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제가 스스로 일어나고 걸을 수 있는 한 변함없이 방문하여 여기에 서겠습니다.”청산 법명(靑山 法明) 스님이 처음 방문한 대전교도소 재소자들에게 한 약속이다.(1981) 그에 대한 보답도 정중히 청했다.“감옥에서도 바른 마음을 품고, 출소 후엔 늘 성찰하며 후회 없는 멋진 삶을 살아가 주세요!”그 언약, 그 맹세 올곧이 지켜왔다. 대전교도소교정협의회 불교분과위원(1994)을 맡으면서 자살 등의 고충 상담, 수형자 취업 알선, 수용자 복지와 건강증진은 물론 불우수용자 가족까지 돌본 법명 스님이다. 종교를 초월한 재소자 봉사단
종단과 불교계 발전, 중생 교화를 위해 진력해온 스님들이 새로운 법계를 받아 초발심을 되새기는 자리가 열렸다.조계종 법계위원회(위원장 법산 스님)는 11월2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종사·명덕 법계품서식을 봉행했다. 종사·명덕 법계는 승랍 30년 이상 스님들에게 부여되며 이날 49명의 스님이 종사를, 59명의 스님이 명덕을 받았다. 스님들에게는 종사·명덕 법계의 상징인 21조 가사가 수여됐다.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는 이날 법계위원장 법산 스님이 대독한 법어를 통해 포기하지 않고 출가자의 길을 걸어온 스님들을 치하했다. 스님은
과거 사람들은 ‘장수’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나 지금은 ‘장수’보다 ‘어떻게 잘 사는가’로 초점이 옮겨졌다.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수명과 기대수명이 증가하면서 100세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조계종 교육원에서 은퇴출가한 사미·사미니 스님들을 대상으로 의무교육을 진행했다. 지금껏 사미·사미니계를 수지한 스님들을 위한 교육은 수차례 진행됐으나 오롯이 은퇴출가자들만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교육에는 사미 25명, 사미니 14명 등 총 39명의 은퇴출가자가 참여했다. ‘은퇴출가에 관한 특별법’은 2017년
우선, 종정으로써 제가 할 일은 1700년의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일입니다. 종무에 관한 일반 행정은 유능하고 젊은 스님들에게 맡기면 잘 합니다. 임기 동안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고 발전시키는데 진력할 계획입니다.부처님은 모든 법이 정법이라 하셨습니다. 법이란 것은 정해진 바 없이 마음먹은 그 자체가 법인 겁니다. 예를 들자면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화가는 그의 입장에서 경치를 바라보고 직접 느낀 대로 붓을 움직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좋은 경치가 아닐지라도 화가가 감명을 받았다면 남이 보기에도 훌륭한
‘지장보살 대성인의 성스러운 위신력은/ 영원토록 설하여도 다 말할 수 없는지라/ 보고 듣고 우러러서 한 생각만 예배해도/ 인천 세계 이익됨은 그지없이 많으시네.’남해 용문사(龍門寺) 명부전에서 올린 ‘지장예문(地藏禮文)’ 독경 소리가 새벽녘의 호구산(虎丘山‧560m) 자락에 스며든다. 용문사 주지 승원(承遠) 스님의 청량한 독경 소리 고결하게 들려오는데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대원을 오롯이 전하려는 마음이 빚은 소리일 것이다. 독자(獨子)였다. “절에 가면 오래 산다”는 말에 할머니는 고성에서 자란 일
미국과 캐나다 등 미주지역에서 한국선불교 포교에 진력해온 삼우 스님이 8월7일 캐나다 토론토 선련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납 82세, 법랍 64년.삼우 스님은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는 만주로 떠나 연락이 끊겼고 어머니는 10세 되던 해 별세했다. 아버지의 부재에 이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기댈 곳이 사라지자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구걸과 일용직으로 삶을 이어가던 중 우연히 들렀던 사찰에서 부처님 법을 만나 마음의 평화를 얻자 출가를 결심했다. 청담 스님이 주석하던 김천 직지사를 거쳐 1958년
‘새벽 종소리에, 잠이 깼다./ 어둠의 귀가 열려 그 소릴 깊게 빨아들인다. 문득,/ 별빛을 덮고 잠들었던 내 안의 애욕과 권태,/ 온갖 허망과 환상들이/ 쇠와 나무가 마주쳐 내는 소리에 깜짝깜짝 살아나다/ 산산이 부서진다.’(고진하 시 ‘새벽, 범종소리’ 중에서)부산 광명사 주지 춘광(春光) 스님도 ‘쇠와 나무가 마주쳐 내는 소리’에 깨어나곤 한다. 허나 그것은 전법을 향한 간절함이 빚은 ‘상상의 소리’이다. 지난 6월 ‘미륵대범종’ 기공식을 봉행했으니 3300관(1만2375Kg)에서 울려 나올 웅혼한 소리는 일러도 내년에나 들을
