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말이 뱀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일러 봐라.”“공연히 해본 소립니다. 아무 것도 모릅니다.”“인정사정 끄달리지 말고 일념 성취해야 되네.” 일타는 참선에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었다. 겨우내 율장 공부를 했지만 가슴 한 구석이 늘 허전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은 동산이었다. 동산을 보면 아무 망상 없이 참선공부하려는 마음이 솟구치곤 했던 것이다. 일타는 또 동산을 만나 자극을 받고 싶었다. 통도사 계곡에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고 버들강아지가 피어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초봄이었지만 아직은 바람 끝에서 물러가는 겨울이 느껴졌다. 운수납자들이 바랑을 메고 걷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었다. 일타는 또 바랑을 챙겨 메고 범어사로 향했다. 화두 들고 참선하는 데만 혼신의 힘을 다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계율이 바로 서지 않으면 불교도 바로 서지 못해. 부처님께서 무엇을 지키라고 했는지 공부할 필요가 있어.모르니까 엉터리 가짜 중들이 많지.” 해가 일찍 떨어지는 겨울이었다. 그러나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바다가 인접한 창원의 날씨는 포근했다. 그날도 눈이 오려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모래 덮인 경내와 요사 기왓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초저녁부터 나직하게 들려왔다. 전쟁이 끝난 후의 어수선하고 남루한 분위기 속에서 오랜 만에 들어보는 정다운 겨울 빗소리였다. 방문을 열면 암막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도 ‘똑똑똑….’ 하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가깝게 들렸다. 그날 밤에도 일타는 성철의 부름을 받고 조실채로 건너갔다. “부르셨습니까.”“이거 먹어 보래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저 간판이 당신 신심 깊은 것을 증명하고 있는기라. 저걸 떼어마산역 광장에 갖다 세우자, 이 말이야.”“아이구, 큰스님 부끄럽습니다.”“신심에서 돈 낸 것인가. 간판 얻으려고 돈 낸 것이제.” 하안거 중에 특별위령제가 실시되기도 했다. 범어사에 전사자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으므로 지내는 특별위령제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하는 위령제인 탓에 철저한 경비와 동원된 부산 시민들 속에서 행사가 치러졌다. 범어사 스님들은 위령제 순서에 따라 천도재를 지냈다. 일타도 목탁을 치며 극락왕생을 염불했다. 이때 동산은 위령제에 참석한 국방장관에게 유골안치소를 옮겨주도록 건의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빠른 시일 안에 도량의 수행 환경이 정상화되도록 조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던 것이다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공부하는 사람은 계행을 깨끗하게 해야만 한다. 계를 우습게 알지 말아라.무명에 빠져 미혹에 머물러 있을 때 이를 반전시켜 본래 마음으로 회복하는그때가 바로 계이다.” 일타는 전쟁 중이었으므로 응석사에서만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절 사정은 그만큼 궁핍했고, 금오 회상에서 정진하겠다는 수행자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었다. 일타는 응석사에서만 1년을 보냈으므로 이제는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다. 금오 회상을 떠나야 했다. 일타는 오락가락하는 봄비처럼 어디로 떠나야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일각은 진즉 통영 미래사로 떠나버렸고, 함께 동안거를 보냈던 노승 소천도 하안거 방부를 들이려고 이 절 저 절을 알아보고 있었다. “노장님은 어디로 가시렵니까.”“오라는
“법성원에서 무슨 공부를 했는가.”“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세계문학전집을 읽었습니다.”“놀고 왔구먼. 참선하지 않는 중은 죽은 중이지.” 두 번의 기도를 마친 일타는 잠시 응석사를 떠났다. 속가의 외삼촌 진우를 만나기 위해 전주 법성원으로 갔다. 속가에 있을 때 외삼촌들 중에서 진우를 가장 따랐으므로 법성원은 일타에게 고향집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전쟁 중인데도 일타는 법성원에서 아이들을 모아 야학을 하듯 가르쳤다. 그런데 세속의 학문을 접한 탓인지 다시 대학을 가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그 당시를 일타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 바 있다. “6.25전쟁 중이었어요. 법성원에서 애들을 가르치면서 대학 갈 기회를 노려 본 거라. 