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만물이 겨울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날이다.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목련과 벚꽃이 화려함을 더하고, 메말랐던 가지에선 연초록 잎이 앞다퉈 솟아난다. 신기할 뿐이다. 그러나 딱 100년 전 토머스 엘리엇은 그 유명한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고 읊었다. 인류의 지옥문이 열린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문명 파탄의 원인을 욕망에서 찾는다. 자본, 과학, 국가가 한패가 되어 지구를 황폐화하고, 절망의 비가 대지를 적시던 때다. 결국은
꽃이 피고, 봄비가 내린다. 조금 지나면 신록이 대지를 가득 덮을 것이다. 폭설로 도로가 봉쇄되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지금은 온 산에 봄이 가득하다. 봄의 전령사를 자처하는 벚꽃들은 벌써 꽃잎을 모두 떨구었다.몇 주 전 산림조합 묘목 직판장에서 은행나무 묘목과 핑크셀릭스, 왕벚나무를 구입해 비 오는 날 뜰에 심었다. 또 작년 법당 둘레 멋지게 핀 접시꽃의 씨앗과 뜰에 가득 핀 봉숭아꽃 씨앗을 모아 두었는데 봄비 내려 모종판으로 한밭 가득 심었다. 그뿐만 아니다. 루피너스, 라벤더, 안개꽃, 수레국화, 솔체꽃, 꽃양귀비
‘문화재보호법 일부개정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개정안의 핵심은 문화재관람료를 감면하는 대신 그 비용에 대해 국가 또는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불교계는 1962년부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관람료를 징수해왔다. 정부가 국가적 책무인 전통문화의 보존관리와 전승을 불교계에 떠넘겼기 때문이다. 이후 정부는 1967년 돌연 국공립공원을 지정하며 수많은 사찰과 사찰이 보존하며 가꿔온 산림을 동의 절차 없이 강제로 편입시켰다. 외국의 경우 국립공원 내 사유지로 인한 문제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자연공원 지정은 공유지
부처님이 왕사성에 있는 기사굴산에 계실 때, 당시 강대국 중 하나였던 마가다국의 왕이 작은 나라 밧지국을 침공할 마음을 먹고, 최종 결심을 하기 전에 부처님의 의중(意中)을 알아보려고 고위 관료를 사신으로 부처님께 보냈다.‘전쟁을 일으키면 승리할 수 있을지’ 확인하고, ‘혹 부처님이 강하게 반대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을 세우려 했을 것이다. 높은 산 위까지 힘들게 찾아온 고위 관리를 맞은 부처님은 사신에게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든가 “전쟁을 하면 승리할 것이다”라며 직설적으로 말씀하지 않고 대신 시자 아난다와 주고받는 대화를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전국장애인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논쟁이 이슈다. 이준석 대표가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의 방식을 비판하자, 전장연 측에서는 이준석 당대표의 몰이해와 장애인에 대한 혐오 행위라고 강력 비판했다. 이 대표는 서울 시민을 볼모로 삼는 떼법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전장연 측은 이 대표가 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를 한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논쟁을 보면 사회학 안에서 ‘비판이론’을 이끌고 있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2세대와 3세대의 논의가 떠오른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현실 사회에서의 갈등이라는 점에 주
3년여 간 지속된 코로나19 방역조치가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 2022년이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도 커지고 있다. 불교계 역시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인 연등회가 3년 만에 재개되는 등 따뜻한 봄바람을 타고 반가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잔뜩 움츠렸던 불교미술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춰 서기 전 불교미술계는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 크고 작은 전시회로 봉축기간을 장엄했다. 부처님오신날은 불자들에게 가장 큰 축제이기도 하지만 불교미술인들이 전시회를 통해 지난 1년간의 노력과 열정을 선보이고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법흥사터의 연화문 초석을 깔고 앉았다. 서울 종로구 청와대 뒤편 북악산 전면 개방을 기념한 산행에서 이 같은 사달이 난 것이다. 그것도 김현모 문화재청장으로부터 법흥사터의 역사와 발굴 가치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자리였다.“초석은 지정 또는 등록문화재가 아니다”라며 별문제 아니라는 식의 문화재청 답변은 궁색한 변명도 되지 못한다. ‘지정이냐? 비지정이냐?’는 단순 이분법 판단에 따라 옳고 그름이 판가름 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청와대·문화재청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것
