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거의 매일 서울 공릉동에 위치한 태릉을 찾아 합장하고 경전을 독송한다. 태릉은 조선 중종 왕비이자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1501~ 1565)의 능이다. 내가 주석하는 법장사 인근이고, 태릉 국가대표선수촌 법당 소임도 맡고 있어 수시로 찾고 있다. 수년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지만 그러질 못했다. 항상 태릉을 지날 때면 갚아야 할 빚을 갚지 못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피해만 다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제라도 한국불교가 진 빚을 갚아야 된다는 생각에 거의 매일 찾고 있다.그동안 그 흔한 추모제나 천도재
올해는 성매매방지법 제정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2000년 군산 성매매 집결지에서 5명의 여성이, 2002년에는 14명의 여성이 숨졌다. 당시 처참한 성매매여성의 실태는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결국 2003년 ‘성매매방지법’(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우리나라는 1961년 ‘윤락행위등방지법’을 재정해 성매매를 금지했지만, 이 법은 성매매여성을 ‘윤리적으로 타락한 행위’를 한 여성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선도’하는 목적으로 만든 여성차별적인 법이었다. 심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서울시내 나들이를 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대학후배의 안내로 학회 시작 전에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하는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귀신, 간첩, 할머니’전시회를 관람하는 덤과 함께.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독특하고 낯선 제목 때문에 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전근대’, ‘냉전’, ‘여성’을 주제로 아시아를 관통하는 공통성을 모색해 본 참신하고 의미있는 기획이었다.그 중 불교를 소재로 한 작품이 있었는데, 대만작가 자호싱 아서 리우(Jawshing A
최근에 한 잡지사에 보냈던 원고의 교정지를 받았다. 글 중에 독일 국적의 서양철학자 이름을 인용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수정되어 있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라는 이름을 ‘해나 아렌트’로 수정했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 사람이므로 당연히 독일식으로 읽었던 이름을 왜 영어식 발음표기로 바꾸었을까. 이런 식의 표기 원칙이라면 유명한 축구클럽 바로셀로나의 스페인 축구선수 ‘다비드 비야(David Villa)’도 ‘데이비드 빌라’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그것이 에디터 개인의 판단에 따른 수정이었는지, 아니면 출판
제16대 중앙종회의원 선거가 10월16일 끝이 났다.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가려졌는데 묵직한 납덩이를 가슴에 안고 있는 기분이다. 당선자에게 편하게 축하를 해 주지도, 당선자도 마냥 축하만 받을 수도 없는 이상한 선거였다. 너무도 많은 대가를 치룬 상처투성이의 당선이었다. 당선의 기준이 오직 돈에 의해서 좌우되는 선거라는 것을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불법이 광범위하게 치러졌는데도 누구하나 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이 없다. 조계종의 현실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하소연과 한탄만 하고 손가락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출가자로서
올해 노벨평화상은 파키스탄의 인권운동가인 말랄라 유사프자이(17세)와 인도의 아동권리운동가인 카일라쉬 사티야티(60세)가 받았다. 역대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마틴 루서 킹 목사, 테레사 수녀, 넬슨 만델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만한 사람들이다. 이 중 말랄라는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데, 어떻게 열일곱 살 소녀가 이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소녀의 이름인 말랄라는 아버지가 지었는데, 유명한 시인이자 여전사였던 ‘말랄라이 마이완드’의 이름을 따왔다. 아버지는 교육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였고, 영특했던 소녀
지난해 봄, 나는 ‘불교평론’에 ‘홈리스에서 템플리스로’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 후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한 모른 척 지나가는 사람도 늘었다. 비구스님 한 분을 제외하면 함께 살자고 하는 스님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비구스님과 같은 거처에 머물 수 없기 때문에 그 호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최근에 제정된 승가청규에는 승려가 사가(私家)에 머무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지당한 내용이다. 승려라면 당연히 공동체생활을 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청규에 어긋나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
자기주장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열광하는 시대가 된 지는 오래 다. ‘테드’라는 이름의 자기주장 발표대회는 전세계적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는 기업에서나 썼지, 학교 내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프리젠테이션’이라는 용어가 일반화 되고, 대학의 학생 수업 발표가 종이리포트가 아닌 ‘PPT’라는 형식으로 대세가 바뀌어나가는 것도 이런 세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중 상당수는 ‘자기계발서’인데, 이 책들의 상당수는 자기계발의 성패를 얼마나 남들 앞에서 자기를 잘 ‘프리젠테이션(표현)’ 하느냐와 관련하여
“진상규명 특별법과 검·경이 수사하고 있는 것 외에 특검도 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과정에서 유가족의 의견이 항상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16일 청와대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약속한 내용이다. 이 말을 듣고 가슴 뭉클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의 아픔을 함께 하는구나, 유가족의 갑갑하고 답답함에 공감 하는구나 생각했다. 이후 침묵으로 일관했던 박 대통령이 3달 만인 9월16일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입을 열었다.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야권 및 유
군대내 폭력사건이 연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임 병장 총기난사사건이나 윤 일병 사망사건 등 ‘군 잔혹사’는 가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군대내 폭력사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해방 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세력들이 대한민국 군대의 지도부로 자리 잡았고 일제의 강압성과 폭력성이 군대문화로 계승되었다. 오랜 군사독재정권은 군대의 폐쇄성을 증폭시켰다. 그런데 군대내 폭력 근절방안에 대한 여러 주장 가운데, ‘엄마들’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군대 간 아들을 엄마들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군대라면 아버지들이 경험자들인데,
