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양형진은 책으로 처음 만났고 5년 전에는 모 신문사 대담자로 그를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행운도 누렸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에게서는 자연과학자의 냉철함보다는 따뜻한 수행자의 향훈(香薰)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대학 1학년 교양강좌에서 고(故) 서경수 교수를 통해 불교를 만난 이후, 선(禪)과 교(敎)에 걸친 지식을 두루 쌓고 참선 수행도 놓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직접 들었다.그에 따르면 우리가 그냥 당연한 듯이 여겨왔던 일들, 예를 들어 “우리 눈이 푸른빛을 감지할 수 있게 된 것도 또한 간단히
아룬다티 로이는 그녀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통해 처음 만났다. 그 덕분에 인도 문학에 관심을 갖기도 하였는데, 이 작가가 환경 운동의 여전사(女戰士)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소설가라 감성에 치우치고 독설만 퍼붓지 않을까’ 짐작했었지만 근거자료를 들어가며 차분히 주장을 편다.그가 말한다. [대형 댐 공사 건설이 진행되는] “나르마다 강 유역에 관한 이야기는 현대 인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토의 공습 중에 베오그라드 동물원에 있던 호랑이처럼, 우리는 제 살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맞다. 세상 곳곳에
정민은 뛰어난 학자이며 작가다. 독서의 깊이와 넓이도 엄청나지만 그의 글에는 독자들을 빠져들게 하는 매력(또는 마력)이 있다. 해서 그의 책은 한 번 손에 잡으면 쉽게 놓기 어렵다.이런 그가 어딘가에 미쳐서 일가를 이룬[狂而及] 사람들의 자취를 더듬어, 나 같은 보통사람들도 알 수 있게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거기에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이라고 멋진 제목을 달았다. 그럼, 미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잊는다[忘]는 것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해서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학생들에게 사실만을 가르치시오.…사실 이외에는 어떤 것도 심지 말고 사실 이외의 모든 것을 뽑아 버리시오.…이것이 내가 내 자식들을 키우는 원칙이고, 이것이 내가 이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원칙이오.” 사립학교 설립자 겸 교장으로 나중에 의회의원이 되는 그래드그라인드 씨의 엉터리 교육철학 연설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한편 이 사람과 짝을 이루는 바운더비 씨는 “은행가, 상인, 공장주 등등.…자신이 자수성가했음을 아무리 자랑해도 부족한 사람. 놋쇠로 된 트럼펫 같은 목소리로 옛날 자신의 무지와 가난을
2004년 12월30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나이트클럽에 큰불이 났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이자 추기경인 호르헤 베르골리오(뒷날 프란치스코 교황)가 가장 먼저, 소방 공무원들이나 구급차보다도 빨리 도착하였다. “몸에 불이 붙은 채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의 옷을 조심스레 벗기고, 놀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이처럼 그는 가난한 사람, 곤란을 겪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었다.”이번에 한국을 찾는 세계 가톨릭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일화다.(본
이 ‘시간과의 경쟁’은 서울대에서 ‘연구실 불이 가장 늦게 꺼진다’는 소문과 함께 ‘제자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켜서 그 앞에서 모두 벌벌 떨게 된다’는 평을 받았던 고(故) 민두기 교수의 연세대 석좌교수 1년 강의 내용을 엮은 책이다.책 제목은 아마 “일본과 중국은 시대적 과제의 표현에 있어 두드러지게 차이가 났지만 서로 닮은 점도 있다. 두 나라가 그 시대적 과제를 추구함에 있어 몹시 조급하여 역사의 시간과 숨 가쁜 경쟁을 했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부·강(富와 强)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눈앞에 잇따라 다가오는 망국(亡國;
이 책을 19년 전인 1995년 3월10일에 사서 그 봄이 가기 전에 다 읽었다. 가끔 몇몇 구절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냥 그렇게’ 지내며 먼지 묻은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싶을 정도로 내 가슴에 인상을 깊이 새겨놓은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책장을 샅샅이 뒤져서 이 책을 찾아내 먼지를 털게 된 데에는 어느 인사의 공이 크다. 그 인사가 ‘조선 민족이 게으르고 그래서 일제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으로 했던 과거 자신의 발언은 자기 ‘얘기가 아니고 영국 비숍 여사의 기행문에 나온다’고 해명하는 것을 언론에서 보고, ‘정말 그
