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당하면 누구나 슬퍼하기 마련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치유를 향한 첫걸음은 바로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죽음에 임해 슬픔을 표출하는 것은 임박한 죽음을 인정하겠다는 뜻도 어느 정도는 담겨있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첫 번째 반응 절망 혹은 두려움, 두 번째 반응 부정, 세 번째 반응 분노, 네 번째 반응 타협 혹은 삶의 마무리에 이어, 다섯 번째로 보여주는 반응이 바로 슬픔 혹은 우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바람이 불면 부는 방향에 따라 납작 엎드렸다가 곧바로 일어서 자세를 바로 잡는 잡초처럼,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감정적 흔들림을 서서히 추스르고 이제 임박한 죽음을 차분히 직시해 수용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부산 동래 범어사의 하동산(河東山) 큰 스님은 현대한국불교중흥조 가운데 한분이셨다. 동산 스님은 1890년 충북 단양에서 출생, 서울에 있던 경성의전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고모부였던 오세창(吳世昌) 선생의 분부로 백용성(白龍城) 스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구하였다. 이 자리에서 백용성 스님으로부터 “육신의 병을 고치는 사람이 의사인데, 중생의 병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배가 아프고 종기가 나고 상처가 나는 것은 육신의 병이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마음의 병이니, 육신의 병만 고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라는 법문을 듣고 홀연히 발심, 양의사가 되는 길을 내던지고 용성 스님을 은사로 삭발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 스님은 석왕사, 해인사를 거쳐 부산 동래 범어사 조실로 계시면서 기
만달레이에서 바라 본 이라와디강. 꽁룽 사야도 니페이야를 지나면 만달레이가 나온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은 죽음을 통해 주변과 이별을 고한다. 윤회가 있다하더라도 죽음은 역시 죽음일 뿐이다. 따라서 생명류에게 있어 죽음은 두려움이다. 그러나 간혹 위대한 인물들은 현상적인 죽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세상과의 이별을 고하지 않는다. 생전에 남긴 뛰어난 행적은 육신이 소멸된 후 더 빛을 발해 생전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통력으로 썩지 않는 육신을 남겨 살아 남겨진 사람들과 색다른 인연을 이어가기도 한다. 꽁룽 사야도(2004년 1월 30일 열반). 미얀마를 대표하는 선지식 가운데 하나인 그는 바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미얀마인들과 특
거미와 싸워 이긴 한 청년의 염원에 의해 건립된 삔따야 사원의 전경.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황금의 땅 미얀마에는 몬족이 세운 나라가 있었다. 나라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살림이 넉넉하고 풍요로워 백성들은 행복했다. 이 나라엔 일곱 명의 공주와 어진 왕이 살고 있었는데, 공주들의 자태가 어찌나 고운지 하늘에서 선녀라도 내려 온 듯 매혹적이었다. 이들 가운데에서도 막내 공주의 미모는 하늘이 질투를 할 정도로 아름다워, 내로라하는 이웃 나라 왕자들의 청혼이 하루도 끊이지 않았다. 막내 공주를 탐내는 사람이 많아지자 부왕도 누가 막내 공주를 보쌈이라도 하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공주와 왕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나라의 안팎을 둘러보는 것은 물론 백성들의 살림을 살필
정순자 씨는 차분하고 지적인 여성이었다. 병명은 장암 말기였는데 이미 암세포가 복강 내에 다 퍼져 있는 상태였고 장루 수술을 하여 인공항문을 차고 있었다. 항암 치료를 해보아도 별 반응이 없었다. 장암의 진전상태에 대해 그녀 자신과 가족이 잘 알고 있었다. 호스피스에 의뢰될 때 예상되는 잔여수명은 2,3개월 정도였다. 54세인 그녀는 어려서부터 건강하여 잔병치레도 없었다고 한다. 지난봄부터 갑자기 소화도 되지 않고 속이 더부룩해지는 것이 아무래도 몸이 좀 이상해지는 것 같아 혼자 병원에 찾아갔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몇 가지 검사를 해보고 며칠이 지나 결과를 보러 갔더니 의사가 남편과 함께 오라고 말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으나 각오는 되어 있으니 자기에게 직접 말해 달라고 독촉하자 의사는 마지못해
