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이다. 생명의 계절이요, 희망의 계절이라는 봄이다. 중국 송나라 때 한 비구니 스님이 봄을 찾아 나선 것처럼 고즈넉한 산사로 향했다. 봄을 찾아 나선 비구니 스님은 하루 종일 구름 걸린 언덕과 넓은 들판을 돌아다녔지만 끝내 봄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뜰 가에 서있는 매화나무를 본 순간 봄은 이미 매화가지에 앉아 있음을 알았다. 비구니 스님은 여기서 한 소식해 시 한수를 지었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녀도 / 봄을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의 구름 따라다녔네./ 허탕치고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물론 이 시는 그냥 나들이를 나선 필자와는 다른 경지의 오도송이다. 무비 스님은 이 시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집안에 있는
지난 2월 20일 선종(善終)한 김수환 추기경이 작년 7월 거처를 혜화동 주교관에서 강남 성모병원으로 옮기면서 다음과 같은 유고(遺稿)를 남겼다 한다. “나는 누구인가? 80을 넘은 한생을 산 내가 새삼스럽게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왜? 무엇이 나로 하여금 오늘에 이르러 남다른 삶을 살게 했는지 나름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다.”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적 위엄을 지니면서 세속적 책무에 충실한 분이었다고 칭송되었으며 많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아왔었다. 수십만의 국민들이 그 분의 선종을 애도하여 명동성당에 모인 것은 이를 웅변으로 보여준 것이다. 우리나라 가톨릭교가 이렇게 급속히 발전한 것이 종교인으로서 그분의 탁월한 능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김수환 추기경이 임종을 앞두고 자신에게 던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우리 중생들에게 인생을 망치지 않으려면 다음의 몇 가지를 멀리해야 한다고 누누이 이르셨다. 첫째로 우리들 중생의 인생을 망치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물욕(物慾)이다. 물욕에 눈이 뒤집히면 공직자는 부정한 짓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아먹고, 보통 중생들이 물욕에 눈이 뒤집히면 남의 물건을 훔치고, 빼앗고, 속이고, 심지어는 어떤 재물을 내가 더 차지하겠다고 부모자식 간에도 싸우는가 하면 형제자매간에도 송사를 벌이는 등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채, 결국에는 패가망신에 이르고 있다. 두 번째로는 삿된 음행에 빠지는 방탕이다. 이미 가정을 이룬 남자나 여자가 자기의 아내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의 남편으로 만족하지 못한 채 다른 여자나 다른 남자와 삿된 음행을 즐
“돼지에게 노래를 가르치지 마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이뤄지지 않고, 설사 이뤄진다 해도 그 결과가 좋지 않을 일은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돼지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일은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먹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강제로 노래를 배워야 한다면 돼지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돼지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고통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갑자기 이 속담이 떠오른 것은 외국을 다녀온 이명박 대통령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녹음했다는 라디오 연설을 들었을 때이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정부가 하는 일을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동안 이 대통령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인연을 맺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 중 존경심을 가지고 인연을 소중하게 여겼던 분으로 한 분이 김수환 추기경님이다. 소승이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장을 맡으면서 불교경영자 최고위과정을 개설하고자 발원하였다. 무엇이 최고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그래서 대학원의 입장에서 3가지를 최고로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첫째는 강사진을 최고로 하자. 이를 위해 국가와 종교를 초월하고, 성속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강사진을 모시려고 노력하였다. 둘째는 대학원생을 최고로 하자. 그래서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시고 싶은 불자나 스님이 있으면 찾아가서 입학을 권유하였다. 셋째는 서비스를 최고로 하자는 것이었다. 대학원장이나 직원들은 강사들이나 대학원생을 시봉하는 자세로 시작하였다
운문종의 종색은 백장 회해의 선원청규를 토대로 새로운 선원문화를 제시한 선사다. 선불교의 한 획을 그은 종색 선사가 남긴 경책 중에서 다음 일구는 지금 이 시대에 곱씹어 보아야 할 것 같다. “법문(法門)의 흥함과 기울어짐도 스님들에게 달려 있다. 승려는 경전(敬田)이니 받들어야 한다.” 부모나 스승은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할 대상이므로 은전(恩田), 가난한 사람이나 병자는 자비롭게 대해야 할 대상이기에 비전(悲田)이라 한다. 부처님은 마땅히 공경해야 할 대상이기에 경전(敬田)이라 하는데 종색 선사는 스님을 ‘경전’으로 보았다. 그 이유는 ‘법’(法)의 흥함과 기울어짐이 ‘승’(僧)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걷고 있는 우리는 자문해 본다. 과연 우리는 ‘스님’을 ‘공경’하고 있는가? 또, 스님은 공
