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최상의 순서는 최상의 결과를 낳습니다. 운동에도 기초운동이 있듯이 사경수행에도 기초수행이 있습니다. 사경수행의 기초는 오사(五事)를 잘 조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기초수행이 튼실하면 본수행은 여법하게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조식(調食)으로 음식의 조절을 말합니다. 음식은 몸과 마음과 밀접한 관련을 갖습니다. 음식의 내용과 양에 따라 몸과 마음의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경수행에 앞서 되도록 자극적인 음식은 삼가하고 육류를 피하며 과식을 피해야 합니다. 둘째는 조수(調睡)로 수면의 조절을 말합니다. 수마로부터 조복을 받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이는 지난한 수련을 거쳐야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중도의 원리에 입각한 조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지
우리 선조들이 남긴 사경은 거의 정자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성기는 행서체(行書體)에 가까운 사경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들 사경도 경문만큼은 모두 정자체(正字體)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경문과 사성기의 성격과 비중이 다른 데서 연유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인 경문을 옮겨 적는 것은 사경이고 개인적인 내용의 사성기는 엄밀하게는 사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경을 정직한 해서체로 정성을 다 하여 필사를 함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품격에 관한 문제입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예컨대 운동선수가 일반 행사에 초청을 받았을 때 운동복 차림으로 참석한다면 이는 품위 없는 행동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늘상 착용하는 옷에도 장소와 용도에 적합한 종류가 있듯이 글씨에도 용도에 따른 적합한
기본적으로 사경은 경전의 내용을 서사하면서 부처님 말씀의 진의(眞意)를 깊이 깨닫고 증득하여 지혜를 얻어 생활 속에서 구현하는 수행법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말씀이 법신사리인 관계로 가장 장엄스럽게 사성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형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완성된 형식이 표지, 변상도, 경문, 사성기입니다. 물론 이러한 형식은 법신사리를 장엄한다는 의미와 함께 유익한 제각각의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표지의 아름다운 장엄은 법신사리인 사경을 보호하는 기능과 함께 귀한 보물임을 각인시켜 경건히 대하도록 하는 효능을 지니고 있고, 변상도는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보여줌으로써 한문 경전의 해독이 어려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의 설법장면을 경문에 앞서 먼저 그림으로 보
모든 수행은 생활과 함께 합니다. 생활과 괴리된 수행은 수행이 아닙니다. 달리 말하면 현실을 벗어난 세계를 추구하는 모든 행위는 수행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수행을 신비주의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이는 정견이 아닙니다. 이를 확인하여 보기 위한 가장 좋은 경전이 가장 일찍 편찬되었고 부처님의 발자취를 가장 여실하게 담고 있는 『법구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구경』의 구절구절을 잘 읽어 보면 부처님의 생생한 수행의 발자취와 진실된 가르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신비주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비적인 것은 결단코 부처님의 정법이 아닙니다. 신발 벗어 놓은 것 하나만 봐도 그 사람의 수행의 정도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걸음걸이 하나도 마찬가지입니
사경의 종류를 분명히 알고 사경수행을 하게 되면 도착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경은 크게 펜글씨와 같은 경필사경과 붓글씨의 모필사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경필사경과 모필사경은 그 출발점인 사경에 임하는 마음가짐부터 크게 다릅니다. 그리고 경필사경은 체본(저본) 위에 덮어쓰는 사경과 저본을 옆에 두고 옮겨쓰는 사경으로 나뉩니다. 물론 보고 옮겨쓰는 사경이 수행력에서 월등히 수승합니다. 모필사경은 서사 재료에 따라 묵서사경, 금니사경, 은니사경, 경면주사사경, 자혈사경 등으로 나뉩니다. 또 사경지의 염색 여부에 따라 색지사경과 백지사경으로 나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재료의 변형이 일어나는 2차 사경도 있습니다. 예컨대 목판경이나 석경, 금지경과 같이 1차적인 모필사경이 2차로 재료에
