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친일 논리 벗어나‘근대성’ 주목한 첫 논문 1904년 서대문을 지나는 전차의 모습. 최근 학계의 근대 담론에 있어서 불교는 항상 마이너리그로 치부돼 왔다. 하지만 이 시대에 불교는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주장이 김상현 교수에 의해 제기됐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근대를 전공하는 학자들에게 있어서 초미의 관심사는 바로 ‘근대성(modernity)’이었다. 역사학계에서는 근대성이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내재적 발전론이 제기됐고, 사회학계에서는 개항과 함께 근대가 시작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그 논의에서 불교는 항상 제외되는 영역이었다. 친일불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불교사 연구는 근대불교 연구에 대한 기피로
1959년 만덕사 시절의 동산 스님(사진 가운데). 사진에는 월탄, 월복, 명선 스님이 보인다. 사진은 명선 스님이 보관하고 있다. 동산 대종사의 사상, 수행가풍을 전승하고 있는 동산문도회의 1대 상좌 스님들과 원로 스님들이 동산 스님과 함께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했던 당시의 기억들을 회고한 소중한 기록이다. 조금씩 희마해져가는 50여년 전의 기억들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되짚어가며 일일이 풀어 쓴 이 기록은 그 면면이 한국불교역사의 소중한 순간들이다. 특히 이 책은 용성 스님의 상수제자로 용성 스님의 법과 율맥을 이어받고 1954년부터 1962년까지 전개된 불교정화 운동의 최일선에 서있던 동산 스님에 대해 일반대중도 이해하기 쉽도록 개괄적이고 쉽게 풀어 쓰고 있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명진)는 3월 22일 오후 4시 동국대 행정대학원 첨단강의실에서 제1차 통일정책포럼을 개최한다. ‘시대를 보는 눈, 한반도에 진정 화해의 봄바람이 부는가’라는 주제로 열리는 통일정책포럼은 동국대 고유한 교수와 국민대 정창현 교수의 발제를 시작으로 민족공동체추진본부 김희택, 김광식 정책기획의원의 토론 순으로 진행된다. 02)720-0531
1919년 중국 상해에서 12명 승려 이름으로 발표“7000명 승려 피로써 독립투쟁하겠다” 내용 담겨 선언서 작성자 놓고 백초월·신상원 등 의견‘분분’ 1919년 11월 15일 중국 상해에서 발표된 대한승려연합회의 독립선언서. (사진제공=민족사) 「대한승려연합회 독립선언서」는 1919년 11월 15일자 중국 상해에서 12명의 승려 이름으로 발표된 독립선언서이다. 이 선언서는 1969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굴했다. 당시 국사편찬위원회에 있었지만 후에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던 임영정은 1970년 3월 15일자 현재 「불교신문」의 전신인「대한불교」 신문에 이 선언서의 입수 경위와 발견의 의의를 소개하였다. 그가 소개한 내용은 이러하다. 이 선언서는 1
“불교를 깊이 연구하려면 우선 학자부터 불교적인 마인드를 가져합니다. 신앙과 수행, 스님, 불교의 체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연구하며 느낀 것입니다. 15년 전과 비교해보면 불교와 수행, 스님들에 대해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근대불교사의 자료 수집을 위해 전국을 좁다하고 찾아다니기로 유명한 부지런한 학자 김광식 박사가 12월 18일 본지 ‘한국불교 명저 100년’ 강좌 세 번째 초청 강연자로 법보신문 문화강의실을 찾았다. 김 박사는 ‘근대 불교의 개괄’이라는 제목으로 1시간여 동안 근대 불교를 되짚어보는 열띤 강연을 펼친 뒤 『한국 근대불교사 연구(1998 민족사 간)』에 대해 수강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고려시대불교를 전공한 제가 20년 전에 운 좋게 천안 독립기념관에 연구원으로
이기영 추모학술대회 불연 이기영 선생의 10주기를 추모하는 학술대회가 11월 3일 동국대 덕암세미나실에서 열린다. 이 학술대회에는 이민용, 정병조, 조성택, 이태승 등 그의 제자들과 김상현, 김성철 등 후배 교수들, 그리고 서래대학 총장 랭카스터, UCLA 버스웰, 류고쿠대 아라마끼 등 그와 교유했던 외국인 학자들이 대거 참석해 이기영 교수의 업적과 한국불교학의 연구성과들을 논의한다. 근현대불교사 학술회의 (재)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은 11월 2일 오후 2시 서울 타워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한국 근현대 불교사 연구의 동향과 과제’를 주제로 제2회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김혜경 성신여대 강사가 ‘일제의 불교정책’을, 김경집 동국대 강사가 ‘일제 침략기 불교계의 대중화 및 개혁운동’을, 이덕진 창원전