우리 불교 집안에서는 예부터 청빈(淸貧)을 수행자의 기본으로 삼았고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으뜸으로 삼았다. 그래서 어느 큰절에서 대중공사를 통해 어떤 스님을 주지로 추대하면, 다음날 새벽 주지로 추대된 그 스님은 바랑 하나를 짊어지고 아무도 모르게 종적을 감추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주지나, 원주나, 절집 안에서 맡아야 하는 감투나 소임이 수행하는데 장애가 되니 감투도 소임도 맡지 않고 오직 청빈을 지키며 수행에만 일념을 쏟겠다는 올곧은 그 구도정신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안빈낙도의 구도정신은 자연스럽게 스님들 사이에서 “중 벼슬은 닭 벼슬만도 못하다”는 말이 회자되게 하였고, “주지 자리 하나에 지옥이 3천개”라는 경고의 말까지 번지게 하였다. 이렇듯 청빈과 안빈낙도 속에서
빌 게이츠는 최근에 그가 설립한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재단” 파트너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러분의 자녀가 가장 좋은 교육을 받길 원한다면 훌륭한 학교보다 뛰어난 선생님을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시애틀의 고등학교에 다닐 때 훌륭한 선생을 만나 컴퓨터와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으며 훌륭한 교사와 무능한 교사가 만든 교육적 효과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강조했다. 불교는 인간을 완성시키는 가장 위대한 교육이고 그 교육은 승가를 통하여 실행되고 있다. 따라서 승가는 일종의 교육기관이라고 볼 수 있으며 스님들은 세속적인 표현으로 불교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불교가 혼란스러운 큰 이유 중의 하나로 자질이 부족한 스님들이 선지식 행세를 하면서 종단에서 큰 영향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욕망’의 거대한 불길이 여섯 명의 소중한 목숨을 집어삼켰다. 용산참사는 막무가내 재개발로 엄청난 개발이익을 노린 건설자본과 재벌의 ‘욕망’, 그리고 테러를 전담하는 경찰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철거민농성을 빨리 진압해야겠다는 경찰지도부의 ‘욕망’이 빚어낸 불행이었다. ‘욕망’의 불길은, 그러나 여기서 사그라지지 않았다. 널름거리는 불길은 마침내 국가와 공권력에 대한 신뢰와 기대까지 집어 삼킬 기세이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설령 경찰의 작전이 합법적이었고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면 누군가는 도의적·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국가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여당, 경찰
우리 절 밑에는 목사님이 살고 있다. 이곳은 청계산 자락이라서 비교적 조용한 곳이다. 그런데 매주 주중의 하루는 여러 목사님들이 모여 밤을 새운다. 대부분이 조그마한 개척교회의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 목사님들이다. 나는 가끔 목사님을 나의 다실에 모시고 차를 마시곤 한다. 하루는 매주 목사님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주일 예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주일예배준비라고 한다. 주일 설교준비를 하고 나면 한 주가 그렇게 자신 있고 여유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주일예배의 설교를 위해 밤새워 토론하고 발표하며 수정하여 한 편의 작품이 되면 예배를 인도한다고 한다. 우리들은 과연 설법이나 법문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한 번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채 한 기 상임 논설위원 본지와 월간 「불교문화」가 기축년 새해를 맞아 ‘2009 오늘의 한국불교’ 설문조사를 한 바 있는데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서 전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이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001·2006 오늘의 한국불교’ 에서도 ‘가장 존경하는 스님’ 부문 1위에 오른 바 있었음을 감안하면 스님의 무소유 정신과 수행력에 많은 불자들이 지금까지도 감명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철 스님과 관련된 일화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수행인이라면 한번쯤 들어 보았을 ‘납자십게’를 작금의 현실에서 다시금 새겨보아야 할 듯하다. ‘한 조각 그믐달이 겨울 숲 비추니/ 몇 개의 백골들이 쑥 사이에 흩어져/ 옛날의 풍류는 어디에 있는가?/ 덧없이 윤회의 괴로움만 더해간다.’이 게송은 ‘무상’을 소재로 한
대한민국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또한 어느 특정종교를 국교로 삼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어떤 종교든 선택해서 믿고, 의지하고, 실천하며 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민주국가의 자랑이자 근본이며 자유의 상징인 ‘종교의 자유’를 빙자해서 ‘종교의 탈’을 뒤집어쓰고, 온갖 협잡과 사기, 심지어는 협박과 공갈 등 흉악한 범죄까지 저지르고 있는 ‘사이비 종교’가 창궐하여 그 피해가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혹세무민, 금품갈취, 온갖 범죄의 온상인 이른바 ‘사이비 종교’는 서양종교 계통이 수 백 개, 유불선 등 잡탕교리를 내세우고 있는 계통이 수 백 개, 불교를 팔아먹고 있는 계통도 수 백 개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종교언론계는 파악하고 있
다사다난했던 무자년이 지나고 이제 대망의 기축년이 밝았다. 지난해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으로 빚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쓰나미가 미국경제를 침몰시키고 우리에게 험한 풍랑으로 다가왔다. 교계에서도 이명박 정권하에서 전개된 비열한 불교배척음모가 우리 불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새해에는 자비와 지혜의 불광(佛光)이 밝은 희망으로 온 누리에 가득하길 기원한다. 어느 늦은 가을날 상암동 난지도에 갔었다. 억새가 섬에 가득했고 길가엔 아름다운 꽃들이 흐드러져 가을을 장식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석양이 되자 붉은 해가 억새 숲 너머 서산으로 지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둥근 해가 사라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1990년대에 학생들과
