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는 자취가 없는데바깥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는 수행자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고깨달은 사람에게는 흔들림이 없다. - 『법구경』 『법구경』 게송 254번과 255번은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로 유명한 수밧다(숩바다) 비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밧다는 방랑의 수행자라고 한다. 혼자서 산야에 떠돌면서, 때로는 외도의
정욕보다 더한 불길은 없고성냄보다 더한 밧줄은 없으며어리석음보다 더한 그물은 없고헛된 집착보다 더한 강물은 없다. - 『법구경』 재가와 출가를 막론하고 부처님 제자들이 사찰에 와서 반드시 해야 할 행위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 염불하는 일이다. 이는 염불 수행이며, 오롯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상념(想念)하는 기도
지혜로운 이는 몸을 억제하고말을 삼가고마음을 억제한다.이와 같이 그는 자신을 잘 지키고 있다. - 『법구경』 이 게송은 ‘현자는 자기의 행동을 다스리고, 현자는 자기의 언어를 다스리고, 현자는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나니, 그는 완전히 자기를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야 말로 현자(賢者), 곧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가르침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며, 자신을 폐망(廢亡)에 으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끝없는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현자가 자신의 몸과 말과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말하는 것일까? 『화엄경』에서 설하는 보살의 수행 차례 중마지막으
사람이 항상 깨어 있고밤낮으로 부지런히 배우고절대 자유를 추구하고자 한다면온갖 번뇌는 저절로 사라지리라. 『법구경』 『법구경』 거해 스님 편역에 의하면 223번 게송에는 가난한 농부 뿐나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또한 226번 게송에는 미천한 신분의 여자 뿐나라는 같은 이름의 남녀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 뿐나 이야기는 가난한 농부이면서 신심 깊은 재가신자 뿐나와 그의 딸 웃따라의 보시공덕이야기이다. 뿐나는 농부이면서 남의 집에서 일을 하는 매우 가난한 고용인이었다. 모든 고용인이 휴가를 맞이하여 쉬고 있을 때에도 뿐나는 열심히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려고 애를 썼다. 뿐나의 이와 같은 부지런한 삶을 선정의 힘으로 살핀 사리뿟따 장로는 뿐나에게 공덕을 짓게 하려고
산목숨을 죽이지 않고 항상 육신을 억제하는 성자는 불멸의 경지에 이른다. 거기에 이르면 근심이 없다. - 『법구경』 지난해의 모진 겨울이 뒷모습을 보이면서 산천에는 봄기운이 완연한 요즈음이다. 봄은 소생의 계절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작은 나뭇가지 하나로부터 온 산의 기운이 봄의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법구경』 225번 게송의 첫머리에 ‘산목숨을 죽이지 않는 일’, 또는 ‘남을 해치지 않는 행위’ 등은 다 생명을 살리고 손상하지 말라는 생명의 가르침이다. 지난해는 소를 도살하여 우리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인간의 잔혹한 행위가 도마 위에 오른 한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희생되어간 소를 위로라도 하듯 기축년은 ‘워낭소리’라는 소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가뭄에 괴로워하는 산하
진실을 말하라 성내지 말라.가진 것이 적더라도누가 와서 원하거든 선뜻 내어주라.이 세 가지 덕으로 그대는 신들 곁으로 간다. - 『법구경』 분노를 다스리는 이가 천상에 태어난다 위의 게송은 『법구경』 제17 ‘성냄의 장’, 또는 ‘분노의 장’의 글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기본은 어리석음을 떨쳐버리고 지혜로운 삶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어리석음의 대명사가 곧 탐진치 3독이다. 끝없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결국은 우리를 윤회의 고통에 휘감기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 3독 중에서도 성냄의 어리석음은 평소에 지은 모든 공덕을 다 태워 소진시키는 왕성한 불길과도 같은 것이다. 성냄의 불길을 꺼버리는 힘은 곧 지혜에 의해서 길러진다는 가르침을 ‘성냄의 장’에서 설하고 있다. &nbs
덕과 지혜를 갖추어바르게 행동하고 진실을 말하고자기 의무를 다하는 사람은이웃에게 사랑을 받는다 - 『법구경』 『법구경』217번 게송은 거해 스님에 의하면 ‘계행과 내적 지혜를 갖추어 진리를 잘 이루고 담마의 뜻 깨달아 자기의 의무를 지키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내적 지혜’는 위빠싸나의 수행, ‘진리’는 네 가지의 도과(道果), ‘담마’는 네 가지 진리, 곧 4성제(四聖諦)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들을 다시 종합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생활하는 사람은 덕으로서 계율을 지키고, 내적인 고요로서 지혜를 갈무리하여 진리에 다가서는 삶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또한 4성제의 참다운 이치를 깨달아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의무를 다한다면 세상의 모든
