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사불수행을 열심히 정진하면 어떠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A : 모든 수행의 덕목들이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최상승의 결론은 돈오 돈수와 같은 한 생각 일으키지 않고 형상도 없는 그러한 깨달음이지만 좀더 우리 중생의 현실에 반증하여 굳이 논한다면 육근 청정의 과정들로 분명한 다섯 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깊은 마음 집중(참선)을 통한 청정한 마음의 안정입니다. 사불 하고자 하는 부처님의 상호를 앞에 두시고 깊은 침묵으로 마음에 받아들이는 마음 집중(사불관법)은 각자의 마음속에 어떠한 혼탁함도 서서히 청정 수심으로 정화하니 저절로 마음은 고요하고 맑아져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 명쾌한 판단력이 살아나고 그 안에서 밝은 지혜가
Q : 사불수행은 간화선이나 사경, 절수행등의 다른 수행법과 다른 어떠한 특징이 있습니까? 다른 수행과 병행할 수도 있는지요? A : 모든 수행은 끝없는 정화의 단계입니다. 그렇게 맑아진 수행의 결과는 돈오돈수, 삼매, 확철대오 등과 같은 단어로 표현 됩니다. 그러나 그 단어는 그저 단어 일뿐 더할 수 없이 고요하고 한 생각도 티끌한점 끄달리지 않는 그 마음은 말로 다할 수없는 그 이상이겠지요. 우리 수행의 모든 목표는 바로 그곳입니다. 그러니 같은 목표를 가진 어떠한 수행과도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사불수행만의 독특한 점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발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잘 통찰하여 기도와 발원의 대상을 잡는 단계입니다. 대상을 찾을 때는 사불수행에 식견이 있
Q : 사경수행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사불수행에 대해서는 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사불수행이라고 하면 부처님을 그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단순히 펜글씨 쓰듯이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불이 수행이 되기 위해서는 수행 효과나 방법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도대체 사불수행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세요. A : 사불수행은 번뇌와 망상을 부처님의 장엄 형상(莊嚴形相)을 통하여 일시에 날려버리는 수행법이며 형상의 선(線)을 통하여 마음에 공한 선(禪)을 이루는 수행입니다. 이제 동백꽃 붉은 꽃잎이 흰눈 속에 살포시 고개를 듭니다 이 겨울 삵 바람이 잠잠하면 아름다운 동백의 자태는 지속될 것이며 밝은 달빛도 검은 구름이 걷혀야 더욱 밝게 비치듯이 우리네 마음도 진여 본성을
Q: 일상 속에서도 호흡은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지금부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찰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A: 몸이 다 사라져서 감각이나 호흡이 거의 없는 상태라도 미세한 들숨날숨의 사이에 틈이 있습니다. 그 틈을 더 면밀히 관찰하셔야 합니다. 틈이 점점 커져서 무한히 커지게 되고 마음이 고요하고 맑은 상태가 지속 되어 가면 선정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정을 닦아가 이런 마음의 움직임이 일상생활에서도 이어지면 동정일여로 가는 것입니다. 선정 속에서 명료한 의식상태의 앎만 남아 있다면 그 앎을 관찰 대상으로 삼아 관찰해 갈 수 있습니다. 선정이 깊어지면 선정을 의지해 지혜를 계발해야합니다. 선정을 얻기 위해 진언을 외우거나 관상수행 같은 것 자체로는 우리 마음의 근본적인 무지를 없
Q: 일상 속에서 걸을 때나 산행할 때는 어떻게 수행합니까? A: 산행할 때 다리가 아프면 마음의 손으로 그 부위를 쓰다듬어 주면 아픈 부위가 사라지고 다리가 가벼워집니다. 숨이 가쁘고 가슴이 터질 듯할 때 심장 부위를 마음의 손으로 쓰다듬어 주면 몸 상태가 진정됩니다. 행선을 하다 보면 직관의 힘도 키울 수 있는데, 이것은 초보상태에서도 가능하지만 행선이 익혀진 상태에서 하면 더 좋습니다. 시선을 똑 바로 앞을 향해 두고 걸으며 동시에 온몸의 움직임을 눈앞의 사물을 보듯이 놓치지 않고 항상 관해야 합니다. 여기서 온몸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발의 움직임부터 살펴봅니다. 그러다가 온몸이 한눈에 들어오면 그 움직임을 보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몸에서 특히 힘이 들어가 있
