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화체계에 배태되어 있고 문화에 의해 형성되고 제약받는다. 음식은 그 문화의 가치와 전제들을 세대로 전달한다. 문화를 아는 것은 곧 자신을 아는 것이다. 특히 고기 먹는 것은 문화에 의해 어릴 적부터 부모와 사회로부터 강요당한다. 원래 그런 것이라 여기며 성장한다. 육식은 묻고 이의제기가 어려운 일종의 문화적 금기였다. 이 금기야말로 인간잠재력을 억압하는 문화적 제약의 환상의 틀이다.주목할 것은 최근 70년 간 음식과 식습관의 변화이다. 이 변화는 이전 만년의 느린 변화에 익숙한 우리의 몸과 유전자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는 변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없고 상호간의 의사소통도 가능하던 시절이 있었다. 갓난아기에게 동물인형을 갖고 놀게 하고 동물들의 그림책을 보여주는 것은 그 시절의 소통능력을 일깨우려는 우리의 바람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조인류학의 창시자 레비스트로스는 인간들 간의 단절은 앞서 인간과 다른 동물들 간의 단절에서 비롯된 결과이거나 그런 단절의 한 특례, 즉 육식은 채식의 특수한 사례라고 말한다. ‘월드피스 다이어트’의 저자 윌 터틀 박사는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통해 인간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목축혁명을 소개한다. 이 혁명은 인류 역사상
한 사람이 죽자 그는 우선 지옥으로 안내받는다. 만찬이 펼쳐져 있음에도 사람들이 지닌 젓가락이 너무 길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모두가 굶주려 절망적이었고 고통은 참으로 끔찍했다. 잠시 후 그는 천국으로 안내받는다. 놀랍게도 천국은 지옥과 똑같았다. 단지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가 잘 먹어서 행복하며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긴 젓가락을 이용해 서로에게 먹여 주었기 때문이다. 인간본성에 대한 검토는 삶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제가 ‘풍요냐 결핍이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 전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자본주의 시장 매커니즘을 뜻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과연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의 방식일까? ‘국부론’으로 유명한 아담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이 저서에서 인간은 동감하고 동감받길 원하는 존재라고 통찰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과 동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대신에 성장하면서 일깨워지는 ‘내면의 관찰자'를 따르게 된다. 이 내면의 공정한 재판관을 따르는 자는 현명한 사람인 반면, 연약한 사람은 이기심을 통한 부의 축적과 명예로 사람들의 동감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아담스미스는 인간 내부에
사람의 본성이 선하냐 악하냐 하는 인성을 관찰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은 오랜 철학적 논쟁일 뿐 아니라 그 방식에 따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등 시스템의 본질적 토대와 그 운영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먼저 인간은 고정된 게 아니라 삶을 통해 잠재력을 펼쳐가는 존재임을 인정하자. 그리고 성선설(性善說) 성악설(性惡說)의 선악은 동일 차원이 아니라 인간 잠재력의 서로 다른 차원의 의식수준으로 이해하자. 선악이 뒤섞여 있어 위태로운 차원을 ‘악’이라 하고 ‘선’은 선악이 뒤섞인 차원의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본래적 선함을 말한다. 이 차
유라시아 스텝지방의 쿠르간 유목민 후손들은 인더스 계곡에서 생태적으로 이상적인 목초지를 발견하고 기원전 1975년경 유입된다. 소와 말, 무기와 그들의 신들도 함께 가져왔다. 아리안족은 선조 쿠르간이 그러했듯 카스트제도를 만들어 피정복민을 흡수했다. 가장 높은 지위에 있던 브라만은 쿠르간의 신들에게 소 희생 제사를 주관하고 신들의 말씀인 여러 베다를 후손에게 전수했다. 쿠르간 전사의 주요 책임은 전쟁하고 소를 빼앗는 것이었고 제사 때 쇠고기를 넉넉히 나눔으로써 원주민들의 충성과 선의를 얻을 수 있었다.베다에 의하면 전쟁은 산스크리트
