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진 스님울산 정토사 주지 한 차례 추위 이후론 입동이 지났는데도 따뜻한 날이 지속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우리가 사는 세상은 대통령 선거를 40여일 남겨두고 나온 이회창 씨의 출마 선언으로 요동치고 있다. 각 당이나 이해관계가 얽힌 진영은 더욱 분주해졌다. 이러한 때에 출가 수행자이자, 한 사람의 불자이기도 한 필자는 조용하지만 간절한 바람을 전 불자들에게 피력하고자 한다. 얼마 전 조선일보 사장이 총무원장 스님을 방문하고 그간의 보도에 대해 해명하고 다시는 왜곡보도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돌아갔다. 사필귀정이다. 그러나 그러한 보도의 빌미를 제공한 교계내부의 갈등이나 이를 해결하려는 잘못된 방법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대중공사를 벌여 참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효 림 스님실천승가회 공동대표 종단의 지도자들이 국민들과 그리고 전 불자들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조선일보 구독 거부운동이 그것이다. 시작할 때는 마치 큰 전쟁을 치룰 것처럼 조계종뿐만이 아니고 불교계의 제 종단이 모인 종단협의회까지 동참했는데, 그만 국민들과 불교도들과의 약속을 가볍게 취소하고 말았다. 이것으로서 불교계는 다시 한 번 지조도 없고 배알도 없는 집단이 되고 말았다. 조선일보의 가치만 높여주었고, 그들에게 통쾌한 승리만 안겨 주었다. 향후 조선일보와 여러 언론들은 불교계를 더욱 가볍게 취급 할 것이다. 아니 불교계를 어떻게 다루면 된다는 학습을 시켜 주었다. 몇 달 동안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던 신정아 사건은 불교계의 일부 인사들이 자신들의 당파이익을 위해서 사건을 키우고 스스로
장로와 야단법석, 장로(長老)는 지혜와 덕이 높고 법랍이 많은 비구를 통칭하는 말이고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야외에서 크게 베푸는 설법의 자리를 일컫는 불교 용어이다. 그런데 이 용어들은 현재 본래의 좋은 뜻과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장로는 기독교를 먼저 떠올리게 하고 야단법석은 많은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떠드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두 용어가 본래의 뜻을 잃어가는 변천사야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 불자들이 불교 용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11월 5일 열린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정기회에서 공론화 된 싸구려 중국산, 동남아산 불상의 무차별 유입은 국내 불상 문화와 관련 산업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심각했다. 불교 용어가 그 본래의 진면목을 잃은 것과 같이 앞으로 몇 해만
최근 조계종 중앙종회의 ‘불기 사용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주경)’의 불기 문제 논의과정에서 조사위원으로 위촉된 동국대 조준호 박사가 “올해 불기는 2551년이 맞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동국대에서 ‘인도불교사’와 붓다의 생애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김미숙 박사가 본지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김 박사는 기고문을 통해 “WFB의 불기는 세계 각 나라와 단체들이 최우선적으로 기준 삼고 있는 불기”라며 “더구나 서구 국가에서 불교도가 늘어나고 있는 현대에 그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 가고 있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이어 “현 시점에서 WFB의 불기 산정법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라며 “WFB는 불기 산정에 있어 남방 전승을 따르고 있고, 특히 인도의 태음력을 산정 기준으로 삼고
태고종 총무원이 한국불교전통문화전승관 건립 비용 마련을 위해 한 사찰을 담보로 설정한데 이어 결국 해당 사찰을 교회 신도에게 매각한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창건주 스님이 삼보정재의 유실을 우려해 종단에 무상증여한 사찰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불자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결국 창건주 스님이 삼보정재를 지키려했던 선행은 안타깝게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고 말았다. 물론 태고종 어느 스님의 말처럼 사찰을 매각한 대금을 특정 개인이 착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사건을 무마하려는 총무원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태고종 총무원은 사찰을 주지나 총무원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사유재산 정도로 여기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불교에서 법회가 이루어지고
주 영 운행원문화재단 이사장 신문 펼치기가 두렵고 텔레비전 쳐다보기가 가슴 떨립니다. 누군들 살면서 잘못 하는 일이 없고, 누구들 살면서 원한 지는 일이 없겠습니까. 그러니 잘못이 드러나 질책을 받기도 하고 때론 망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 며칠사이 불교계에 관해 전해지는 소식들을 들을라치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부풀려진 것인지를 따지기도 싫을 만큼 눈살이 찌푸려질 뿐입니다. 더욱이 출가한 스님들 사이의 다툼과 힘겨루기가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성속을 구분없이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속이 성을 걱정한다’는 어떤 논객의 표현이 헛말이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교단내의 다툼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닙니다. 부처님 재세시에도 승단 내에 사소한 오해가 일어 패거리가 형성되고 다툼이 일었
