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華嚴經)’은 방대한 양으로 선뜻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다. 경전의 내용 또한 난해해 눈 밝은 길라잡이의 인도가 아니고서는 그 뜻을 이해는커녕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다. ‘화엄경’이 초기경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승의 은밀한 종취(宗趣)까지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엄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총망라한 경전의 꽃, 불경의 종합판이라 불려 왔다. 물론 ‘화엄경’이 처음부터 이렇게 방대한 경전이었던 것은 아니다. ‘화엄경’의 여러 품들은 원래 독립적인 경전이었다. 그러나 이 경전들이 찬술되고 유통되는 과정에서 ‘화엄
짧지만 적확한 비평을 하거나 혹은 교훈적인 이야기를 할 때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한자는 한 글자에도 뜻이 있고, 두 글자면 일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으며, 네 글자라면 표현 못하거나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오히려 한자 네 글자로 이뤄진 사자성어는 어떤 내용이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할 것도 없이 간단명료하면서 교훈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사자성어는 은유적이고 간접적인 화법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화법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 뜻을 알고 나면 또한 단도직입(單刀直入)이며
상월결사 인도순례 43일간의 일정을 회향했다. 4월23일 3만여 인파가 몰린 가운데 서울 조계사와 우정국로에서 열린 회향법회는 인도에서의 순례단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스님과 불자들이 함께 전법을 염원하며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서원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길에서 자고 먹고 걷는 43일간의 일정은 고난의 길이었다. 혼자라면 절대로 성취할 수 없는 여정이었다. 아무리 장한 신심이 있더라도 풍토가 다르고 먹거리가 다르고, 기후가 다른 곳에서 매일 25km를 걸으며 43일간의 순례를 회향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몇 차례 인도를 방문했지만 돌이켜보면 성지순례라 보기 어려웠다. 절박함이 없었다. 배움이 없으니 유적지를 둘러보는 이상의 의미를 갖기도 어려웠다. 보아도 본 것이 아니었다.길에서 자고 일어나며 부처님께서 갔던 길을 직접 걸으니, 보이기 시작했다. 출가의 의미, 수행의 절박함, 깨달음의 위대함, 그리고 열반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부처님께서 가셨던 그 길을 그대로 밟으며 따라가지 않았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부처님 성지에서의 감동도 달랐다. 각각의 성지가 담고 있는 부처님의 생각, 체취, 그리고 가르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평생의 삶은 죽음으로써 평가받는다. 죽음 앞에서도 말과 행동이 당당하다면 예사롭지 않은 삶이다. 고귀하고 바른 삶을 산 사람들은 언제나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다. 그러나 탐욕과 욕망에 찌든 이들은 죽는 순간에도 비루했다. 삶에 대한 집착으로 버둥거리다가 결국 황천(黃泉)으로 끌려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테지만 삶에 대한 애착,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생명을 가진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그러나 삶과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완벽하게 초월한 분이 있다. 바로 부처님이시다. 부처님께서는 삶에 대한 애착은 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도는 날것 그대로 사문유관(四門遊觀)의 땅이었다. 싯다르타 태자는 카필라성의 동서남북 4문을 나가서 늙고 병들고 죽음을, 그리고 마지막에 당당한 사문을 만난 뒤 출가했다. 아버지 숫도다나왕은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나자마자 붓다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기에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볼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인과는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사문유관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생각해 보면 카필라성에서의 삶은 싯다르타 태자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 또한 화려한 카필라성에 살았던 싯다르타 태자와 다를 것이 없다. 산업화 사회에서 죽음은 장례식장
순례는 쉽지 않았다. 2주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매일이 버거운 날들이다. 길에서 자고 길에서 일어나, 걷는 것은 안락한 생활에 안주했던 몸과 마음이 편하게 받아들이기에 역부족이었다. 하루 일정은 새벽 2시에 시작됐다. 도량석에 맞춰 일어나 텐트 안의 짐과 침낭, 매트를 정리하고 의복을 갖추면 예불과 동시에 3시에 순례에 나선다. 빛이 들지 않은 길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이다. 그 길을 오로지 대중들의 랜턴에 의지해 걸었다.여러 길을 걸었다. 아스팔트길, 흙길, 골목길, 고속도로. 편한 길은 없었다. 아스팔트는 파이고 곳곳이 부서져 조
인도에 왔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거룩한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 깨달음의 역사가 현존하는 땅. 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은 2020년 치열했던 상월선원 천막결사 동안거 회향 후 인도의 부처님 8대 성지를 직접 걸어 순례하는 만행 수행을 제안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지구촌 전체가 대재앙에 신음했다. 그래서 시선을 국내로 돌렸다. 매년 국난극복 자비순례(2020), 삼보사찰 천리순례(2021), 평화순례(2022)라는 주제로 국내를 만행하며 국난극복과 불교중흥을 발원했다. 그리고 3
팔리경전은 부처님의 직계 제자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구전한 것을 토대로, 기원전 1세기 스리랑카에서 경율론 삼장 전체를 팔리어로 엮어 전승한 경전이다. 현재 남방불교의 중심에 서 있는 ‘팔리율’은 북방불교의 5대 광율(廣律)인 ‘오분율’ ‘사분율’ ‘십송율’ ‘마하승기율’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등과 같이 전체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춘 율장이다.‘팔리율’은 19세기 말 영국의 팔리성전협회에서 전체 5권으로 영역하여 결집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는데, 1권은 마하박가(출가, 구족계, 포살 등 승가의 일상 계율), 2권은 출라박가(승가에서
송나라 이후 동아시아 불교를 관통하는 불교 규범서이자 출가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을 담은 책으로 ‘석씨요람’이 있다. 불문에 들어와 생활하고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사항을 주제에 따라 총망라해 불교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데 최근 국내에서 최초로 완역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석씨요람’은 1020년 석도성 선사가 찬집한 이래로 불가에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번역명의집(翻譯名義集)’ ‘현수제승법수(賢首諸乘法數)’와 함께 불학삼서로 불리며 오랫동안 거듭 찬술되고 여러 판본을 낳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생들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중생들의 근기를 살펴 그에 맞게 대화했기에 이를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불교는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 속에서 탄생한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는 부처님의 당시와 많이 다르다. 세월이 무게가 더해지면서 부처님 당시의 모습이 갈수록 희미해졌다. 그리고 시간의 무게만큼이나 불교는 굉장히 완고해졌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점차 믿음의 영역으로 굳어지고, 무거운 종교적인 의례가 더욱 중요하게 됐다. 활발발한 대화나 논의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이 책은 미국 홍창성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루 사이에 묵은해와 새해가 갈리는 인간의 시간 위에서 우리는 또 다시 희망을 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끊어지지 않은 시간의 줄기를 굳이 잘라 앞과 뒤를 만든 것은 박제화 된 삶에 탄력을 불어넣고 새롭게 결심할 계기를 삼고자함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알게 모르게 몸에 배었던 잘못된 습기를 제거하고, 올해는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많은 선업들을 쌓는 한해가 됐으면 합니다.계묘년 첫날을 여는 사진은 경허·만공의 선풍이 흐르는 덕숭산 정혜사의 서설(瑞雪)입니다. 수덕사 대웅전 왼쪽으로 1000여개의 돌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