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란 스님은) 이미 자신의 왕생에 대하여 티끌만큼의 의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정토에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기쁨이 세상에 있을까? 지옥에 가리라는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기쁨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호넨 스님의 말씀도 뚜렷이 떠오르지 않는가. ‘칙수어전(勅修御傳)’21권에서는, “10사람이 염불을 하는데, 설령 9사람이 임종을 잘못해서 왕생할 수 없다하더라도, 나 한 사람만은 반드시 왕생해야 하리라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바로 여기에 불퇴전의 안심(安心)이 있다 말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디에 그 안심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일까? 십악을 범한 호넨, 어리석은 호넨이다. 따라서 범부는 미타의 주빈이라 말해진다. 누구보다도 먼저 구원되는
자신을 꾸민다든지 숨긴다든지 남을 속인다든지 해서는 적나라해지지 않는다. 그 어느 경우든 아집에 사로잡힌 업인 것이다. 그렇기에 불이(不二)의 정토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조사들은 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해서 천 마디 만 마디를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반어적인 것 같지만, 사실 우리들은 온전히 범부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구제받지 못하는 것이다. 범부이면서도 범부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망집이 슬픈 까닭이다. 그 망집이 구제받는 데 걸림돌이 된다. 범부라고 자각한다면 몸을 내맡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럴 때만이 아집이 끊어진다. 그것이 끊어지는 때가 정토에서 받아들여지는 때이다. 그러니까 범부야말로 성불이 확약(確約)되어 있는 것이다. 그저 범부이면서 범부가 아닌 체하기 때문
부사의하게도 이러한 사실(나야말로 악한 자라는 사실-옮긴이)을 인식하는 순간 세계의 전도(顚倒)가 일어난다. 누구보다도 내가 악하다는 생각, 아니! 나 한 사람만이 악하다는 생각, 아니! 악 그 자체가 나라고 하는 생각은 결국 쓸모없는 그 자신을 단념하게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집착이 남는다면 완전한 참회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자기에 대한 긍정이 남아 있으면 ‘유아독악(唯我獨惡)’이라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런 정도의 죄의식은 아직 죄의 참회라고 할 수 없다. 아직 자기에 대한 변명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야말로 죄인 중의 죄인이라 인식하게 되면 세계의 모습은 갑자기 일전(一轉)한다. 자신이 무한소(無限小)인 소(小)이기 때문에, 내가 아닌 것은 무한대(無限大
신란 스님은 어떻게 말했을까. ‘교행신증(敎行信證)’의 신권(信卷)에 남아있는 그의 고뇌어린 말은 어느 누구도 잊지 못할 것이다. “진실로 알겠구나. 슬프게도 어리석은 우독(愚禿, 어리석은 까까머리) 신란은 애욕의 넓은 바다에 빠졌으며, 명리의 큰 산에서 헤매면서, 정정취(正定聚)의 무리에 들어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진실한 깨달음에 가까이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네. 부끄럽고도, 슬프도다.” 표현은 다소 수사적이어서 까다로운 것 같지만, 그의 참회에서 절실함을 읽을 수 있다. 그의 ‘화찬(和讚)’에는 ‘우독의 비탄과 술회(愚禿悲嘆述懷)’라고 제목을 단 것이 있는데 “정토진종에 돌아가더라도 진실한 마음 있기 어렵고, 헛되고 실체가 없는 이 몸에 청정한 마음은 더욱 없도다”라는 구절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인간의 반성과 자각은 두 가지 면에서 넓혀졌다. 하나는 나의 분별에 항상 따라다니는 두 가지 대립을 타파하는 것이다. 주로 지혜 차원의 싸움이다. 예를 들어 선가(禪家)의 수행 같은 것은, 이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일단은 모든 차별을 없애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두 가지 대립되는 견해를 끊어내고, 큰 지혜(大智)를 대면하고자 한다. 선문의 제3조 승찬(僧璨, ?~606)은 ‘신심명(信心銘)’에서 말하였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는데, 다만 간택을 꺼릴 뿐이다.” 또한 “두 가지 대립적인 견해에 머물지 말고 삼가 추심(追尋)하지 말라.” 여기서 ‘간택’은 취사(取捨)하는 것이며, ‘추심’은 분별을 좇는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이원(二元)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마경’에서
