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올해에는 도량에 연꽃이 많이 피었다. 백연지와 홍연지에 가꾼 연꽃은 말할 것도 없고, 화분에 심은 수백 통의 연꽃도 온 도량을 연화장세계로 만들었다. 아침이면 연꽃을 보는 재미로 안락세계에 접어드는 느낌이었다. 싱싱하고 푸르른 잎과 붉고 흰 연꽃의 조화는 청계산 자락에 감싸여 있어서 더욱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기업체의 CEO가 찾아와서 함께 연꽃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회사를 끌어가고 기업을 경영하는 지혜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나는 그에게 “연꽃처럼 하세요”라고 하였다. “연(蓮)은 힘찬 기상을 보여 줍니다. 더러운 물속에서도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며 풍성한 영양분을 줍니다. 우리들은 불퇴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사회발전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연은 정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느 새 가을은 우리 곁에 와 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지만 조락의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의 땡볕 더위와 폭우를 견딘 열매가 삶의 풍성함을 더해준다. 좀 있으면 화려한 가을 단풍도 우리 눈에 들어 와 색다른 세계를 경험케 할 것이다. 하지만 이내 잎은 떨어져 나가고 낙엽이 거리를 가득 채울 것이다. 피고 지는 생사의 순환을 한 눈에 보여주는 계절이 가을일 것이다. 그러기에 사계의 변화 중에서도 가을에 느끼는 ‘무상’은 실로 더하기만 하다. 가을 여행이 다른 계절의 여행보다 철학의 길로, 깨달음의 길로 안내하는 게 이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광화문에도 가을을 알리는 표식이 있는데 바로 ‘교보 글판’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교보생명 건물에 내 걸리는 짧은 글은 항상 화제다.
과연 불교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나라 모든 불교행사에서 빠짐없이 독송하고 있는 『반야심경』에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무색성향 미촉법이요, 안이비설신의도 없고…”라며 ‘없고, 없고, 또 없으니’를 반복하며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누누이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이 끝없는 인생의 고해에서 벗어나려면 욕심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고, 어리석음을 버리라고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다. 서양종교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라며 인간의 끝없고 더러운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반대로 “더 가지려 하지 말고, 가진 것만으로도 만족할 줄 알며,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도 나누어 주라”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불교는 ‘얻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버림을
금년에 우리나라에서 큰 별들이 셋 떨어 졌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큰 별들이 떨어지면 밤하늘이 더욱 어두워지리라. 최근에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겪은 정치인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한다. 40대에 야당후보로 대선에 출마하여 실패한 후 그는 군사정권들에 의하여 교통사고, 납치, 수장(水葬),사형선고 등 생명을 위협하는 가혹한 시련들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투옥, 가택연금, 망명 등 온갖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역경들을 초인적인 용기와 의지로 극복하여 삼전사기(三顚四起)의 정치신화를 만들고 제15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에게 열광하는 국민들에 못지않게 그를 증오하는 국민들도 많다. 그러나 군사정권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무리했다. 한국현대정치사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그의 정치인생은 투옥과 고문, 망명과 추방, 연금으로 점철됐다. 이처럼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인권의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마침내 3전4기 끝에 대통령이 되었다.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그리고 김종필 전 총리를 묶어 ‘3김’이라 부른다. 그러나 3김은 우연히 성이 같다는 것을 빼면 서로 다르다. 양김(김대중과 김영삼)은 오랫동안 권위주의와 맞서 싸웠던 지사형 정치인이다. 다른 한 김(김종필)은 탱크를 앞세워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군부정치의 막을 올렸던 정치군인의 원조이다. 박정희 독재와 장기집권, 인권탄압에 대해 양김은 저항했고, 다른 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설사 지금은 불행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언젠가는 행복한 날이 올 것을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물론 출세간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말할 수 있으나, 여기서 필자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것보다 평범한 범부가 바라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범부중생들의 진정한 행복은 그렇게 크고 거창한 바람이 아닐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슈타니파타』 제2장에서 행복의 대한 게송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잘 어울리는 장소에 살면서 전세(前世)에는 공덕을 쌓고, 스스로 바른 서원(誓願)을 세우는 것(attasammaa-panidhi), 이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이 게송은 인간의 행복이란 좋은 장소에 좋은 사람과 함께 살면서 전생의 공덕
