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이란 무엇인가? 이점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아마도 명상을 우리가 왜 수행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여 보면 보다 분명하여 질 것이다. 첫째는 마음의 고요함, 평화이고, 둘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명한 앎, 깨달음과 같은 깨어있는 통찰이 아닌가 한다.명상의 사전적인 의미는 '고요하게 생각하다'는 것이다. 명상에서 冥은 '어둡다. 깊다. 고요하다'는 의미이고, 想은 '생각하다'는 뜻이다. 우선 마음의 고요한 측면과 사유하는 두 가지의 측면이 있다. 여기서 생각하다는 것은 알아차림의 알아차림을 말하는 것으
암병동에서 의사는 환자의 암세포가 뼈 속에 전이되었는지를 정밀하게 조사하여 알고 싶어 한다. 이것은 뼈에 손상을 주지 않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정맥에 주입하고, 그 반응정도를 카메라로 촬영하여 판독함으로서 가능하다. 이것을 본스캔(Bonescan)이라 한다. 필자는 최근에야 본스캔이란 용어를 알게 되었다. 실제로 본스캔을 해본 경험이 없다. 단지 가까운 가족이 본스캔을 받는 것을 도와드린 적이 있다.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고통을 받으면 몸과 마음이 반응한다. 본스캔처럼, 이들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명료하게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
몸의 느낌과 마음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이 부분은 불교심리학에서도 문제가 된 부분이지만, 서구 심리학에서도 여전히 심중한 쟁점 가운데 하나이다. 자극이 오면 먼저 마음 곧 감정적인 반응이 먼저 발생하고 나중에 몸의 느낌이 생겨날까? 아니면 먼저 몸의 느낌이 있고 마음의 반응이 생겨날까?아이가 길을 가다가 개를 만났다. 그런데 갑자기 개가 마구 짖어댄다. 아이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사건이 된다. 이때 위협적인 자극이 마음의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그런 다음에 몸의 느낌이 생겨날까? 아니면 몸의 반응이 먼저이고, 나중에 마음에서 불
삶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느낌이다. 우리가 산다고 하는 일은 바로 느낌을 느끼는 일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느낌에 대한 애착과격렬한 저항이 우리 삶 모습진정한 나 이해코자 한다면느낌 이해·탐색이 출발점느낌발생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관점이 있다. 첫째는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점인데, 느낌은 외적인 자극에 의해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자극이 없으면 느낌이 없고, 이때 의식은 접촉된 자극을 구성한다고 설명을 한다. 이런 관점은 외적 자극에 초점을 맞추어진 해석이다. 이때 느낌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산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몸으로 느낌을 느낀다는 의미이다. 느낌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반응하게 된다. 이때 특히 몸이란 공간이 중요하다. 느낌은 언제나 바로 몸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극을 받으면 일차적으로 우리는 몸을 통해서 그것을 접수하게 된다.대상은 자체로는 부존재마음에 의해 창조되는 것각자의 마음가짐에 따라삶의 방식 그대로 드러나불교심리학에서는 느낌발생의 과정을 ‘접촉’으로 설명한다. 접촉이란 의식[識], 대상[境], 감각기관[根]의 화합을 말한다. 이것은 의식을 조건으로 하여 대상이 생
느낌은 몸과 마음의 징검다리이다. 느낌은 몸에 속하면서 마음에도 속한다. 몸과 마음은 의료적 관점에서 보듯이 서로 별개로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은 늘 함께 통합적이고 상호작용한다. 느낌은 몸을 조건으로 해서 발생되는 느낌과 마음을 조건으로 발생되는 느낌을 구분할 수가 있다. 가슴의 답답함, 뒷목의 경직됨과 같이 몸에서 일어난 경우를 몸(신체) 느낌, 혹은 감각 느낌이라 하고, 불안이나 슬픔과 같은 마음에서 발생되는 느낌을 감정으로 구별하여 부르고자 한다. 물론 이들은 설명을 위한 편의상의 구별이다. 이들은 실제로는 구분할 수 없을
