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판정에도 의젓하게 “생사가 여여하니 슬퍼하지 말라”며 내게 “내가 죽으면 울지 말고 노래를 불러 달라”고 말하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말기 암이란 것을 자녀들에도 말하지 않고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1년을 넘게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활하던 남편. 수십년을 손잡고 다니던 원각정사 법회가 코로나19로 멈추고 난 뒤 1년 넘게 가지 못했는데 오늘 다시 법회가 진행되어 참석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막내아들이 데려다 주고 끝난 뒤엔 넘어지면 다친다며 항상 손을 잡아주던 남편 없이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높게 날아오르며, 희망과 기대를 보여주는 2010년 10월 중순의 청명한 하늘이 나의 가슴을 꽉 메우고 있었다. 2010년 포교사 시험에 합격하여 연수를 마치고 평소에 어린이포교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포교사단 부산지단은 중등부소속 어린이 포교팀에 자원했고 부산지단은 나를 어린이포교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연꽃팀에 배치했다. 연꽃팀은 사찰에 예속되지 않고 포교사들이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었으며, 발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팀이었다. 그렇게 어린이포교 실천을 위해, ‘길 없는 길’을 걸어온 지 12
[2016년 1월24일, 눈이 내리는 날]아침에 아빠랑 동생이랑도서관 가는 길.엄마는 매일 새벽기도를 가시는데눈이 많이 내리면 걱정이 된다.길이 미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엄마가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그 추위 많이 타는 엄마가새벽마다 기도를 가신다.무엇을 위해 기도하시는 걸까.알 수는 없지만나라도 그런 엄마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어드리고 싶다.엄마의 모든 바람이 다 이뤄지길….집안 정리를 하다 딸이 쓴 일기를 보았다. ‘새벽기도하러 나서는 엄마가 걱정된다’며 쓴 일기를 읽어보니 불자로 살아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는
부처님 법을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낡은 생각과 편견에서 벗어나 치우친 오류의 틀을 깨는 것이다. 나는 낡은 믿음을 걷어내고 진리의 믿음으로 다가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망상과 망념을 내려놓고 끊임없는 정진으로 오랫동안 훈습되어 왔던 묵은 때를 씻고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나사를 단단히 조인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기도와 내 삶에 대한 반성과 통찰. 이를 통해 생명의 존귀함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로 삼는다. 끊임없이 내려놓는 훈련을 통해 거칠고 질긴 오랜 습성들을 하나하나 벗어던지는 훈련이다. 그것은 인내와 역
2006년 봄. 판사님의 냉랭한 판결을 뒤로 한 채, 지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버스에 올랐다. 이때까지도 차 창밖 세상이 동경의 대상이 될 줄은 몰랐다. 한 평 남짓한 방. 사방이 까만 일명 ‘먹방’에 갇힌 뒤에야 비로소 긴 한숨과 함께 자유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참으로 처량하고 절망적이어서 이런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더해가고 끝내 정신마저 불안해져 약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약을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흐리멍덩한 상태가 됐으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거룩하신 가르침에 귀의합니다!거룩하신 스님들께 귀의합니다!자비하신 부처님.부처님의 찬란한 진리의 광명을 찬탄하옵고부처님 전에 엎드려 지난 허물 참회하오며지성으로 발원하오니 섭수하여 주시옵소서!평생 사찰 공양간을 지켜왔습니다.사찰에서 받은 월급으로 홀로 자녀 둘을 양육하며 알뜰하게 살아왔습니다.무엇보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짓고 일심으로 스님들을 섬기는 일이 천직처럼 느껴졌습니다.하지만 지극정성 기도에도 불구하고가정에 닥친 여러 가지 어려움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설상가상으로 폐암 말기 6개월 시한부 판정
