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홈은 단순히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수용시설이 아닙니다.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생활을 통해서 사회 자활 능력을 배양하고 장애인이 아닌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곳입니다.” 98년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이사장 종범 스님)에서 설립한 성북 그룹홈에서 장애아동들과 함께 24시간 상주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심재숙(50·사진) 생활재활교사는 “이곳에서는 생활하는 아이들은 밥 짖는 일부터 빨래, 다림질, 전구갈기 등 일상에 필요한 모든 일을 직접 해나가며 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심 교사는 “비인가 시설이 아닌 보건복지부인가 복지시설로 정부보조금을 받고 있어 한 달에 생활보조금 10만원으로 교육비와 병원비 등을 충당할 수 있다”며 “가
가난은 지혜와 사랑의 원천 소유 기준은 욕망 아닌 필요 가난이란 모든 수행자들의 삶에 있어, 아니 모든 근원적인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가난한 삶이란 곧 본질적인 삶을 의미하며, ‘나’ 자신과 소탈하고 순수하게 대면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가장 체험적인 수행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해야 그 속에서 맑음과 청정이 또 참된 지혜와 사랑이 움튼다. 가난해야 수행하지 부유하면 수행은 벌써 멀어지고 만다. 가난과 수행 이것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 인류의 모든 성인들도 다 가난했다. 어쩔 수 없는 가난이기 보다는, 극복해야 할 과제로서의 가난이기 보다는 그들의 삶의 지혜의 근원으로서의 가난이었다. 그렇다고 가난한 삶이란 단지 외적인 모
“음...왠지 허전한데, 오늘 입은 티셔츠에 맞춰서 합장주 하나 끼고 나가야겠다” -인천 계산동 직장인 황정수(29)씨 “남색 코트를 하나 샀는데 옷에 맞춰서 할 수 있는 단주하나 사러왔어요. 이거 얼마예요?” -경기도 수서 주부 이재영(31)씨 “남자친구에게 받은 거예요. 이 단주 안차고 그냥 나가면 남자친구한테 혼나요.”-동덕여대 2학년 김선아(22)씨 --------------------------------------------------------------------------------- 염주. 염주는 부처님께서 으뜸으로 권한 신행도구 중 하나이다. 때문에 아주 오래 전부터 스님들은 염주를 불법(佛法)의 상징물로 여겼으며 언제, 어디를 가든 항상 몸에 지녔다. 옛 스
구름 뒤 빛나는 달빛 보는 지혜 진정한 德은 저절로 우러나는 것 벌써 가을의 끝자락이다. 단풍으로 물든 나뭇잎은 지나가는 바람에도 온 몸을 파르르 떨며 대지 위를 뒤덮고 밤하늘엔 앙상해져 버린 나뭇가지 위로 11월의 달이 걸쳐 앉아 있다. 저녁 공양을 하고 나서 그냥 걷고 싶다는 생각에 절 문을 나서 본다. 달빛 아래서 혼자 걷고 있으니 문득 어린 시절 할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서 보았던 달이 생각이 났다. 나는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자전거를 운전하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향해 “할아버지, 달이 계속 나를 따라 와요”라며 큰 소리 외쳤었다. 달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는 할아버지, 훌쩍 커버린 나, 그리고 달라진 인연들. 가슴 속에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 현각 스님의 법문에는 언제나 1000여명 이상의 사부대중이 몰려들어 스님의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법회 내내 한 눈을 팔지 않는다. 설법의 한 문구를 놓치면 옆 사람에게 ‘왜 웃지요’ ‘지금 한 말이 왜 나왔지요’라며 질문해야 비로소 그 의미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세간에‘김제동’이 있다면 출세간엔 누가 있을까. 대중의 눈길을 한 번에 사로잡아야 하고 또 말 한마디 한마디에 수행의 힘이 물씬 배어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어 최근 수년새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분이