칠불사 아자방선원은 불가사의한 공법뿐 아니라 수많은 선지식들이 잇따라 배출되고 있는 동국제일선원이다. 담공선사 빼어난 솜씨 멀리 중국까지 알려졌고 금관가야에서 오시어 아자방을 축조하셨네 정교한 공법 기이한 공적 엿볼 수 없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천번 만번 생각케 하네 눕지 않고 한끼 먹고 면벽하고 앉아 다 그치는 참선공부 서리발 같이 엄하네 천길 벼랑 끝에 매달린 손놓고 몸을 돌려야 하나니 중간에 아예 사량분별 하려들지 말게나 솔 바람 가을 달은 바위에 비춰 어리고 고목에 꽃이 피니 영겁 밖의 향기로다 훗날 나와 더불어 만나게 되면 임제의 선풍이 한 바탕 나타나리. -‘아자방 주렴’ 번역문 서릿발 같은 냉철함 문수보살의 지혜로 사량의 고리
망망한 인레 호수 위에 건립된 미얀마인의 귀의처 파웅더우 페이야 전경 인레 호수는 미얀마 여정에 쉼표와 같은 곳이다. 다양한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호수가 주는 낭만이 진득이 묻어있다. 끝없이 펼쳐진 호수의 파랗게 맑기만 한 호반의 아름다움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름’을 저만치 물러나게 한다. 여기에 쪽빛 물결을 타고 하늘거리며 떠있는 보트의 행렬은 수채화 마냥 청아하다. 나옹쉐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본격적인 인레 호수 답사에 나섰다. 갈잎처럼 날씬한 모터보트를 타고 미끄러지듯 포구를 나서자 일행을 먼저 맞는 것은 쭌묘라 불리는 수중 전답이다. 밭처럼 길게 고랑을 늘어뜨리고 호수 표면을 덮고 있는 연초록의 행렬이 무척이나 이국적이다. 쭌묘는 위터 히아신스라는 풀을 흙과 섞어 물위에 띄워 밭을 만들고
마지막까지 죽음을 거부하거나 분노를 표하기 때문에 다섯 번째 수용 혹은 순응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임종환자들이 많다. 불가피한 죽음을 피하려는 저항이 강하면 강할수록, 죽음이 임박했음을 부정하는 심경이 강하면 강할수록, 죽음을 품위있게 또 평온하게 맞이하기가 어려워진다. 죽어가는 당사자가 다가오는 죽음에 순응하지 않으면 남아있는 가족 역시 힘들어진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 ‘난 더 이상 안되겠어’ 라고 말하면서 저항을 멈추기도 한다. 임종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수용할 경우 육체적 통증과 정신적 고통도 점점 줄어들게 되고 차분히 자기 삶을 뒤돌아보면서 정리할 여유도 생기게 된다. 임종환자는 ‘죽어야 하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더 이상 부정하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고 우울해 하지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알기쉽고 재미있는 설법을 해주는 스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불교경전이나 해설서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투성이라 보통 백성들은 읽기도 어렵고 알아보기도 어려운데 스님들의 설법은 더더욱 어려운 한문구절을 끝없이 늘어놓는 경우가 많아 자칫하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 큰 스님이 펼쳐주시는 설법은 그야말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알기쉬운 명설법이었고, 경봉 큰 스님이 쓰신 글 또한 누구나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명문이었다. 안이비설신의가 모두 도둑이다 극락암 대중법회에서 경봉 큰 스님이 법좌에 오르셔서 주장자를 세 번 치고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눈, 귀, 코, 혀, 몸, 뜻 이
미국 트렘페 산자락에 자리잡은 선산승원은 수행자들이 자연 속에서 참나를 찾아가도록 이끌고 있다. 미국 뉴욕 시에서 북쪽으로 2시간 30분을 달리면 캣스킬 산맥이 나온다. 본래부터 인디언의 영성과 가톨릭의 기도로 성스럽던 이곳에 10여년전부터 하나둘씩 불교센터와 절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한때 러시아 벨트(Borscht Belt)라고 불리던 캣스킬 지역은 이제 불교 벨트라고 불리고 있고 이 지역 호텔들은 거의가 명상 수련장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트렘퍼 산자락에 유서깊은 선불교의 선원이 하나 자리하고 있으니 바로 선산(禪山)승원이다. 미국 내에 전통적인 승가를 찾노라면 그 첫손가락에 선산승원이 꼽힌다. 이곳에선 장기간 정진이 가능하고, 승가와 재가가 고루 수행할 수 있다. 28만평에 150명 정진
