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안동을 가장 한국적인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20년 전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안동을 찾았다. 그 당시 모든 안동 시민들은 영국 여왕의 방문을 환영하였다고 한다. 특히 하회마을 주민들은 여왕을 위하여 전통적인 상차림으로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였고, 황소에 쟁기를 매어 밭갈이를 시연하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금년 5월, 여왕의 아들인 앤드류 왕자가 이곳을 방문하여 20년 전 여왕의 행로를 되돌아보았다. 안동은 마천루가 하늘을 찌르는 서울과는 도시 형태가 많이 달라 시내 곳곳에 한
조계총림 송광사가 총림(叢林)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근현대자료 특별전이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송광사 성보박물관은 12월29일까지 관내 전시실에서 ‘조계총림 설립 50주년 기념-송광사 근현대자료 특별전’을 연다. 특별전에는 19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송광사 근현대 100년의 역사가 담긴 유물과 자료 150여점이 소개된다. 신라 말 혜린 스님이 창건한 송광사는 승보종찰로서 지눌 스님 등 고려 16국사를 비롯해 효봉, 구산 스님 등 수많은 선지식들을 배출했다. 조계종은 이곳을 1969년 선원과 강원, 율원 등을 갖춘 종합수행
월하 스님은 근현대 한국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불교정화운동과 1970년대 조계사·개운사 갈등, 1994년‧1998년 종단사태 등 근현대 한국불교사를 관통하는 주요사건 때마다 그 중심에 있었다. 총무원장과 종정을 역임하며 종단의 정점에 서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시련과 도전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스님의 삶은 파란만장했던 한국불교사와 궤를 같이한다. 월하 스님은 1915년 4월9일 충남 부여군 군수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집 근처에 있던 고란사를 다니며 불연을 맺었고, 스님들의 일상을 동경하며 발심했다. 19세 되
‘가야산의 정진불’ ‘가야산의 대쪽’ ‘공부하다 죽어라’로 널리 알려진 조계종 전 종정 혜암성관 스님(1920~2001)의 삶과 사상을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열렸다.(사)혜암선사문화진흥회(이사장 성법 스님)는 4월20·21일 합천 해인사 보경당에서 혜암대종사 탄신 100주년기념 제2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지난 2014년 4월16일 서울 동국대에서 제1회 학술대회를 연 지 꼭 5년만이다.조계종 원로의장 세민 스님,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혜암선사문화진흥회 이사장 성법 스님, 해인사 주지 향적 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 400여
근현대불교연구 권위자이자 불교구술사 개척자인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가 최근 ‘고승 연구와 불교 구술사’(전자불전 제20집)를 통해 자신이 20년간 진행해왔던 구술사 작업에 대한 정리를 비롯해 불교구술사 현황, 문제점, 모순 해소 방법, 전망 등을 제시했다. 또 불교사 연구 자료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대안으로 구술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이를 위해선 불교 구술사연구소, 학회, 포럼 등 필요성을 역설했다.구술사(oral history)는 개인이 기억하는 과거사건과 행위, 그에 대한 해석을 면접과 육성구술을 통해 기록화 하는 사료
기획시리즈와 심층보도로 불교지성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법보신문이 올해도 다채로운 연재를 마련했다. 스님, 학자, 작가, 사회활동가, 예술인 등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저명인사들이 필진으로 나선다.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은 통찰력을 갖춘 필진들의 연재는 올해에도 법보신문 독자들의 안목을 크게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교학 관련 연재는 현진 스님의 ‘어원으로 보는 불교’, 법장 스님의 ‘지범개차’, 강병균 교수의 ‘불교와 수학’이 신설됐다.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현진 스님은 인도 푸나대학에서 8년간 범어와 팔리어를 전공한 불전언어 전
2019년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의 폭압에 항거하기 위해 지역과 계층을 초월한 저항, 근대 민족의식 성장의 기폭제, 대한민국의 법통을 세운 출발점 등 3‧1운동이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사건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한국불교계에 있어서 3‧1운동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근현대불교사에서 항일독립운동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그것의 의미는 어떠한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불교계 항일운동의 자취를 남기고 기억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몇몇 인물들이다.불교계 항일독립운동이라 했을 때 전제되어야 할 것은
정화불사를 이끌며 조계종 출범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던 경산 스님의 평전 ‘청정 율사 경산 스님의 삶과 가르침’ 봉정법회가 봉행됐다.12월11일 동국대 정각원에서 열린 이 자리에는 조계종 원로의원 종하, 총무원장 원행, 동국대 이사장 자광, 총장 보광 스님을 비롯해 경산 스님 문도스님 등 사부대중 200여명이 동참했다. 원로의원 종하 스님은 발간사에서 “일제 치하 이 땅에 오셔서 한국불교의 정체성 회복과 종단 안정, 도제 양성의 큰 기틀을 다진 경산 스님의 가르침을 다시 만나게 돼 기쁘다”며 “스님의 가르침이 종단 내외에 다시 큰 울
“역사가 요구하고 불보살이 증명하는 불사만을 하겠다”며 정화 현장을 지켰고, “정화가 완성되고 종단이 안정되는 날 산사의 평범한 수행자로 돌아갈 것”을 다짐하며 걸망을 풀지 않았던 스님이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다짐처럼 불법홍포와 불교중흥만을 고민하며 살았기에 훗날 스님이 입적했을 때 대중들은 ‘정화의 선봉으로 교단정립에 초석이었던 스님’ ‘종단 중흥의 원력보살’로 기억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비구·대처의 갈등이 첨예한 시점에 등장해 통합종단 출범에 있어 산파 역할을 하고, 정화를 이끌며 근현대한국불교사에서 큰 족적을
독립운동가, 학자, 수행자, 정치인, 교육자로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던(1897~1981) 백성욱 박사를 조명하는 첫 세미나가 열린다.만해학회(회장 김광식)는 7월27일 오후 1시 서울 신사동 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만해 한용운과 백성욱’을 주제로 제18회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만해 스님의 제자였던 백성욱 박사는 14살 때 봉국사로 출가해 경성 중앙학림을 졸업하고 3·1운동을 전후해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파리 보배 고등학교, 남독일 벌쓰부르그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1925년 10월 ‘불교순전철학’으로 한국 최초의 독
경산 스님은 1967년 조계종 종정 청담 스님과의 갈등으로 총무원장에서 물러난 뒤 모든 소임을 내려놓고 그길로 서울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에 들어가 6년여간 두문불출했다. 당시 천축사 무문관은 수좌스님들이 사활을 걸고 용맹정진하던 수행처였다. 천축사는 1965년 12월 관응·정영·현구·석영(제선) 스님 등이 ‘6년 결사’를 시작하면서 무문관을 열었다. 서옹 스님이 초대 조실을 맡아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무문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많은 스님들이 세속과 절연한 채 오로지 화두 하나에 매달렸다. 1967년 총무원장 물러난 뒤천축사 무문
기획시리즈와 심층보도로 불교지성문화를 선도해온 법보신문이 올해도 다채로운 연재를 준비했다. 스님, 학자, 작가, 사회활동가 등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저명인사들이 필진으로 나선다.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은 통찰력을 갖춘 필진들의 연재는 법보신문 독자들의 안목을 크게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한국수행전통 오롯이 담긴신라 의상조사 법성게 강설불교교리 명상심리로 풀이동서양 미술 걸작품 비교테마 있는 절터 얘기 신설초기·해외여성 수행담 소개교학 관련 연재인 동국대 명예교수 해주 스님의 ‘법성게 강설’은 해주 스님이 젊은 시절부터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