 신행, 봉사, 포교에 앞장섰고, 민주화운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청년 불자의 증가는 자연스레 직장 내 불자모임으로도 이어졌다.청년 불교가 침체기에 접어든 것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다. 2000년대를 지나며 한때 200여곳에 이르던 대학 불교학생회가 60여곳으로 줄었고, 그마저 명맥만 유지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청년회도 마찬가지였다. 저성장, 취업난, 양극화 등 급격한 사회 변화에 청년들의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소장 황순일)는 11월28일 오후 4시30분 서울 충무로영상센터 본관 201호에서 근대불교문화사진 전문가 초청 강연회를 개최한다.초청 강사는 이병두 법보신문 논설위원으로 2017년 1월부터 ‘사진으로 보는 불교’를 매주 연재하고 있다. 이 연재는 근현대불교사에 있어 의미 있는 사진을 발굴해 거기에 담긴 내용을 소개함과 동시에 현대적 시각에서 과거사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근현대불교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정리함으로써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이병두 논설위원은 한국외대 이탈리
조계종 제19교구본사 구례 화엄사(주지 덕문 스님)는 9월21일 경내 화엄원에서 ‘화엄산문을 다시 열다 – 화엄사 중흥조 도광·도천 대종사’란 주제로 화엄문도회 학술발표회를 가졌다. 학술발표회에는 근현대불교사에서 큰 업적을 이루신 화엄산문의 중창조 리산당 도광 대선사와 도천 대종사의 업적과 화엄사의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로 진행됐다.화엄문도 문장 명선 스님은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이 대독한 인사말을 통해 “화엄사는 지난해부터 화엄산문의 중창조이신 도광·도천 대종사의 선양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그
수행자의 기개는 어떤 상황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데 있다. 중국의 여산 혜원 스님이 동진의 실권자 환현에 맞서 출가자는 왕에게 예의를 표할 필요가 없다고 천명한 일이나 정영사 혜원 스님이 북주 무제가 불교말살 정책을 펼 때 면전에서 “아비지옥은 귀천을 가리지 않거늘 폐하는 반드시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오”라고 외쳤던 일. 백곡 처능 스님이 장문의 상소문을 임금에게 올려 조선의 척불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한 일도 그렇다.근현대불교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와 맞섰던 고승으로는 만공 스님(1871~1946)을 꼽을 수 있다. 만공 스님이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