쾌락에서 근심이 생기고쾌락에서 두려움이 생긴다.쾌락에서 벗어난 이는 근심이 없는데어찌 두려움이 있겠는가. - 『법구경』 『법구경』‘쾌락의 장’에는 쾌락이나 욕망에 대해서 우리의 어리석은 집착을 철저하게 경책하고 계신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시고 길을 걸어가고 계셨다. 마침 그 때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그 나라의 왕자들과 귀족 청년들의 일행과 마주쳤다. 그들은 큰 축제에 참석하기위하여 아름다운 옷과 화려한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축제의 즐거움으로 마음이 들떠서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러한 청년의 무리를 지나치시면서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에 천상의 세계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저들 왕자의 무리를 보라. 참으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말라.미운 사람과도 만나지 말라.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 『법구경』 위의 게송은『법구경』제16 ‘쾌락의 장’ 또는 ‘사랑하는 것’에서 설하신 가르침이다. 이 ‘쾌락의 장’에서는 인간의 사랑, 애정, 쾌락, 욕정, 헛된 집착 등에 기인하여 벌어지는 끝없는 괴로움을 경책하고 있다. 부처님 당시에 한 가족이 함께 출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아들이 먼저 부처님 교단에 출가를 하였다. 외아들이 출가를 한 다음 아버지도 아들의 뒤를 따라서 비구스님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집을 혼자서 지키던 어머니도 아들과 남편의 뒤를 따라서 출가의 길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이들 가족은 자연스럽게 대중의 모임 등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는 사찰 내
어리석은 자와 함께 길을 가기란오래도록 근심이 따른다.어리석은 자와 함께 사는 것은원수와 사는 것처럼 고통스럽다.지혜로운 사람과 함께 살면친척들의 모임처럼 즐겁기만 하다. - 『법구경』 초기경전인『백유경』은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려는 뜻에서 비유와 설화로 법을 설하신 대표적인 경전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에는 언제나 지혜로움이 대구가 된다. 이들 설화 경전 속에서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하자. 볶은 깨 심고 싹트길 바라나 첫째는 『백유경』에 나오는 인자한 아버지와 욕심 많은 두 아들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평생을 근검절약하여 대부호가 되었다. 임종에 임박하여 두 아들에게 자신의 유산을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고 더 크게 번창하라고 당부하고 눈을 감
성인들과의 만남은 좋은 일이다함께 살게 되면 항상 즐겁다어리석은 자를 만나지 않으면마음은 늘 편안하고 즐겁다 - 『법구경』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현상을 개체와 개체간의 관계 속에서 관찰하라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연기(緣起)라는 이름으로 강조되어 왔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서는 더더욱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시되고 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삶의 질이 변하기 때문이다. 삼학은 공삼매 토대서 닦아야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될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서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총체적으로 정리해 보면 어리석은 사람과는 만나지 않아야 하고, 지혜로운 사람과는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고독의 맛과 마음의 평화를직접 체험한 사람은명상의 기쁨을 맛보면서두려움 없이 악에서 떠난다. - 『법구경』 세상이 너무나 배타적이고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성취만을 가치로 여기는 사회가 되면 모두가 상대적 빈곤에 빠져서 너나할 것 없이 아등바등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나 혼자 마음의 평화를 찾고 고요한 일상을 보내고 싶어도 폭류에 휩싸여 떠내려가듯, 나 홀로 삶의 본연의 자리를 지켜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서 본의 아니게 혼돈의 삶을 살면서 남의 탓만으로 돌리면 나의 삶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설사 떠밀려서 흘러가더라도 자기 자신의 마음의 고요와 절대적인 평정(平正)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이 곧 수행이고 불교적인 삶이다. 내 인생의 무게는 남이
승리는 원한을 낳고패자는 괴로워 누워 있다.마음의 고요를 얻은 사람은승패를 버리고 즐겁게 산다. - 『법구경』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전쟁으로 얼룩진 세상이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감성은 더욱 풍부해졌고 이성은 고도로 높아졌다. 또한 지성은 교육을 통하여 첨예하게 발달하고 있다. 이렇게 풍요롭고 밝은 심성을 개발한 인간이 자신과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이전투구(泥田鬪狗)와 같이 싸움을 일삼는다면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 것인가? 먼 옛날에 일어난 일로 역사의 교과서에서나 기록될 법한 전쟁이 지금도 지구한쪽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인간의 이기주의를 절감한다. 어리석은 인간의 역사도 거룩한 신의 역사도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신 또한 결코 싸움에 있어서는 전지전능하지
원한을 품은 사람들 가운데서원한을 버리고 즐겁게 살자원한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도원한에서 벗어나 살자 - 『법구경』 부처님이 사밧티의 거리에서 걸식을 하고 계실 때,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가 부처님을 보고 기염을 토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머리 깍은 걸인아, 천한 사람아 거기 섰거라.”라고 소리치면서 달려들었다. 이에 부처님은 걸음을 멈추고 바라문 바라드바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몹시 자애로운 모습으로 바라문에게 되물었다. “그대는 지금 참으로 천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며 천한 사람을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 줄을 알고 있는가?”라고. 너무나 조용한 부처님의 모습에 바라문은 잠시 할 말을 잊고 서있었다. 이에 부처님이 바라문 바라드바자에게 설해준 것이 『숫타니파타』의 「천한 사람장」이다.
