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를 들고 있는 마곡사 지국천왕. 사찰 입구에서 칼이며 비파를 들고 눈을 부라리고 서있는 사천왕상, 왼 손바닥은 편 채 오른손으로 무릎 아래를 누르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부처님 뒤편에 배경화면처럼 펼쳐진 영상회상도 등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사찰의 풍경들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이 모습들이 사찰의 풍경이 된 것일까. 부처님 당시에는 하나도 없었을 이러한 음악, 미술, 건축적 요소들은 250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서역과 실크로드, 중국을 거쳐오면서 한국 문화 속에 완전히 용해됐다. 한국불교학회가 2월 10~11일 구례 화엄사에서 개최한 겨울워크숍 ‘한국 문화, 불교에 녹다’는 우리 문화 속에 용해된 사찰의 문화적 아이콘들을 고찰해보는 자리였다. 이날
우여곡절 끝에 현등사로 돌아온 현등사삼측석탑 진신사리가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 현등사는 부처님오신날인 5월 24일까지 현등사삼층석탑진신사리 특별친견법회를 개최한다.이번에 공개되는 진신사리는 수년간 현등사측과 삼성문화재단이 소송을 벌여온 사리로, 지난해 9월 삼성문화재단이 현등사 측에 반환한 것이다. 현등사는 “본래 자리인 삼층석탑 속으로 안치하기 전 넉달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진신사리 친견법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진신사리 친견법회가 끝나는 5월말에는 새롭게 만든 사리함에 사리를 봉안해 삼층석탑에 안치할 예정이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동국대가 (주)임젠(대표 : 김기동)과 2월 7일 줄기세포은행 설립 및 줄기세포 치료제 공동연구에 관한 협약(MOA)을 체결했다. 지난 해 10월 25일 동국대학교와 주식회사 임젠은 줄기세포은행 설립 추진 및 줄기세포 치료제 공동연구에 관한 양해 각서(MOU)를 이미 체결한 바 있다. 이번 협약 체결(MOA)의 내용은 (주)임젠이 보유하고 있는 줄기세포 역분화 기술(참고자료 참조)을 이용해 줄기세포은행을 구축하기 위한 기본 시설과 장비를 동국대 일산병원에 설치하고, 오는 7월 중에 정식으로 줄기세포은행을 설립하여 동국대, 동국대병원, (주)임젠이 공동으로 운영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동국대는 향후 줄기세포를 이용한 임상 연구 및 치료센터, 동국대 일산병원을 중심으로 한 일산 지역의 메디클러스터
월정사 법상 스님이 조불련 정서정 서기장에게 조선왕조실록 반환 경과서를 전달했다. 조선불교도연맹과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가 2월 8일 금강산에서 만나 조선왕실의궤 환수를 위한 공동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날 회담에서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대표로 참가한 월정사 법상 스님과 봉선사 혜문 스님, 조불련 정서정 서기장은 ‘일본 궁내청에 소장된 조선왕실의궤의 환수에 함께 힘을 합치자’는 의견에 합의했고, 구체적 실무진행을 위해 ‘공동 변호사’를 선임하는 한편 북측도 일본정부에 반환요청서를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과 조선불교도연맹의 회담장면. 또한 이날 회담에서 남북측 대표들은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남산 열암계곡에 방치돼있는 불두가 유실된 석불좌상. 산 전체가 부처님으로 숭앙돼온 신라인들의 수미산 경주 남산이 발굴조사를 거쳐 복원정비될 전망이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경주남산 종합정비계획의 일환으로 경주남산 삼릉계석불좌상(보물 제666호)과 열암곡석불좌상(경북도 유형 제113호)에 대한 발굴조사와 복원정비사업을 금년 6월말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경주 남산 일대는 골짜기마다 불교문화재가 즐비해 있어 야외박물관이라 불릴 정도이지만, 마애불이나 자연석을 깎아 만든 불상들이 많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풍화되거나 무너져내린 석조문화재들이 많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첫 번째로 원래 모습을 되찾을 부처님은 삼릉계석불좌상과 열암곡석불좌상이다. 삼릉계석불좌