‘사경(寫經)을 하는 법은, 닥나무 뿌리에 향수를 뿌려 생장(生長)시키며 닥나무가 다 자란 연후에는 닥 껍질을 벗기는 자나 연마하는 자나 종이를 만드는 자나 사경을 하는 자나 표지와 변상도(變相圖)를 그리는 자, 표구(表具)를 하는 자, 심부름을 하는 자 모두 보살계(菩薩戒)를 받아야 하며 재식(齋食·음식을 청결히 가려 먹음)해야 하며 위의 사람들이 만약 대소변을 보거나 누워 자거나 음식을 먹거나 했을 때에는 향수로 목욕을 한 연후라야 사경하는 곳에 나아간다.’ -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사성기에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사경,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754-755년) 사성기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글은 우리가 어떠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사경수행에 임해야 하는지를 잘 표현하여
최근 들어 사경수행자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예술의 창작, 혹은 신행, 혹은 수행 그 어느 목적으로 사경을 하든지 간에 사경을 하는 분들이 부쩍 늘고 있음은 우리 불교계뿐만 아니라 전 종교계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희망적인 메시지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사경은 부처님을 비롯한 성인들께서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를 깨닫고 체득하신 내용을 기록한 경전을 서사하는 가장 절실하고 직접적인 수행법입니다. 과거에는 경전의 유통이 그리 원활하지만은 않았던 관계로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사경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진리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한 자 한 자의 의미를 마음과 종이에 되새김은 모든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성인이 되는 지름길로 여겨졌습니다. 불교에서는 여러 수행법 가운데서도 가장 일찍 형성된 수행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 생애를 걸쳐서 깨달음의 과정과 그 이후의 중생 구제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 고요하고 흔들림이 없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는 것이며, 이것이 곧 불성(佛性)입니다. 우리 자신의 불성을 발견하는 데 있어서 사불수행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부처님의 상에 우리 마음을 열어 보이고 스스로 확인하는 일입니다. 그 시작이 석가모니불을 관상하는 사불관법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불순서와 임하는 마음을 살펴보면 천천히 삼배를 올린 다음 내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부처님께 귀의하고 육바라밀을 실천하여 쌓은 공덕을 만 중생을 돕는데 쓸 것이며 더욱 깊이 석가모니불의 원력에 가까이 갈 것을 간절히 발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해 지고 싶지만 행복을 얻을 수
사불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매우 미세한 무의식의 형상(잠재의식, 불성 자리)을 깨어나게 하여 그 형상을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요한 마음가짐으로 이어지는 호흡은 매우 중요하며 숙달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요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사불관에서의 호흡은 선정의 깊이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불화를 연마할 때 불화의 초선을 수백 장, 수천 장을 그려내면서 형상의 인식도 깊어지지만 손끝으로 이어지는 호흡의 일치를 무의식의 세계에서도 가능하도록 연마하는 과정입니다. 긴 선이 필요하면 깊은 숨으로 단전에 힘을 가하고, 짧은 선이 보여 지면 매우 순간적인 상황에서 짧은 호흡으로 변환되는 반응입니다. 그러나 실제의 호흡은 일정하게 유지되어 물이 흐르듯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워야