내 업식만큼 사람을 만난다 가까운데서 존경받기가 기초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인연이 중요하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한다면 먼 사람과의 관계도 바를 수 없다. 만약 가까운 사람과는 바르지 못한 관계를 가지면서 먼 사람과만 좋은 관계를 가진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여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니 가까운 사람과는 좋지 않은 관계를 가지면서 먼 사람과는 친하고 좋은 관계를 가진다면 그만큼 속과 겉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의 거울이며, 바로 내 모습의 나툼이다. 내 업식만큼만, 내 그릇의 크기 만큼만 경계는 나투기 때문이다. 왜 아
사막과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 이곳에서 한국인 청년 불자들이 ‘한국불교의 세계화’라는 기치를 걸고 미국으로 향하는 큰 꿈을 펼치고 있다. 올해 초 한국 이민1세대 청년들은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이라는 청년불교단체를 결성했다. 라스베가스 운주사 선방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 회원들.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 태양을 짊어지고 간다. 이 이름은 해가 나는 방향을 향해 타인의 그림자를 따라 가지 말고 스스로 빛이 되는 사람이 되자는 뜻이다. 즉 “스님 중심의 기존 포교방식, 교포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안주하지 말고 미국 현지사회로 진출하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타이틀이다. #라스베가스 일요일 오전 11시 미국 유타, 미시간, 로스엔젤레스 등 전국 각지의 청년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의 창립멤버이자 회장을 맡고 있는 김도성〈사진〉 씨. 그는 현재 라스베가스에서 건축설계를 하고 있는 교포 1세대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중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 대학에 입학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던 그는 그 무렵 자신이 신봉해온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도 의문들은 점점 커져만 갔고, 성경에 관한 논쟁에서 밀린 교회 목사들은 그에게 ‘사탄의 자식’이라는 소리까지 질러댔다. 커져만 가는 내부 갈등으로 방황하던 그는 우연히 시카고 불타사에서 홍선 스님을 만났다. 그리고 드디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청년불교 네트워크 구축 짧은 시간동안 스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는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입과 마음이 짓는 업의 파장 물 같은 무생물도 느끼고 반응 뉴욕에서 지하철을 타다 보면 지하철 안이나 역내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가 있다. 칠레와 같은 남미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자기 나라 고유의 악기와 전통 의상을 입고 자기 나라 민요를 부르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아쟁과 비슷한 악기를 중국인 할아버지가 구슬픈 가락으로 연주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 운이 좋으면 음대 대학원생들이 정장을 하고 나와 첼로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근사한 화음으로 연주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선사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음악을 들을 때마다 지하철이 지나가면서 내뿜는 차가운 금속성의 소음이 어느 정도 정화되는 것 같아 길거리 음악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얼마 전 우연히 어떤 일본인 학자가 쓴 물
절이 견공(犬公)들로 넘치고 있다. 도심의 거대한 사찰에서 인적 드문 산골의 조그만 암자까지. 인연 따라 흘러 들어온 잡견(雜犬)에서 제법 족보가 있는 진돗개와 삽살개, 그리고 시중에 널리 퍼진 애완용에서 종류를 알 수 없는 외국산 견공들까지. 마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20여 마리를 한꺼번에 기르는 사찰도 있으니 절 집의 개 사랑은 그야말로 ‘애지중지(?)’. 견공들 가운데는 수행자의 의젓한 풍모로 남다른 사랑과 존경을 받는 개들도 있어 절 집의 여담거리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회룡사 스님들이 무척 아끼는 개. #절에서 견공을 기르게 된 까닭 예부터 절 집에서는 고양이는 길러도 개는 키우지 않았다. 시끄러운 개소리가 수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견공을 기르는 절들이
