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불교와 중국의 불교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똑같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사상이지만, 중국의 불교는 자국의 문화가 가미된 중국화 된 불교이다. 선 또한 중국화 된 선이 발전되었다. 이 중국화 된 선은 곧 우리나라 선이기도 하다. 인도불교가 중관학·유식학·인명학 등 학파불교라면, 중국은 종파불교이다. 선이 중국에 유입되었을 때, 중국인들은 그 이전 노자의 무위사상이나 청담 사상 등에 맞게 선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선 수행자들의 삶 또한 은둔·자유·낙도(樂道)적인 도교적인 성향이 있다. 마조의 문하에 은둔 수행자들도 있다. 스승[마
삼사순례를 가는 사찰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벌써 벚꽃이 흩날리는 봄이 되었다. 앙상한 가지로 매서운 겨울을 이겨낸 나무 끝자락에도 초록빛 새 생명이 싹트며 따스한 봄의 향기 속에 활기를 찾고 있다.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습 하나하나에도 위없이 높고 깊은 부처님의 법이 담겨 있으리라 짐작해보며 마음 한켠에 묻어두었던 2013년 4월의 봄을 떠올려 본다.당시 나는 다른 직장인들처럼 평일에는 출근을 하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나만의 소확행(小確幸)이 있다면 일주일에 4
개인 중심 수행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가 비사회적인 ‘개인주의(individualism)’로 비치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지적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개인주의’란 용어가 갖는 부정적인 뉘앙스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구에서 유통되던 ‘개인주의’란 용어는 다양한 지적 배경과 의미의 편차를 가지고 있었다. 불교사상을 ‘개인주의’로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복잡하지만 흥미로운 담론이기도 하다. 때마침 도나 린 브라운(Donna Lynn Brown)의 “불교는 개인주의적인가:용어상의 혼란(Is Bud
하늘은 물망초처럼 파랬고 드넓은 광야엔 짙푸른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졌다. 지중해의 햇빛을 가득 머금은 싱그러운 잎사귀들의 향연이 서서히 옅어지자 날카롭게 튀어나온 철근과 붕괴된 건물의 시멘트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이 살았음을 알리는 흔적은 벽돌에 깔린 주황빛 양탄자뿐. 시내로 들어설수록 점차 늘어나는 무너진 잔해들이 도시를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조계종 공익법인 아름다운동행(이사장 진우·상임이사 일화 스님)이 5월말 완공을 앞둔 한국마을(Korean Village)의 현황을 살피기 위해 5월4일 튀르키예 하타이주를 방문했
천태종(총무원장 덕수 스님)이 강릉 산불 피해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재민들에게 성금과 구호물품을 전달하며 일상회복을 기원했다.천태종 사회부장 개금 스님, 사회과장 문법 스님, 강릉 삼개사 주지 해석 스님은 4월20일 강릉산불 피해상황실을 찾아 김홍규 강릉시장에게 십시일반 모연한 구호금 2500만원과 1000만원 상당의 구호물품을 전했다. 이날 지원한 물품은 물티슈 1500개, 습기제거제 7000개, 쿨패치 5000개, 고급 양말 1000켤레 등으로, 산하 NGO단체인 (사)나누며하나되기를 통해 이재민 대피소에 전해졌다.사회
“어느 때 부처님께서 욕계·색계·무색계와 무상계까지 초월하셔서, 일체법에 자재하여 장애가 없는 신족통의 힘으로 밀엄세계에 머무셨다.”북송시대에 조성된 막고굴 제55굴 동벽 좌측에 조성된 경변도는 중앙의 주존불을 중심으로 다수의 보살과 호법 성중이 운집한 채 법회를 여는 장면을 표현하였다. 그 앞에 방형으로 조성된 연못가에는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한 일곱의 가릉빈가가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설법도의 상단은 화려한 궁전과 누각으로 장엄되었으며, 하늘에는 악기들이 떠다니며 스스로 묘음을 낸다. 그 사이사이로 타방의 불보살들이 구름