Q: 행선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좀 가르쳐 주세요. A: 자비수관에서의 행선은 걸으면서 관찰하는 것인데, 걸을 때의 발바닥과 땅바닥이 접촉되는 감각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다리를 들 때의 감각, 나아가고 놓을 때의 감각이 모두 다르다는 것, 이 과정에서 모든 감각이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조건에 의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행선은 좌선과 달리 눈을 뜬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발바닥을 관찰하는 것이므로 주의집중의 힘을 키우는데 효과적입니다. 초심자 때는 행선하면서 눈에 보이는 외부대상에 자꾸 시선을 빼앗기느라 발바닥 관찰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의식이 다른 곳에 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발바닥으로 의식을 돌리면 됩니다. 행선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보다 의도를 알
Q : 무기공에 빠진다는 것은 어떤 상태인지요?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 머물고자 하는것이 무기에 빠진다는 것인가요? A : 몸의 현상을 관찰하여 감각이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면 몸의 형상이 사라진 것인지 먼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 몸의 현상이 사라졌다면 몸과 관련되는 심리들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며 이는 몸삼매 현상으로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일어납니다. 만일 몸의 형상이 모두 사라져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그 상태에 머물고자한다면 아마 무기공(無記空)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때는 다시 관찰대상을 찾아야합니다. 그래야만이 의식이 깨어나고 무기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무기공이란 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무지
Q : 자비수관의 목적은 삼법인을 깨치기 위한 초기 수행이라 하는데요, 위와 같은 경지를 깨침이 대승의 궁극 목표인 자성청정을 깨닫기 위한 목표(즉, 성불)와 그 깊이에 있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겁니다. 왜냐면 삼법인의 진리 (혹은 사법인 포함해서)가 사실 불교의 전체이며, 궁극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초기수행이라는 삼법인을 깨치기 위한 목표에 자비수관의 출발점을 둔다는 의미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A : 좋은 질문입니다. 어떠한 수행을 하더라도 체험현상은 삼법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상·고·무아가 깨달음의 통로이자 깨달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삼법인을 통해 깨어있음의 정도를 즉, 그 깊이를 따진다면 그것은 얼마나, 어떻게 수행정진을 했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또한 어느 차원
사람은 매순간 보고 듣고 접촉하는 모든 것들을 저장시킵니다. 이러한 것들이 망상이 되는데 수행하기 전에는 우리의 의식이 온통 외부대상에 쏠려있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지만, 수행을 하게 되면 외부에 빼앗겼던 마음이 내부로 고요히 돌려지면서 오히려 더 많이 더 자주 생각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우선 망상을 올바로 이해하게 되면 망상에 빠지지 않게 하는 반조의 힘이 생깁니다. 첫째, 망상은 관찰대상입니다. 둘째, 망상은 주객이 상대해 있을 때 생깁니다. 셋째, 주객의 상대에서 생기므로 망상의 속성은 잠시 머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망상을 없애고자 하지 말며 또한 없애지 않을 생각도 하지 말아야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망상을 없애려는 의도가 그 망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Q : 감각이란 접촉으로부터 오는 것이라 하셨고, 몸관찰 또한 자비손을 통한 접촉으로부터 나오는 감각을 느끼는 것이라면 여기서 몸관찰과 감각관찰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감각관찰에 들어가려 하니 문득 그 차이가 궁금해져서요. 감각관찰 하는 방법에 대해서 강의 받은 내용을 다시 찾아보겠지만, 자세한 것을 잘 모르니 구체적으로 좀 알려 주십시오. A : 몸 관찰은 몸의 흙·물·불·바람·허공의 5대 관찰입니다. 5대 관찰은 우리 몸은 단일체가 아니라 5대의 원소가 화합한 것이어서 언젠가는 흩어지므로 몸이란 이름에 불과할 뿐 실재하지 않음을 파악하게 하여 몸이 있다는 유신견을 없애주며, 5대의 현상은 심리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몸은 마음의 현상일 뿐 그 본질은 삼법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상을 받아
