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논리의 그물이다. 수많은 법은 서로 모순이 되지 않도록 촘촘한 논리의 그물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논리이다. 법정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 무기는 사실(증거)과 논리이다. 사실들을 논리라는 실로 짜 상대방이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을 짠다. 예를 들어 알리바이란 ‘같은 사람이 동시에 두 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 경전에서는 그런 일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설사 신앙심이 깊은 판사일지라도 그런 일은 용납하지 않는다.(그런 주장을 하다가
수학에는 공리라는 게 있다. 증명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 기초해 수많은 수학적 진리를 도출해 낸다. 예를 들어 ‘삼각형의 각 변의 이등분점과 맞은편 꼭짓점을 연결하는 3개의 선들은 한 점에서 만난다’가 있다. 사람들이 종교에 빠질 때 교리를 공부한다. 의문이 생길 때 경전을 찾으면 답이 나온다. 깊은 산속에서 약초를 만나듯이, 경전의 숲속에서 답을 만난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다른 사람들이 한 증명을 보거나 이미 증명된 정리를 참조하는 것과 같다. 기가 막히게 해결이 된다. 그래도 답답하면 기도를 하면 된다. 하지만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은 수천 년 동안 서양에서 성경 다음으로 베스트셀러였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은 5개밖에 안 되는 공리(증명을 하지 않고 진리로 받아들이는 명제들. 예를 들어, 두 점을 잇는 직선이 존재한다)를 바탕으로 논리만 이용해서 수천수만의 정리(수학적 진리)를 유도해 낸다. 유클리드의 방법은 우주적인 진리를 도출해내는 경이이다. 그의 고향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보다도 더 오래 인류에게 빛을 비추어 주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은 논리력을 기르는 탁월한 도구이다. 수천 년 동안 서양인들의 두뇌를 개발했다. 링컨은 유클리드의 기
사람들은 물리학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작 물리학자 본인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물리학이란 물리적인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이론은, 절대적인 이론도 아니고 영원히 최선의 이론도 아니고, 지금까지 얻은 이론 중에서 가장 나은 이론일 뿐이다. 더 나은 이론이 나오면 현재의 이론은 조금도 미련 없이 버린다. 또, 큰 틀에서는 맞는 이론도 작은 틀에서는 끝없이 개선이 이루어진다. 즉 기존의 방정식에 그걸 보정하기 위한 오차 항이 붙는다. 오차 항이 얼마나 더 붙을지는 아
사람들은 1미터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자로 재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미터는 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1000분의 1밀리 정도 차이가 날 수 있다. 자의 눈금에는 폭이 있으므로 그 폭의 어느 지점까지가 1미터인지도 모호하다. 같은 자라도 온도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하므로, 순간순간 길이가 달라진다. 온도를 지정한다 해도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바로 그 온도는 또 어떻게 만드나? 자 공장에는 표준 자가 있고 그걸 기준으로 삼아 자를 찍어낸다. 그리고 공장의 표준 자는 나라의 자를 기준으로 만든다. 옛날에는 나라에 표준 도량 용
불교에는 진제(眞諦)와 속제(俗諦)가 있다. 진제는 궁극 진리이고, 속제는 얼핏 진리이다. 모든 것이 무아(無我)라는 것은 진제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주체인 아(我)가 있다는 것은 속제이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아(我)가 있다. 불교는 무아라는 것을 가르치지만 범인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자기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불교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유이고, 이름난 고승들도 잘못 이해하기 쉬운
동양에는 수에 대한 신비한 이야기가 떠돌지만 사실은 수학이 아니다. 산수일 뿐이다. 동양종교 신비주의자들이 이걸 수학이라고 하는 것은, ‘엄지공주와 개구리 왕자’ 같은 동화를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동급으로 치는 것과 같다.서양에는 일찍이 수학이 발달했다. 이미 기원전 500년경에 기하학이 발달했다. 플라톤은 자신이 꿈꾼 이상국가인 공화국에서 필수로 배워야 하는 것으로 수학과 철학을 들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지극히 기하학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천체
사람들은 수에 우주의 신비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깊은 종교적 수행을 하면 수의 신비를 깨달아 우주의 진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종교계에는 수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간단한 산수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산가지[算木]를 이용하지 않고도 큰 수를 사칙연산(四則演算)한다는 등의 이야기 정도이다.현대 수학은 범인들에게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다년간 훈련을 쌓지 않는 한 수학용어조차 이해하기가 힘들다. 종교경전에는 수학이 나타나지도 않거니와, 수에 대한 깨달음도 없다. 수학을 깨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