죽어가는 사람들의 반응은 첫째 절망 혹은 두려움, 둘째 부정, 셋째 분노, 넷째 삶의 마무리, 다섯째 슬픔, 여섯째 수용, 일곱째 희망 여덟 번째 유머 혹은 웃음, 마지막 밝은 죽음이다. 이런 아홉 가지 반응은 단계 혹은 과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각각 다양하게 반응하므로 순차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첫째 반응에서부터 진행되어 마지막 반응으로 종결되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사람들이 죽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두세 가지 반응이 동시에 관찰되기도 하고,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네 번째 반응)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죽음에 대한 절망이나 두려움(첫 번째 반응)을 표출하기도 하는 등 죽음이란 절대명제 앞에서 말기환자는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린다. 따라서 죽어가는 사람의 아홉 가지 반응은 말기환자의
아신 아사바 사야도(왼쪽)와 현웅 스님은 '무아'와 '수행법'에 대한 법담을 나눴다. 테라바다엔 그런 것 없다 부처님 닮아가야 증득 참선에서는 깨달음 얻으려면 부처 버려라 강조 성천문화재단 회원은 최근 육조사 선원장 현웅 스님을 지도법사로 미얀마로 성지순례를 떠나 남방불교의 수행 전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전승되고 있다고 평가 받는 마하시 명상센터를 방문했다. 생전의 마하시 스님은 전 세계에 위파사나 수행을 보급하는데 노력했다. 현재 전 세계에 약 260개의 ‘마하시 명상센터’가 세워져 있다. 그 총본산이 바로 성천문화재단이 방문한 양곤 명상센터이다. 정식 명칭은 ‘MYANMAR YANGON MAHASI VIPASSANA MEDITATION CENTRE’. 현웅 스님과 마하시 창설자의
인레 호수는 미얀마에서 두번째로 큰 담수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만큼은 비견할 곳이 없다. 양곤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미얀마 중서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인레(Inle) 호수. 미얀마 내륙으로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인레 호수는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다. 햇빛에 부서지는 비취빛 물결의 풍경과 물 위의 사원, 호수를 기반으로 생활하는 수상족 등 다양한 볼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병풍처럼 펼쳐진 푸른 산과 거울처럼 투명한 에메랄드빛 호수가 빚어내는 낭만적인 아름다움은 태고의 흔적인 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런 명성 때문일까? 인레 호수는 이방인에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미얀마에서도 손꼽히는 산악지대인 샨주의 험악한 산길을 끼고 위치해 있기
대한불교화엄종 종회의장을 역임한 정희수 대법사(화엄승가장학재단 이사장)가 2월 20일 노환으로 입적, 22일 발인했다. 세수 85세. 02)730-0798
화계사에는 외국인 스님들의 도량인 국제선원(사진 오른쪽)과 재가선원이 있다. 행원 스님과 고봉 스님이 마주 앉았다. 서로를 노려보는 눈에서는 불꽃이 튀고 있었다. 적멸의 한 가운데서 숭산 스님의 일구가 터져 나왔다. 순간 고봉 스님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고봉 스님은 환희에 찬 미소를 머금으며 숭산 스님을 안았다. “네가 꽃을 피웠는데, 내가 왜 네 나비 노릇을 하지 못하겠느냐!” 1949년 1월 25일 고봉 스님은 행원 스님에게 법을 전하며 숭산이라는 당호를 내렸고 이 때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앞으로 3년간 묵언하라. 너는 이제 무애자유인이다. 500년 후에 다시 만나자. 너의 법이 세계에 두루 퍼질 것이다.” 한국의 선풍을 세계에 펼쳐보였던 숭산행원 스님. 스님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은 크게 낙담하게 된다. 이 때 어떤 격려나 위안도 소용이 없다. 죽는다는 것은 최대의 슬픔을 당하는 것이므로, 슬퍼하지 말라고 위안할 수도 없다. 그처럼 우울한 시기에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슬픔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병으로 죽게 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해 슬퍼지게 되는데, 이는 ‘반응으로서의 우울’이다. 또 가까운 시일 안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우울해지게 된다. 이는 ‘죽음 예감을 통해 느껴지는 예비적 우울’이다. ‘반응으로서의 우울’은 이미 걸린 병에 말미암아 야기되는 현상이다. ‘죽음 예감을 통해 느껴지는 예비적 우울’은 앞으로 일어날 자신의 죽음, 즉 미래의 상실에 의해 초래되는 현상이다. 다가오는 죽음을 예측하면서 미리 슬퍼하는 상태인 것이다.
