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는 세속에 살되 물들지 않았던 범행장자“작은 규율 어겨도 타인 위해선 적극 실천해야”계율의 굴레에서 자유로웠던 원효와 혜공의 전설이 깃든 포항 오어사 전경.이번에는 먼저 「보살영락본업경소」 서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이제중도(二諦中道)는 곧 건너갈 길이 없는 나루며,현묘하고 현묘한 법문(法門)은 더욱 들어갈 문이 없는 진리이다.갈만한 길이 없기 때문에 유심(有心)으로 행할 수 없고,들어갈 만한 문이 없기에 유행(有行)으로 들어갈 수 없다.그러나 대해에는 나루가 없지만 노를 저어 능히 건널 수가 있고,허공에는 사다리가 없지만 날개 치며 높이 나를 수 있다.이로써 알라.길이 없는 길은 곧 길 아님이 없고,문이 없는 문이 곧 문 아님이 없음을.문 아님이 없기에 일마다 현묘한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한국불교사상 가장 자유로운 계율 해석계를 알기에 오히려 계를 넘나들 수 있어 서당화상비가 발견된 경주 고선사지. 지금은 수몰되어 3층탑만이 경주박물관에 옮겨져 남아있다.오늘 살펴볼 내용은 원효가 윤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윤리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윤리’를 가장 현실적으로 다뤄온 종교는 유교라 할 수 있습니다. 유교는 그야말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유교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종교가 소위 ‘계(戒)’를 통해서 이를 매우 강조해왔습니다.그런데 대체적으로 계나 윤리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아주 박제화되고, 정예화되고, 교조주의로 흘러 도그마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의 대부분의 종교가 이
민중들에 의해 신통력 갖춘 도인으로 찬양-윤색한중일에 지대한 영향…日 원효 생애 다룬 저술도무덤에서의 하룻밤은 훗날 원효 스님을 동아시아 불교사의 위대한 성사(聖師)로 만들었다.(『화엄연기회권』中) 원효의 대중교화는 그의 학문적 성과나 사상적 깊이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황량하고 거친 세상이라는 들판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의 묵정밭을 일구고 가꾸는 일이란 보살행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원효가 만난 사람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밭가는 노인과 산골의 몽매한 사람, 그리고 광대, 백정, 술장사 등 시중사람들과도 어울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리의 아이들이나 부인들까지도 원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의 익살과 웃음, 노래와 춤 등은 삶에 지친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신나는 일이었고, 잠자는 영
정기 국회 개정 추진 불교 관련 법안들 제17대 국회가 9월 1일 제256회 정기국회 개회식을 갖고 100일 간의 회기에 들어갔다. 열린 우리당 불자 의원들의 모임인 이타회(利他會·회장 윤원호 의원)와 한나라당 불자회(회장 이상배 의원) 등의 불자 의원들이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거나 불교계가 각 당에 개정을 요청한 법률안에 대해 알아보았다. ‘일하지 않고 표를 확보하기 위해 불심만을 좇는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 온 불자 국회 의원들이 과연 올 정기 국회에서는 불교계를 위한, 사부대중이 청원한 관련 법안의 개정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까. 정기 국회에 앞서 지난 6월 ‘일회성 佛心잡기가 아닌 불교를 위해 일하는 불자 의원으로 거듭나겠다’는 원력을 세웠던 열린 우리당 이타회와 한나라당 불자
고인돌, 고분과의 형평성 문제 입법 불가 ‘문화재 보존 기금법’으로 변경 상정 추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직접 입법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교계 안팎 언론으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은 ‘폐사지 보존법’은 현재 법리적인 내용 및 방향에 관한 검토를 끝내고 올 정기 국회 상정을 목표로 법안의 이름과 내용 등 기본적인 틀을 마련한 상황이다. 폐사지 만을 보존하기 위한 특별법은 고인돌이나 성곽, 고분 등과의 법리적인 보존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데다 관련 법안과의 상충 문제가 있다는 데 착안해 현재 법안의 이름을 ‘문화재 보존 기금법’으로 하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폐사지의 보존을 위한 기금을 쓸 수 있도록 하게 한다는 것이 이 법안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교계 안팎의 언론들이 깊이 검토하
100부 240권 저술…각권마다 불교사의 명저의천은 ‘용수-마명 보살만이 원효의 짝’ 극찬사람들과 어울려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원효 스님. 그는 성과 속을 넘나들며 수많은 중생들을 불법의 세계로 이끌었다. 『화엄연기회권』원효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것은 그가 뛰어난 학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비문에는 “그가 일체의 도리를 모두 다 통달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은밀하고 미묘한 이치를 연구하고 분석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송고승전』의 저자 찬녕(贊寧)은 학승으로서의 원효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습니다.원효는 진리의 성을 용감하게 공격하고, 문진(文陣)에서 종횡무진 당당히 분투해서, 나아갈 뿐 물러서는 일이 없었다. 삼학(三學)에 두루 통하여 그 나라에서는 만인지적(萬人之敵)이라고 했
