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일 기도 후 100일 주력수행 입재 초기엔 병치레도…소리 觀하며 극복 세분의 임종을 한 해에 지켜보면서 가졌던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수행’으로 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평상시에 절에 다니며 수행이 무엇인지 보았고, 스님과 어른들에게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사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만큼 두렵고 고민되는 일이 또 있겠는가. 그 고민을 푸는 열쇠가 수행이라고 생각하니 일단 마음이 가벼워졌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 문제를 고민하던 중 출가하시어 수행을 통해 몸소 선정의 힘을 기르시고, 그 선정 속에서 해답을 찾으셨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헤매는 중생들을 위해 해결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불자인
초기경전을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7일 만에 번뇌를 모두 없애버린 아라한의 깨달음에 도달한 부처님의 제자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부처님의 두 수제자 가운데 분석적인 지혜에 능했던 사리풋타 존자는 15일 만에 아라한이 되었고, 선정의 힘이 강했던 목갈라나 존자는 7일 만에 아라한이 되었다. 이처럼 많은 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수행한 결과 길지 않은 시간에 아라한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부처님 당시에는 가능했을까? 우리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인가 자문하면서 초기 부처님 말씀을 읽었던 날들이 있었다. 우리 시대에도 불굴의 정진력으로 4개월 만에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분이 있다. 바로 미얀마의 순룬 사야도(Sunlun sayadaw, 1878~1952)이다. 순룬
수행우열 구분 경계…일념정진이 관건 체험담 전하며 마장 극복방안도 제시 책을 읽다보면 그 내용이나 구성이 쉽고 재미있어 술술 넘어가는 책이 있고, 딱딱하고 분석적이어서 한 장 넘기기가 힘겨운 것이 있다. 대개가 쉽고 술술 넘어가는 책들은 읽기는 좋으나 내용이 부실하여 다시 찾는 경우가 거의 없고, 딱딱한 책들은 비록 읽어가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내용성이 충실하고 심오한 경우가 많다. 두 종류의 책이 다 일장일단이 있는데,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읽기도 쉽고 내용도 충실한 경우일 것이다. 물론 이런 책을 만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룡 큰스님의 책은 특별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60여 년이 넘는 큰스님의 탄탄한 수행이력이 뒷받침 된 것이기에 그 내용성이야
둔황 막고굴과 함께 이 지역의 대표적인 명물 밍사산. 수많은 시안과 가객들이 이곳에 들려 밍사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바람에 모래가 버석인다. 때문일까. 시원하기보다 오히려 숨이 턱턱 막혀온다. 일주문 뒤로 서 있는 막고굴이 떠나는 우리를 천년의 시선으로 굽어보는 듯 하다. 그 척박한 실크로드가 아직도 몽환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은 어쩌면 막고굴이 갖는 신비로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차에 올라 밍사산으로 향했다. 굴곡이 심한 도로에 차도 사람도 덜컹거린다. 20여 분 달렸을까. 멀리 하얀 모래산이 머리를 조금씩 내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황무지에 저런 곱디고운 산이 솟아날 수 있었을까. 둔황에서 남쪽으로 약 4km 떨어진 밍사산은 50~60m 높이의 모래산이다. 남북으로 약 20km, 동서로 약