연말연시가 되면서 여러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통해 새해 인사를 전한다. 하루에도 몇 십 개씩 전해지는 문자 메시지 가운데 가슴을 때리는 문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스페로 스페라(spero spera)다. “숨 쉴 수 있는 한 희망은 있다”는 뜻의 이태리 말이란다. 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준 사람의 결코 희망을 잃지 말자는 다짐이 내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새해는 그저 2008년만 같으면 좋겠다”라는 문자 메시지도 있다. 2008년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2008년보다 더 나빠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절박한 바램이다. 문득 가슴이 아려온다. 돌아보면 2008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혼돈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해였다. “(물질적으로 흥청망청)잘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국민이 선택했던 이명박 정부는 “(불법
2009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기축년 소의 해다.불교에서 ‘소’와 관련된 일화는 참으로 많다.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의 지명에 얽힌 설화도 그 중 하나다. 진표율사가 금강산 수행을 마치고 다음 수행지를 찾아 길을 떠나던 중 지금의 속리산에 이르렀다. 그 길에서 소달구지에 탄 사람을 만나 잠깐 걸음을 멈췄는데 이 때 소달구지를 끌던 소가 멈추더니 무릎을 꿇었다. 소달구지에 탄 사람이 그 연유를 묻자 진표율사는 말했다. “내가 계율을 깨우친 사람임을 간파하고 법을 청하고 있다.”그러자 소달구지에 탄 사람은 “미물(微物)의 불심(佛心)도 이리 깊은데 어찌 사람에게 불심이 없겠는가”라고 자책하면서 그 자리에서 진표율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그때부터 세속을 여의고 입산한 곳이라 하여 속리산(俗離山)이라 칭해졌다는
무자년도 저물어 가며 한 해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 항상 연말이 되면 다사다난 했던 때라고 한다. 금년에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 불교계에서는 한 여름의 뙤약볕 속에 불타오르는 아스팔트 위에서 수십만의 불교도가 모인 “범불교도 대회”가 있었다. 조선 500년 동안 억압과 멸시와 탄압을 받아 오던 한국불교가 이제 또 다시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때는 유교가 우리를 없애려고 하였다면, 이제는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가 우리를 말살시키려고 하고 있다. 편협하고 일방적이며 유일신적인 신앙교육을 받아온 일부의 종교인들이 다른 종교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신앙만을 강요하고 있다. 더구나 국가의 녹을 먹고 있는 공직자 중 일부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고 날 뛰고
한 해가 마무리 되는 12월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정권교체 직후 현 정부가 내놓았던 ‘경제대국’의 꿈이 산산조각 난 올해를 되돌아보니 조선시대 청매(靑梅)선사의 십종무익송(十種無益頌)이 자꾸 들려온다.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보지 않으면 경전을 읽어도 이익이 없다’는 게송으로 시작되는 이 시는 수행인들이 갖춰야 할 덕목과 수행에 임하는 바른 마음가짐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청매선사의 게송이 어디 수행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된 말이지만 무엇보다 현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천정부지로 솟는 환율, 반 토막 나고 있는 주가, 중소기업의 도산과 이에 따른 대량해고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으니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분명 ‘어렵다’는 한숨과는 차원이 다르게 다가온다.
또 한 해가 저물어가는 2008년의 세모(歲暮)에 대한민국은 온통 ‘경제위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의 도가니로 변해가고 있다.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총력 투자했던 부동산은 헐값에 팔려고 내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 주식도 펀드도 ‘깡통계좌’가 된지 이미 오래 되었다. 온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직장마저도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 놓여 있다. 이래저래 어두운 연말이다. 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겠다고 이른바 ‘747’을 경제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이명박 대통령도 이 나라 경제를 살려내기는커녕 “지금 주식을 사면 1년 후에는 부자가 된다”는 정신 나간 헛소리나 할 뿐이다. 뾰족한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부실한 부동산을 담보로 잡히고 무작정 돈을 빌려 쓴 채 부동산 값이 치솟으면 그 부동산을 팔아
“미국이 과연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곳인지 의심하고 있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역량에 의심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면, 오늘밤 그 해답이 나왔다”라고 버락 후세인 오마하는 그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려고 시카고 그랜트 공원에 모인 수많은 대중에게 외쳤다. 그의 “담대한 희망(Audacious Hope)”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1865년 미국에서 남북전쟁의 결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실제로 현재까지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보이지 않은 정치적 사회적 차별이 존재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은 1963년 워싱턴에서 열린 흑인집회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언젠가, 나의 어린 네 명의 아이들도 피부색이 아니라 그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