해제다! 3개월간의 결재를 마친 스님들이 일주문을 나섰다. 우리는 이를 두고 운수납자가 만행길에 올랐다고 한다.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자로 쓴 만행은 ‘萬行’, ‘卍行’ 두 가지가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어떤 게 맞을까? 가산불교대사림에 따르면 ‘만행’(萬行)은 온갖 행위라는 뜻으로 무상보리를 얻기 위한 모든 행위를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반면 만행(卍行)은 아예 나와 있지 않다. 물론 사전이 당시 현존하는 모든 언어를 담을 수는 없지만 현대사에 두루 쓰이는 만행(卍行)이 만행(萬行)과 비슷한 말이라는 언급조차 없는 것은 의외다. 가산불교대사림에 의지해 만행의 의미를 좀 더 살펴보자. 만행은 시간적으로 3아승지겁에 걸쳐 이루어진 무수한 행을 일컫는다고 한다. 또한 모든
이제 3개월 후면 한국불교 대표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의 새 총무원장을 뽑게 된다. 그 동안 새 총무원장을 뽑는 선거를 치를 때마다 한국불교는 크고 작은 홍역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고, 때로는 선거후유증으로 극심한 혼란과 분열, 대립을 드러내 우리들 2000만 불자들을 슬프게 했었기에, 총무원장 선거가 다가올수록 또다시 추악한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나 단체에서 지도자를 뽑는 방법은 공정한 경쟁과 선거를 통해 다수의 지지를 획득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민주적인 방법인 것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전 국민이 참여하는 공정한 선거를 통해 대통령도 뽑고, 국회의원도 뽑고, 시장도 뽑고, 도지사, 군수까지 뽑으며 일반 단체나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문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하나가 북핵문제이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버지의 유훈을 헌 신작처럼 저버리는 짓을 하고 있다. 최근에 북한은 국제사회의 엄청난 비난과 제재의 위협에도 아랑곳 않고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자행하면서 핵무기개발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을 쏘면서 미국을 협박하는 듯 무력 쇼를 하고 있다. 과연 북한에 그럴 힘이 있을까? 만약 미국과 전쟁을 일으킨다면 승산이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얼마나 될까? 북한이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서까지 핵무기개발을 강행하는 이유는 건강에 자신을 잃은 김정일 위원장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행사가 하나 열렸다. 49재를 며칠 앞두고 진보적 성향의 학술모임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심포지움이다. 심포지움의 주제는 ‘노무현의 시대정신과 그 과제’였다.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10시간 넘게 진행된 심포지움에서 눈에 띄는 점은 수백 명의 시민들이 하루 종일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현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추모열기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심포지움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노무현 시대가 좋았다거나, 노무현 시절로 돌아가자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금의 우리 현실에 맺힌 것이 많아서 이들로 하여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와 진정성을 인정하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 참여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현하고자 했던 대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수많은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한 사람이 몇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서 지은 이름인 호적상의 이름과 불자로서 받은 법명(法名), 친구가 지어준 호, 자신이 스스로 지은 자호, 돌아가신 뒤에 그의 행적을 찬탄하여 붙여준 시호, 이외에도 탑을 세워서 붙인 탑호, 스님들은 법을 받는 건당의식으로 붙여진 당호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생물, 무생물 할 것 없이 인간이 편리하게 이름을 붙여주고 있다. 우리는 집에서 기르는 짐승에게도 이름을 붙이고 있으며, 이름 모를 나무, 돌에게도 붙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붙여서 부르는 이름을 정작 그 자신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이름에 대해서 부처님은 본래 없는 것이라
부처님이 기원정사에서 머무를 당시 한 사내가 베푸는 방법에 대해 여쭈었는데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은혜를 아는 깨끗한 마음으로 베풀면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그가 있는 곳 어디라도 그림자처럼 복된 갚음이 따르리니 인색한 마음 버리고 조건 없는 깨끗한 베풂을 실천하라.” 자비의 마음으로 베푼다는 것은 베푼다는 상도 내지 않는 무주상 보시를 말한다. 직역한 어휘지만 ‘베푼다’에 잠시 눈을 돌려 보자. 언젠가 법정 스님이 서울 길상사 법문에서 말씀하신 일언이 지금도 생생하다. “베푼다는 것은 옳지 않고 ‘나눈다’라 해야 맞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도 자기 것으로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 또한 베푼다고 하면 이미 상대방 보다 많은 것을 갖고 있거나 좀 더 높은 직위를 갖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독재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이명박 정권을 규탄하는 절규가 전국 방방곡곡 각계각층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부유층만을 위한 감세정책을 비롯해서 남북화해 분위기를 완전히 깨트린 강경대북정책,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 미디어 악법 강행 추진, 압도적인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정비 사업으로 명칭을 바꿔 감행하고 있는 대운하사업,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경찰력으로 원천봉쇄하고 있는 등 역사의 시계바늘을 군사 독재시대로 거꾸로 돌리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서울대학교 교수들을 비롯한 전국 각 대학교의 교수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규탄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그리고 대학교수들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뜻있는 사람들이 잇따라 시국선언을
