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벌써부터 우리 불교계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이른바 ‘대운하’ 착공을 강행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번지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당초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당선인이 선거공약으로 내걸면서 격렬한 찬반토론이 벌어졌다. 환경시민단체, 문화계, 불교계에서는 즉각 대운하 계획을 ‘나라의 장래를 망치는 대재앙’으로 규정하고 대운하 공약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인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다시 힘을 얻어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대운하 공사 강행의 뜻을 분명히 함으로써 불교계는 사실상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 1월 3일 문화재청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으로 수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때마다 불거진 교회 등 종교 투표소 문제를 적극 개선하겠다고 한다. “그 동안 불교계와 시민들의 의견을 검토해 시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변명으로 일관해 왔던 선관위가 1월 10일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의 항의 공문에 대한 답신을 통해 “종교시설 투표소가 다른 종교인들과 일반 유권자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에 인식을 함께 한다”며 “오는 4월 9일 실시할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투표소를 신규로 설치하거나 위치를 변경할 경우 교회 등 종교시설 내 설치를 자제할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표명해 왔다. 선관위의 이러한 변화는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알다시피 그 동안 선거를 할 때마다, 특히 교회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선거를 할 경우 개신교를
진각복지재단은 종교와 사상 그리고 이념에 관계없이 소외된 이웃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전하는 것은 물론 현세정화를 원력으로 삼아 첫 발을 내 디딘지 10년 만에 참다운 불교복지의 모델을 구축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그야말로 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복지서비스의 영역을 다변화하는데 성공했고, 지역사회와 계층에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시설을 36곳이나 운영하는 굴지의 복지재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진각종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해온 진각복지재단은 노인요양원, 종합사회복지관, 일자리 지원센터, 장애인시설, 청소년복지시설, 어린이집 등의 시설에 이어 스리랑카에 해외지부를 설립하면서 해외로 복지 영역을 넓히며 불교복지의 세계일화를 향한 발
새해 벽두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메아리친다. 여기서 ‘복’은 기쁨, 즐거움, 행복과 같은 의미를 지니지만 이 단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서 쓰지는 않는다. 지난해의 우울함과 어두웠던 마음을 툭툭 털고 일어나 막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전해주기 딱 좋은 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정말 특별한 한 해가 될 거란 확신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한데 그 덕담이 그대로 들어맞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말을 듣자마자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되돌려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복이란 원래 좀체 다가오지 않는 것이니 상호 이를 복창함으로써 어떻게든 그것을 불러들이겠다는 자기암시의 몸짓이라고 할까. 아무튼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있으니 이 말에 시비를 걸 수는 없을 것
“스님, 스님. 이것 좀 보세요. 별일이네요.”우리 절 한 보살님이 내 앞에 불쑥 신문을 내밀었다. 「법보신문」이었다. 평소에는 비교적 꼼꼼히 신문을 보는 편이지만, 요 며칠 많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번 주에 도착한 신문을 이제껏 보지 못했던 터라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어 보살님이 펼쳐 보인 지면에 서둘러 눈을 돌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문 지면에 ‘성모 마리아’ 품에 안겨 있는 ‘아기 예수’의 그림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는 것이었다. 신도 교육과 포교를 주목적의 하나로 삼고 있는 불교계 전문 신문에서 이웃 종교의 ‘성화’로 불리는 그림이 보이다니 보살님 말대로 ‘별일’이었다. 지면을 펼쳐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보니 비교종교학자로 이름 높은 오강남 교수님이 인류 역사에 등장한 여러 종교들의
최근 문화재청이 경부운하 예정지 주변 500m 이내에 국보 제6호 중원탑평리칠층석탑을 비롯한 지정문화재 72개소와 매장문화재 177개소가 분포돼 있다고 밝히면서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중국의 동북공정보다 더한 문화유산 파괴 사업이라며 백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불교계 역시 피해가 예상되는 문화재 가운데 불교관련 문화재가 15%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부운하 사업 백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서서히 본격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현 시점에서 불교계 전체적으로는 경부운하 사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 어떤 종교보다 자연친화적 환경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불교계 입장에서는 ‘어떠한 개발도 친환경적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사패산