김규항은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B급 좌파’를 자처하고, 또 그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주목하게 된 것은 그에게 붙은 이 꼬리표 때문이 아니다. “예수를 ‘대제사장이든 로마 총독에게든 무턱대고 반말을 하는 사내’로 그리는 건, 게다가 그런 예수에게 대제사장과 로마 총독이 존댓말을 하는 것처럼 그리는 건 대단한 왜곡”이라고 보는 그의 예수관(觀) 덕분이다.나도 오래 전부터 ‘반말 하는 붓다는 상상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말과 글로 여러 차례 펼쳐왔던 차라, 마치 오랜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웠던 것이다.요
요즈음 위구르지방의 위기 소식이 자주 들린다. 중국에서는 이곳을 신지앙(新疆)자치구라고 부르며 권리를 주장하지만,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해온 위구르 민족 입장에서는 이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중국의 강점이 위구르 사람들에게 어떤 어려움을 주고 있는지, 두 가지 사례가 분명하게 보여준다.“수도 베이징에서 거리상으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중국 정부는 카슈가르의 시간을 베이징에 억지로 맞췄다.” “자치구 부주석 왕러치안은 공공연히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100명이 극형에 처해지는 상황에서 진짜 범죄자는 단 한 명에
‘종교전쟁-종교에 미래는 있는가’는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과학철학자 장대익’, ‘끊임없이 과학과의 소통을 추구해온 신학자 겸 목사 신재식’과 ‘종교학자 김윤성 교수’가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의 주선으로 이메일을 통해 나눈 대화와 좌담을 엮어 만든 것이다.책 제목만으로는 얼핏 ‘종교 간의 전쟁’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종교와 반(反) 종교 사이의 갈등과 불화가 점점 깊어지고 그래서 종교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저자들의 진단과 염려이다.실제로 이제 종교와 종교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넘어,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반(反)종교 움직임
미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학생 수백 명이 어른들 말만 믿고 따르다가 이 세상과 영원히 이별을 하게 되는 이 기막힌 현실, 이처럼 현실이 어려울수록 가족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진다.인류 사회의 출발점은 ‘가족’이고, 그래서 역사도 이 가족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서로 사랑할 뿐 아니라 최초의 갈등을 맛보는 것도 바로 이 가족관계에서부터이다. “가족은 가까운 사이이면서 때로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기도 한다. 한 둥지에서 둘 이상의 새끼를 키우는 경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게 마련이고 그때마다 형제 사이엔 다툼이 벌어진다. 물론 먹이
근대 문명의 시발과 성장이 석탄 덕분이었다면, 현대 문명에서는 석유가 그 역할 아니 거의 신(神)과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신이 인간을 잘 도와주다가도 화가 나면 큰 피해를 끼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듯이 석유도 선(善)과 악(惡)의 서로 다른 모습을 갖고 있는데, 이제는 ‘악’ 쪽을 더 자주 보여주는 것 같다.“석유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의 평화를 파괴한다. 산유지역, 파이프라인 통과지역, 그리고 석유 소비지역의 자연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유발함으로써 전 지구적 규모의 환경파
지난 해 3월 아르헨티나 출신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전 세계 가톨릭의 수장이 되어 그 이름을 ‘프란치스코’라고 하면서, ‘이태리 아시시 출신의 가난한 성자 프란치스코의 삶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었다.매우 보수적이었던 전임 교황과 대비되면서 새 교황의 한 마디 한 걸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가톨릭의 변화와 로마교황청 자체의 개혁을 기대하였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교황에게는 심지어 ‘좌파, 공산주의자’라는 비판과 우려도 있었다.세계 곳곳에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교황이 모델로 삼아 가슴에 모시고 있는 성자 프
자기 학문 영역에서 깊이 있는 연구결과를 내면서도 결코 좁은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는 대표적인 학자인 영문학자 도정일과 생물학자 최재천이 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얼핏 보면 무겁지 않은 주제를 두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들이 인류 문명의 아주 중요한 문제를 거론하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슬픔이나 분노, 고통 같은 것은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것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뭉치로 붙어 다니는 것”(도정일)이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는 ‘그럴 것’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오
