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신라의, 한가한 어느날이었을 것이다. “혜공과 원효가 시냇가를 헤집으며,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 위에 똥을 누었다. 혜공이 그것을 가리키며 장난을 쳤다. ‘여시오어(汝屎吾魚)’ 그로 해서 항사사(恒沙寺)가 오어사(吾魚寺)로 불리게 되었다.(晩年移止恒沙寺. 時元曉撰諸經疏, 每就師質疑, 或相調戱. 一日二公沿溪魚蝦而啖之, 放便於石上, 公指之戱曰, 汝屎吾魚, 故因名吾魚寺. 或人以此爲曉師之語濫也.)” 혜공(惠空)은 치료와 이적에 능했다고 한다. 늘 삼태기를 지고 얼근히 취해 노래 부르고 다녔다. “이때 원효는 여러 불경의 주소(注疏)를 짓고 있었는데, 언제나 혜공에게 가서 묻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유머는 깨친 자의 자연이고, 근엄함은 초보의 작법이다. 천하의 원효가, 스승 없이, 인디(indie)로
법보시론
2013.06.10 15:50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