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23대 대통령 벤저민 해리슨 정부에서 체신장관을 지낸 워너메이커가 전국의 우체국장들을 한곳에 모아 우정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회의를 마련했다. 토론회 당일, 연단에는 대통령, 대법원장, 국무장관이 참석했고, 당대의 유명인사들도 다수 참석해 있었다.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마지막 연사가 연설을 마쳤을 때였다. 군중 속에서 “케이트 필드!”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케이트 필드!”를 외쳤다.사람들이 이름을 부르고 있는 케이트 필드는 그 자리에 참석해 있던 여배우였다. 단상에 앉아 있던 케이트
중국 고대사는 하·은·주(夏·殷·周) 등 세 시대로 분별되는데, 이를 삼대(三代)라 한다. 공자(孔子, BC 551~479)는 주나라 후기 춘추시대(春秋時代)의 끝 무렵 인물이다. 당시의 중국은 종주국인 주나라와 열두 제후국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공자는 열두 제후국 중 하나인 노(魯)나라의 창평향(昌平鄕) 추읍(鄒邑)에서 아버지 숙량흘(叔梁紇)과 어머니 안징재(安徵在) 사이에서 태어났다.공자가 평생에 걸쳐 가장 존경한 인물은 주공(周公)이다. 주공은 주나라의 창건자인 무왕(武王)의 아우이자 무왕의 뒤를 이은 성왕(成王)의 숙부인데,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가 중 한 사람인 너세니엘 호손(N. Hawthorne, 18041~864)은 매사추세츠 세일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독실한 청교도였다. 청교도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뉴잉글랜드로 망명하여 현재의 미국을 있게 한 첫 번째 이주자들이 믿던 기독교의 일파이다.윤리도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원칙을 남들에게도 강요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너세니엘이 태어난 세일럼에서도 청교도들은 일부 주민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하거나 고문을 자행한 적이 있었다.그 처형
1980년 10월27일, 한 떼의 군인들이 사찰에 몰려왔다. 박정희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로 발생한 혼란을 이용하여 실권을 잡은 전두환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군인들이 153명이나 되는 조계종 요직을 맡은 스님들을 체포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사건을 한국일보 1980년 10월29일자 기사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계엄사는 28일 불교계 내부에 도사리고 앉아 온갖 비리와 부패, 범법행위를 저지르면서 교계를 어지럽혀온 사이비 승려, 상습폭력배 등 46명을 연행, 조사중이라고 발표했다.계엄사는 이들의 진상과 비행에 대해서는 수사가
구두쇠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디킨즈의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인 스크루지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 또한 법정에서 꾸어 준 돈을 갚지 못하는 밧사니오의 심장을 베어낼 것을 요구하는 구두쇠로 이름이 높다.이솝 우화에도 구두쇠 이야기가 있다. 어느 부자가 황금을 모아 마당 한구석에 몰래 파묻어 두었는데 어느 날 도둑이 들어 황금단지를 가져가 버렸다. 그가 엉엉 울자 그의 친구가 말했다. “어차피 쓰지 않을 돈이니 지금도 거기에 있거니 하고 여기면 마찬가지가 아니겠나?”이들은 문학작품 속의 주
제나라 재상 안영(晏嬰)이 사신으로 온다는 것을 안 초왕은 그를 골려 주기 위해 몇 가지 계책을 마련했다. 안영이 초나라 수도에 이르렀을 때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키 작은 그를 놀리며 정문 옆에 있는 작은 쪽문으로 들어갈 것을 권했다. 이에 안영이 응수했다.“그 문은 개가 드나드는 문이고, 사람이 드나드는 문은 정문이오. 내가 개나라 문으로 들어가리까, 초나라 문으로 들어가리까?”수문장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정문으로 안내했다. 궁궐에 들어가 초왕에게 인사를 올리자 초왕이 안영에게 말했다.“그대 같은 작은 자를 사신으로 보내다니 제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박물관에는 연간 800만명 가량의 관람자가 입장하며, 그중 400만 명이 ‘모나리자’를 감상한다고 한다. 이 유명한 그림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L. Da Vinci : 1452~1519)는 르네상스기만이 아니라 인류사 전체를 통해서 보더라도 가장 위대한 천재 중의 한 사람이다.십여 년 전에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가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인류사를 통틀어 르네상스적 천재에 관한 설문을 한 적이 있다. 결과를 보면 1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였고, 2위는 셰익스피어, 3위는 괴테였으며, 과학자로는 뉴턴이 5위,
