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代轉輪三界主(만대전륜삼계주)雙林示寂幾千秋(쌍림시적기천추)眞身舍利今猶在(진신사리금유재)普使群生禮不休(보사군생예불휴)‘오랜 세월 불법의 수레를 굴린 삼계의 주인이 쌍림에서 열반한 이래 몇 천 년이 흘렀던가. 진신의 사리가 오히려 지금에도 있으니 널리 중생들의 예불이 멈추지 않게 하는구나.’ 자장(慈藏, 590~658)의 ‘불탑게(佛塔偈)’.옅은 갈색 가사의 승려가 두 손 모아 부처님에게 예를 올린다. 발걸음을 옮긴 그는 앞에 놓인 방석에 무릎을 대고 공양하듯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다가 고개 숙여 절한다. 다시 일어난 승려는 발걸음을
行年忽忽急如流(행년홀홀급여류)老色看看日上頭(노색간간일상두)只此一身非我有(지차일신비아유)休休身外更何求(휴휴신외갱하구)‘살아온 나이가 어느새 물결처럼 빨라져 늙은 빛이 이제 날마다 머리 위로 올라오네. 다만 이 한 몸도 내 소유가 아닐진대 그만두게나 이 몸 외에 다시 무엇을 구하겠나.’혜심(慧諶, 1178~1234)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게송(息心偈)’.아마도 그림처럼 청량한 날이지 않았을까. 그 어느날, 한 선비가 조심스레 그림을 펼쳐서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마치 뒷맛 좋은 햇차를 마셨을 때처럼 그는 그림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
虛負光陰眞可惜(허부광음진가석)世間人老是非中(세간인로시비중)不如端坐蒲團上(불여단좌포단상)勤做工夫繼祖風(근주공부계조풍)‘헛되이 세월을 저버리는 것은 진실로 애석한데 세상 사람들은 시비 속에 늙어가는구나. 부들방석 위에 단정하게 앉아 부지런히 공부하여 조사들의 풍을 이음만 못하네그려.’ 선수(善修, 1543~1615)의 ‘경세(警世)’.기괴하다. 그러나 아름답다.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선들로 이루어진 암석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그것은 마치 달마 내면에 응축되었던 정신이 분출된 것처럼 보인다. 달마를 바깥세상과 단절시킨 기괴한 암석은 아
學道先須究聖經(학도선수구성경)聖經只在我心頭(성경지재아심두)驀然踏著家中路(맥연답착가중로)回首長空落雁秋(회수장공낙안추)도를 배움은 마땅히 불경 공부가 먼저이니 불경은 다만 내 마음에 있다네. 문득 집 안의 길을 밟아 딛고 높고 먼 하늘로 고개 돌리니 기러기 내려앉는 가을이로다. 지엄(智儼, 1464~1534)의 ‘희준 선덕에게 주다(贈曦峻禪德)’.가을밤의 달빛은 영롱하다. 산속 수행자들에게 맑고 찬란한 그 빛은 등불과 같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등불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해진다. 여물어가는 풀벌레들의 기분 좋은
臨溪濯我足(임계탁아족)看山淸我目(간산청아목)不夢閑榮辱(불몽한영욕)此外更何求(차외갱하구)‘냇가에서 내 발을 씻고 산 보며 내 눈 맑게 하네. 한낱 영욕 꿈꾸지 않으니 이 밖에 다시 무얼 구하겠는가.’ 혜심(慧諶, 1178~1234)의 ‘산에서 노닐다(遊山)’.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여름빛 한껏 머금은 쨍한 녹색의 나뭇잎들이 제각기 화장한다. 안토시아닌의 붉은색, 카로틴의 등색, 크산토필의 투명한 노랑색. 저마다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탈바꿈한다. 탁 트인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장관에 모두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단풍놀이의 절정은 냇
十年林下坐觀空(십년임하좌관공)了得心空法亦空(료득심공법역공)心法俱空猶未極(심법구공유미극)俱空空後始眞空(구공공후시진공)‘십 년간 숲 아래 앉아 공을 보매 텅 빈 마음 깨달으니 법 또한 텅 비었구나. 마음과 법 모두 비어도 오히려 끝이 아니니 모두 빈 것마저 비워야 비로소 진공이로다.’ 유일(有一, 1720~1799)의 ‘추월대사의 세 개의 공(空)자 시에서 차운하다(次秋月大師三空字)’.방온(龐蘊, ?~808)이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묻는다. “만법(萬法)과 짝이 되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이 그