조계종은 8월 30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사찰출토문화재 보존·관리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조계종은 “사찰출토문화재는 해당 사찰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문화재청은 “현행 국가 귀속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사찰 출토 문화재 보존·관리 공청회 현장중계 8월 30일 열린 사찰출토문화재 보존·관리 공청회에서 문화재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찰 경내에서 출토된 유물은 해당 사찰뿐 아니라 불교계의 종교적 정통성과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유산으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돼 있어 관련 기관과의 분쟁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소유권 분쟁의 해결을 위해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조계종 총무부장 현고 스님)
“현존 사찰의 경내지에서 출토된 불교문화재조차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구시대적인 문화재 관리 정책이다. 사찰박물관이 속속 생겨나고 이에 따라 사찰의 문화재 보존관리능력이 향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찰출토문화재를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비능률적인 문화재 관리 정책이다.” 이번 공청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동국대 문명대 교수는 “과거 불교계가 사찰 박물관 등 문화재를 보존, 관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지 못해 사찰 경내지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국가에 귀속시킬 필요가 있었지만 최근 사찰박물관이 속속 생겨나고 또 출토 유물을 보존,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만큼 이제는 사찰 출토문화재를 불교종단에 귀속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문 교수는 이어 “그 동안 국가주도형 문화재 관리정책은 문화재보존과 관리 측
이번 공청회에서는 불교계의 사찰출토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을 해당 사찰에 주기 위해 관계 법령을 개정해야한다는 주장에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운용의 묘를 살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반박 주장이 제기돼 열띤 토론이 전개됐다. 전 문화재연구소장 조유전 교수는 “문화재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비록 사찰에서 출토된 문화재라고 할지라도 넓은 의미에서 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이어 “사찰출토문화재 소유권이 문제가 돼 법의 개정을 요구한다면 고분출토 문화재의 소유권도 문제가 될 것이며 각 사안마다 법 개정이 요구될 것”이라며 “문화재 관리에 대한 운용의 묘를 살린다면 보존과 활용이 조화롭게 될 것인데 구태여 법을 개정해서까지 소유권을 주
지난 8월 22일 현등사는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사리구’일체를 돌려달라며 민사조정 신청을 냈다. 그러나 삼성측은 선의취득이라며 공개할 수도 반환하지도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교계에서는 삼성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현등사 사리구 반환될 수 있나 “사리는 인체 일부… 선의취득 될 수 없어” 지배적 삼성문화재단이 현등사에서 도난된 사리구 일체〈사진〉를 점유하고 있는 것과 관련, 교계에서는 삼성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며 현등사 사리를 즉각 반환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지난 8월 23일 성명을 내고 “삼성 문화재단은 현등사 사리구 일체를 즉각 반환하라”고 주장했다. 중앙신도회는 성명서에서 “불가(佛家)에서 사리는 대선사님들
현등사 사리구는 경기 시도유형문화재 제 63호인 현등사 3층석탑〈사진〉에 봉안돼 있던 것으로 사리 2과, 수정 사리호, 은제 원통 사리함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원통 사리함에는 1470년 영응대군(세종의 아들)의 부인, 사위 딸이 시주해 현등사 3층 석탑에 보관했다는 명문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 사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기록에 의하면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 인도승려 마라가미(摩羅訶彌)가 포교를 위해 신라를 방문하자 왕이 크게 기뻐하며 이 절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당시 사찰 이름에 대해서는 전하지 않는다. 그 뒤 수백 년 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1210년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주춧돌만 남은 절터의 석등에서 불이 꺼지지 않고 있음을 보고 중창해 ‘현등사’라 했다고 전한다.
“삼성에 도난 됐던 현등사 사리구를 돌려 달라는 것은 당해 사찰 주지에게 맡겨진 소임이며 당연한 권리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현등사 사리구를 삼성이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사리구가 반환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설 것입니다." 지난 8월 22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현등사 주지 초격〈사진〉스님은 “사리는 옛 스님의 인체를 화장한 후 습골을 통해 만들어진 성보(聖寶)이기 때문에 거래를 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따라서 삼성측이 선의취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스님이 현등사 사리구가 도난 된 사실을 발견 한것은 지난 2002년. 당시 조계종 25교구 본사 봉선사가 말사에 대한 문화재 일제조사를 실시하면서부터다. 이를 통해 스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