깨달은 이의 출현은 즐겁고바른 설법을 듣기도 즐겁다승단의 화합도 즐겁고화합한 사람들의 수행도 즐겁다 - 『법구경』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면서 생활하다 보면 참으로 고요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깨달은 이의 출현은 바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신 일이다. 우리들의 스승이신 석가모니의 탄생만 보더라도 참으로 평화롭고 즐겁다. 마야부인 어머니께서 석존을 탄생하기 위하여 친정으로 향하시던 도중에 룸비니 꽃동산에서 성자를 출생하셨다. 기쁨 가득했던 석존의 탄생 전기에 의하면 마야부인은 산고(産苦)를 느끼지 않았으며, 새들은 노래하고 짐승들은 룸비니 동산에 뛰놀면서 부처님의 탄생을 기뻐했다고 한다. 이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여 어떠한 생명도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면 고통을 느끼는 것을 자신의
황금이 소나기처럼 쏟아질지라도사람의 욕망을 다 채울 수는 없다욕망에는 짧은 쾌락이 있을 뿐뒤를 이어 많은 고통이 따른다 - 『법구경』 어린 시절에는 밤새 눈이 와서 온 도량 가득히 눈이 쌓일 때가 많았다. 부용당 육년 우리 은사스님은 6.25사변 때 인천에서 미처 피난가지 못한 사람들과 겨울을 보내시면서 먹을 것이 부족해서 언제나 우거지 죽을 쑤셨다고 한다. 아침 햇살이 퍼지면 죽을 얻어먹으려는 배고픈 사람들이 절 마당에 모여들기 시작했단다. 스님은 부엌에서 대문 쪽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다 모여들기를 기다리며 연신 바가지로 솥에 물을 더 부우시면서 죽의 양을 늘렸다고 한다. 일찍이 모인 사람들에게 얼른 죽을 퍼서 나누어 주지 않고 마당에 사람들이 다 모일 때 까지 죽 솥을 저으면서 물을
악한 일을 하지 말고선한 일 널리 행해마음을 깨끗이 하라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 『법구경』 이 게송은 흔히 칠불통계(七佛通戒)라는 명칭으로 유명하다. 칠불이란 일곱 분의 부처님이라는 뜻으로, 아득히 먼 옛날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는 일곱 분의 부처님들이 계셨다고 한다. 그 일곱 분이란 비바시부처님(毘婆尸佛), 시기부처님(尸棄佛), 비사부부처님(毘舍浮佛), 구류손부처님(拘留孫佛), 구나함모니부처님(拘那含牟尼佛), 가섭부처님(迦葉佛), 석가모니부처님(釋迦牟尼佛) 등이다. 이처럼 과거에 계셨던 일곱 분의 부처님께서 공통적으로 말씀하신 가르침을 ‘칠불통계’라고 하여 전해져오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모든 악한 일 하지 말고(諸惡莫作), 모든 착한일
깨달음을 얻어 깊이 생각하고명상에 전념하는 지혜로운 이는이 세상에서 떠나 고요를 즐긴다신들도 그를 부러워한다 - 『법구경』 거해 스님의 편역에 의하면 위의 게송은 부처님께서 어머니를 위하여 천상에서의 설법을 마치시고 지상에 돌아오시면서 사리불과 모든 제자들에게 설하신 게송이라고 한다. 인도 상카시아라는 지방은 불자들에게 인도 8대 성지의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도솔천에 환생하신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하여 천상에 올라가셔서 3개월 동안 법을 설해드리고 다시 인간 세상으로 하강하신 곳으로 유명하다. 석존의 신통력은 천상과 인간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드셨고 이곳 상카시아는 하늘과 인간세계를 이어준 상징적인 장소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인간과 천상을 오가면서 어머니
욕심 많은 사람은 천상에 갈 수 없다.어리석은 자는 베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베풀기를 좋아하므로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복을 누린다. - 『법구경』 대승불교에서 모든 착한 일을 몸소 실천하면서 자신이 행한 어느 것 하나에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이를 보살(Boddhi-sattva)이라고 부른다. 이 보살은 6바라밀을 실천하는데 그 첫 번째의 선행이 남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행위이다. 이는 부처님 가르침에서 대단히 중요시 여기는 보시, 즉 베푸는 행위의 실천인 것이다. 보통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신이 소유하는 것이 먼저이고, 남에게 베푸는 것이 그 다음이다. 그러나 보살의 삶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언제나 우선한다. 나에게 소유물이 없어서 남에
어쩌다가 못된 짓을 했더라도착한 행동으로 덮어버린다면그는 이 세상을 비추리라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 『법구경』 위의 게송은 앙굴리말라스님과 관련하여 설하신 가르침이다. 앙굴리말라스님에 대해서는 너무나 유명하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앙굴리말라스님은 출가하기 전, 너무나 순수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바라문청년이었다. 그러나 천명의 사람을 죽여서 천개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야만 완전한 수행을 성취할 수 있다는 사악한 스승부부의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서 급기야는 거리의 살인마로 전락하게 된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멈춤으로 보여준 붓다의 가르침 거리의 살인자가 된 앙굴리말라는 마지막 천 번째의 손가락을 얻으려고 거리를 누볐다. 이 소식을 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