‘청정도론’ 9장에서는 ‘연민(憐憫)’을 이렇게 정의한다.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워할 때, 선한 사람의 가슴이 동요하기 때문에 ‘연민(Karuṇā)’이라고 한다. 혹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제거하고 죽이며 분쇄하기 때문에 연민”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연민은 중생에게 일어난 고통을 완화하려는 형태로 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자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역할을 한다. 해코지 않음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고통에 압도된 자들에 대해 의지할 곳이 없는 상태를 보는 것이 (연민의) 가까운 원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 절박한 고통에
거짓되게 살면서도 거짓을 못 버리고참됨을 구하면서도 참됨을 못 얻네.만약 능히 산 눈이 활짝 열리면옛 동산의 봄에 꽃도 활짝 피리라.住妄無捨妄(주망무사망)求眞不着眞(구진불착진)若能開活眼(약능개활안)花發故園春(화발고원춘)-함월해원(涵月海源, 1691~1770)시(선시)는 보통, ‘선경후정(先景後情)’이다. 먼저, 자연 경관이나 사물을 묘사하고 뒷부분에 자기감정이나 정서를 그려(드러)낸다. 반대로, ‘선정후경(先情後景)’도 있다. 자신의 감정이나 정서를 먼저 드러낸 다음 (그것에 빗대) 자연 경관이나 사물을 읊는 방식이다. 둘 다, 전
“찰칵” “친구 안녕!”김민주 어린이가 키오스크 카메라에 얼굴을 맞추자 발랄한 환영인사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어 ‘키재기’버튼을 누르자 신장측정기가 천천히 내려왔다. 얼마나 자랐을지 두근두근. 빼꼼 까치발을 들고 화면을 바라보던 김민주 어린이의 얼굴엔 금세 만족스러운 웃음꽃이 폈다. 이렇게 기록된 데이터는 어린이집 서버에 자동으로 기록돼 교사들이 효과적으로 보육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원아들의 기분 상태, 친구·음식 선호도, 출석 등도 자동으로 기록된다.조계사 선재어린이집(원장 우정순)이 시범운영 중인 ‘스마트 보육 서
“한 남자가 들판을 지나가는데 성난 코끼리가 갑자기 달려들어. 무서우니까 도망을 쳤지. 우물이 보이고 칡넝쿨이 있네. 잡고 내려갔어. 숨 돌리려는 찰나 아래를 보니 독사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자신을 보고 있어. 설상가상 검은 쥐와 흰 쥐가 나타나 넝쿨을 갉아먹고 있네. 어째쓰까. 그 순간 위에서 꿀이 떨어졌네. 달달헌게 입에 닿으니까 지 처지를 잊었으야.”김경태 포교사(정안)의 구수하고 친근한 사투리에 실감나는 연기가 더해지자 고룡정보산업고등학교(전 광주소년원) 불교반 학생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일요일 오전인 탓에 학생들
양산부산대병원 법당 자경원의 정기 법회가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양산부산대병원법당 자경원(지도법사 일지 스님)은 3월29일 병원 내 자경원 법당에서 ‘자비와 화합 쾌유 발원 불기 2567년 음력 윤2월 약사재일 법회’를 봉행했다. 이 자리에는 통도사 포교국장 혜명, 부산 다대사 회주 화정, 자경원 지도법사 일지 스님 등과 양산부산대병원 성당 이 아메데오 수녀, 병원 법우회 및 봉사자들이 참석했다.자경원 지도법사 일지 스님은 “자경원에 오가시는 모든 분이 편안하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한다”며 “코로나로 인해 중단됐던 법회를 다시
김해 해성사(海星寺)는 도심 사찰이자 종합불교회관이다. 지하 2층, 지상 3층, 연 면적 8,481㎡(2570평) 규모로 조성됐다. 지하 2층은 주차장이고, 지하 1층에는 국제회의를 열 수 있는 컨벤션 센터가 갖춰져 있으며 1층에는 종무소 및 관음전, 2층에는 대법화당, 3층에는 대웅보전이 들어서 있다. 2017년 12월 해성사 종합불교회관 기공식을 가진 후 2022년 11월 대웅전에 삼존불을 봉안하며 낙성식을 봉행했으니 조성 기간만도 5년인데, 그 불사를 이끈 주인공은 지금의 해성사 주지 월도(月道) 스님이다.부친은 신심 돈독하기
사실인 팩트와 허구인 픽션을 합쳐 ‘팩션’이라고 불리는 소설들이 있다. 사실에 기반한 소설. 작가 유응오는 자신의 소설이 ‘팩션’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작품은 근대기부터 현대까지, 한반도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까지를 오가며 방대한 사실들을 취합하고 있다. 그 광활한 시공간 속에 등장하고 사라졌던 실존 인물들을 한 권의 책 속에 불러 모으기 위해 작가는 몇몇의 문고리들을 만들어 주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고리는 제법 단단하고 정교해 ‘그 고리를 붙잡고 닫힌 문을 열어보라’고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소설 ‘
올봄 나는 대학에서 ‘종교와 유튜브’라는 꽤 실험적인 제목의 강의를 시작했다. 유튜버도 아니고 유튜브 열혈 애청자도 아닌 나로서는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다. 나는 문서나 책에 익숙한 세대에게 교육을 받았으므로 문자가 아닌 영상 매체는 여전히 내게 ‘주(主)’가 아닌 ‘부(副)’로 남아 있다. 나는 항상 글이 중심인 세상을 살았고, 글로 번역되지 않거나 그럴 가치가 없는 영상은 불신하고 내치는 데 익숙했다. 나는 글의 세계를 옹호하고 글의 세계에 속하기 위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다. 텔레비전, 영화, 유튜브는 그저 여가