코삼비 지방의 고시타 수도원에 각기 오백 명의 제자들을 거느린 학식 높은 두 비구가 있었다. 두 스승 중 한 비구는 계를 가르치는 율사였고, 다른 한 비구는 경을 가르치는 강사였다.어느 날 강사 비구가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다가 사소한 계율을 범했다. 계율이 정한 바에 따르면 화장실을 사용한 다음 준비된 물통의 물을 쏟아 변기를 깨끗하게 씻고 나서 물통을 거꾸로 해놓고 나와야만 하는데, 이 비구는 급한 나머지 완벽하게 뒤처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공교롭게도 율사 비구가 그 뒤에 바로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율사 비구가 강사 비구
1976년 4월6일, 일본에서 한 남자아기가 태어났다. 모든 면에서 건강한 아기였다. 단 한 가지, 그 아기에게 팔과 다리가 없다는 점을 제하고는. 이름하여 선천성사지절단. 병원 측에서는 산모가 큰 충격을 받을 것을 염려하여 “아기가 황달이 심하다”고 둘러대며 한 달간 그녀에게 아기를 보여주지 않았다.모자의 첫상봉 장면은 잔뜩 긴장하고 있던 병원 관계자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엄마는 대성통곡을 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는커녕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하고 말하며 반가움과 기쁨을 한껏 표현했던 것이다. 그것은 놀라움이
위문후 때 서문표(西門豹)가 업(鄴)이라는 지역을 맡아 다스리게 되었다. 부임한 다음 그는 곧바로 지역 장로들을 소집하여 지금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한 장로가 말했다.“물의 신 하백에게 아내를 바치는 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자세히 말해 보시오.”“업의 삼로(三老: 관직 이름)와 아전들이 하백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명목으로 해마다 많은 돈을 걷어갑니다. 그중 20~30만 전은 행사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일을 주관하는 무당과 나눠 가집니다. 그 시기가 되면 무당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처녀를 찾은 다음 ‘
13세기 전반, 유럽인들은 몽고군의 동유럽 정복과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을 통해 동양에 신비스런 문화국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베니스의 여행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출간되어 널리 읽힘으로써 동방은 더더욱 신비스러운 지역이 되었다.그 책이 나온 지 200년 후에 유럽의 탐험가들은 당시 보물과 같은 가치를 지녔던 향미료, 양념류, 실크 등을 수입하기 위한 인도 및 중국행 무역항로를 찾고 있었다. 당시의 모든 항해자들은 유럽에서 남쪽 방향으로 아프리카를 돌아 북상하여 인도로 가는 항로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항로에
위사카와 그의 아내 담마딘나는 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위사카가 밖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담마딘나는 반갑게 맞이하며 노고를 위로했고 그러면 위사카는 다정한 눈길로 아내에게 화답했다. 문제는 위사카가 불교 수행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위사카는 열심히 정진한 끝에 수다원을 성취했다. 중요한 것은 이 경지에 이르면 세속사에 관심이 적어진다는 점이다. 그렇긴 하지만 수다원이 된다고 해서 곧바로 출가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사카는 여전히 가정에 머물러 지냈는데, 다만 아내에 대한 그의 태도만은 전과는
눈과 귀가 안 보이고 언어를 제대로 발음할 수 없던 헬렌 켈러(Helen A. Keller, 1880~1968)는 처음부터 시청각 장애인은 아니었다. 그녀는 생후 19개월이 되었을 때 성홍열과 뇌막염에 걸려 위와 뇌에서 급성출혈이 있었고, 그로 인해 시각과 청각 장애를 갖고 살아가게 되었다. 헬렌은 자기 집 가정 요리사의 여섯 살 난 딸과 수화를 통해 대화가 가능했었다. 그녀의 수화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자신의 손으로 만져보는 방식의, 일반 농아인들의 수화보다 복잡한 것이었다.헬렌이 여섯 살이던 때
북방의 산융이 기마병 만 명을 이끌고 연나라를 침략해 수도를 포위하자 연나라 임금이 제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제환공은 곧 군대를 동원하여 연나라로 향했고, 이에 산융이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환공은 재상인 관중의 계책에 따라 융족이기는 하나 협조적인 한 종족의 도움을 받아 산융의 본거지를 공략하기 위해 이백 리를 전진했다. 지리에 밝은 융족들은 제나라 군대를 복룡산 아래로 유인하였다. 그곳은 사방 십여 리에 걸쳐 물이 흐르는 샘이 없는 곳이었다.공손습붕이 말했다.“제가 듣기로 개미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 물이 있다고 합니다. 개