경전에서 갈애와 사견에 끌려다니는 것을 ‘정복당한다’고 했다. 정복당하지 않고 자기 생각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해를 통해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본다는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나아가야 한다.각산 스님과의 개인 인터뷰 시간에 출가를 권유받은 적이 있다. ‘나에게 출가의 용기가 있는가?’ 선무도를 배우기 위해 골굴사에 갔을 때 적운 스님은 옆에 있던 스님에게 “데리고 내려가서 삭발시키고 행자복 입혀라” 말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머리 깎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 오로지 선무도만 하고 싶었다. “스님! 저는 종갓집
운허 스님(1892~1980)은 20세기 최고의 역경승으로 꼽힌다. 평북 정주가 고향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일본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1921년 강원도 봉일사에서 삭발했다. 비교적 늦깎이에, 예기치 않았던 출가였지만 곧바로 불교에 심취했다. 출가 전부터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스님은 금강산 유점사, 부산 범어사, 서울 개운사 강원에서 불경을 익혔다. 1936년 봉선사 홍법강원에서 강사를 시작으로 동학사·통도사·해인사 등에서 강사를 지내며 강백으로 이름을 날렸다. 1961년 국내 최초로 ‘불교사전’을 간행했으며, 1964년 동국
‘저물녘 눈을 뜨는 열나흘 달빛처럼/ 어둠을 밀어내는/ 청청한 저 눈, 눈빛,/ 주장자 비껴들고서 짐짓 딴청이시네 // … // 보리심(菩提心) 한 자락도 부여잡지 못한 아침/ 세상 밖 바람결에 귀를 잃어버렸구나!/ 부릅뜬 눈썹 끝에서/ 쏟아지는/ 바람소리’ (김종호 시 ‘달마도를 걸다’ 중에서)달마도가 기운 넘치는 생동감을 얻으려면 소림사 면벽 9년의 정진력이 농축된 ‘눈’이 살아야 한다. 군산 성흥사 회주 송월법원(松月法圓) 스님의 화폭에서도 그 청정한 눈은 강렬하게 빛난다. 일필휘지로 내려간 가사(법의)의 선(線)도 강한 듯
고령화, 종교에 대한 불신, 과학의 발전 등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된 전 세계적인 탈종교화로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불교 역시 다양한 방편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으나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때 융성했던 중국 남서부 지역 불교계가 급변한 사회정책으로 위기에 직면했다.중국 온라인 매체 ‘식스톤(Sixthtone)’은 6월27일 “불자들의 요청으로 미얀마와 라오스, 태국에서 중국 남서부 시솽반나로 이주한 해외 스님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했다”며 “이주 스님들은 강화된 국경통제와 이
반갑습니다. 저는 기자로 35년간 생활했습니다. 한국에서 16년, 미국에서 16년, 최근 3년간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뉴욕의 원각사라는 절을 다니고 있습니다. 원각사도 이곳 홍법사와 비슷한 자연 속에 있는 대도량입니다. 대부분의 미주 지역 사찰은 도심의 작은 포교당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원각사는 상당히 넓습니다. 한 30만 평 되니까 미주 최대 규모의 도량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불교가 미국에서 그만큼 넓은 부지를 차지한 도량이 있고 역사도 48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무척 자랑스럽
불교에 갓 입문한 행자 손에 가장 먼저 쥐어지는 책인 동시에 한국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스님 같은 대선사조차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 바로 ‘초발심자경문’이다. 통도사와 동화사 승가대학에서 강사와 강주를 역임하며 후학들을 지도해온 양관 스님이 이 책을 다시 펼친 이유는 코로나19와 그 여파로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어진 시대, ‘우리를 붙들어주고 발심하여 수행해 나가는 가르침을 읽고 조금이라도 용기를 낼 수 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수행자뿐 아니라 재가불자 또는 일반인에게도 ‘초발심자경문’의 가르침은 자신이 결심한 길 위에