불교 수행자 20만, 잠재적 불자 100만 시대 총 600여개의 선센터… 절반은 티베트센터 1924년 베를린에 최초로 설립된 불교사원(우)과 함부르크의 티베트식 초르덴(좌). 독일은 지금, 달라이라마의 자비에 열광하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시사주간지『슈테른(stern)』은 지난 2월 5일자에 달라이라마를 커버스토리로 내세운 데 이어 2월 12일자에서는 독일 불교, 특히 티베트 불교의 붐을 특집으로 다뤘다. 독일내 불교인구의 급성장 배경에는 달라이라마의 카리스마와 티베트 사원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슈테른」지는 “독일인들이 달라이라마를 통해 사물을 여실하게 보는 방법을 배운다. 망상과 기대로부터 자유로와지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8세기경 티베트에 최초로 불교를 전해준 인도의 성자 구루 파드마삼바바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가 3월 1일 인도 다람살라에서 150킬로 떨어진 루알사에서 열렸다. 이날 2만여명의 티베트인들이 파드마삼바바의 불상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이날 축제에 참가한 2만명의 티베트 불자들은 티베트에서 악령이 타파될 것을 발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달라이라마도 이 축제에 참가해 성자의 탄신을 기리는 축사를 전했다. 파드마삼바바는 티베트 최고의 경전인 『티베트 사자의 서』 등을 남겼으며, 티베트 최초의 불교 종파인 닝마파의 교조로 추앙돼오고 있다. 파드마삼바바의 불상 앞에서 한 티베트 불자가 마니콜로를 돌리고 있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캄보디아 내전에 희생된 사람들의 유골이 불교식 탑으로 세워졌다. AP 통신은 “크메르 내전 당시 죄수센터로 활용됐던 툴 슬렝 대량학살 박물관에 캄보디아 내전 희생자들의 두개골로 이루어진 탑이 전시됐다”고 보도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남서쪽으로 18킬로 떨어진 청엑 지역에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치러진 내전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유골탑〈사진〉이 세워졌다. 캄보디아 「먼데이」지에 따르면 노로돔 시하누크 왕은 “크메르 지역 희생자들의 유골을 전시하는 것은 그들은 다시 한번 욕되게 하는 일”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캄보디아에서는 1976년 폴포트 정권 발족 이후 가혹한 노동과 양민 학살로 200만명의 캄보디아인이 죽은 ‘킬링필드’ 사태가 발생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이 사건을 캄보디아 역사
당신이 업신여긴 외국인이 바로 내 도반이요 형제입니다 한밤중에 깨어나 보니 새벽 2시35분이다. 꿈을 꾸었는데 작년 겨울 한국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본 어느 방글라데시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19살에 한국에 들어와 인생의 황금기인 20대를 한국에서 다 보냈다는 그는 이주 노동자 강제 추방이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단속 대상자로 걸려서 잡혀가고 있었다. 왜 그런지 한동안 그 모습이 좀처럼 내 뇌리에서 잊혀지지가 않았다. 끌려가면서 그는 외국어 억양이 섞인 한국말로 크게 외쳤다. “저도 사람입니다. 나에게도 권리 있어요! 나에게도 권리 있어요!” 한국인보다 조금 더 까무잡잡한 피부색, 유창한 한국말이지만 그 속에 섞인 외국인 특유의 억양, 더 낳은 삶을 위해서 혈혈단신으로 이방인의 나라
홍명섭 설치작가의 작업실은 참으로 어수선하다. 그러나 널려져 있는 조각들은 조금씩 생명을 얻어가고 있었다. 사진=채한기 기자 미술대학 실기실이 자리한 복도 끝에 자리한 홍명섭의 작업실은 내 한 발이 들어갈 틈조차 없이 어지럽고 빼곡하다. 학생들의 작업실과 붙어서 그렇게 별 구분없이 작업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곧 있을 개인전 준비에 분방한 그를 너무, 오래간만에 만났다. 그 공백의 시간이 자책감으로 뭉쳐져 자꾸 밀려든다. 미술계의 말석에서 이런 저런 글을 쓰면서 많은 작가를 만났지만 그 어떤 작가보다도 내게 이 작가는 각별하다. 그는 내게 늘 두려움과 긴장감을 벼리게 해주는 이다. 그를 통해 미술을 전반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며 안목을 배웠고 좋은 작가들을 소개받았다. 그는 미술계에
신화화된 만해 스님 사료 근거로 복원 “이해하기 어렵지만 용광로 같은 인물” ‘독립투사’ 혹은 ‘근대 시문학의 개척자’ 정도의 쉬운 수식어로 접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해 한용운 스님에게 지금까지 붙여진 60여 개의 온갖 화려한 수식어로도 만해 스님을 다 그릴 수 없었다. 수백 여권에 달하는 만해 관련 서적과 기록들을 살필수록 더욱 그러했다. 만해 스님을 다룬 책은 이미 적지 않다. 스님의 시와 문학, 생애는 물론 사상까지 만해 스님에 관련한 각종 성과물이 700여 건에 달할 정도라니 ‘만해 한용운 평전’이라는 부제가 차라리 새삼스러울지 모른다. ‘작가의 변을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평전은 신비화로 포장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해에 대한 접근, 이해, 연구는 만해에 대한 찬양,