이 기 화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있는 가을 잎들의 아름다운 색조가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 뒤로 가을 하늘은 더욱 멀고 아득하게 보인다. 올 여름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끝없이 비가 내렸고 가혹한 태풍이 왔고 더위 또한 극성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를 오탁악세(五濁惡世)라고 한다. 그중 겁탁(劫濁)은 외부의 환경적 요인이 탁해져 우리가 고통을 받는 것을 말한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폭염, 태풍, 홍수 등 각종 기상재해가 이런 것들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이러한 고통들로부터 해방된 어떤 청정하고 아름다운 환경, 즉 정토(淨土)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토는 우주 어디에 있을까? 불교가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해탈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불교는 우리
문경 봉암사 결사란 무엇인가. 1947년 청담, 성철, 향곡, 자운, 월산 스님 등 당시 20~30대의 젊은 수좌 30여명이 봉암사에 모여 암울한 일제 식민지 불교의 잔재를 정화하고 면면이 전해 내려온 수행 가풍과 전통을 복원하자는 결사가 아니었던가. 젊은 수좌들은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었고 이러한 결사를 실천하면서 한국 불교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1만 대중은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지난 10월 19일 봉암사에 결집, 60년 전 젊은 수좌들이 그러했듯이 ‘부처님 법대로 살아가자’며 대중의 뜻을 모아 발원하고 실천을 다짐했다. 가짜 박사 신정아 사건과 이로 인해 빚어진 온갖 추문 그리고, 교구본사 주지 선거와 연관돼 있는 비리 사건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었던 지라 결사 60주년을 기념하는 대
심한 폭행으로 아이들은 상해를 입고 입원을 했는가 하면 강제로 성인 한 끼 식사량의 3배를 먹이는 등 상습적으로 아동학대를 했다고 한다. 여기에 “아이들을 잘 돌보아 달라”며 후원자들이 정성을 다해 보낸 후원금마저도 자신의 돈 인냥 마구 써댔다고 한다. 출가자 신분인 둥지청소년의집 원장의 이러한 범법 행위는 충격을 주는 선을 넘어 공분을 사기에 충분할 정도다. 그 수법을 들여다보면 출가 수행자가 ‘과연 그랬을까’라며 되물을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다. 알다시피 둥지청소년의집은 부모나 보호자가 없어서 오갈 곳이 없는 4~18세의 어린이와 청소년 64명이 생활하는 교계의 대표적인 아동보육시설이다. 원생들에게는 마지막 의지처이자,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힘없는 원생들의 인권을 유린한 것도 모자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유고로 국가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가 3만 2000여명의 병력을 동원, 사찰과 법당을 군화발로 짓밟고 스님들을 개 끌듯이 연행해 갔던 1980년 10월 27일의 법난이 치밀한 계획 아래 자행된 만행이었음이 다시금 확인됐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10월 25일 “조계종이 신군부에 비우호적이 것이 법난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불교계 비리와 자체 정화 능력 부족으로 각종 투서가 난무해 할 수 없이 불교정화 차원에서 법난을 일으켰다는 신군부의 그동안의 주장은 파렴치한 거짓말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불교계는 법난으로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청정한 수행자는 하루아침에 파렴치한으로 몰리고, 불교는 종교 타락의 전형이 돼 전 국민적인 지탄의 대상이
청아 스님대전 자광사 주지 작금의 한국불교는 총체적 난국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어 도대체 어디서부터 그 해법을 찾아야하는지 막막한 상태이다. 부끄러움도 아픔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 하는 가히 뇌사상태라 할 수 있겠다. 1600년의 한국불교를 현재의 이러한 상태로 만든 책임론보다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자주 발생될지가 오히려 더욱 큰 걱정으로 다가 온다. 마치 부모나 스승의 임종을 지켜보는 심정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불법의 지혜가 이 땅에서 다시 꽃피어오도록 불자들은 모두 마음과 지혜를 모우고 아픔과 고통을 나누어 그 해법을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 먼저 이러한 총체적 난국을 냉철하게 진단하여야 한다. 바른 진단에 의하여 바른 치료가 도출될 수
수경 스님화계사 주지 청명청명 가을 하늘마저 눈물겹다. 생명평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보노라면 그 모든 것들이 참으로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다. 종교는 종교대로 그러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 등 그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더구나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두 기둥을 무참하게 쓰러트리는 불교계의 추악한 모습들은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통 받는 중생들을 위해 관음의 천수천안이 되어야 할 수행자들이 오히려 더 깊은 중병을 앓고 있으니 속인들의 눈에 비치는 불교계의 위상은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이 아닌가. 마침내 터질 것이 터지고 올 것이 왔으니 이제 남은 것은 발로참회뿐이다. 지난 10월 28일 삼각산 화계사에서는 ‘이주 사망노동자를 위한 천도재’를 봉행했다. 이 땅에서 차별과 천대를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