오래전 워싱턴DC에 갔을 때 유인물·기록물을 모은 박물관에 들렀던 적이 있다. 여러 박물관에서 느낄 수 없었던 몇 가지 강한 인상을 받았다. 거기에는 미국 역사의 생생한 모습이 있었다. 그들이 지금 누리는 많은 것들이 어느 하나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대륙에 정착하면서 생기는 수많은 문제…. 그것들을 해결해 오면서 걸어온 미국의 생생한 자취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이 어렵게 이루어 온 것들을 수입해서 손쉽게 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수입해서 우리에게 맞게 정착시키는 동안 많은 세금을 치르기도 했지만
매년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혹여 세계 장애인의 날이 12월3일인데 왜 우리나라는 4월인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1981년 장애인복지 불모지였던 시기에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처음 공포된 날을 기념해 4월20일로 정해졌다고 한다.‘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날’이라는 1981년 당시 제정 취지 설명이 무척이나 케케묵은 관점이어서 이미 빛바래 보인다. 지난날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을 시혜와 온정의 대상으로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이제 2022년 현실을
중봉당 성파 대종사가 조계종 제15대 종정 법좌에 올랐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 이웃종교 대표 등 사부대중 3000여명이 조계사에서 봉행된 추대 법회에 동참해 조계종 신성(神聖)의 상징이자 새 정신적 지주인 성파 종정을 맞이했다.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봉행사에서 “오늘은 교단의 자존과 도약의 소중한 전기를 맞는 참으로 경사스럽고 뜻깊은 날”이라며 “오늘을 계기로 신수봉행을 서원하는 모두는 말과 행을 함께하는 수행과 동체대비의 정신을 실현해 온 종정예하의 덕화를 본받아 진일보할 것”이라고 했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야당 후보의 대선공약을 듣고 짜증 비슷한 감정이 치솟았었다. 크고 작은 행사로 광화문 부근이 걸핏하면 통제되는 일이 발생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광화문 네거리는 출퇴근하는 버스의 정류장이 있는 곳이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개인의 ‘이익’은 공동체의 ‘대의’를 외면하기 마련인가 보다. 기껏해야 나는 ‘여럿’의 불편을 나 ‘혼자’ 불평하는 못난 중생에 불과했다. 대선이 끝나고 잠시 광화문 시대라는 말이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없었던 일이 되고 만듯하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
몇 년 전 터를 소재로 한 ‘명당’이라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그 영화에 ‘땅을 차지한 자 세상을 얻을 것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원래 명당(明堂)의 어원은 ‘대대례(大戴禮)’의 ‘명당편(明堂篇)’에 천자가 백관의 알현을 받으며 정치를 펴는 넓은 공간을 ‘명당’이라고 불렀다 한다. 다시 말해 왕이 신하들을 만나 정사를 논한 자리를 상징하여 이름 붙인 것으로 정사를 잘 다스려 백성을 편안하게 하도록 활용해야 하는 ‘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좋은 터 즉 ‘명당’이라는 이름으로 그곳을 얻으면 무조건 권
조계종이 전통사찰 보유 불교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일제조사에 착수한다. 올해 서울·경기·인천 지역 174개 사찰을 시작으로 2005년까지 총 973개의 사찰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이 사업의 마지막 해인 2026년에는 1~4차 현황조사에서 누락된 부분에 대한 보완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예정대로 6차례에 걸쳐 1000개에 이르는 전통사찰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면 상당한 무형의 문화유산을 발굴할 수 있기에 귀추가 주목된다. 국가가 지정한 유형문화재 경우 불교문화재가 70%를 차지하는 반면 중요무형문화재는 연등회, 진관사·삼화사·아랫녘수륙재,