강원도 지역 문화재 보호를 위한 강원도 문화재 보호지킴이 범시민연대(이하 강문연)가 발족했다. 2월 3일 치악산 구룡사에서 발대식을 개최한 강문연은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가진 문화재 보호와 지킴에 앞장서고 △강원대 문화재 보호 지킴과 홍보 및 대국민 알림에 앞장서며 △외국선진국의 문화재 주변 선진지 관람과 교육에 동참하고 국제결의에 협력하는 한편 △천년 역사의 문화재 보호에 역행하는 그 어떤 행정에도 반대한다는 내용의 강령을 발표했다. 강문연는 이와 함께 문화재관람료와 관련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에서 “사찰토지를 30년전 국립공원으로 무단 지정한 데 이어, 최근 사찰 수호하고 산림을 관리해온 수행승들을 폄하하고 매표소를 갑작스럽게 강제이주하여 마치 국립공원 입장료 속에 문화재 관람료가 포함된
한국동서비교문학학회가 『동서비교문학저널』 제15호 2006 가을·겨울호를 발간했다. 이번 호에는 김승윤 강남대 교수의 「오든의 ’예이츠 추도시‘와 비가의 전통」, 백원기 동방대학원대 교수의 「하디의 시학: 불교생태학과의 관련성」, 이기운 동국대 강사의 「천태의 육근참회와 원효의 육정참회-천태의 법화삼매참의와 원효의 대승육정참회를 중심으로」, 송준영 『시와세계』 발행인의 「서래밀지의 실참실수에 관한 보고」 등이 수록됐다.
불교학연구회는 2월 24일부터 25일까지 팔공산 은해사에서 ‘불교 장례문화의 역사와 과제’를 주제로 겨울 워크숍을 개최한다. 한·중·일의 3국의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불교 장례문화를 고찰해보고 앞으로 불교 장례문화의 과제를 진단해보기 위해 마련된 이번 워크샵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학자들이 관련 주제로 발표를 할 예정이다. 원혜영 연세대 강사가 ‘초기불교의 장례-붓다의 열반에 관해서’를 발표하며, 송위지 서울보건대 교수가 ‘한국의 장례문화’를, 김시덕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가 ‘일본의 장례문화’를, 건양대 송현동 교수가 ‘바람직한 장례문화’를 주제로 발표한다. 다음날인 25일에는 팔공산 갓바위와 기조암 등의 사찰순례가 진행될 예정이다. 회비는 3만원이며, 부부가 함께 참가할 시에는 5만원이다.
‘에밀레~ 에밀레~’ 종을 칠 때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애절한 소리가 들린다는 에밀레종 전설의 주인공은 근대 이후 많은 역사학자들의 연구대상이었다. 하지만 에밀레종 설화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중세의 사료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근대 이후 서양 선교사들의 기록에서야 비로소 나타나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를 불교의 인신공양(人身供養) 내지 고대인들의 사신공희(捨身供犧) 풍습, 즉 사람을 바쳐 제물로 삼는 형태의 이야기가 설화로 정착된 것으로 간주해왔다. 그런데 최근 종을 만드는데 희생된 아이가 혜공왕을 가리키며, 이는 어머니와 외삼촌의 전횡으로 21살의 나이에 죽임을 당한 어린 왕에 대한 신라인들의 연민을 담고 있다는 해석이 등장했다. 『한국어문학연구』 제47집에 수록된 「에밀레종
에밀레종(성덕대왕 신종)전설이 신라 혜공왕대(신라 36대왕, 756∼780) 왕실의 권력 암투 과정을 재가공한 정치고발성 설화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불교미술사학자 성낙주〈사진〉 씨는 『한국문학연구』제31집에 수록된 「에밀레종 전설의 정치학적 독해」에서 “에밀레종 전설은 어머니 만월부인과 외삼촌 김옹의 정치적 전횡의 결과로 발생한 쿠데타로 인해 끝내 살해당한 혜공왕을 빗댄 설화”라고 주장했다. 이는 에밀레종 설화를 불교의 사신공덕(捨身功德) 내지 상고시대 이래의 인신공희(人身供犧)로 해석해온 기존 학설을 완전히 뒤집는 주장이다. 성 씨는 “혜공왕이 8살에 즉위한 후 모후 만월부인과 그녀의 오라비인 김옹은 함께 국정을 농단했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친정 왕조를 개창하려다가 김양상 등의 반발로 실패했다”며 “당시