허나 어디 의지할 데가 있어야 대학을 가지. 더구나 6.25전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도란 밥 먹고 바리때 씻는 곳에 있는 것이지 특별한 데 있지 않는 법. 정진을 하다 보면 도가 익는 것이야. 그러니 도를 굳이 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집현산의 풍광은 편안하고 후덕했다. 특히 내원토굴에서 바라보는 긴 골짜기는 구경으로 들어가는 관문처럼 그윽했다. 금오는 이곳에서 깨친 바를 보임하면서 찾아오는 젊은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일타는 응석사에서 날마다 내원토굴로 가 금오의 가르침을 받았다. 가르침이라고 해서 특별한 단계를 받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내원토굴은 선객들이 안거를 맞이하여 정진하는 선방이 아니었다. 말없는 가운데 스스로 금오의 가풍을 훈습하는 것이 전부였다. 금오가 일타를 만나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준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일타는 비구계를 받기 위해 범어사 일주문을 들어설 때와 받고 난 후 나설 때의 마음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달랐다.수행자로서 고작 첫발을 내딛은 셈이나 환희심에 도취됐다.” 1949년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대교과를 졸업한 일타는 그해 봄 음력 3월 15일에 범어사로 내려가 동산을 계사로 하여 비구계를 받았다. 그의 나이 21세 때의 일로 예비승려인 사미승에서 비로소 비구승이 된 것이었다. 비구승이 된 일타는 천하를 손에 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비구계를 받기 위해 범어사 일주문을 들어설 때와 받고 난 후 나설 때의 마음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달랐다. 그런 들뜬 마음은 일타뿐만이 아니었다. 통도사에서 함께 온 도반들도 마찬가지였다. 수행자로서 이제 고작 첫발을 내딛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독방에서 참선하면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죽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겪고 나니 두려움도 없어지고근본을 알고 나니 인생이 무상해지더라고요” 주지실을 나온 법타는 숲 그늘로 가자며 자신이 앞서 걸었다. 숲은 서향각 바로 뒤에 있었다. 송진 냄새가 향기로운 소나무 숲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주지실에 자꾸 손님들이 몰려오기 때문이었다. 서향각 뒤 산자락에는 50년 생 이상으로 보이는 소나무들이 빼꼭히 들어차 있었다. 솔숲 입구에는 한글로 쓴 ‘수림장’이라는 입간판이 보였다. 사찰 경내에 조성된 사실로 보아 은해사에서 수림장(樹林葬)을 새로운 장묘문화로 계몽하면서 시범적으로 펼치고 있는 듯했다. 고명인은 수림장이란 말이 낯설었지만 솔잎 냄새가
“태어남은 한 조각의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고죽음은 한 조각의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구름은 실체가 없으니 생사 또한 이와 같다” 선혜는 묵은 밭처럼 잡초가 무성한 풀밭을 향해서 한동안 합장한 채 걸음을 떼지 않고 있었다. 고명인이 세수를 하고 올라온 뒤에야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선혜의 두 눈이 붉어져 있었다. 문득 고명인은 이곳이 일타를 다비했던 다비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스님, 이곳이 큰스님께서….”“맞습니다. 우리스님 법구(法軀)는 이곳에서 다비되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가셨지요.” 선혜는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허공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지프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무겁게 말했다. “옛 고승들의 말씀이지요. 태어남을 한 조각의 구름이 일어나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차를 마시는 것도 도 닦는 일입니다지금은 저 새소리로 눈과 귀를 씻고 있습니다“일상이 그대로 도 닦는 일인 것입니다” 고명인이 눈을 떴을 때는 새벽 5시였다. 묘봉암 스님과 선혜는 벌써 일어나 몽당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었다. 멀리 산능성이 위로 지는 달이 희미하게 그 윤곽만 보였다. 달은 여명의 푸른빛을 받아 아침 저편으로 물러서고 있었다. 고명인은 습관대로 인사를 했다. “굿모닝.” 그러자 묘봉암 스님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답했다. “굿모닝.”“꿈 한 줌 꾸지 않고 달콤한 잠을 잤습니다. 과연 묘봉암 터가 명당인 모양입니다.” 새벽에 드러난 선혜의 얼굴은 생기가 넘쳐 보였다. 얼굴은 크림을 바른 것처럼 번쩍거렸다. 