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에서 “교문은 오직 한 마음 법을 전하고, 선문은 오직 견성하는 법을 전한다”고 했다. ‘육조단경(종보본)’에서 “말로 통하고 마음으로 통하니 해가 허공에 있는 것과 같다. 오직 견성의 법을 전하니 세상에 나가 삿된 주장을 파한다”고 했고, 황벽희운은 ‘완릉록’과 ‘전심법요’에서 “마음이 곧 부처이다. 위로는 제불에 이르고 아래로는 춘하추동의 사계절에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생명의 움직임까지 신령하게 다 불성이 있다. 한 마음의 본체가 같아서 달마가 인도로부터 와서 오직 ‘한 마음’법을 전한 것은 바로 일체중생을 가리켜 본래
“내가 한 마디 하자면, 생각을 끊고 인연을 잊어라. 홀로 단정하게 일 없이 앉으니 봄이 와서 풀은 저절로 푸르다.” 이 본문 내용은 ‘원오어록’에서 명찬(明瓚, 8세기)화상이 “내가 한 마디 하자면, 생각을 끊고 인연을 잊는 것은 공교한 말로 증득할 수 없고 단지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경덕전등록’의 ‘남악나찬화상가’에서 “홀로 단정히 앉아 있으니 일도 없고 고쳐서 바꿀 것도 없다. 일이 없는데 왜 한 단락을 논하겠으며 마음이 흐트러짐이 없는데 다른 일을 끊을 필요가 없다. 과거는 이미 과거이고 미래는 아예 생각
5장 ‘선교일치’에 이어, 6장에서는 ‘선교의 차이’를 밝힌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붓다가 꽃을 들어 보인 소식(염화미소)’도 교학의 자취가 될 것이고, 마음에서 증득하면 ‘추언세어(麤言細語)’가 모두 ‘교설 외에 별도로 전하는’ 선종의 뜻이 될 것이다”라고 한 본론은 ‘이심전심’의 법이라고 해도 그 말에 집착한다면 이미 선종의 뜻이 아니며 선이란 삼라만상의 일체 법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추언세어’란 ‘전등록’에서 “총명한 사람들은 선종과 유교경전을 모두 알고 지혜로 분별하는 것은 천한지식으로 추언이다”라고
5장에서는 세존의 선법과 교법이 같고 다름을 설한다.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三處傳心)은 선종의 뜻이 되고, 일생동안 설하신 것은 교설이다. 선(참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설은 부처님의 말씀이다.”서산대사가 해석하였다. “‘세 곳’은 ‘다자탑(多子塔)’에서 자리를 반으로 나눈 것이 첫째이고,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잡아 든 것이 두 번째며,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 관에서 발을 보이신 것이 세 번째이다. 가섭이 별도로 전한 선의 등불을 말한다. ‘일대’란 49년 동안 설하신 오교(5敎)이다. 첫째 인천교(人
4장의 본문은 “굳이 여러 가지 이름과 글자로 혹은 마음 혹은 부처 혹은 중생이라고 하지만 이름 따라서 분별할 수 없는 것이다. 당체가 바로 이것이다. 한 생각이라도 움직이면 곧 어긋난다”이다. 이 내용은 ‘60권 화엄경16 야마천궁보살설게품’에서 “마음은 마치 화가와 같이 여러 가지 색수상행식(몸과 마음의 작용)을 그려낸다.…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이다. ‘황벽(?~850)선사의 ‘전심법요’에서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생이 오직 이 하나의 마음이니 다시 다른 법이 없다. 이 마음은 아주 먼 과거로부터 생
3장에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는 방편법을 시설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다양한 근기가 있기 때문에 (법을)시설하는데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를 “법이란 한 물건이요, 사람이란 중생이다. 법은 변하지 않는 것(不變)과 인연을 따르는 것(隨緣)의 뜻이 있다. 사람은 문득 깨달음(頓悟)과 점차로 수행함(漸修)의 근기가 있기 때문에 문자와 언어로 설법해야 한다. 말하자면 ‘관공서의 일(官)이라면 바늘도 허용할 수 없으나 개인의 일(私)은 마차와 수레도 통한다’라고 한다
선의 근원은 ‘한 물건, ○’으로 표현하는데, 생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모양을 그릴 수 없는 본체라고 했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선의 작용을 설하니,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바람이 없는 데에 풍랑이 일어난 것이다”라고 한다. ‘금강경 25장 분별없는 교화’에서 “아상과 법상이 끊어져 집착이 없는 근원에서는 중생도 없고 제도하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즉, 선에서 작용은 둘이 없다는 말이다.서산의 해석은 “부처님과 조사는 세존과 가섭이다. 세상에 출현하신다는 것은 대자대비를 체로 하여 중생을 제
‘선가귀감’ 한 장의 문장 구조는 본문, 해석, 예시, 게송의 형식이다. 처음 본문(本文)을 설하고, 해석한 후에 선어록으로 밝히고 게송으로 요약하였다. 제 1장 본문에서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 한 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생한 것도 아니고 소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고 해석하시길,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일원상을 그리시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응연한 하나의 동그라미 모양. 석가모니도 오히려 몰랐는데, 어떻게 가섭이 전하랴.’ 이것이 한 물
‘선가귀감’은 조선시대 서산대사 휴정(休淨, 1520~1604)이 50여 권의 경전과 조사어록에서 요긴한 것을 모아 1564년에 저술한 선불교의 지침서이다. 선사는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출생했다. 성은 최(崔)씨이고, 이름은 여신(汝信), 아명은 운학(雲鶴), 법명은 휴정(休靜)이며, 묘향산(妙香山)에 주석하였기에 서산대사(西山大師)라고 한다. 18세에 경상남도 화개골 원통암에서 숭인장로(崇仁長老)에게 출가하고, 21세에 수계 했다.수계 후 8년 만에 마을을 지나가다가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머리는 세어도 마음은 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