사실 어느 시대라도 말세가 아니었던 시대는 없었다. 어느 시대라 하더라도, 그야말로 그 시대는 말법 세상이며, 극악한 세상이다. 어떠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열악한 시대가 있을 리 없다. 이러한 의식 없이 종교는 성립하지 않는다. ‘왕생요집(往生要集)’의 저자는 그 서문에서 ‘탁세말대(濁世末代)’라 기술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도 지금만큼 추악하며 비참한 시대가 일찍이 있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특별히 눈앞에 펼쳐진 가난의 고통이나 전쟁의 공포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빈곤, 문화의 타락은 오늘날 더욱 심하다. 도덕적으로도 이렇게 퇴폐한 시대가 달리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옛 사람들은 “예토를 싫어하여 떠난다(厭離穢土)” 했는데, 실로 지금 여기의 생활이야말로 예토
염불은 왕생을 얻기 위한 방편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 염불의 행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염불하는 힘으로 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왕생은 염불 자체에 갖추어져 있는 공덕인 것이다. 본원으로서 드러난 염불은 인간의 자력을 전제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그저 왕생은 염불 안에 내재된 공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염불 그 자체여야만 하는 것이다. 선의 언어를 빌리자면, ‘지마(只)의 염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마란 ‘오직’이라는 뜻이다. 뭔가 조금이라도 섞여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염불은 그 빛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잇펜 스님은 이를 “오직 하나뿐인 명호(名號)”라고 하셨다. 또한 “명호(名號), 그 자리가 곧 왕생이다”라고도 하셨다.
왜 칭명 그 자체에 이런 공덕이 있는 것일까? 요컨대 인간으로 말하자면, 여기서 자아가 사라져 버린다. 심리적으로 보면, 마음이 무심의 상태로 옮겨간다고 말해도 좋다. 부처님의 입장에서 보자면, 부처님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염불에는 그런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난다. 칭명이 이행(易行)이라는 의미는, 인간이 행하기 쉽다는 뜻에서 이행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인간이 하는 행위라면, 아주 적은 이행조차도 여전히 난행(難行)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행이라는 것은 타력에 의해서 지탱되기 때문에 이행인 것이다. 여기서 칭명은 자력의 행이 아니고 실은 타력의 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충분히 대비에 입각해 있는 것이다. 대비는 남김없이 대비다운 것이 된다. 대비가 그 전모를 나타내
자력의 길로 나아가는 성도문(聖道門)을 감당하려는 자는 모름지기 지혜로운 자, 덕이 있는 자, 강한 자여야 한다. 예지를 깊게 연마하고, 덕행을 닦으며, 계율을 지키고, 오래도록 굳은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끊임없는 마음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므로 정진하고 노력하며, 총명하고 예민하지 않으면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찌 지혜가 부족하고,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 이 길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어디까지나 자력을 함양하고 발하여, 깊이 자기의 본성을 꿰뚫어볼 때까지 철저히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결코 도중에 실패해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난행도(難行道)라 불리는 까닭이다. 스스로의 힘을 믿는 자는 이 한 길을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천재의 길이라 해도 좋다. 상품상생(上品上生)의 근
동쪽의 길은 ‘자기가 큰 것을 깨닫는 길’이고, 서쪽의 길은 ‘자기가 작은 것을 깨닫는 길’이라 말할 수 있다. 한쪽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자력도(自力道)라 불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스스로를 의지하기에는 부족한 자기라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큰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타력도(他力道)라 불린다.그러면 왜 전자가 굳이 난행도로 불리고, 후자는 이행도로 간주되는 것일까. 옛날부터 인용된 비유를 빌어서 말해 보자. ‘불법에는 한량없는 문이 있고, 세상의 길에는 어려운 길과 쉬운 길이 있다. 뭍에서 걷는 것은 힘들고, 물에서 배를 타는 것은 편하다. 보살의 길도 또 이러한 것이다. 어느 수행자는 부지런히 정진을 하고, 또 어느 수행자는 믿음의 방편으로 쉽게 빨리 불퇴