사불수행은 형상과 매우 밀접한 수행이며 안·이·비·설·신·의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안(眼)을 통하여 식(識)의 흐름을 맑혀 삼매의 과정에 드는 수행이므로 다른 어떠 수행보다도 이상한 영상과 감각들의 등장이 많고 선명합니다. 특히 사불관의 선정이 깊어질 때 이상한 영상이나 예상치 않은 느낌으로 놀라거나 때로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몸이 붕 떠오르거나 확대 또는 축소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불하려는 대상인 불보살상이 움직이기도 하고 말을 건네기도 하며 오묘한 향기와 오색영롱한 빛은 자주 경험하는 현상입니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은 깊은 선정 속에서 무의식이 깨어나거나 새로운 마음자리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지극히 정상정인 의식의 흐름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들이 나
경전 기록에 따르면 도량 장엄과 동시에 도량을 찾는 이들에게 손쉽게 가르침을 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일찍부터 사불수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율장인 『유부비나야잡사(有部毘奈耶雜事)』권 17에는 초기교단에 급고독(給孤獨)장자가 보시한 기원정사에 여러 종류의 불화가 그려졌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급고독 장자가 그림으로 장식하고 싶어 하자, 부처님은 “문의 양쪽에는 장대를 든 약차를 그리고 그 옆의 양쪽 면에는 대신통변과 오취생사윤회도를 그린다. 처마 밑에는 부처님의 본생 일을 그리고, 불전의 문 옆에는 꽃다발을 든 약차를 그린다. 그리고…(중략)”라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사불수행은 부처님 재세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유부비나야잡사(有部毘奈耶雜事)』권 38에
중생들에게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병의 모든 부분은 약사여래불을 통해 치유가 가능합니다. 약사여래불은 과거 전생에 보살로써 수행하면서 12대 서원을 세웠는데, 일체중생의 고통과 아픔을 치료하고 무명의 틀도 벗어나게 하는 원력입니다. 사불수행에서의 약사여래불은 주로 좌상으로 모시게 되는데 선정인 수인에 약탕 보주를 들고 아미타불과 같은 상호의 모습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사불 수행에는 기도와 수행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으므로 어느 곳에 더욱 중점을 둘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초본을 정해야 합니다. 정갈한 책상위에 약사여래의 초본을 준비한 후 합장 삼배로 예를 갖추고 이어서 약사여래 12대원을 천천히 염송하거나 약사여래불 정근을 해도 좋습니다. 이때 시선은 아래로 두고 약사여래불의 약 보주에 집중하면
수행이란 본래 따로 특별한 의식 절차를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사불수행 만의 특별한 준비와 부처님의 형상을 그려 모셔야한다는 점에서 타 수행과 엄연히 다른 부분이 있으니, 나름의 절차를 통하는 것이 수행의 극대화를 위해 좋습니다. 우선 불자님들이 집에서 단독으로 할 경우, 외부의 자극을 끊고 본래의 순수한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갖게 되면 집이라는 공간이 참으로 다르다는 것이 많은 수행자들의 경험입니다. 모든 수행은 발원과 염원의 분명한 목적을 세우는 일로 시작됩니다. 사불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고 정갈한 책상과 사불하고자하는 불보살님 초본, 사불하실 도구를 갖추면 완벽한 준비가 됩니다. 이어서 20분에서 30분 동안 정해진 시간 안에 어느 것에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정갈한
부처님을 그리는 일은 참으로 신비롭고 환희심이 나는 일입니다. 부처님의 32상 80종호의 형상을 내 손을 통하여 한 몸이 되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낄 때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행복합니다. 이렇게 행복한 수행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사불관법을 통과해야 합니다. 사불관의 방법은 관상법과 호흡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부처님을 그려 모시는 사불의 순간보다, 더욱 깊은 수행이 있어야만 합니다. 사불관의 구체적인 방법은 세 가지 원리로 정리됩니다. 첫 번째로 유동법(流動法)입니다. 유동법은 관하고자 하는 대상이 사불 수행자의 마음속으로 유동하여 들어오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지장보살의 유리 보주, 관음보살의 감로 정병, 문수보살의 경전, 각각의 부처님 수인, 약사여래의 보주 등 불보살님이 지닌 지물이 수행자의 호
문수사리로 불려지는 문수는 묘(妙), 덕(德), 길상(吉祥) 등의 뜻이므로 지혜가 뛰어난 공덕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 보살은 석가가 죽은 후 인도에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하였으며, 항상 반야 지혜의 권화(權化)처럼 표현되어 왔습니다. 문수보살님의 사불수행을 위하여 정갈한 장소에서 주변의 어떠한 간섭이 없도록 사전에 차단을 하고 약 30분정도의 깊은 몰입으로 수행하면 됩니다. 우선 문수보살의 정 초본을 놓고 그 위에 직접 하거나 한지를 한 장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다음에 천천히 삼배하고 호흡을 고른 후 자연스럽게 사불관에 듭니다. 문수보살님이 들고 계신 지물의 경전을 집중하여 점점 깊은 호흡으로 받아들이고, 강한 빛으로 화하는 경전에 의념하면 됩니다. 모든 행원에 앞서 이론적인 마음의 구분이 명