새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 귓속이 개운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수행자는 진실을 잠시도 떠날 수 없는 터입니다”“삼라만상이 보고 듣고 있다는 말씀입니까”“시방의 모든 것과 삼세제불이 굽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산 정상이 가까워지자 풍경소리가 들려오고 옅은 구름이 흐르는 듯 차갑고 축축한 기운이 느껴졌다. 공기도 한결 신선했다. 주차장에 지프차를 정차하고 선혜가 맨손체조를 하듯 팔을 휘휘 저었다. 산길을 운전하면서 긴장한 팔의 근육을 풀기 위해 그랬다. 고명인은 묘봉암을 바라보면서 감탄을 했다. 산 정상에 두 채의 가람이 새 둥지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명인은 선혜를 따라 법당으로 들어가 참배했다. 그러고 나서 목을 축이기 위해 샘물을 찾았다. 그때 방안에서 얼굴이 해맑은 한 스님이 나와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향상이 없는 수행은 죽은 수행인 거여차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지. 흐르는 물과 같아야 되는 거여그러려면 늘 공부하고 향상이 있어야지” 고명인은 은해사 산문 밖에서 승용차를 세웠다.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을 찾기 위해서였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은해사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타의 다비를 은해사에서 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타의 법구를 제자들이 하와이에서 운구해 와 은해사 다비장에서 다비했다는 얘기를 광덕사와 석종사에서 들었던 것이다. 다비장을 가면 일타의 흔적이 한 자락이라도 남아 있을 것 같았고, 더욱이 혜각의 말을 따르자면 일타의 세 제자 가운데 한 스님인 법타가 은해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고 하니 은해사를 들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승려에게 속가의 혈연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외로움이 수행의 힘이 된다는 말씀입니까”“빈 바리때 같은 것입니다. 빈 바리때에 채우는 향기로운 공양물이 수행정진입니다” 비갠 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고명인은 고개를 돌려 혜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혜국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지요.”“그렇습니다.”“저는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생가지가 찢어진 나무를 보면 어딘지 균형을 잃은 듯한 모습이 느껴지지요. 어머니를 잃은 사람을 보면 그런 불균형이 느껴집니다.”“외람된 말씀이지만 스님의 어머니께서는 생존해 계십니까.”“출가한 승려에게 속가의 혈연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스님들에게도 어머니의 부재는 큰 외로움이지요. 그런 외로움이 수행을 더 잘하게 하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이 차는 일타 스님께 올리는 차입니다”“일타 스님이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그리움이지요. 저는 그런 감정을 일타 스님이라 여기고 ““차를 올립니다” “왜 그러느냐. 누런 표지의 『법화경』을 왜 보려고 하느냐. 절하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일타는 문득 집히는 것이 있었다. 은사 고경이 물려준 『법화경』을 누워서 보다가 촛불에 그슬려 누런 표지를 파란 표지로 바꾼 적이 있었던 것이다. “절을 정신없이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언젠가 시간이 금이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금이니 불교는 부자종교라고도 했습니다. 다른 종교는 내생을 안 믿으니 시간이 금생밖에 없지만 불교는 시간이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영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혜국아, 너 뭐하는 것이냐”“산토끼를 키우려고요”“생명을 구속하면 안 된다. 울타리를 만들지 마라” 조사전으로 용건을 묻는 종무소 스님들의 출입이 잦아지자, 혜국은 자신의 암자로 올라가자고 말했다. “고 선생, 세상 사람들은 절이 한가할 것이라고 하지만 절 살림도 이렇게 번다합니다. 대중들과 논의하고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절 위쪽에 암자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틈나는 대로 올라가 참선하기 위해서입니다.” 밖에는 봄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산을 적시는 빗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고 있었다. 혜국은 조사전 벽에 세워져 있는 검은색 우산 중에서 하나를 고명인에게 건넸다. 어느새 몰려왔는지 비구름 자락이 산허리를 덮고 있었다. 문득 고명인은 어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느냐” 도락산 광덕사를 나온 고명인은 문득 ‘돌아가시는 길에 석종사가 있습니다. 