부처님께서는 시간의 흐름을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고 하셨다. 시작과 끝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시작이 끝으로 이어지고 끝은 다시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된다. 이런 시간의 무한한 흐름을 시작과 끝으로 나누는 것은 그저 사람들의 편의에 따른 것일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룸비니에서 태어나셨지만, 이미 과거 무수한 생을 통해 수행과 공덕을 쌓아 현생에 부처님이 되셨다. 그랬기에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시며 “하늘 위와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고통이니 내 마땅히 그들을 편안케 하리라”라는 선언을 하신 것이다.순례단이 부처님의 열반
사찰에서 기도는 일상적이다. ‘초하루기도’ ‘삼칠일기도’ ‘백일기도’ ‘천일기도’ ‘철야기도’ ‘관음기도’ ‘지장기도’ ‘다라니기도’ ‘방생기도’ 등 숱한 기도들이 있다. 그럼에도 기도는 종종 부정되거나 평가절하된다. 일부 스님과 불교학자들조차 “불교는 자력종교이고 수행의 종교이므로 빌고 바라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라거나 “기도는 하근기 중생을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 낮잡아 말한다. 이러다 보니 불교 안에서 기도의 위상은 대단히 낮다. 그러면 기도는 불교가 아닌 걸까. 물론 그렇게 볼 수는 없다.“기도는 실천이지 이론이 아니다.
승가의 학인은 이제 막 불교에 입문해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한 이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구도 원력과 신심이 있다. ‘초발심시 변정각’이라는 ‘화엄경’ 법성게의 말씀이 불가에서 널리 회자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초발심의 열기와 향기가 가득 스며들어 있는 학인스님들의 글을 엮은 이 책에서 느껴지는 밝고 당당한 에너지는 어쩌면 깨달음의 또 다른 이면일지 모른다. 해인사승가대학 작문 수업 시간에 과제로 제출한 원고를 정리해서 다시 엮은 것이다. “나는 왜 하필 스님이 되고 싶었을까.” 투박한듯 하지
남원 선원사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시왕도에서 항일 독립운동 때 사용했던 형태의 태극기 그림이 발견됐다. 색채와 선명하게 드러난 4괘를 관찰한 전문가들은 1917년 작으로 보고 있다. 1919년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관사 태극기’의 4괘 배치와 같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보물로 지정된 ‘진관사 태극기’는 항일운동에 나선 후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초월 스님이 일제 경찰의 눈을 피해 품어온 것이다.지장시왕도 제작 증명으로 진응혜찬 스님(震應 慧燦, 1873~1941)이 명시된 화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응 스님은 당대 최고의
중견 작가인 조동수(70·통녕) 거사가 그동안 자신의 참선공부를 담은 ‘오등일지’를 보내왔다. 강원도 산중의 한 사찰에서 기거하던 중 ‘색즉시공’이라는 말에 걸려 밤새 씨름하다 불가사의한 체험을 한 그가 이후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이어가다 오등선원 조실 대원 스님 회상에서 오도송을 쓰게 된 내용을 담고 있다. 편집자*오도송이 있느냐?계룡산 학림사 오등선원의 대원 스님이 내게 오도송 쓴 게 있느냐고 물었다. 많은 대중들 앞에서 나의 상태를 점검하면서였다. 그리하여 며칠 후, 예전의 메모를 정리하여 보여드렸다.색즉시공 한 마디에
“회주스님이 부처님을 앞에 모시고 걷는데 뭉클하더라고요. 사진을 보는데 괜히 코끝이 찡했어요.” (무진향 불자)“쫄래쫄래 순례단 좇는 강아지 영상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전생에 선업을 많이 지은 게 분명해요. '스님들 만난 인연으로 다음 생엔 꼭 사람으로 태어나라' 마음 속으로 말했어요.” (일지행 불자)“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순례단이 건강히 돌아오길 바라는 기도밖에 없잖아요. 몸은 떨어져 있어도 간절히 마음은 같이 하고 싶어요. 기도가 인도까지 닿을 수 있게 정진하려고요.” (실상화 불자)부다가야 마하보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