며칠 전 잘 알고 지내는 스님으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교황의 방문 이후 살맛이 나지 않는데, 가톨릭이 잘 나가는 것이 배 아파서가 아니라 한국불교의 현실이 부끄럽고 절망적이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불행인지 다행인지, 교황의 방한 기간 동안 나는 국제불교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국외에 있었다. 그 덕분에 간간히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팔월 하순 한국사회를 달아오르게 했던 몇 가지 이슈들에 대한 감각이 매우 떨어진다. 그래서 교황의 방한에 대하여 그 스님처럼 직접적인 절망감은 없지만 그의 위기의식에는 충분히 공감할
예쁜 표정으로 강의를 들어주었던 여학생에게 문득 페이스북으로 메시지가 날아왔다.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선생님, ‘아이스버켓 첼린지’에 참여하는데 선생님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공개적으로 지목하여 당황하시는 일이 생기면 실례인 듯하여 미리 의사를 여쭤봅니다.” ‘아이스버켓 첼린지’라는 이름의 ‘얼음물 양동이 뒤집어쓰기 캠페인’은 루게릭병 환자 치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기부 이벤트로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유명인들의 참여로 삽시간에 전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중인데, 우리나라에도 상륙하여 지금 온라인에는 온통 얼음물을
수도권의 인구는 현재 2500만명을 넘어섰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런만큼 수도권 포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동안 불교의 수도권 포교는 제대로 된 대책이 없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그 결과 수도권에서는 거의 전 지역에서 불교 인구가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05년 기준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는 개신교에 1위 자리를 내준지 오래고, 일부 시군지역에서는 가톨릭과 2위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다. 수도권 포교의 몰락은 결국 전국 포교의 몰락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7.30 재보선 선거는 세월호 사건, 수차례의 인사 참사, 유병언 부실수사 등 누가 봐도 여당이 참패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고, 야당은 ‘절대로 질 수 없는 선거’에서 대패했다. 야당이 안방까지 내줄 정도로 굴욕적으로 패배한 원인으로 “민심은 물론 당심(黨心)도 읽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정치 지형은 변했는데 과거에 안주함으로써 야당의 지지자들은 대거 이탈하고 중도파들은 외면했다. 이처럼 어떤 조직이건 변화를 수렴하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다수 사람들에게 실망과
1971년 8월, 스탠포드 대학에서 평범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의 교도소 실험이 진행되었다. 실험참가자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수감자와 교도관 역할을 맡긴 후, 그들이 2주 동안 겪는 심리적 변화를 연구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그런데 실험이 시작되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실험인 줄 알면서도 가학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점호시간마다 온갖 가혹행위를 창안하여 수감자들을 괴롭혔으며 반항의 기미를 보이면 독방에 감금하거나 성적인 모욕까지 서슴지 않았다. 동료 교도관들의 묵인과 방조
불가의 핵심적 가르침을 표현하는 ‘법(法)’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의 번역어다. 불교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법’이라는 말은 다양한 철학적 함의로 발전하고 깊어져 왔지만, ‘다르마’라는 고대어는 붓다의 출현 이전에도 애초에 다양한 뜻을 품고 있는 말이었다. ‘고삐를 쥐다(dhr)’라는 동사에서 나온 이 말은 직접적으로는 ‘의무’라는 뜻을 곧바로 파생시켰지만, 보다 보편적으로는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우주적 섭리’ ‘본래 그러한 삶의 질서’ ‘옳음’ 등의 뜻으로도 널리 쓰였다.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파되는 과
몇 해 전 부산의 벡스코에서 개신교 청년들이 대규모 부흥회를 열었다. 그곳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축하메시지와 함께 범어사, 안국선원을 위시한 전국의 94개 사찰이 무너지라고 소리 높여 기도하던 동영상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대구 동화사에서 강남 봉은사에서 한국불교의 중심인 조계사에서 이미 있었고, 지금도 전국 사찰 곳곳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의 ‘땅밟기’ 소식이 간간이 전해온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땅 밟기는 한국을 넘어서 미얀마의 스님 앞에서 복음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심지어 찬송가 38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를 불렀다
제198회 중앙종회 임시회에서 비구니 스님도 호계위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종헌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1962년 조계종단 성립 이래 5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비구니 호계위원의 등장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출가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구니승가의 종단 내 위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이라 생각된다.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은 최초의 법안보다 매우 후퇴한 것이다. 최초의 법안은 기존의 초심호계위원 7명과 재심호계위원 9명에서, 비구니스님 2명을 추가해 각각 9명과 11명으로 늘렸다. 즉 비구 호계위원 자리를 비구니 스님에게
한국사회 일부는 한국사에 대한 단순한 인식을 갖고 있다. 19세기말 기독교 선교사의 노력으로 한반도가 어둡고 무의미한 불교와 유교문화권에서 벗어나 영광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도 경우엔 200년간 통치한 영국이 인도인의 역사관을 바꾸는데 실패했으며 인도인의 민족적인 자부심에 타격을 줄 수 없었다.인도의 위대한 지도자 간디는 1909년 인도의 자치 정부 이론을 뜻하는 ‘힌드 스와라지(Hind Swaraj)’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출판했다. 이 책에서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 통치에 의한 인도의 변화상을 정밀하게 검토
세계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기술, 사상, 철학 등 학문의 융합이 이뤄지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도 기존 정보를 모으고 섞으면서 생긴다는 것을 잡스는 보여주었다. 세계는 왜 이렇게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생명에 대한 바른 이해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명의 적은 괴로움이다. 마치 온 몸의 혈관에 혈전이 생겨 막히면 고통이 일어나고 죽음에 이르는 것과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각 개인, 가정, 단체, 사회, 국가들이 병들지 않고 건강하려면 혈관의 피가 흐르듯 소통이 잘 되어야 한다. 소통이란 이것과 저것의 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