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서 꽃이 터지고 있다. 사방에서 답지하는 강연 호출도 이즈음부터 본격화된다. 설렘 때문이리라. 나도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출장 중에 당장 차를 세우고 저 봄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넘친다. 암갈색 배경의 주변을 노란 빛깔로 채우고 있는 산수유 군락을 지나칠 때, 따스한 햇살 한껏 쏟아지는 벌판 어느 귀퉁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우윳빛 매화의 만개를 스쳐갈 때, 한낮을 밝히고 있는 별처럼 송이송이 피어나는 목련들의 군락을 마주할 때…, 나는 문득 차를 세우고 그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 속으로 들어가 하릴없이
저기 봄이 오고 있다. 남쪽에는 벌써 매화 소식 확연하고 내 오두막 뜰에도 매화 꽃봉오리 머잖아 터질 기세인데 종아리 근육이 파열된 사고로 나는 의도치 않게 도시에 갇히고 말았다. 도시 정원에서는 기껏해야 산수유 곁을 기웃거려보고 양지바른 자리에서 막 터지고 있는 매화 한 두 송이 곁을 맴도는 게 전부다. 도시가 다시 찾아든 저 봄을 대하는 예의라니.생태계는 우주까지 관계 맺고상호 작용하는 정교한 시스템이 인드라망 향연에 취하는게봄을 맞이하는 기본적인 예의발을 절뚝이며 걸었다. 인공 정원의 흔적을 피해 한적한 구석의 버려진 풀밭을
요즘 나는 자주 길을 나서고 있다. 겨울과 봄 사이, 간간이 눈 내리고 찬바람 가시지 않은 이즈음 추위를 이기고 피어나는 꽃들을 만나고 기록하기 위해서다. 최근 두어 차례 쏟아진 눈은 그래서 내게 무척 반가웠다. 눈 속에서 제 꽃 피우고 한기 속에서 그 꽃 지켜내는 생명들을 담기에 더 없이 좋은 상황이기 때문이다.찬바람 견디며 피어난 꽃들은고를 넘어선 용맹정진의 결과저마다 오직 지금을 살아갈뿐몇 번의 출타 끝에 어제 드디어 적갈색 얼룩의 포를 두르고 피어나는 눈 속의 ‘앉은부채’를 카메라에 담았다. 안성 어귀에서는 눈 속에서 샛노란
추위 속에서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이 있다. 집필 중인 책을 위해 올해는 그 꽃의 개화를 꼭 사진으로 담아두자 작정한 터였다. 우수를 몇 날 앞두고 ○○산에 그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당도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김 선생의 안내를 따라 겨울 숲을 함께 걸었다.한국에선 ‘복수초’로 알려져 있어이른 개화는 숙명 극복하는 방안저장한 온기로 곤충 이끌어 수정쇠박새와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떼들이 호르르 호르르 키 작은 나무들 위를 휘저으며 날고 있었다. 바람이 쉬는 덕분에 나무도 새도 우리도 소담한 눈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눈 속에서 먹이를 찾는
축적한 경영학 지식의 양이 꼭 경영자로서의 성패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자 중에는 경영학 학위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같은 맥락에서 경제지식의 다소가 부자와 빈자를 결정짓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 불교에 관한 지식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제 삶의 진짜 주인자리를 틀어쥘 수는 없을 것이다. 지식을 넘어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오늘 글에서는 숲을 참구하며 터득하게 된 나의 방법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자는 모든 타자에 대한 사랑비는 고통 동참하려는 마음실천 대상은 사람뿐 아니라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
나는 숲을 스승으로 삼고 그 속 생명들이 걷는 길을 참구(參究)하여 사람의 길을 살피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숲에도 법(法)이 있다. 조주(趙州) 스님 말씀하신 ‘뜰 앞에 잣나무(庭前柏樹子)’를 떠올려보자. 스님은 잣나무 한 그루에도 법이 깃들어 있음을 말씀하셨는데 하물며 무수한 생명들이 깃들고 뒤엉켜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순환을 반복하는 숲에는 얼마나 큰 법이 있겠는가? 알다시피 법(法)이라는 글자에는 물(水)이 흘러가는(去) 양상 속에 담긴 깊고 자연스러운 질서를 살핀 뜻이 담겨 있다. 숲이 펼쳐내는 생명들의 삶에도 거스를 수
새해 벽두 친한 벗이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태백산에 올랐소. 떠오르는 새 태양을 보며 우주를 주관하시는 그분께 이렇게 기도했소. ‘나와 내 가까운 사람들의 한 해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당신 아시죠? 내 가까운 사람 속에 당신 있는 것. 그분은 나의 기도를 들으셨을 겁니다. 그분의 보살핌 있어 병신년 한 해 그대 소망하는 것 모두 이루기 바랍니다.” 애정 가득한 그의 문자는 따뜻했고 고마웠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고맙소. 내 사랑하는 벗. 그런데 기도하지 말아요. 차라리 다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