“하늘 아래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천 냉동 창고 화재로 숨진 중국동포 출신 7명이 일가족으로 확인 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2000년 한국에 들어와 2006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강태순·순녀 씨 자매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숨진 중국동포 출신 조동명 씨와 박정애 씨는 강태순 씨의 아들과 며느리이며 숨진 박용호 씨는 순녀 씨의 남편이고, 박영식 씨는 순녀 씨의 아들로 확인됐다. 이들은 낯선 한국생활에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서 일자리를 찾다가 한꺼번에 같은 공장에서 일하게 됐고 결국 그들의 코리안 드림은 한 순간에 불에 탔던 것이다. 일가족이, 그것도 조국의 품에서 꿈을 꾸며 일하다 숨졌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욱 크리라. 우리 사회에서 그 어느 때 부터인가 산업 현장에서, 특히 3D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직도 이 말이 유효할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학과 기술의 빠른 발전과 국제사회관계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누군가 백 년이란 시간을 두고 ‘국가교육정책’을 세우려 한다면 그것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변(變)’과 함께 ‘불변(不變)’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상호 모순 같지만 그렇지 않다. 변화란 불변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실현하는 방편이며, 불변이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그 항상성을 유지하게끔 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부의 교육정책 구상은 변화를 강조한다. 그 구체적 대안
10년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정권이 민주개혁세력에서 신보수세력으로 넘어갔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48.7%의 득표율로 26.1%를 얻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에게 역대 대선 중 최다 득표차로 승리를 했다. 과연 이명박 당선인의 압도적 승리일까? 이번 대선의 투표율은 63.0%로 1987년 이후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따라서 이명박 당선인을 지지한 48.7%는 전체 국민의 30.7% 정도이다. 이회창 후보의 득표까지 합친 범보수 지지율은 63.8%로 전체 국민의 40.2% 정도이다. 신보수세력을 국민이 선택했지만 국민 열 사람 가운데 여섯 명 내지 일곱 명은 이명박 당선인이나 보수정권의 수립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명박 정부는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신보수세력이 승리할 수 있었던 가
“남에게 예속되는 것은 모두가 고통이니라. 스스로 자기의 주인 되는 것은 즐거우니라.” -우다나 우리는 시계에 의해 표시되는 시간의 흐름을 일정한 것으로 인식하고, 이 흐름에 비추어 어떤 것은 빨리 움직이고 어떤 것은 천천히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동일한 시간의 단위에 그 물체가 이동하는 거리가 보다 더 많다거나 보다 더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 1년이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임의로 시계 바늘을 빨리 돌린다고 1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1년이란 지구가 자신의 궤도를 따라 태양을 한 바퀴 회전하는 것인데 시계를 빨리 돌린다고 지구의 공전이 빨리 진행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2008년. 우리는 한해를 보내고 또다시 새해를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조계종이 올해 슬로건으로 ‘포살의 생활화, 수행하는 종단’을 내걸고 포살법회가 정착할 수 있도록 주력하겠다고 밝힌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불교계가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것도 따지고 보면 출가자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는 파계 행위에서 비롯됐음은 자명한 일이다. 7세기 당나라 도선율사가 당시 타락한 불교계를 향해 “슬프다! 말법 시대에는, 비구 비구니가 머리를 깎고 가사는 둘렀으나, 오히려 탐·진·치를 가까이 하는구나. 우바새, 우바이를 유혹해 부정한 짓을 하니 겉으로는 오계를 부르짖지만, 진실로 한 가지도 갖추지 못했구나”라고 통탄했던 당시 현실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이런 이유로 낯 뜨거운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지계정신의 회복이 무너져 내리는 불교의 위상을
1월 15일은 성도재일이다. 이날은 부처님이 왕궁에서 누렸던 부귀영화를 모두 버리고 설산으로 들어가 6년간의 치열한 수행 끝에 마침내 보리수나무 아래서 정각을 이룬 날이다. 마치 예수가 부활을 통해 신의 아들임을 입증했듯, 인간 싯다르타는 완전한 무상각을 이뤄 붓다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경전에서는 이날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오랜 기간 고행으로 극도로 쇠약하신 몸을 이끌고 ‘네란자라’ 강을 이르러 목욕한신 뒤 ‘수자타’ 소녀로부터 유미죽을 얻어 드시고, 붓다가야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에 앉으시면서 ‘내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결심하고 깊은 선정에 드신 지 꼭 7일째에 새벽별을 보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어, 위대하신 성자 붓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