우리는 일상에서 느낌이 좋다 혹은 나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느낌은 막연한 어떤 감, 분위기이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영역을 말한다. 분명하게 자각하기가 어려운 만큼 인간의 무의식적인 행동에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우리는 의식하기도 전에 벌써 달콤한 느낌에는 저절로 끌려가고, 불쾌함에 대해서는 쉽게 혐오감을 표현한다. 느낌과 행동 사이에는 간격이 없는 듯 순식간에 자동인형처럼 반응을 한다.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느낌에 대한 자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마음에서 신체 현상 표현되고과거 경험 따라 무의식적 표출현재
몸이란 무엇인지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예를 들면 몸이란 욕망의 상징이고 본능과 동일시된다. 이런 입장은 자주 종교적인 영역에서 발견된다. 한편 철학의 인식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몸은 세계를 경험하는 공간이다. 세상을 경험한다는 말은 바로 몸에 의한 체험이다. 체험은 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산다는 것은 몸이 있기에 가능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명상수행에서는 몸을 어떻게 볼까?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초기불교의 관점인데, 몸은 알아차림 명상의 대상이 된다. 몸은 관찰의 대상이다. 두 번째는 조사선에서 강조한 부분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어떠한 판단을 하지 않고, 대상을 그대로 수용하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우리는 항상 어떤 상태로 준비가 되어 있고, 물들여져 있지 않는가? 한 생각이 일어나면 온갖 물결이 폭풍처럼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한 생각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가 있을까?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행이 ‘위빠사나’이다. 위빠사나(Vipassanā)는 알려진 바처럼, 거리를 두고 대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이런 해석은 vi가 '떨어지다', '거리 두다'와 같은 의미를 가진 접두어이고, passana는
분명한 앎(知, sampajañña)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하는 질문이 들어왔다. 그것은 삼빠잔냐에는 ‘주의 깊은 관찰로서 형상이나 모양을 안다’는 개념이 없다는 반론이다. 이것은 필자와 조금 다른 견해이다. 삼빠잔냐가 ‘주의 깊은 관찰’과 연결되어 있음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형상이나 모양에 대한 앎이 없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가 없다. 이것을 확인을 위해서는 호흡명상을 기술하는 아래의 ‘염처경’의 사례를 다시 보자.분별있는 앎과 없는 앎서로가 무관하지 않아현실과 초월 함께할 때창조적 긴장관
위빠사나 명상수행의 경전적 근거는 ‘염처경(念處經)’이다. 여기서 ‘염처’란 ‘알아차림의 확립(satipatthana)’으로 번역된다. 어원적으로 보면 ‘sati’는 ‘알아차림’으로 ‘patthana’는 ‘확립’에 해당된다. ‘patthana’는 ‘다가가다’는 의미의 ‘pa’와 장소를 의미하는 ‘sthana’가 결합된 말로, 어떤 장소[處]로 다가간다는 의미이다. 알아차림의 확립(念處)이란 일차적으로는 몸(身), 느낌(受), 마음(心), 현상(法)과 같은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그 장소에 다가가서 ‘머물다’는 의
자애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사마타, 곧 집중명상에 포함된다. 자애로운 마음은 우리의 정서를 안정되게 하고, 안정된 마음에서 자애가 생겨난다. 이점은 마음이 고요하지 않는 경우를 보면 금방 이해할 수가 있다. 온통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대표적인 마음현상들은 불안, 분노, 슬픔과 같은 감정들이다. 일단 이것들이 몰려오고 화를 내면 몸과 마음이 크게 상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화를 낼 때 우리는 대부분 그곳에 이기심이 가로놓여 있음을 본다. 쉽게 말하면 내 뜻대로 되지 않기에 화가 난 것이다. 우리는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