충주시에 가면 내 사제(師弟) 혜국스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한 혜인의 말이 떠올랐다. 혜인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미국에서 왔던 탓인지 고명인은 누군가에게 더 많은 얘기를 들어야 할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아 있던 참이었다. 고명인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지도를 펼쳤다. 과연 충주시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여주에서 남쪽으로 뻗은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진입하면 금세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누구에게 물을 필요도 없이 아주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충주시였다. 또한 그곳에 가면 석종사
“불교란 마음을 찾는 종교요, 마음을 보는 종교요마음을 아는 종교요, 마음을 깨닫는 종교요마음을 잘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108배를 아무 생각 없이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굴신운동이지요. 나는 먼저 동서남북과 중방을 향해서 절을 합니다. 극락은 우리 인생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영원의 세계가 아닙니까. 그런데 극락에 갔다 하더라도 깨치지 못하면 무엇 합니까. 그래서 나는 절하는 대상 뒤에 ‘극락왕생’에 이어 ‘견성성불’ 하고 외는데 ‘극락에 가서 견성 성불하여지이다’ 하고 축원하는 것이지요.” 혜인은 고명인이 앞에 앉아 있는데도 그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듯 절하는 대상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동서남북과 중방의 불국정토에 계시는 부처님 즉, 동방만월세계 약사유리광여래불, 서방 극락세계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마음은 만법의 왕이니 일체는 오직 마음이 창조하도다본래의 너를 깨달아 법의 등불을 온 누리에 비추리라” 고명인은 미국으로 돌아간 지 3달 만에 다시 돌아왔다. 자신의 사업체인 슈퍼 체인 중 한 지점에서 화재가 나 뒷수습을 하고 다시 한국으로 왔다. 혜각과 일타스님의 유적지를 마저 순례하려고 했으나 큰 사고였으므로 부사장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어서 급히 출국했던 것이다. 황인종에게 상권을 잃은 흑인들이 적개심을 가지고 저지른 방화였지만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고, 화재보험에 들어 두었으므로 소실된 상품에 대한 보상도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사고가 수습되자, 고명인은 서둘러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혜각과 일타스님의 유적지를 순례할 수는 없겠지만 일타스님의 맏상좌 혜인과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부처님, 무소의 뿔처럼 당신을 향해 걸어가겠습니다시방법계에 가득한 신장님이 지켜주시니 외롭지 않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불(佛)을 이룰 때까지 정진하겠습니다” 일타는 법성원을 나와 시외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어제 내렸던 곳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외할머니 대원이 하룻밤 더 묵고 가라고 일타의 장삼자락을 잡았지만 일타는 기어이 뿌리치고 나왔던 것이다. 일타는 다시 통도사로 돌아가고 싶었다. 만행을 더 하고 싶었지만 막상 갈 만한 데가 없었다. 고향인 공주를 가보려고도 했으나 그곳은 선객이 되어 당당하게 돌아보리라 생각하고 미뤘다. 출가해서도 고향을 잊지 못했던 것은 입적한 은사 고경이 자신을 가끔 ‘충공’이라고 부르곤 했기 때문이었다. 충공이란 충청도에서 ‘충’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몸은 물거품 같고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 같나니, 만약 진실한 경계가 아니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어찌 삼가지 않을 것인가.” 태고사에서 하룻밤을 보낸 일타는 아침공양을 하고 난 뒤 바로 버스종점으로 내려갔다. 첫차가 6시 30분에 출발하기 때문이었다. 버스는 하루에 두 번밖에 운행하지 않으므로 첫차를 놓치면 별 수 없이 오후까지는 태고사에 머물러야 했던 것이다. 금산읍으로 나가 전주행을 타면 막내외삼촌 스님인 진우가 지었다는 법성원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금산읍에서는 전주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는 모양이었다. 일타는 버스에 오른 뒤 자신의 걸망을 무릎에 놓고 진우에게 전해 줄 편지를 꺼냈다. 운봉이 진우에게 보낸 편지였다. 안양암 암주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