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은 오뚝이처럼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 나는지라 일명 ‘부도옹(不倒翁)’이라 불린다. ‘탑(塔)과 부도(浮屠), 세월의 흔적’이란 주제로 글을 써야 하는데 난 어떤 경우에도 거꾸러지지 않는 ‘무봉탑(無縫塔) 혹은 부도탑(不倒塔)’을 써 볼 작정이다.벽암록 18칙에는 남양혜충 국사가 입적할 때 당의 숙종 황제에게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을 만들어 줄 것을 간청하는 선문답이 전해진다. 숙종 황제가 혜충국사에게 “국사께서 입적한 뒤에 필요한 물건이 무엇입니까?”물으니 “노승을 위해서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을
명산대찰에 가면 으레 그 도량에 걸맞은 탑이 있다. 그 가운데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시대 유행했던 팔각 다층탑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탑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내가 월정사로 출가했을 때, 마당 가운데 아름답고 웅장하게 서 있던 탑을 잊지 못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는 탑신, 바람이 불 때마다 팔각의 옥개석 끝에 매달려 짤랑대는 수많은 풍경소리, 그리고 파릇파릇 피어있는 기단의 이끼들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탑 앞에는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있는 약왕보살좌상이 있었다. 오랜 세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영웅이고 도반이며, 선지식이자 부처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영웅이자 도반이며, 선지식과 부처님은 누구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나의 아버님과 어머님은 나의 영원한 스승이자 선지식이며, 또한 나만의 부처입니다. 그 모진 세월을 오직 자식 잘 되기를 바라며 온갖 고초를 다 겪으셨으니까요.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은 나의 오랜 도반이자 스승입니다.대학시절 함께한 거봉, 영조, 동관은 나의 영원한 도반이자 스승입니
수행의 여정에 있어서 스승과 도반은 공부의 전부다. 행자시절 틈틈이 읽었던 큰스님들의 수행담에 반해 머리가득 환상으로 시작한 나의 지리산 토굴생활은, 스승과 도반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스승과 도반을 찾아 나섰다. 스님 중에 제일 큰스님이라는 성철 스님이 계시는 곳이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수행도량이라는 해인사승가대학(강원)에 가기로 했다. 그 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면 은사 스님이 버선발로 마중을 나올 정도라는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선택한 것이다.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그 해 이른 봄이었
차는 그 마음이 연꽃과 같다. 연꽃 향기는 만리(萬里)를 퍼져가지만 그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고 향기롭듯이 차향 또한 그러하다. 맑은 차향은 내 몸과 마음에 남아 오래도록 함께한다. 그리고 정신을 맑게 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니 그런 까닭에 차와 선이 둘이 아닌 ‘다선일미(茶禪一味)’라고 말하는 것이리라.무릇 한 물건은 그 주인을 닮아가는 법이니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과 사람의 삼재(三才)를 고루 잘 갖추어야 비로소 명품이 되는 것이다. 미당 서정주의 ‘국화꽃’이나 장석주의 ‘대추 한 알’, 그리고 김춘수의 ‘꽃
하루 일과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 아침 공양 후 산책을 마치고 조용히 차 한 잔을 하는 시간이다. 웬만큼 급한 일이 아니면 이 시간에 약속을 잡지 않는다. 이때만큼이라도 오롯이 혼자 있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는 다구는 간단하다. 보이차를 마실 때 필요한 다탁은 옹기 가게에서 산 작은 단지 뚜껑이다. 다관 받치는 납작한 돌은 오래 전 영월 동강에 갔다가 주워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관은 20년이 넘었다. 서울 ‘수도승(首都僧)’ 시절 인사동 노점상에서 2만원 주고 산 것이다.그리고 찻잔, 이 찻잔은 사연이
1993년 12월 말경, 첫새벽을 뚫고 충남 예산에 있는 수덕사 일주문을 통해 출가를 하는 이가 있었다. 생애 가장 ‘위대한 포기’이자 ‘탁월한 선택’이란 걸 그땐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무언가 새로운 길과 희망, 그리고 깨달음의 섬광을 훔쳐 본 듯했다. 말없이 선 그때의 그 일주문은 나를 기억이나 할까 모르겠다.일주문은 세상과 청산, 승과 속을 가르는 경계이자 상징이라고 할 것이다. 어느 곳이 옳은가 묻지는 마라, 봄 광명 이르는 곳마다 꽃피지 아니한 곳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출가 전 대학시절 영축산 통도사에 들렀다가 강원 사
간밤에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솜이불을 덮고 있었다. 차들도 다닐 수 없게 되자 절로 올라오는 길은 인적이 끊겼다. 저 멀리 마을 쪽에서 까만 점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일주문이 모처럼 늦잠을 자고 있다가 두런두런 말소리에 눈을 떴다. 오늘은 기도 회향일, 부처님께 올릴 떡과 공양미를 머리에 이고 오는 신도님들이었다. 모두 먼 길을 걸어 오셨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리는 눈을 피해 일주문 아래에 잠시 앉으셨다.“아이고, 뭔 눈이 이리도 온대? 차가 올라가질 못하니 다리가 아파 죽겠네. 하기사 내가 젊었을 땐 이 길을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