사찰 초입에 티베트 성보 박물관이 우뚝 서 있는 보성 대원사(주지 현장 스님)에는 아주 독특한 이름을 가진 두 마리의 개가 살고 있다. 이들 개는 일본의 ‘아끼다’란 종으로, 본디 닭이나 덩치가 작은 개, 심지어 멧돼지까지도 물어 죽이는 맹견 중의 맹견이다. 그러나 보성 대원사에서 살고 있는 개들은 다르다. 대원사에 살고 있는 두 마리의 개 이름은 한 마리는 ‘이리와’, 다른 한 마리는 ‘절로가’이다. “개들의 이름은 ‘이리 오고 절로 가’라는 뜻에서, 부르기 쉽고 재미있으라고 이렇게 지었다”는 게 현장 스님의 설명이다. 아울러 사나운 ‘아끼다’의 성품을 온순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이름에 담기도 했다. 대원사에 온지 1년 반이 된 이들 개는 보성 지역에선 종교 화합을 상징하는, 맹견의 본성을 버리고 ‘
입은 성냄과 번뇌의 근원 침묵은 수행자의 영원한 벗 이렇게 조용한 산사에 살면서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다 보니 말이 많아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 않을 말을 하게 된다거나, 말이 헛나오거나, 후회가 되는 말들을 많이 하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 한 구석이 싸한 것이 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먼저 잠깐 동안 내 마음을 관하고, 내 입을 관하게 된다.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덩달아 내 말이 길어진다 싶으면 바로 내 입을 관하고 말을 관하려고 한다. 사람을 만나도 말 수가 적거나, 대화 가운데에도 오랜 침묵에 익숙한 사람을 만나면 참 믿음이 가고 든든하다. 그런 사람과는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니까야는 부처님 원음이 생생히 담긴 보물 창고… 덤으로 사는 인생,부처님께 회향해야죠” 자신이 하는 일을 천직이라 여기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를 감내하면서까지 자신의 일에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무소의 뿔처럼 살기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 전재성 박사. 80년대 유행했을 법한 롱코트에 헝클어진 머리, 정돈되지 않은 턱수염. 현대적 감각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외모만큼이나 그는 분명 이 시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당장 한 끼 먹을 것도 해결하기 힘든 가난과 생사를 넘나드는 병고에도 시대와 쉽게 영합할 줄 모르고 오직 자신의 길만을 걸어가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외면하는 경전 번역의 길을 무
폭력적인 시위 문화는 이제 그만 공감 얻을 수 있는 시위문화 필요 비가 내린 후 날씨가 좋아지는가 싶더니 밤부터 바람이 다시 강하게 분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거리를 헤치면서 걸으니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는 등 중무장을 해도 걷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길거리 휴지통에 얌전히 앉아 있던 쓰레기들도 불어치는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솟아 흩어지면서 길을 걷는 이들이 발길을 더욱 어렵게 한다. 바람이 부는 거리를 이렇게 걷고 있노라니 문뜩 어릴 적 읽었던 『해와 바람』이라는 동화가 생각난다. 해와 바람이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시합을 했다. 바람이 먼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 강한 바람을 불었다. 그러나 나그네는 바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외투 깃을 더욱
노천당 월하 대종사 임종게 일물탈근진(一物脫根塵) 두두현법신(頭頭顯法身) 막론거여주(莫論去與住) 처처진오가(處處盡吾家) 한 물건이 이 육신을 벗어나니 두두물물이 법신을 나투네 가고 머뭄을 논하지 말라 곳곳이 나의 집이니라. 노천당 월하 대종사 행장 12월 4일 입적한 노천당 월하 대종사(老天堂 月下大宗師)는 1915년 4월 25일 충남 부여군 군수리 파평 윤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노천(老天)은 법호(法號)이고 법명(法名)이 월하(月下)다. 대종사는 어릴 때부터 지혜와 자비가 몸에 익었으며 33년 7월 20일 금강산 유점사로 출가해 차성환 화상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운수 납자의 길에 들어섰다. 부모 허락을 받지 않고 출가 득도했기에 부친과 형님이 세