몇 해 전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아이가 “주말에 교회에 가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미안했던지 딸아이는 “아주 친한 같은 반 친구가 교회에서 놀자고 해서 가는 것”이라며 “그 친구에게는 내 종교가 불교라는 것을 미리 말해뒀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동네에도 절이 있으면 한 번은 그 친구와 절에 가서 놀았으면 좋겠다”며 푸념도 했다.이 일이 있고 나서 아이와 함께 다닐 수 있는 사찰을 물색했다. 그러나 집 주변에 사찰이 많지 않았고, 있다고 해도 주말마다 어린이법회를 하는 곳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차를 타고 20
식상한 이야기지만 나는 5년마다 늘 새로운 대통령에게 그동안 숙제 같은 바람을 품었다. 지금까지 대통령들은 초심을 붙잡고 광대한 원을 세우지만, 지나고 보면 공약은 흐지부지, 내가 대통령에게 바랐던 것도 흐지부지되었다. 그리고는 같은 꿈을 새로운 대통령에게 꾼다. 물론 대의적인 공약들이 셀 수도 없이 많고, 각계각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들까지 줄을 섰다. 대통령이 출가사문인 나의 삶에 어떤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벌어지는 사회병리 현상과 여야를 떠난 편가르기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은 다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있는 광주 나눔의집 운영을 둘러싸고 임시이사들이 집단 사퇴했다. 경기도와 광주시가 파견한 임시이사진 및 공익제보 직원들의 입장과 1992년 이후 나눔의집을 이끌어 온 불교계 이사진, 시설장 등의 입장은 달랐다.우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시설’이라는 인식의 출발은 다르지 않다. 지난 3월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집단 사퇴한 임시이사들은 “주인이어야 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자신들이 자비를 베푸는 수용자로 대상화하는 조계종단과 운영진의 인식·행동”이 문제라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재앙은 끝나고 이제 치유의 시간이 도래했다. 동해안 산불 이야기다. 장장 10일간 이어진 경북 울진‧삼척 등 동해안 산불은 산림청이 산불피해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6년 이후 최대 규모였다. 10일간에 걸쳐 213시간43분 동안 꺼지지 않았던 산불은 피해액만 1600억원에 이르고 주택 388채 등 908개 시설이 파괴됐다. 438명의 이재민이 마을회관이나 친척집을 전전하고 있다. 이번 산불로 타버린 산림면적은 2만4940ha로, 서울시 면적의 41%에 해당한다. 건조한 날씨에 강풍까지 불어 피해가 컸다. 이번 산불이
법보신문이 개설한 유튜브방송 ‘법보다TV’에 새로운 콘텐츠 ‘불교, 기독교를 논하다’가 문을 열었다. 법보신문은 이미 지난 2012년 ‘정법으로 본 기독교’라는 제목의 연재를 통해 같은 주제를 지면으로 다룬 바 있다. 앞서 이명박 정권의 극심한 기독교 편향정책으로 2008년 범불교도대회를 개최했던 불교계에서는 기독교계의 공격적 선교행위에 더 이상 묵시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법의 잣대로 기독교 교리의 모순과 허술함을 논리적으로 짚어냈던 이 연재는 게재 당시에도 매우 높은 인기를 끌며 불자들의 지
2월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대규모의 군대와 전쟁무기를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에 투입하여 한 국가를 초토화하고 있다. 현재 수천 명의 양쪽 군인들이 전투에서 죽어가고 있으며, 이웃 국가를 향한 피난민 숫자는 수백만 명에 달한다. 2000년대에도 여전히 양육강식의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일손이 잡히지 않는 나날 속에서 인터넷에 떠오른 전황을 살펴보며, 이 악의 상황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기도할 뿐이다.참담한 전쟁으로 크게 희생당하는 것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총탄에 죽었다. 우크
강원에 다닐 때다. 지대방에서 갑자기 호국불교에 관해 열띤 논쟁이 일었다. 누군가가 “스님들은 당연히 정부의 시책을 따라야 한다”고 발언해서였다. 당시 출가한 지 2~3년 차 사미들이었으니 대부분이 기존 사회에서 학습한 말투와 관념이 채 바뀌지 않았을 때였다. 치문반이었으니 치문(緇門), 그야말로 중물들이는 시기였다. 그때 한 스님이 “스님에게 국가에 종속되고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폈다. 대다수가 그 스님을 무슨 이상한 사상에 물든 ‘이념적 도피 출가자가 아닌가’하는 막말까지 던졌던 것이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