去來無非道(거래무비도)執放都是禪(집방도시선)春風芳草岸(춘풍방초안)伸脚打閒眠(신각타한면)‘가고 옴에 도가 아님이 없고 잡고 놓음이 모두 선이구나. 봄바람에 향기로운 풀 언덕에서 다리 쭉 뻗어 한가로이 낮잠 자네.’ 치익(致益, 1862~1942)의 ‘홀로 읊다(自吟)’.참 달고 맛있는 낮잠이었나 보다. 따사로운 봄볕 내리쬐는 어느 날, 낮잠 즐긴 포대화상이 기지개를 켠다. 낮잠의 행복만큼 팔은 쫙 늘어지고 다리는 쭉 뻗어있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듯 크게 입 벌린 하품은 마냥 통쾌하기만 하다. 절로 따라서 하품하고 싶지 않은
飢來喫飯倦來眠(기래끽반권래면)只此修行玄更玄(지차수행현갱현)說與世人渾不信(설여세인혼불신)却從心外覓金仙(각종심외멱금선)‘배가 고파오면 밥 먹고 피곤 오면 잠을 자니 다만 이 수행은 그윽하고 더욱 그윽하다. 세상 사람에게 알려줘도 모두 믿지 않고 도리어 마음 밖 따라 부처를 찾는구나.’ 해안(海眼, 1567~?)의 ‘고시를 본떠 짓다 2수(擬古二首)’.한 선승이 있다. 본래 이름도, 나이도, 출신 내력도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푸젠성의 민천(閩川) 일대에서 살았다. 조그만 절집인 백마묘(白馬廟)에서 지전(紙錢)을 덮고 자다가 배가 고프
随時水草活渠身(수시수초활거신)純浄何曾染一塵(순정하증염일진)苗稼自然都不犯(묘가자연도불범)収来放去已由人(수래방거이유인)‘그때그때 수초로 그 몸을 길러, 순수하고 청정하니 언제 티끌 한 점에 물든 적이 있었던가. 볏모는 자연스레 범하지 않으니, 묶어놓고 놓아주는 것이 이미 마음대로 되는구나.’잇산 이치네(一山一寧, 1247~1317)의 ‘목우도에 찬하다(牧牛圖贊)’.늦여름의 해가 진다. 잔잔한 석조(夕潮)가 출렁이고 물안개가 저 멀리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세월 담긴 얼룩이 마냥 홍시빛 물든 석양 같지 않은가. 꾸밈없는 자연의 소박한 정경
坐石看雲閑意思(좌석간운한의사)朝陽補衲靜工夫(조양보납정공부)有人問我西來意(유인문아서래의)盡把家私說向渠(진파가사설향거)‘암석에 앉아 구름 바라보며 한가로이 생각하고 아침볕에 가사를 기우며 면밀히 공부하네. 어떤 이가 나에게 서쪽에서 온 뜻을 물어보면 내 가진 것 모두 쥐여 주고 큰 스승에게 가라고 알려주리라.’ 석옥청공(石屋淸珙, 1272~1352)의 ‘산에서 지내다(山居)’ 중.고적한 산속이다. 굽디 굽은 소나무 둥치에 앉은 스님이 청량한 솔 그늘과 맑은 개울 소리를 벗 삼아 가사(袈裟)를 깁는다. 높게 든 오른손을 보니 이미 실 맨
入雪忘勞斷臂求(입설망로단비구)覓心無處始心休(멱심무처시심휴)後來安坐平懷者(후래안좌평회자)粉骨亡身未足酬(분골망신미족수)눈 속에서 괴로움 잊고 팔 끊어 구하니/ 마음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비로소 마음 편하구나.훗날 편안히 앉아 평온한 마음을 누리는 이여/ 뼈를 부수고 몸을 잊어도 보답하기에는 모자라네.‘전법보기(傳法寶記)’ 중에서.달마와 신광(神光, 487~593)의 대화가 오간다.“그대는 눈 속에서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가?”“감로의 문을 열어 이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해주소서.”“어찌 작은 공덕과 교만한 마음으로 참다운 법을 바라는 것인
千峰突兀攙白雲(천봉돌올참백운)一水潺湲瀉蒼石(일수잔원사창석)自然聞見甚分明(자연문견심분명)爲報諸人休外覓(위보제인휴외멱)‘일천 봉우리 우뚝 솟아 흰 구름을 찌르고 한줄기 물은 조용히 잔잔히 흘러 푸른 바위에 쏟아지네. 자연스레 듣고 봄이 매우 분명하니 모든 사람을 위해 알리노니 밖에서 찾지 말게나.’ 충지(沖止, 1226~1292)의 ‘게송을 지어 여러 스님에게 보이다(作偈示諸德)’.“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네(雲在靑天水在甁).”선사의 한 마디가 산의 적막을 깬다. 고요한 산기슭 큰 소나무 아래에서 나이 든 선사와 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