“큰스님! 왜 출가 하셨는지요.” “그냥 불자가 되고 싶어서 절에 왔어.” “고향은 충청도 부여인데 어찌 금강산까지 가셔서 출가하셨는지요.” “그냥 금강산엘 한 번 가보고 싶었지.” 월하 대종사의 깔끔하고 소박한 그리고 어디하나 툭 튀어나옴이 없는 성품을 잘 드러낸 대화 내용이다. 대종사는 ‘사실’만을 말하고 그 말에 무언가 덧대기를 싫어했다. 늘 후학들을 향해 ‘부지런히 수행하고 말보다 실천이 앞서야 한다’는 아주 평범한 가르침으로, ‘말’에 앞서 ‘몸’으로 바른 길을 보이신 대종사는 불가에 몸담은 지난 71년 동안 한국 불교의 정화와 개혁, 청규의 실천, 선풍진작만을 위해 외길을 걸어 왔다. 60년대 한국 불교의 틀을 정비하고 다지는 정화 불사 땐 청담 스님을 비롯한 대휘 스님 등 당대의 대표
욕심 없는 공동체마을 젊은이들 소유 줄이고 만족 알아야 행복 가을 벼베기가 한창일 무렵 경기도 가평의 한 공동체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일은 두고 두고 내 가슴을 짠하게 만들었다. 마을이라고 해 봐야 한 20여 명의 젊은 사람들이 소박하게 모여 살면서 함께 농사를 짓고 함께 마음을 나누고 먹을꺼리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아직은 거의 초보 단계의 공동체 마을이다. 마을의 주민 대부분이 주로 20, 30대의 젊은 사람들이라는 점이 다른 여느 마을과는 다른 점이다. 그러다 보니 아직은 농사일도 많이 서툴고 농사로 밥벌이를 하고 자급자족을 이어가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 점이 있다. 그래도 이 마을 젊은이들은 완전한 자급자족을 꿈꾸고 있다. 스스로 자식들 교육까지도 시키려고 대안학교도
버터차와 짬짜, 야크의 배설물을 말린 연료, 가축의 말린 고기만 있으면 한겨울을 날 수 곳. 겨울이 여덟달이나 되는 히말라야 고원의 황량한 자연에 순응하며 천년전 티베트로부터 받아들인 불교문화를 지켜가는 사람들. 금발의 런던대 여대생이 찾은 라다크는 그 어떤 것도 풍족한 것이 없었지만 또 부족하지 않은 공동체 사회였다. 그들은 아르마니 양복·루이비통 핸드백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대신 스스로에게 만족한 채 이웃과 함께 일하고 춤추고 즐기면서 사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또 자신들의 삶이 60년 동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우주, 동식물, 이 땅의 모든 존재들과 맞닿아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소수민족의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라다크의 한 시골마을에서 8년여의 생활을 하는 동안 그곳에도 서구
우리 마음은 도화지 같아서 마음 먹은대로 내게 새겨진다 부처님이 아닌 후에야 중생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한 두번씩 다른 사람의 흉을 볼 때가 있다. 그런데 흉이라는 것은 일단 흉을 잡으려고 치면 모든 것이 흉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 보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을 보면 돈 밖에 모른다고 흉을 볼 수 있고 그 반대로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 자신과 수준이 맞지 않아 도저히 같이 못 돌아다니겠다고 흉을 볼 수 있다. 좋은 집에 초대를 받아 음식을 잘 먹고 나서도 돌아오는 길에서는 자기 잘 사는것 과시하려고 저런다고 흉을 잡기도 하고 좋은 클래식 음악 콘서트에 공짜로 초대받아 음악 감상을 잘해 놓고도 확실히 우리나라 전통 음악만 못하다고 핀잔을 늘어놓기도 한다. 스님들 세계에서도 교학(敎學)
오늘 날씨는 정말이지 너무 덥다. 그런 더위를 피하고자 나는 지금 방안에서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시원한 자연 바람을 쐬며 앉아 있다. 산 속 다실에서 시원한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며 저 숲을 응시하고 있자니 어느덧 더위는 물러가고 시원한 마음과 함께 저 자연과 하나되는 듯 평온과 고요가 차분히 내 마음을 적셔 준다. 더위도 자연과 공명하는 내 마음을 휘두르지는 못한다. 이런 더위뿐 아니더라도, 혹간 복잡하거나 잘 안 풀리는 일이 있거나,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자연을 찾는다. 숲 속으로 들어가 온갖 풀과 나무며 한 줄기 바람과 함께 하곤 한다. 때때로 다실 문을 활짝 열고 차 한 잔을 마시며 대자연을 호흡한다. 그러면 아무리 복잡하고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더라도 내 마음은 곧 평온을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