로카찬다 사원의 건립은 근세 이후 미얀마 최대의 불사였다. 사진은 황금 사자상의 버티고 있는 사원의 입구. 견디기 힘든 고통도 세월이 지나면 추억이 되는 법이다. 쓰리고 아픈 기억일수록 더욱 그렇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나, 과거의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을 보며 아련한 회상에 잠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세월이 가져다주는 이러한 삶의 아이러니는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와 민족이 이룬 역사와 문화에도 이런 현상은 예외없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불가사의로 일컬어지는 이집트 피라미드와 중국의 만리장성, 아름다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인도 타지마할 등 힘없는 민초들의 고혈로 이루어진 흔적들이 오늘날 위대한 인류의 유산으로 칭송받고 있으니 세월의 조화는 참으로 얄궂은 것이다.
조계사(주지 원담 스님)는 오는 2월 24일 경북 김천 직지사에서 동안거 회향 야생동물 방생법회를 봉행한다. 조계사 불자와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회원 등 사부대중 1500여명은 방생법회 의식에 이어 수리부엉이, 독수리, 말똥가리, 큰소쩍새 등 우리 생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조류 30마리를 방생하면서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방생 법회단은 24일 당일 오전 6시 30분 조계사 앞에서 출발한다. 02)720-2115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되는 이 단계는 환자가 주위사람과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한 시기이다. 임종환자가 주위사람에 대해 매우 협조적이고 개방적이기 때문에, 환자가 품고 있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정리하는 ‘삶의 마무리’에 적합한 시기이다. 예를 들어 유언을 쓰도록 권유한다든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감정적 갈등이라든가 엇갈림이 있다면 화해하도록 이끈다든가 주변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기에 적합한 시점이다. 이 시기에 인생을 충분히 되돌아보고 인간관계를 차분히 정리하지 않으면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기 어렵게 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시점은 이 세상에서 생명이 시작되는 시점과 끝을 맺는 시점이다. 이 세상 삶의 마무리, 죽음이 임박한 말기환자 대부분의 경우 죽음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치 자기 문
쉬라바스티는 부처님 당시대로 소박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는 수행자들의 마을이다. 미국의 서해안 즉 태평양 연안에서 제일 북쪽에 위치한 위싱턴 주 뉴포트 시 근처의 아늑한 산속에 자리잡은 쉬라바스티 승원은 티베트불교 겔룩파의 비구니 툽텐 쵸드론 스님(Thubten Chodron, 1950 - )이 세운 수행센터이다. 쉬라바스티는 원래 붓다가 25번의 우안거를 그곳에서 나면서 수많은 설법을 남긴 인도의 유서깊은 도시 이름이다. 인도를 성지순례하던 중 쵸드론 스님은 붓다 시대의 쉬라바스티에 비구니사원과 비구사원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소중히 마음속에 간직했다가 자신이 짓는 승원 이름 목록에 넣었는데 달라이라마도 스님과 마음이 통했던지 그 중 쉬라바스티가 좋겠다고 추천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