알렉산드로스는 BC 356년에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에서 아버지 필리포스 2세와 그의 왕비 올림피아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질이 불같이 뜨거웠다. 세계 정복을 꿈꾸었던 알렉산드로스에게 육체적인 쾌락은 하찮은 것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름을 떨치고 싶은 강렬한 공명심과 목표를 향한 성실하고 치열한 기백이었다.BC 334년에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 전쟁을 벌였는데, 당시의 페르시아는 지중해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제패하고 있는 대제국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놀랍게도 5만 명의 군대로 100만 명에
왕궁을 떠나 출가한 싯다르타 태자는 마가다국에 이르러 오른편 성문으로 들어가서 왼편 성문으로 나왔다. 나라 안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태자를 보고말하기를 “저이는 천신이다”라고 하기도 하고, “저이는 제석이거나 범천왕이거나 용왕이다”라고 하기도 하였다.그때 마가다국의 왕 빔비사라는 신하에게 묻기를 “어찌하여 성 안이 이토록 조용한가?” 대답하기를 “어떤 수행자가 지나가는데 모습은 빛나고 위의는 미묘하고 기품은 아름다우므로 백성들이 감탄하여 뒤따르고 있나이다.” 이에 왕이 신하들과 더불어 태자를 뒤따라갔다.태자가 동굴에 앉아 탁발해온
한 강사가 수강생들에게 어떤 사람에게는 하기 쉽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하기 어려운 내용의 과제를 냈다. 과제의 내용은 이랬다.‘다음 일주일 동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라. 단, 그 사람은 지금까지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거나 오랫동안 그런 적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2주일 후, 과제를 점검하는 시간에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과제를 수행한 결과를 발표하라고 말했다. 그는 첫 발표자가 여성일 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키가 190cm쯤 되는 건장한 남자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
중국의 종주국 주(周)나라가 수도를 동쪽 낙양으로 옮긴지 얼마 안되었을때 제후국 정(鄭)나라 세자 굴돌이 군위에 올랐는데, 이가 무공이다. 그는 도읍을 회라는 지역으로 옮기고 국호를 신정으로 바꾸었다. 그의 힘이 강대해지자 주나라에서는 정무공을 조정의 공경으로 삼았다. 무공은 자신의 나라에서는 제후이고, 중앙정부에서는 대신이 된 것이다.무공에게는 신후라는 부인과의 사이에 큰아들 오생, 둘째아들 단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신후는 이상하게도 둘째아들만을 편애하고 첫째아들은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는 둘째아들 단을 세자로 삼고 싶은 마음에
러시아의 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아버지가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빈민들을 위한 병원 한 사택에서 태어났다. 세 형제와 네 자매 중 둘째였던 그는 열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열일곱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소년 표도르는 형 미하일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 교육을 받았다. 1841년, 그는 육군 공병학교에 입학해 장교가 되었다.1846년에 그는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해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그는 당시 유행처럼 불어 닥치고 있던 사회주의 운동에 경도되었다. 1849년 3월, 도스토옙스키는 사회주의 운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수행자인 밀라레빠(Milarepa, 1052~1135)는 티베트 서부에 있는 궁탕 지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세라뿌 갸르짼은 명문 귀족이었고, 어머니는 낭 지방의 왕족 출신으로 이름은 갸르모 겐이었으며, 그들에게는 밀라레빠 아래에 딸 하나가 있었다.밀라레빠가 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죽었다. 그의 아버지는 죽으면서 자신이 남긴 재산을 관리할 사람으로 백부를 지정했다. 밀라레빠가 재산을 되찾으려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문제는 그의 백부와 백모가 밀라레빠의 아버지로부터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