몇 해 전 국내 방송사에서 아마존 밀림의 원시 부족을 취재,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방영하여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시청률을 높이는 정도를 넘어, 그 부족민들을 한국에 데려와 출연시키는 ‘악행’을 저질렀다. 이미 ‘아마존의 눈물’ 촬영 과정의 왜곡 등으로 연출 및 제작자와 방송사의 도덕성을 지적받기도 하였지만, 그들을 비행기로도 수십 시간씩 걸리는 이곳에 데려와 방송에 출연시키며 웃음거리로 만든 MBC의 행위는 목초지 조성과 광산 개발을 목적으로 원시림을 불태우고 그곳의 본래 주인이었던 부족민들을 몰살하는
오로지 소금을 찾아 수십, 수백㎞를 이동하는 코끼리 가족들의 힘겨운 삶을 TV 다큐멘터리에서 보고, 그 처절한 생존 투쟁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어디 초식 야생동물만 이런 힘든 일을 겪겠는가.“충주 등을 살펴보니, 지방이 바다와 멀어서 소금이 귀하기가 금과 같으니, 궁한 백성들이 초근목피는 채취하였으나 소금이 없어 먹지 못하는 형편”(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 중인 1593년 여름 선조임금에게 올린 장계 중 일부)이라고 하였듯, 전쟁이나 가뭄 때에 소금은 '백성들의 생명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소금’은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귀엽고 발랄한 공주, 어찌 보면 철없는 말괄량이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오드리 헵번이 세상을 떠나 스위스의 작은 교회에서 장례식이 있었다. 여기에는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저명인사들이, 각자 그와의 인연 그리고 그에 대한 찬사를 말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어머니가 해준 이야기에 대해 맏아들인 숀이 말했을 때였다.“크리스마스이브에 엄마가 존경하는 작가가 쓴 편지를 우리에게 읽어주었어요.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네가 도움을 주는 손이 필요하다면, 손은 네 팔의 끝에 있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 고등학교 1학년 때 그의 첫 소설 ‘나목’ 을 읽었고, 대학 1학년 때에는 ‘동아일보’에 연재되는 ‘휘청거리는 오후’를 애독하였다. 일찍부터 그의 소설을 좋아했고, 내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끝까지 바르게 살아가는 ‘인간 박완서의 삶’도 존경하게 되었다.후반에 쓴 작품들을 담은 이 ‘친절한 복희씨’에서도 젊은 시절 못지않은 그의 필력이 느껴진다. 곳곳에서 작가의 연륜이 묻어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곳도 많다. 작자가 시대와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는 눈에 공감하기 때문일 터인데, 이 말은 곧 나도
우리 국민 대부분은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오끼나와는 일본 땅’이려니 여긴다. 언론을 통해 그렇게 듣고, 학교에서 그렇게 배워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이 근대국가 체제를 구축하고, ‘민족통일과 근대화’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이곳 주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인 ‘류우꾸우 처분’으로 강제 병합을 하기 전까지는 중국의 명청(明淸) 조정의 외빈 의전 서열에서도 조선과 베트남 다음 자리를 차지하는 어엿한 류우뀨우왕국(琉球王國)이었다.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면서 오끼나와가 다시 독립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예수와 다윈의 동행-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공존을 모색한다; 종교와 과학이 어우러진 생각의 지도’ 몇 해 전 다윈 탄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도 다양한 행사와 학술회의가 열렸다. 나도 ‘다윈이 불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외국 글을 번역해서 소개하였지만, 불교학계에서는 다윈에 대하여 대체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를 ‘우군(友軍)’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데 반하여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부정(否定)을 넘어 증오를 보이기까지 하였다. 바로 이 ‘증오’의 근원을 살펴보고 진화론, 나아가 자연과학과 기독교 사이에 조화의 길을 모색해보려는 것이 목사이며 신학자인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으리라. 저자에 따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