불교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느 종파가 일어날 때 그 입장이, 다른 종파와 다른 이유를 분명히 하기 위해 소위 ‘교상판석(敎相判釋)’이 행하여져 왔음을 알게 된다. 가르침의 특징을 판별하고 평석하는 뜻일 터이다. 줄여서 ‘교판’이라고도 했다. ‘권(權)’에 대한 ‘실(實)’, ‘현(顯)’에 대한 ‘밀(密)’, ‘돈(頓)’에 대한 ‘점(漸)’ 등 여러 가지로 구별해서 그 특질을 말했다. 마찬가지로 염불종이 번영함에 따라서 그 독자적 성질을 다른 종파와 구별하기 위해 주로 세 가지 대비를 고안해 냈다. 난행과 이행, 자력과 타력, 성도(聖道)와 정토, 이러한 말들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어떤 것을 둘로 나누고, 그들을 대비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논리적 습관이다. 이원적인 세계를 넘어갈 수 없
또 호넨 스님과 제자 사이에 이루어진 다음과 같은 흥미 깊은 대화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칙수어전(勅修御傳)’에도 나온다. ‘친제이(鎭西, 지금의 큐슈)에서 상경한 수행자가 호넨 스님의 암자로 찾아와 아직 스님을 친견하러 들어가기에 앞서, 스님의 제자에게 ‘칭명할 때 부처님의 상호를 마음에 그리는 것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제자는 ‘그것이야말로 좋은 일이겠지요’라고 대답했다. 스님이 도량에서 제자의 이 말을 들으시고서 미닫이문을 여시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중생들이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반드시 왕생을 얻는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우리들의 근기로는 아무리 관상(觀想)을 하더라도 도저히 부처님께서 설한 것과 같은, 그런 관상은 될 수
구칭염불은 절대 타력을 세우는 것이다. 부처님 자신이 스스로로 하여금 남김없이 부처답게 만드는 것이다. 염불하는 하는 사람은 염불할 때, 자신을 보아서는 안 된다. 부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어느 만큼의 힘이 있다고, 부처의 힘을 의심하는 것일까. 전적으로 부처의 힘을 우러른다면 구칭염불에 무슨 의심이 일어나겠는가. 그 구칭염불조차도 자기 스스로가 하는 구칭이 아님을 특별히 잘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리하여 염불은 어디까지나 타력이 되어야 한다. 범부가 왕생하는데 자력이 어느 정도의 공덕을 가져올 수 있을까. 염불은 조금이라도 자력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염불을 타력에 의해서 드높이는 것이야말로 호넨 스님의 커다란 사명이었다. 호넨 스님 이전의 염불은 타력반 자력반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이
무엇이 새로운 정토종의 특색인가. 생각컨대 두 가지의 가치관이 역전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나는 칭명의 우위이고 다른 하나는 타력의 우위이다. 전혀 의표를 찌른, 새로운 가치의 선언이었기 때문에 남도(南都)와 북령(北嶺)의 구불교로부터 끊임없이 박해를 받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온후한 호넨 스님도 만년에는 유배되었고, ‘선택집’의 판목도 불 속으로 던져졌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 중에는 사형에 처해진 사람들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빛나는 것은 결국 빛을 발하는 법이다. 일찍이 낮은 수준의 의미밖에 가지지 않았던 구칭(口稱)염불에서, 호넨 스님은 더 이상 없는 깊은 의미를 발견했던 것이다.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염불문의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 이래로 염불이라고 말하면 거의 모두 칭명을 가리키게
그 무렵의 염불이란 무엇을 의미했던 것일까. 헤이안 중기에 나온 에신(惠心) 승도 겐신(源信)이야말로 ‘왕생요집(往生要集)’이란 대저술을 통해서, 염불의 종풍을 일세에 풍미케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오로지 되뇌었던 염불이란 무엇이었을까. 염불에는 두 가지 단계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관(觀)하는 것이다. 즉 늘 마음 속 깊이 생각하며, 마음에 깊이 새기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입으로 부처님을 일컫는 것으로, 육자의 명호를 부르는 것(稱名)이다. 관불(觀佛)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할 수도 있고, 삼십이상이라는 부처님의 상호를 떠올리는 수도 있으며, 또 부처님의 나라 정토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일심으로 생각을 모으는 것