Q : 자비손을 썼을 때 몸에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땐 몸이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이라 했습니다. 제 경우는 아무 반응이 없긴 하지만 시각적으로 몸의 형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라진 건지 아닌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눈에 몸의 모습이 보이질 않으니 몸이 사라진다는 느낌을 어떻게 받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부분적이지만 몸이 사라지는 느낌이 있어서 알았지만 지금 아무 반응이 없다는 것은 몸 전체가 사라진 것인가요? 처음에 몇 번 했을 때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몸이 불붙듯이 뜨거워진다든지, 바람이 빠져나간다든지, 몸이 팽창한다든지 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부분적으로 몸사라지는 현상을 느껴 보긴 했는데 지금은 아무런 반응이 없어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몸전체가 사라진 것이 맞습니까? A : 몸
Q : 지난 2개월 동안 거의 매일 아침 20~30분정도 자비면화수 수행을 하고 있는데 최근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1) 내 몸이 작은 개미들로 구성된 것처럼 자비손이 내 몸에 닿으면 수많은 개미들이 사라지면서 몸의 일부도 사라집니다. 2) 뱃속에 있는 뱀이 정수리를 통해서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자비손으로 막아보기도 했는데 밖으로 나가게 하면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3) 자비손이 지나는 자리에 구더기가 보이기도 하고 살갗이 벗겨지기도 합니다. 4) 내 얼굴이 관세음보살상으로 바뀌기도 하고 가슴과 배는 반가사유상이 되기도 하며 해골로 변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러한 현상들이 무엇인지요? 혹 무엇을 보고자 하는 내 마음이 조작해서 보는 것은 아닌지 심히 궁금합니다. A : 자비손을 몸에 접촉했
자비수관 수행을 하다보면 열이 나는 것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 좌선 할 때 얼굴에 땀이 계속 흐르고 엉덩이가 아프고 몸과 마음에 자비손이 지나갈 때 몸이 어리어리한 느낌이 들고 몸이 편안할 때도 있을 것이고, 처음에 몸이 가볍고 편안하더니 엉덩이가 무겁고 얼굴이 팽팽하게 당기는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자비손이 가는 곳마다 따뜻하면서 몸에서 열이 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구토가 나려고 하다가 가슴 아래 머물면서 답답했다가 좌선이 끝날 때는 속이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더러는 마음에 서러움이 자주 생기는 분도 있습니다. 반대로 고요하고 편안할 때도 있는데, 이렇게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꺼지고 하다보면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할지, 아니면 알아차림을 해
정념으로 몸과 마음의 현상을 관찰하는 것은 대소승 모두 같습니다. 정념을 관하는 지혜라고 종경록에서 설하듯이 대상에 정념하는 것이 곧 관(觀)입니다. 정념은 주의집중, 불망(不忘), 자각, 알아차림, 마음챙김, 깨어있음이라고 합니다. 알아차림의 뜻은 대상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는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과거나 미래로 왔다갔다하는 마음을 현재 이 순간에 깨어있게 합니다. 그리고 감각이든 영상이든 선악의 생각이든 어떤 현상이든 감정과 생각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미부여하여 다른 것과 결부시키지도 않습니다. 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물을 볼 때 보는 주체가 없이 봄만 있게 되며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보고 듣는다는 ‘내’가 들어있으면
자비수관(慈悲手觀)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연민에서 시작합니다. 자비의 마음은 5대와 서로 상응하고 융합하여 몸 기운를 일신시키고 마음을 빠르게 안정시킵니다. 자비의 사랑(慈)이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 연민심(悲)은 상대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입니다. 손 또한 그 기능이 (물건을) 주고 받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자비심과 손은 닮은꼴입니다. 그래서 자비심을 몸에게 전달하는 도구로써 마음의 손 즉, 의식을 자비심으로 형상화한 자비손이 필요합니다. 첫째, 상상력으로 손을 만드는 것 자체가 고도의 집중력이 생기게 하며 관찰하는 힘도 극대화시킵니다. 둘째, 고도의 집중력은 체험시간을 아주 빠르게 단축시킵니다. 셋째, 자비손은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는 기억들을 현재의식에 떠오르도록 유도합니다. 