2003년 대구 MBC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다보탑’을 다시 정리하고 일부 내용을 추가해 책으로 엮었다. 방송을 통해 심도있게 다루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꼼꼼한 첨가를 덧붙이면서 다보탑에 대한 충실한 해설서가 된 셈이다. 다큐멘터리 책으로 정리 다보탑의 정식 명칭은 ‘다보여래상주증명탑’. 과거의 부처이신 다보여래는 보살행을 닦을 때 “내가 장차 입멸하면 온몸 그대로 사리가 되어, 어떠한 부처이든 『법화경』을 설하는 장소에는 반드시 나타나 그의 설법을 증명하리라.”는 서원을 세웠다. 후에 현세의 부처인 석가모니께서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자 부처님 앞에 칠보로 된 거대한 탑이 솟아올라 공중에 머물렀으니, 이 탑이 바로 다보여래의 서원이 실현된 ‘다보탑’인 것이다. 석가여래께서 다보여
중국에 『황제내경』이 있다면 우리나라엔 『동의보감』이 있다. 그렇다면 인도에는 『아유르베다』가 있다. 『아유르베다』의 성립 시기는 기원전 500년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그 발생 시기는 기원전 1000년에서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유르베다』가 민간의 경험을 토대로 한 민간 전승 치료법에서부터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전을 의미하는 ‘베다’로까지 정립된 이 고대 인도 의학은 오늘날 서양 현대 의학의 한계를 보완해줄 대체의학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의 물리적 육체만을 제한적으로 다루고 있는 서양의학과는 달리 『아유르베다』는 정신과 환경, 식생활 등을 아우르면서도 매우 일관성 있고 논리적인 지식 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좀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천식, 기관지염, 고혈압
대·소승 지향 다르지만절차탁마한 오랜 도반구절마다 그리움 담겨소승 현장은 이 글을 마하보리사 삼장 혜천(慧天)법사의 발아래 올립니다. 그동안 소식을 알 수 없어 그리운 정을 달랠 길 없었는데 마침 편지를 받게 되니 더 없이 기쁠 따름입니다.법사의 건강은 어떠신지요. 저는 이제 기력도 쇠하고 피로도 더욱 쌓여만갑니다. 옛날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법사를 친견했고, 곡녀성(曲女城) 법회 때는 제왕과 수천 명의 대중 앞에서 논쟁을 벌였습니다. 담론이 오가는 사이 언성을 높인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는 인정(人情)을 생각지 않고 오직 옳음(正理)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논쟁이 끝나면 언제나 밝고 환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을 보내어 법사께서 오히려 감사와 그리움을 말씀하시니 얼마나 고맙고 기
최근 윤달을 맞아 생전예수재를 지내는 불자들로 전국의 사찰이 북적이고 있다. ‘생전예수재’는 ‘예수시왕생칠재금생(豫修十王生七齋)’의 줄임말로 ‘자신이 지은 죄업을 참회하고 육바라밀을 실천하자’는 의미이다. 지난 3월 3일 조계사에서 열린 생전예수재 법회 장면. 그러나 알게 모르게 대부분의 불자들이 생전예수재를 자신의 극락왕생을 비는 기도로 오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부 사찰에서는 이러한 분위기를 틈타 ‘한몫 잡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몇몇 사찰에서는 상업성을 배제하고 생전예수재에 대한 참뜻을 알리기 위한 법회를 개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청주 디지털법당 흥덕사는 ‘달동네 가족을 위한 무료 생전예수재’를 준비했다. 오는 3월 31일 입재하는 이번 무료 생전예수재에
『불설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 “봄에 뿌린 한 알의 씨앗은 가을에 가서 천만 개의 씨를 맺는다. 예수재를 지낸 공덕 또한 이와 같으니라.” 『정본수능엄경』 “과거무량겁으로부터 중생들은 밝음을 모르고 행하여 그것이 무명의 씨앗이 되어 일체 중생들의 고(苦)의 원인이 되었다.” 『지장보살본원경』 “생전에 좋은 인연을 닦지 않고 죄만 많이 지은 사람이 죽은 뒤 그 권속들이 그 사람을 위해 공덕을 베풀지라도 그가 받을 수 있는 것은 7분의 1뿐이고 나머지 7분의 6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 미래의 중생들은 스스로 수행하여 그 공덕을 받으라.”