① 차익이 돌아오니 차익이 킨타카를 이끌고 궁에 이르니 궁내가 한가득 근심의 빛이라.“태자를 맹수의 산중에 버려두고 왔느냐?”부왕이 차익을 꾸짖자, 애마 칸타카가 울음을 시작. 그러자, 궁내의 채녀들까지 울고 우는 울음소리. 울음이 이어지자, 마부 차익이 입을 열었지. “진정하십시오./ 태자님 출가는 하늘의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가에 천신의 도움이 있었어요.” 차익이 자기만 보았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 출가의 날 밤, 문지기 군사들까지 깊은 잠에 들었다는 것. ― 밤하늘에 금색 광명이 두루했다는 것.― 출가를 권하는 음성이
彌天大業紅爐雪 跨海雄基赫日露미천대업홍로설 과해웅기혁일로誰人甘死片時夢 超然獨步萬古眞수인감사편시몽 초연독보만고진(하늘에 넘치는 큰일들 붉은 화롯불에 한 점 눈송이 같고/ 단박에 바다를 건너는 큰 기틀도 붉은 해에 한 방울 이슬일세./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 죽어가는 이가 그 누구인가?/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퇴옹성철(退翁性徹 1912~1993) 스님이 1936년 3월3일 25세 나이로 범어사 조실이었던 동산혜일(東山慧日 1890~1965)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며 지은 출가시(出
① 발가바 선인의 고행 숲애마 칸타카는 달리고 달려, 후아미하수를 건넜다. 더 달려서 이른 곳이 발가바 선인의 고행 숲.히말라야의 끝자락 여기에 날이 새고 있었지.“어? 온갖 산새가 노래하네.”앵무·원앙·명명조·공작새·가릉빈가 모두 모두 고운 목소리. “말을 타는 건 이게 마지막이다!” 하며,태자는 말에서 내려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가슴 가득해지는 게 부왕과 이모님 생각.바위보다 굳은 심정에도 아기와 야소부인 생각.태자는 눈물을 참으려고 얼른, 차익에게 말을 건다. “차익이여 수고했네. 이것을 부왕께 갖다 드리게.”태자는 칠보 태
살면서 종교를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태어난 환경도 영향을 미치지만 삶의 고난과 역경이 닥쳐올 때 단순히 의지하고 싶다거나 삶에 대한 의미, 목적을 발견하고자 종교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청소년기에 일타 큰스님의 일대기를 읽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근이 송연해지는 경험을 한 후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나는 '한 번 사는 인생, 제대로 살아보자'며 스님이 될 결심을 했다. 부지런히 새벽예불을 올리던 어머니를 삼남매가 졸린 눈을 비비며 따라다닌 경험과 불교에 대한 탐구열로 가득했던 아버지 아래서 자라서인지 깨달음을 얻고 나면
“나는 이제부터 새 살림을 차리려고 합니다. 선행공덕을 살뜰히 키우면서 나의 이웃들을 끝없이 살려 나가는 일이 살림입니다. 나는 공성의 오두막인 극락정토를 장엄하는 정토의 살림꾼, 아미타부처님의 본원(本願)을 깊이 믿고 널리 권하는 정토의 종지기가 될 것입니다.”선객들 사이에서 명망 높은 함현 스님이 정토행자의 길을 걷겠다고 공표했다. 스님이 상주하는 서울 응암동 도솔선원 이름도 ‘선(禪)’을 뺀 도솔원으로 개칭했다. 1970년대 출가해 해인사, 송광사, 백양사, 극락선원, 대승사, 동화사 등에서 정진하고, 조계종 종립선원 문경 봉
부처님께서 인간의 해방과 대자유, 영원한 행복을 근간으로 삼고, 사바세계에 나투신지 2566년째를 맞았다. 룸비니동산에서의 탄생 일성인 “하늘 위 하늘 아래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 세계의 고통받는 중생들을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라는 말씀은 사회적 약자 소외 등 오늘날 불평등한 현실을 꾸짖는 말씀같기도 하여 올해 부처님 오신 봄날은 무척 남다르다.연등회는 인간으로 말미암은 기후위기와 감염병으로 수년간 중단됐었다. 그러다 3년 만에 동국대 운동장에 형형색색의 등과 각국 불자들의 미소가 다시 모였다. 흥인지문(동대문)을 거쳐 조계사까
“강아지가 있었는데 죽었어요. 어떻게 하면 안 슬플까요.”어린아이가 단상 위로 올라와 마이크를 들고 숨을 크게 몰아쉰다. 아이가 마음속 고민을 털어놓자 틱낫한 스님은 “참 어려운 질문이구나”하며 말문을 연다.곧이어 스님은 “하늘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구름이 있지? 구름이 사라지면 비가 된단다. 강아지도 똑같단다. 죽은 게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 있는 거야”라고 답한다. 그러자 상기됐던 아이의 얼굴에 어느새 맑은 미소가 번진다.5월12일 개봉하는 ‘나를 만나는 길’(Walk with Me)은 프랑스 명상 공동체 플럼 빌리지 일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