모든 과거기억과 영상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괴로움을 야기 시키는 번뇌망상(감정과 생각)이 일어나는 과정에 대하여 알더라도 그 번뇌의 근원이나 원인을 모르면 나무의 뿌리는 그대로 둔 채 잎과 가지만을 논하는 꼴과 같습니다. 감정과 생각은 주관(의식)이 객관(법)과 접촉해야 일어납니다. 객관은 흙·물·불·바람의 4대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영상이나 개념, 기억, 감정, 생각 등을 이루는 재료입니다. 4대로 이루어진 대상들은 이 4대 기운이 결합하여 물질로 존속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흙은 자만심, 물은 분노, 불은 탐욕, 바람의 기운은 시기질투를 일으키게 하는 근본인자이며 여기에 갖가지 부차적인 심리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원각경 보안보살장에서 설하기를 ‘4대가 모여 몸을 이루고 이 몸의 4대의 기운이 모여 마음을 형성한
“생전에 대접을 못 받았는데 우리들의 역사적 사실을 남기는 기념관을 건립해서 대접해 준다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오줌주머니 차고 누운 할머니와 자식도 못 알아보는 분들이 계신 이 마당에 기념관이 중요합니까, 요양시설이 필요합니까?” 강일출, 김군자, 이옥선 씨 등 나눔의 집(원장 원행 스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10명은 25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문요양시설 건립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자회견에는 한국정신대연구소 이성순 소장을 비롯해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대표, 지구촌공생회 이남재 사무총장 등 20여 명이 동참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2001년부터 건립을 추진한 전문요양시설이 환경정책법 등으로 4년 째 난항을 겪
좌선시에는 몸에 힘을 다 빼고 가장 편안한 자세를 잡으시면 됩니다. 몸을 관찰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관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자비손은 마음의 손이므로 자기 손이나 어머니 손이나 관세음보살님 손을 상상해서 아주 부드러운 손으로 연상하시면 됩니다. 정수리나 발끝에서 시작해서 온 몸 구석구석 빠뜨리지 말고 자비손으로 쓰다듬어주되, 통증이 심할 경우 내 몸에 대한 연민심을 가득 담아 접촉해 보세요. 정수리나 발끝 등 시작한 곳에서 끝내는 것을 한 번으로 해서 좌선시간은 짧게는 30분에서 1시간 2시간, 각자의 조건에 맞게 하시면 됩니다. 자비손은 5대 각각의 성질을 활용한 5가지의 손이 있습니다. 자비면화수(흙), 자비감로수(물), 자비태양수(불), 자비풍력수(바람), 자비허공수(허공)인데, 자세한
자비수관(慈悲手觀)은 재가자를 위한 수행법으로써, 몸과 마음의 관찰을 통해 존재의 본질인 연기적 삶을 회복해나가는 불교수행으로 언제 어디서나 수행할 수 있습니다. 자비수관은 자비손의 자비심과 정렴(正念)의 알아차림이라는 관찰수단을 통하여 몸을 관찰함으로써 마음을 깨쳐가는 수행입니다. 이 수행은 자비손의 자비심으로 5대(흙·물·불·바람·허공)의 생명 에너지를 활성화하고 활성화되는 5대의 현상을 정념으로 관찰하여 삼법인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을 체득하게 되며 그 지혜로써 조작하는 의식의 활동이 사라지면서 무상(無相), 무원(無願), 공(空)의 삼해탈문에 들어서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비심입니다, 연기의 다른 표현인 자비심을 마음의 손에 가득 담아 내 몸에 전달함으로써 분노
Q : 염불절수행이 왜 필요한지, 시대적 요청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A :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부처님 정법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심어 주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나태하고 무기력한 한국불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한국불교는 침체의 나락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 줄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설령 안다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너무나 미약한 실정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현상 유지는 커녕 고사(枯死)하고 말 절박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불교가 아무리 진리의 종교라 하더라도 진리를 담아내야 할 도구가 부실하고 이를 관리 유지해야할 사람들의 정법수호 정신이 부실할 때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마는 법입니다. 이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