한 줌의 잿빛 가루 눈물 속에모두고 화장장(火葬場) 벗어날 제정토행(淨土行) 왕생(往生)의 길무탈(無頉)하게 보내려네.이제야 챙겨드릴 일 생몰일 때 향 공양그에 더불어 꽃과 음식과 육신 공양 몸소 해보리라.염부제 중생 위해 그렇게도 애지중지 머물더니말없이 한 줌 한 줌 섞여재회(再會)하신 금실이(琴瑟) 좋던 양친(養親)좋은(明堂) 터 들지 못하고관공서 봉안당 송학함(松鶴函)에 잠긴 것을귀의 하랍시고 또 귀의 하랍시고지장보살 계신 명부전에 모시려네.캄캄한 달그림자 깊은 산속 헤매다가동이 트니 온 하늘이 파랗게 물 들으며언제 적 아픔이
온 지구촌의 COVID-19와 전쟁들과 이런저런 난리통 가운데서도 바야흐로 불기 2566년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온다. 누구라도 이런 생각 들겠으나, 지금 여기에 부처님이 계신다면 당장 무엇을 하고 계실지가 몹시 궁금하다. 봉축 기념특집으로 하필이면 ‘재난’과 ‘구제’를 논하게 된 것이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인연법의 소산이라 생각된다. 과연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는 무엇이 재난이고, 무엇이 구제인가.지난 2년여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 코로나의 기습에 목숨을 건 불안감이 매우 컸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예방주사를
우리는 법회나 행사를 마감하면서 늘 사홍서원을 봉행한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로 시작하는 이 네 가지 큰 발원은 대승불교의 근본이념이다. 즉 중생 제도에서 시작하여 번뇌를 끊고, 법문을 배워 불도를 이루겠다는 다짐은 우리 불교의 변하지 않는 최상의 가치이다. 이러한 중생 제도, 중생 구제의 정신은 삼국시대 불교를 수용한 이후 지금까지 불교가 한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선도해 온 원동력이기도 하다. 깨달음을 위한 수행에 앞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보살의 이타정신은 곧 민족과 국가를 위한 호국불교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국가적 재난에 처했
인간이 심성적으로 가장 나약해진 시기 가운데 하나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이다. 이에 일찍부터 종교에서는 질병 치료를 중시해왔다. 한국고대 사회에서도 불교가 전파되는데 불교의학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라 아도 화상이 눌지왕의 딸 성국공주를 치료한 인연으로 최초의 사찰 흥륜사가 건립되었다거나(‘삼국유사’ 권3), 해인사가 애장왕(788~809)의 왕비를 치료한 인연으로 창건되었다는 설화는 불교 의학이 불교 세력이 확장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준다.‘삼국사기’ 선덕여왕 5년 3월
동아시아의 종교의식을 살펴보면 재난을 대비하거나, 피해입은 개인과 사회를 치유하려는 종교의 노력이 산 자뿐만 아니라 죽은 자까지도 포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불의의 재난으로 죽은 영혼, 원한을 안고 죽은 망혼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종교의례는 교단을 불문하고 어느 종교나 자체적인 교의에 기반한 절차와 형식을 가지고 거행되며, 이러한 의례는 또한 사회에서 종교를 필요로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불교 역시 사십구재, 영산재, 생전예수재, 수륙재 등의 의례가 유주·무주고혼들을 위해 설행되어 왔다. 유교 또한 가뭄 발생을 원한을 품고
1929년 5월27일 경기도 광주군 대본산 봉은사(현 강남 봉은사)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봉은사 주지 청호 스님(晴湖, 1875~1934)을 찬탄하는 ‘나청호 대선사 수해구제 공덕비’ 제막식이었다. 공덕비에는 ‘을축년 7월 홍수로 선리·부리·잠실의 뽕나무밭이 큰물에 잠기고, 708인 다급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목숨을 구해 달라 외쳤다. 나청호 대선사가 자비로움으로 이를 구제하니, 그 덕을 잊을 수가 없구나’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공덕비 비용은 스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708명이 그 은혜를 갚고자 십시일반 걷어 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