사불(寫佛)이란 부처를 그려내거나 채색, 장엄 등 일련의 모든 행위를 포함하는데 그리기 전에 사불관(寫佛觀)을 통해 내적인 형상화로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불은 그러한 선수행(禪修行) 과 관상법(觀想法)을 통한 사불관의 깊은 몰입으로 부처님의 32상 80종호의 원만 상호를 통하여 내면의 불성을 확인하며 고요하고 투명한 본래의 마음에 부처를 각인하여 그 모습의 부처를 그려내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불은 그리는 행위에 요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불 이전의 사불관법에 그 요체가 있는 것입니다. 상(想)을 본다는 뜻의 관상법은 지속해서 하나의 형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외부의 상이 아닌 내면에 든 상입니다. 이러한 수행은 외부의 형상을 깊은 내면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며 매우 구체적이고 자의적인
지장보살 사불수행 또한 지장보살의 형상을 모시는 사불에 앞서 사불관이 우선입니다. 사불하고자 하는 초본과 모든 준비를 마치고 천천히 삼배를 올려 긴장을 완전히 풀어내며 고요한 마음속에 과거, 현재, 미래까지 정화하길 내 맡기는 마음 집중을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모든 불·보살님들의 특징이 나타나는 지물, 즉 들고 계신 물건에 시선을 집중하는데 지장보살님의 경우 언제나 보주를 지물로 들고 계시므로 보주를 강한 광채로 집중하십시오. 보주에 서린 강력한 광채가 자신의 온몸을 통과하는데 매우 구체적으로 세포 하나하나까지 특별히 아프거나 불편한 신체적 부위가 있다면 더욱 집중적으로 하시며 자신의 온몸을 지장보살의 보주로 인하여 완벽히 정화하고 자신을 통과한 빛이 다른 사람에게도 강하게 통과시키는 깊은 마음집중이
Q : 사불수행을 하면서 꼭 주의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본인 스스로도 점검이 가능한가요. A : 초심일 때 특히 많은 장애가 있고 지도가 필요한 것은 어떤 수행법이나 같습니다. 본인 스스로 점검이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우선 초심자에게는 가능하면 자격을 갖춘 스승이 필요합니다. 사불수행의 경우에도 몇 가지 꼭 주의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그리는 사불에 앞서, 부처님의 형상을 마음에 그리는 사불관을 할 때 초심자일수록 부처님 모습을 관하는 시간을 짧게 해야 합니다. 지나친 욕심은 수행 정진에도 금물이며 처음 사불관에 들어 부처님 형상을 앞에 두고 하염없이 바라보고 그 모습에 감격하여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스스로 만든 거룩함에 빠져 집중력이 떨어지며 혼침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초심
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으로 작은 발원과 소망까지도 들어주는 자비의 화신입니다. 그러므로 관음보살을 깊이 관해 수행하면 스스로 진정한 자비심을 발현하게 됩니다. 또 진정한 자비심은 고통의 원인을 통찰하는 힘을 주어 고통스러운 상황을 대처하는 지혜와 용기가 스스로 발현합니다. 사불수행에도 당연히 관음기도가 있으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관음42수주’로써 42종류의 각기 다른 관음세보살의 수인을 우리가 기도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발원에 따라 선택합니다. 예로 재물과 금전에 관한 것이라면 42수 중 첫 번째인 여의수주진언의 형상을, 서방세계 정토에 나기를 기원하는 기도는 열아홉 번째인 청련화수 진언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관음기도 중 관음42수주 진언기도는 구체적인 발원을 기도로 옮기므로 성
마하가섭 존자와 깨달으신 석가모니 부처님 사이의 찰라 적 마음 교환으로 연꽃과 흐르는 미소하나로 억겁의 세월을 뚫었으며 팔만 사천의 경전을 뛰어넘은 바로 그 장면입니다. 그 깨달음을 서로 확인하는 순간의 연화를 사불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사불을 하기 전에는 정갈한 책상이나 좌식, 또는 깨끗한 바닦에서 하고, 미리 시간을 정하여 10분-15분-20분-30분 등으로 하여 중간에 잡다한 전화나 TV,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등으로 방해받지 말아야 함이 필수입니다. 더욱이 불안한 마음으로 요리를 하다가 한다거나 촉박한 시간으로 해야 한다면 오히려 마음의 부담으로 수행에 역행이 되므로 삼가해야 하며 또한 지나친 욕심으로 긴 시간을 요하는 것이나 본인에게 버거운 초안으로 사불에 임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사불은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