“사실 그동안 많은 사찰에서 열린 생전예수재는 자칫 재만 올리면 저절로 업이 소멸되고 무량공덕을 받는 것 처럼 선전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불전함을 채우기 보다는 이제라도 진정한 의미의 생전예수재가 무엇이고 그 기간동안 불자들이 해야 할 일을 제시해 주는 것이 사찰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인천새세계포교원 노혜광〈사진〉법사는 “그동안 사찰에서 시행된 생전예수재는 자칫 극락행으로 가는 티켓인 것처럼 불자들에게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불자들의 잘못된 의식풍토에 경종을 울렸다. 노 법사는 또 “생전예수재의 본 목적은 생사윤회의 괴로움을 면할 수 있는 첩경임과 동시에 육바라밀을 실천하고 자신이 지은 업을 녹이는 기간”이라고 강조했다. 노 법사는 이와 함께 불자들에게 최근 사찰에서 진행하는 생전예수재
맑고향기롭게, 주말 참선수련회 맑고향기롭게는 묵언 수행을 할 수 있는 주말 참선수련을 개최한다. 3월 27일 오후 3시부터 진행되는 주말 수련회는 1박 2일 과정이고 홈페이지 또는 전화, 팩스로 신청할 수 있다. 출가수행자의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수련회 신청자는 선착순으로 50명을 모집한다. 02)741-4696 통도사 자비원, 자원봉사자 모집 부산 통도사 자비원은 어르신을 공경할 줄 알고 나눔의 행복과 기쁨을 몸소 실천하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어르신의 손과 발이 되어 줄 자원봉사자는 청소, 식사보조 등과 함께 외출동행을 하게 된다. 불자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있고 특히 간호조무사 자격증 등을 소지한 사람이면 더욱 환영한다. 0
“내가 입멸하고 나면 나의 가르침이 너희의 스승이요 안내자가 될 것이다.” 붓다는 입멸을 3개월 쯤 앞두고 제자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지난 45년 동안 너희들에게 설법을 해왔다. 이제 너희들이 나의 설법을 잘 배우고 익혀 소중한 보물로 여겨야 한다. 또한 그것을 실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지금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과 너희 후손들의 행복을 위해 크게 활용될 것이다. 나의 생애는 이제 거의 다 마칠 때가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곧 너희들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당부하노니, 너희들은 정직해야 한다. 사려 깊고 순수한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 나의 가르침에 대한 지치지 않는 추진으로 나고 죽는 윤회의 사슬을 뛰어넘어서 마침내 고통을 끝내야 한다.” 붓다
그로스는 불교와 페미니즘을 접맥시키고 이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학자이다. 그녀는 불교뿐만 아니라 비교종교연구에 있어서도 저명한 학자이다. 그로스는 위스콘신대학교를 졸업한 후, 시카고 대학에서 엘리아데(M. Eliade)에게서 수학하였다. 박사학위 논문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시 종교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에 관한 논문이었는데, 이 논문은 종교학 연구에 있어서 페미니스트 방법론을 적용한 최초의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위스콘신대학(Eau Claire 캠퍼스)에서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수행자로서 그로스는 티베트의 카르마 가규파 전통에서 오랫동안 수행하였으며, 수행지도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불교와 페미니즘을 접목시킨 그로스의 주저 Buddhism After Pa
△불교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은 어떻게 다른가?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표준적 정의는 없다. 나는 페미니즘을 “성별(gender) 역할이라는 감옥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를 택한다면, 페미니즘과 불교 페미니즘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불교 또한 성별은 환상이며 자성이 공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남성에 반하는 것(anti-men)’으로 본다면, 불교페미니즘은 이와는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불교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집단도 적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페미니즘은 분노를 유발시키고자 하는 측면도 있는데, 불교는 명상을 통한 화/분노에 대한 해독을 가르친다. 내게 있어서 불교는 화를 날려보내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