일제하 최초의 수좌대회를 기록한 회의록이 발견됐다.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소장 현종 스님) 불교사연구위원이자 상임연구원인 김광식 박사는 최근 인사동 모처에서 발견한 ‘조선불교선종수좌대회회록’을 9월 6일 공개했다. 조선불교선종수좌대회는 1935년 서울 선학원에서 열린 수좌대회로 당시 「매일신보」와 「동아일보」 및 선학원 소식지인 「선원」 등에 이 대회 개최를 알리는 기사가 남아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대회의 정확한 진행과정과 목적, 결과 등은 알려지지 않아 연구대상으로 남아있던 부분이다. 김 박사는 “이 회록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 하에서도 수좌들은 선수행의 전통을 지키며 독립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 “수좌 대회를 통해 선종 종파의 독립을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효당은 해방 그날까지 독립운동 전개”항일로 외적 독립-차로 내적 독립 추구 8월 1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된 효당 스님 추모학술대회. 만해와 함께 만당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 명성학교를 세운 민족교육자, 한국의 차도를 재건한 차인, 제헌국회 국회의원 최범술 스님. 일제 식민지와 독재 정권을 절망에 빠진 민족과 스스로에게 빛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한 명의 위인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수식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의 삶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등장했으니 바로 친일승려라는 호칭이 그것이다. 임혜봉 스님은 1993년 『친일불교론』, 2005년 『친일승려 108인』에서 효당 최범술 스님을 친일 승려 중의 한 사람으로 지목한 바 있다. 8
장수 죽림정사(조실 도문 스님)는 6월 3일 용성 조사 탄신을 기념하는 제143회 봉찬법회를 봉행했다. 대흥 스님을 비롯한 원두, 보광, 법륜, 환희, 보승, 혜근 스님 등 30여명의 문도 및 제자 스님들과 김상두 전 장수군수, 장재영 군수, 장수군 불자회 한국희 회장, 대각사상연구원 김광식 교수, 백용성조사유훈실현후원회 한명옥 회장 등 용성 조사의 가르침을 기리는 불사에 수희 동참하고 있는 200여명의 사부대중이 동참, 용성 조사의 법덕을 되새겼다. 조실 도문 스님은 “용성 조사께서 143년 전 이 땅에 나투신 것은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 누리에 전해 인류를 무명의 어둠 속에서 구원하고자 함이었다”고 설한 뒤 “용성 조사의 대각 사상을 깊이 새기고 받들어 겨레와 세계의 만중생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오대산으로 들어가 입적할 때까지 27년 동안 산문 밖을 출입하지 않았던 한암 스님은 과연 어떤 스승이었을까. 지난 날 한암 스님(1876∼1951) 회상에서 수행했던 스님과 재가불자 25명이 한암 스님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증언한 내용을 담은 수행일화집 『그리운 스승 한암 스님』이 도서출판 민족사에서 출간됐다. 『그리운 스승 한암 스님』은 불교사학자 김광식 씨가 범룡 스님을 비롯해 도원, 보경, 화산, 도견, 설산, 천운, 무여 스님 등 한암 스님 회상에서 수행했던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스님의 수행과 생전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
정태혁 등 “정권 업은 비구들 교권 쟁탈” 김광식 등 “日 잔재 청산-승단청정 계승” 20세기 한국불교사에서 최대의 사건으로 꼽히는 이른바 ‘비구·대처승간의 분규’.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로 비롯된 이 분규는 기존 교단 집행부였던 ‘대처측’과 불교정화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이에 맞섰던 ‘비구측’간의 치열한 투쟁으로 17여 년 간 지속됐다. 이 과정에서 사찰 내에서 폭력배들간의 잔인한 폭력이 발생하는가 하면 불교내부의 문제가 법정다툼으로 이어지면서 한국불교의 위상에 커다란 손실을 입혔다. 결국 1970년 대처측이 세운 태고종이 새로운 종단으로 등록되면서 오랫동안 지속돼 온 ‘비구·대처승간의 분규’는 마침내 끝을 맺었다. 그러나 이 분규를 두고 승자인 조계종은 ‘정화(淨化)’로, 패자인 태고
성철 스님은 해방 이후 한국불교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단연 손꼽힌다. 스스로 산승이기를 자처하며 현실사회와 정치에 대해 침묵했지만 근현대 큰스님들 가운데 성철 스님만큼 일반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드물다. 또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성철 스님의 영향으로 참선, 절, 주력 수행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성철 스님은 한국불교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분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돈오돈수론에 국한돼 왔던 게 사실이다. 또 스님은 독립투사도 아니었고, 반독재에 맞선 투사도 아니었으며, 민중운동가도 아니었기에 몰역사적 선승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출간된 『퇴옹성철의 깨달음과 수행』(예문서원)은 성철 스님의 수행정신과 사상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첫 연구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