유럽인의 역사는 정말로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문자 사용을 시작한 기원전 800년이나 400년경에야 시작된 것일까? 서구역사에 대한 시각은 그 이전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쿠르간 유목민의 존재에 대한 근거는 ‘인도유럽어’라 불리는 언어학적 발견에 있다. 학자들은 오늘날 인류의 절반 가까이가 사용하는 인도유럽어가 기원전 3500년 훨씬 이전에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윌리엄 존스(1746∼1794)가 산스크리트어, 라틴어, 그리스어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같은 근거에서 고트어, 켈트어 등이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뿌리이며, 고대 페
기원전 1800년부터 유목민 아리안족이 남하하여 인도의 지배계급으로 등장한다. 동물희생제사와 육식을 워낙 탐닉하고 조장하다 보니 넘쳐난 수요는 고기공급을 강제하고 토지를 비롯한 생태계는 급속히 황폐화된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반목축에서 집약농업으로 전환한다. 농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상대적으로 불살생을 강조한 불교의 등장은 폭발적 인기를 얻는다. 이에 위협을 느낀 아리안 지배계급은 힌두교에 아힘사(비폭력)를 삽입한다. 소를 도살하는 희생제를 포기하고 채식을 강조할 뿐 아니라 심지어 암소숭배 사상까지 출현한다.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인류의 공감능력은 언제쯤 만개할까. 일주일에 12억 마리의 살아있는 동물들이 끔찍하게 도살당한다. 한편 환경학은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 기아와 전염병 및 만성질환의 증가에 육식의 결정적 역할을 역설한다. 이 죽음과 고통의 악순환을 끝내야한다. 생명과 평화의 선순환으로 전환할 때다. 채식은 이 죽음과 고통의 쳇바퀴에 대한 ‘알아차림’이자 방향전환이다. 극단적이거나 금욕적인 게 아니다. 쉽고 간단한 게 우리의 본성 자체가 생명이고 평화이기 때문이다. 채식은 이러한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생명을 해치지 못하는 마음이자 그 씨앗을 살리는 삶의
인도의 신화에 시바 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시바 신은 춤을 추는 신이고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것은 이 신의 춤이다. 시바의 아내는 파바티라는 여신인데 어느 날 한 괴물이 시바 신에게 와서 파바티를 애인으로 삼고 싶다고 말한다. 시바 신은 화가 나서 잠깐 제3의 눈을 뜬다. 그 순간 벼락이 땅을 때리고 연기가 일고 불길이 인다. 연기가 가시자 괴물의 자리 옆에 다른 괴물이 하나 더 와 있는 것이다. 이 괴물은 피골이 상접하고 사방으로 뻗어있는 머리카락은 흡사 사자 털과 같았다. 첫 번째 괴물은 두 번째 괴물이 자기를 먹으려는
구도자가 먼 곳에서 한 스승을 만나러 왔다. 마침 스승이 장례식에 갔는지라 그곳으로 안내받는다.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스승을 알아볼 수 있는지 묻자 머리에 후광이 있다면 그분이 바로 스승이라고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도저히 스승을 찾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모두가 후광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례식장을 나오자 모두가 후광이 사라지고 오직 한 분만이 여전히 후광이 드리우고 있었다. 그분이 바로 찾던 스승이었다.장례식장에 가면 누구나 죽음을 생각한다. 그럴 때 우리는 무상함과 함께 삶에서 죽음으로 다시 죽음에서 삶으로 흐르
‘부도지’는 신라시대 박제상이 집안 대대로 내려온 비서를 정리하여 저술한 책으로 1만4000년 전 파미르고원을 발원지로 펼쳐졌던 한민족의 상고문화를 다루고 있다. 이 부도지의 마고성 신화에 따르면 그때는 우주의 음악과 빛 즉 율려로 세상과 우주를 다스리고 사람들은 대지의 젖을 마셨다고 한다. 어느 날 포도를 따먹고 처음으로 5가지 맛을 알게 된다. 이것이 인간이 다른 생명을 먹은 최초의 일로 이때부터 재앙은 시작된다. 원래 없던 이빨이 생겨나고 피와 살이 탁해져 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고 다툼과 분열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