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백마 탄 왕자님 꿈을 꾸는 소녀들이나 읽는 책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사실 이 작품을 소녀시절에 읽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그러다 이 작품을 마흔이 훌쩍 넘어서 다시 읽었습니다. 아, 그런데 뭔가 느낌이 왔습니다. 한 번 더 읽고 또 다시 읽고 나서 그때 무릎을 쳤습니다.“이 작품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 읽는 책이었구나.”주인공이 어린 왕자니까 어린이나 읽을 책이라고 사람들은 믿어버렸지만, 이 책은 어른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나는 이제 어른의 눈으로, 지천명의 시
세상을 살다보면 즐거움도 찾아오지만 언제나 시련 쪽이 더 힘이 셉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얼굴이 일그러지고, 내일의 설렘도 사라져 버리고, 그래서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가 징글맞을 정도가 되면 사람들은 깊은 절망에 사로잡혀버립니다.“답이 없어!”답이 없는 세상은 출구 없는 세상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그냥저냥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게 최고라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사는 세상을 참아야 하는 땅이란 뜻의 사바세계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입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참자, 참아야 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만 되어
열아홉 살 프레데릭은 아주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 첫눈에 호감을 느낍니다. 그녀의 이름은 카티. 두 살 위인 스물 한 살입니다. 두 사람은 그 나이의 청춘들이 그러하듯 스쳐 지나갔고, 그 후 아주 짧은 스침의 순간도 있었습니다.6년 쯤 흐른 어느 날, 스케치북을 옆구리에 끼고 거리를 걷던 프레데릭은 또 다시 카티를 만납니다. 그녀의 품에는 어린 아들이 안겨 있었고, 그녀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익히 짐작하던 터라 그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은 드문드문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소심하고 예민
우리 사는 세상, 참 빛보다도 빨리 변해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미적거리면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듯 모든 것이 기를 쓰고 내달리는 요즘, 나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이 현대인들에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과연 유효한가에 대한 의문이 일기 때문입니다. 늙음과 병은 돈만 있으면 가뿐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주장합니다. 죽음의 괴로움[死苦]을 말하려면, 그렇게 한 세상 잘 살다 가면 되는 거지 뭘 그리 욕심이 많아서 죽음까지 고민하려 드느냐는 반문이 돌아옵니다. 존재 자체에 드리우는 쇠락의 짙은 그림자는 어느
“이 아파트에 처음 입주한 사람들 말이에요. 이 동네 원주민들…. 수준이 너무 떨어져요. 지저분하고…. 아파트 값을 떨어뜨려도 유분수지. 그래도 이젠 좋아졌어. 그 원주민들이 다 나가고 새 사람들이 들어왔거든.”방배동에서 11억이 넘는 집에서 살다 왔다는 7층 아주머니의 푸념은 몇 년째 같습니다. 3층 빌라 단지를 허물고 들어선 새 고층 아파트에는 그 이름도 거룩한 ‘래미안’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습니다. 내가 이 동네 원주민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밝혔음에도 7층 아주머니의 ‘더럽고 수준 떨어지는 원주민’ 비
관 짜는 일흔살 노인 야코프평생 남의 죽음 돈으로 계산아내 관 값조차 손해로 여겨죽음을 앞두고 돌아보아도손해 본 이유만 가득한 인생이웃·아내 등 소중한 존재끝내 깨닫지 못한채 눈 감아유일한 취미였던 바이올린미워만하던 로실드에 남겨손익을 인생 잣대로 삼는 어리석은 인간 모습 대변 시골보다도 못한 소도시에 살고 있는 야코프 이바노프는 일흔 살 먹은 노인입니다.그는 관 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죽어야지만 그게 이익이 되는 직업이지요. 야코프 머리속에는 누가 언제 죽을 것인가 하는 계산만 가득 차 있습니다. 누군가 죽어줘야 하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이 연재를 기획하는 자리에서 오르한 파묵의 ‘아버지의 여행가방’을 첫 번째 글에 실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오르한 파묵은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작가입니다. 노벨문학상을 받는 작가는 수상연설을 해야 하는데, 세계적인 작가로서 위상을 굳히는 바로 그 자리에서의 연설에는 작가의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대체로 작가의 연설문 제목은 반인륜적이거나 반도덕적인 세상을 향한 일갈(一喝)의 단어가 들어 있거나, 혹은 자신의 문학관에 대한 깊은 성찰의 단어가 자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