전공학자들이 제시한 근현대사 연구과제1. 국내외 자료의 수집2. 타학문과 연계한 학제간 연구 필요3. 근대 일본불교의 동향 및 한국으로의 침투4. 일제시대 고승들의 사상 및 활동에 대한 연구5. 불교계 친일문제 진단 한국의 불교사 연구는 고대에서 현대로 내려올수록 전공자가 적다. 다른 역사학 파트에서는 시대가 올라갈수록 전공자가 적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원효와 의상으로 대표되는 찬란한 고대불교에 비해 근대로 내려올수록 뛰어난 학승들의 수가 줄어들고 불교의 사회적 참여도가 낮아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현대’ 특히 일제시대는 친일문제 등 불교계의 지지 혹은 지원을 받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 근현대사 연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문제
문화재청은 1월 29일 경기도 양주시 사적 제128호 ‘회암사지’에 있는 보물 제388호 ‘회암사지부도’ 와 보물 제389호 ‘회암사지쌍사자석등’의 명칭을 ‘회암사무학대사홍융탑’과 ‘회암사무학대사홍융탑 앞 쌍사자석등’으로 변경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그동안 안치자와 정확한 명칭을 알 수 없었던 회암사지 부도의 주인이 최근 무학대사임이 입증돼 명칭을 변경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편에 의하면 1397년 태조(이성계)는 경기도 백성들로 하여금 미리 무학대사의 부도를 회암사 북쪽에 만들게 하였고, 『태종실록』에서는 1405년 무학대사가 금강산 금장암에서 입적하자 태종은 무학대사의 영골(靈骨)을 회암사에 준비되어 있는 부도에 안치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한 보물 제3
대만고궁박물관에 소장된 ‘고구려사신’의 조우관. ‘새 깃을 꽂은 관’ 즉 조우관은 수렵시대 북방 유라시아 기마민족들이 머리에 쓰던 유물로, 고고인류학 분야에서 한국인들의 원류를 추적하는 주요 소재로 활용돼왔다. 특히 대만고궁박물원에 소장된 당염립본왕회도(唐閻立本王會圖)에는 ‘조우관을 쓴 고구려사신’이 발견돼, 동이족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한국인들은 새 깃이 바로 우리 민족의 상징이자 원류를 의미하는 장식으로 받아들여 왔다. 최근 새 깃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계통과는 다른 형태의 새 날개 관이 사산조 페르시아를 거쳐 한국으로까지 유입됐다는 학설이 제기돼 주목되고 있다. 사산조 페르시아 바흐람 2세의 조익관. 경주대
최근 신라시대 경주지역 화장묘의 변화형태를 추적한 논문이 발표돼, 초기 화장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단서를 제시하고 있다. 경주대 석병철 씨는 1월 27일 서강대에서 열린 신라사학회 정기발표회에서 ‘경주지역 신라 화장묘에 대하여’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석 씨는 경주지역에 발견된 7∼9세기의 화장묘를 3단계로 분류했다. 1단계는 화장묘의 도입기인 7세기초에서 8세기초로, 땅을 파고 그대로 뼈단지를 묻는 형태와 땅을 판 데에다 돌로 방을 만든 다음 뼈단지를 묻는 형태 두가지가 나타난다. 이때 사용된 뼈단지는 토기였다. 2단계인 8세기초에서 8세기말까지는 다양한 형태의 화장묘가 나타난다. 이때부터 뼈단지를 보호하는 돌로 만든 함이 등장한다. 또 뼈단지 전용 용기로 사방으로 네군데 연결고리를 부착하는 연
한국불교학회는 2월 10일부터 11일까지 구례 화엄사에서 ‘한국의 문화, 불교에 녹다’를 주제로 제5차 겨울 워크숍을 개최한다. 10일 오후 2시부터 열리는 워크숍에서 유마리, 이미향, 박재금, 진우기, 유근자 등 불교문화 전문가들이 음악·예술·문학 등을 소재로 강연을 한다. 11일 오전에는 화엄사와 천은사, 연곡사를 순례하는 프로그램이 개최된다. 동참비는 1인당 3만원이며 가족과 친지 동반이 가능하다.02) 2260-3140 탁효정 기자
연세대 신규탁 교수는 2월 15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연세대 외솔관 602호 신규탁 교수 연구실에서 벽암록 공개강좌를 개최한다. 011-9496-2906