석존이 돌아가신 이후 제자(弟子)들은 추억에 잠겨 슬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 기억속에서이다. 그를 그리는 마음으로 나날을 보내고 맞았음에 틀림없다. 꿈에서도 그 온화한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그 음성도 접했을 것이다. 아니 꿈에서만이라도 재회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시간은 머무르지 않고 흘러간다. 이윽고 제자들도 추억의 사람들이 되어 갔다. 제자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추억 속의 사람들이 되어 갔다. 그러나 그렇게 이어지는 제자들에게는 석존을 깊이 생각해보는 것은 신심을 깊게 하고 간직하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부처님에 대해 이어지는 생각이야말로 그들의 신앙과 사상을 키우는 힘이었다. 그것은 사모이자 동경이었다. 이윽고 부처님에 대한 생각은 사색이 되고, 예지가 되며, 또 선정이 되었
호넨(法然) 스님은 ‘일지소소식(一紙小消息)’의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늘을 우러르고 땅에 엎드려 기뻐해야 한다. 이번에 아미타불의 서원을 접하게 되는 것을.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가운데서도 감사해야 한다. 저 부처님의 은덕을. 의지하고 또 의지해야 할 것은 “내지 십념…”이라 하는 말씀이고, 믿고 또 믿어야할 것은 “반드시 왕생한다”는 말씀이다.’스님은 ‘염불왕생의 원’을 상기하시고는, 이런 감격에 가득 찼던 것이다. 스님의 저서인 ‘선택본원염불집(選擇本願念佛集)’은 그 제목에서 염불문의 취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겐신(源信)의 말을 이어, “왕생의 업에는 염불을 우선으로 한다”고 기록한 데에서 모든 것은 분명해진다. 쇼쿠 세이잔(證空西山) 스님의 ‘진권용심(鎭勸用心)’에서는 다음과 같
범부를 위해 발원한 대원(大願)이 바로 염불왕생의 서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열한 범부중생이라 하더라도 이 진리의 세계에서는 똑같은 손님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주빈(主賓)의 위치에 자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범부의 성불이라는 바로 그 점에 아미타여래의 염원을 담아서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들 범부중생이 성불할 수 있는 길이 없다면 부처는 부처일 수 없다. 바로 아미타불이 목숨 걸고 세운 원력이 바로 이 원인 것이다. 이 점에서 어쩌면 하배(下輩)의 중생들, 그리고 하근기의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아미타불의 주빈(主賓)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무량수경’에서 설한 가르침에서 이 제18원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소위 ‘삼배(三輩)’ 중 하배(下輩)에 관한 부분이다. 삼배(三輩)란 인
선도(善導, 613~681)대사는 ‘관경소(觀經疏)’에서 제18원을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혹여 내가 성불할 시에 시방세계 중생들이 내 명호를 외워, 열 번 염불할 때까지[乃至十念] 부처님의 땅에 나지 못 한다면, 나는 정각을 이루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저 부처님께서는 이 현세에 계시면서 성불하셨다. 마땅히 알아라. 본래의 서원을 거듭 원하신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중생들이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을 얻으리라.” 호넨(法然) 스님은 ‘정토종약초(淨土宗略抄)’에서 이 제18원을 쉬운 말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내 만약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 중생들이 내 나라에 태어나고자 원력을 세워 나의 명호를 부르고, 다만 열 번만 염불을 하더라도 나의 원력대로 만약 불국토에 태어나지 못할진대, 나
법장보살이 세운 48원은 하나하나가 중생제도를 위한 대원(大願)이다. 제1원에서 제48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 이라면 (또는 그렇지 않다면) 정각을 이루지 않겠노라[不取正覺]”며 원력을 세우고 있다. 즉 모든 중생을 괴로움으로부터 구하여, 그들을 이 세상에서 정토로 인도하지 못하는 한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뜻이다. 법장보살이 세운 48개의 서원은 그 각각이 다 의미심장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범부를 위해 세운 한 원이 있는데, 구제받기 어려운 범부를 어떻게 해서라도 구제하고자 하므로 ‘원 중의 원’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하품의 중생까지 구제받을 수 있다는 것만큼 놀라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제18원이다. 요컨대 나머지 47개의 서원은 모두 이 하나의 원으로 포섭되는 보조적 원이라 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