지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많은 국민에게 깊은 충격과 슬픔을 안겨 주었다. 평소에 그분의 정치철학이나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큰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전직 국가원수가 과연 그렇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는가? 우리나라의 정치문화가 과연 그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가?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강국의 문전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정치는 왜 그 모양인가? 한때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우리나라 경제는 전 세계적으로 A급인데 정치는 D급이라고 해서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시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은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공과에 대하여 논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이콘이 사라졌다. 아니,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을까. 어둠이 짙을수록 별이 더욱 빛나듯이 시대가 어려울수록 그 아이콘은 더욱 빛나게 될까. 한때 ‘정치개혁의 아이콘’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은 건 일본 우토로에서였다. 일제에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노동자들의 합숙소를 둘러보던 중 서울에서 날아온 문자메시지. 노 대통령 서거를 알리는 짧은 메시지. 믿기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잇달아 날아오는 여러 통의 문자메시지는 서거가 현실임을 일깨워주었다. ‘마구잡이정권의 출현과 개검의 칼춤을 구경한 우리는 공범자며 역사의 죄인’이라는 한 지역운동가의 메시지에는 문득 목이 메었다. 우토로에서 만난 한 할머니도 노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 고향인 경남 사천에 가보고 싶었으나 아직
요즈음 교계에는 여러 가지 언론이 있다. 불교관련 신문과 잡지 및 라디오 방송과 텔레비전 그리고 인터넷 매체들도 한 몫 한다. 나는 일간지와 주간지 등 몇 개의 신문을 구독하고 있지만 유독 기다려지는 신문이 바로 법보신문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법보신문은 나에게 오면 일단 난도질을 당한다. 갈기갈기 찢겨져서 다른 대중들이 볼 수 없을 경우가 많다. 이리 오리고 저리 오려서 필요한 부분을 스크랩한다. 나는 어느 신문이나 잡지를 만나게 되면, 먼저 무엇을 스크랩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읽는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의 기준으로는 나에게 난도질을 많이 당하는 신문일수록 필요한 신문이다. 법보신문은 1988년 5월에 당시 불국사의 조실로 계셨던 성림당 월산 큰스님의 원력으로 창간되었다. 정론직필
경남 하동 칠불암에는 위트 넘치는 ‘목마탄 사미승’ 전설이 전해진다. 숭유억불의 조선 시대 당시 하동으로 막 부임한 신임 군수는 스님들이 얼마나 열심히 수행하는지가 궁금했다. 안거 중에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음에도 군수는 권력을 이용해 문을 열게 하고는 용맹정진 하는 스님을 떠올리며 선방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봄철 점심공양을 마친 직후인지라 스님들의 앉아있는 자세가 엉망이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군수는 이번 기회에 스님들을 혼내 줄 요량으로 꾀를 하나 냈다. “목마를 타고 동헌 마당을 한 바퀴 돌면 상을 내리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주겠다.” 산사 대중 모두가 낙심하고 있을 그 때, 한 사미승이 이 일을 해결하겠다며 목마를 둘러메고 관아로 들어가 군수 앞에 당당히 서서 말했다. 목마를 타고
조선시대의 청허당 휴정(淸虛堂 休靜) 큰 스님이 묘향산에 오래 머물고 계셨음으로 후세들은 서산대사(西山大師)라고 부른다. 그리고 바로 이 서산대사께서는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일으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선교석」「선교결」「삼가귀감」「선가귀감」등 수많은 글을 남겨 후학들의 눈을 밝혀주었다. 또 조선불교의 최고 거목이 되어 스러져가던 조선불교의 법맥을 일으켜 세우고 기라성 같은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냄으로써 조선불교의 미래를 활짝 열어놓은 분이다. 바로 이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을 통해 이 땅의 출가 수행자와 이 땅의 불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간절한 경책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아, 불자여. 그대의 한 그릇 밥과 한 벌의 옷이 곧 농부들의 피요, 직녀들의 땀이거늘, 도(道)의 눈이
봄이 지나가고 있다. 봄은 아름다운 꽃들의 계절이다. 삭막했던 겨울 산에 진홍빛 진달래가 피면서 봄이 시작한다. 이어 겨우내 추위에 떨었던 아파트 단지에 목련이 하얗게 피어난다. 그리고 벚꽃, 개나리, 라일락이 황량했던 도회에 눈부시게 찾아온다. 나는 목련을 사랑한다. 어릴 때 자랐던 시골에선 목련을 보지 못 했다. 30대 후반에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서울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봄에 피는 목련의 아름다움에 눈뜨기 시작했다. 수년 전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단독주택에서 20여 년을 살았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어머니와 강아지 세 마리와 함께 함께 살았다. 그 집 뜰에 목련이 한 그루 있었고 봄이면 하얀 목련꽃송이들이 뜰에 가득했다. 내 서재가 2층에 있었는데 베란다에 나서면 목련 꽃송이들이 하염없이 다가왔
우리나라에 언론의 자유가 있는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라는 시민단체는 해마다 세계의 언론현황에 대해 등급을 매기고 있다. 프리덤 하우스는 2008년에 우리나라를 자유언론국가로 분류했다. “과거와 같이 공보 관련부처로부터 지침이 내려지지는 않으나 개인 소유의 신문에서 자기검열의 움직임을 자주 볼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언론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같은 평가가 내년에는 바뀔지도 모른다. 최근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이 언론의 자유,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MBC의 ‘PD 수첩’ 담당 PD가 광우병 관련보도 때문에 체포되었다. MBC PD 체포사건은 광우병 관련 보도를 왜곡보도로 볼 것인가의 문제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