‘우리 스님’ 이 말은 ‘우리절 주지’나 ‘○○사 원주’라는 말과는 아주 다른 개념의 출가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 스님이라는 말에는 내가 믿고 따르는 바로 내 스승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하지만 절이 기업화되고, 관광지화되면서 신도와 스님의 간격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추세다. 우리 스님이 아니라 ○○사 주지가 출가자를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간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출가자의 카리스마’를 분석한 논문이 발표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조기룡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사진〉은 『한국선학』 제15집에 「출가자의 카리스마 형성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카리스마라는 단어는 본래 초기 기독교에서 사용된 용어로 ‘은혜’ 혹은 ‘무상의 선물’을 의미한다. 이 말은
한국불교학회는 2월 10일부터 11일까지 구례 화엄사에서 ‘한국의 문화, 불교에 녹다’를 주제로 제5차 겨울 워크샵을 개최한다. 10일 오후 2시부터 열리는 워크샵에서 유마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은 ‘한국 불화의 독자성’을 발표한다. 이미향 류고쿠대 불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이 ‘불교와 음악-사원에서 만나의 법의 소리 상징’을 발표하며, 박재금 수원대 교수가 ‘고려 후기의 게을 통해 본 선과 일상생활’을, 진우기 신구전문대 강사가 ‘불교와 영화-길 위의 인생’을, 유근자 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 ‘불교와 조각-간다라 불전도와 불교도상’을 주제로 각각 발표를 한다. 다음날인 11일 오전에는 화엄사와 천은사, 연곡사를 순례하는 프로그램이 개최된다. 동참비는 1인당 3만원이며 가족과 친지 동반이 가능하다.
“호림박물관 소장 초조대장경도 50권본”화엄학자들 “불교 서지학사 다시 써야” 호림박물관 소장 초조대장경 화엄경이 50권본을 저본으로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초의 한문 번역 화엄경은 원래 50권본이었으나, 이후에 같은 내용의 화엄경이 60권본 화엄으로 정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승재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최근 발간한『50권본 화엄경 연구』에서 “처음 중국에서 화엄경이 번역될 당시에는 50권본으로 편집되었으며, 당대 이전까지 50권본이 가장 일반적인 판본이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화엄전공자들 사이에서 최초의 한역 화엄경은 60권본이었고, 50권본은 60권본의 이본(異本)이라고 알려져 왔다. 특히 두 화엄경의 내용상 차이가 크게 없기 때문에 5
조선전기 숭유억불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시행되던 승려억제 정책은 조선후기에 이르러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승려들이 더 이상 국가의 역을 피하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승려들이 남한산성이나 궁궐 보수사업 등 주요 군역에 동원되면서 조선 정부는 승려들을 적극 활용해 국역체계의 공백을 채우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이 과정에서 사찰은 부역뿐만 아니라 조세 부과대상이 되어 지방특산품이나 관청의 종이 및 물품을 대는 재정원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조세가 얼마나 극심했던지 오히려 이를 피해 도망가는 승려들이 늘어나 사찰이 텅텅 빌 지경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같은 경제적 탄압에 맞서 불교계가 나름의 자구책을 강구한 것이 바로 ‘사찰계’였다. 조선후기에는 지역을 막론하고 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