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사 가운데 무엇이 가장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일까? 뭐니뭐니해도 몇몇 불교인들의 행적이 훌륭하고 깊이 있는 것이리라. 불교가 키워낸 고승들의 말씀이나 행적, 혹은 묘코닌(妙好人)과 같은 독실한 신자들의 일생일 것이다. ‘묘코’는 흰 연꽃[白蓮華], 즉 깨끗한 마음을 의미한다. 아무리 생각해 보더라도 그들 이상으로 훌륭하게 일본인의 자세를 보여준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생각하면, 불교가 얼마나 깊이 있는 종교인가,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높은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실로 그 승려와 신도들의 존재로 인해 일본의 문화에 천근의 무게가 더해졌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없었더라면, 일본은 나라 안팎으로 무엇을 자랑할 수 있었겠는가? 돌이켜 보건대, 정신문화에서 종교보다
▲ 잇펜 스님이 속가의 동생인 쇼카이와 함께 재출가하는 모습. 다음으로 내가 어찌하여 잇펜(一遍) 스님에게 마음이 이끌리게 되었는가 하는 인연에 대해서도 기록해 두고자 한다. 스님을 알고서 마음에 깊이 새겨두게 된 것은 책을 통해서가 아니다. 또 시종(時宗) 사람들과 교류가 있어서도 아니다. 혹은 스님에 대한 가르침을 들었기 때문도 아니다. 전적으로 한 장의 그림에 빠져들게 된 것이 인연이었다.나중에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그 그림은 교토 로쿠조(六條)의 간기코우지(歡喜光寺)에 전하는 ‘잇펜히지리에(一遍聖繪)’(六條緣起)였다. 그 12권을 모두 본 것도 아니고, 그저 한 장의 그림이었다. 그것도 원화(原畵)가 아니라 빈약한 망
모든 염불종이 의지하고 있는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을 읽으면, 미에 관한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십팔원 가운데 제4원은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가령 내가 부처가 된다 하더라도 내 국토의 사람이나 신에게 형색이 같지 않고 좋음과 추함이 있다고 한다면, 정각을 얻지 않겠다(設我得佛, 國中人天, 形色不同, 有好醜者, 不取正覺).” 이는 ‘무유호추(無有好醜)의 원’이라 불리는 것인데, 염불의 종문에서 아직 이 원의 의의를 언급한 것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미의 법문(法門)이 의지해야 할 경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호추는 미추(美醜)의 다른 이름인데, 이러한 차별이 있는 곳은 부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선과 악, 부처와 범부라는 차별을 넘어선 피안에 염불의 일문(一門)
반복하면서 물건은 정토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작업이야말로 생각생각마다 염불하는 것과 같은 불가사의를 낳는다. 왜냐하면 이것으로 자기를 벗어나고 자기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혹은 자기가 작업 그 자체로 옮겨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이면서 자기가 아니게 된다. 이 반복된 동작과 생각생각마다 칭명하는 것은 닮지 않은 것 같으면서 매우 닮았다. 칭명에는 ‘자기’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공인(工人)의 일에도 ‘자기’가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자기’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다념(多念)이고 반복이다. 생각해보면 공인들은 모르는 사이에 칭명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말할 수도 있다. 도공이 녹로()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돌리는 그 소리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이라 말하는 소리이다. 그 외
5. 공예의 세계에 오면, 자력의 길을 걷는 작품 중에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극히 드물다. 아름다운 작품은 오히려 이름 없는 이가 타력에 의해 만든 것 가운데 많다. 이것은 전자가 난행(難行)의 길을 걷기 때문이고, 후자는 이행(易行)의 길을 걷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일찍부터 말하고 있는 것이 정토계(淨土系)의 사상이다. 사실상 작자의 이름이 새겨진 작품보다는 작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은 작품에서 구원받는 사람이 훨씬 많다. 진종(眞宗)에는 ‘악인정기(惡人正機)’의 가르침이 있어서, 선인(善人)이 구원되는데 악인의 구원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라고 말하는데, 민예품의 경우에도 문득 마음에 집히는 것이 있다. 자력문의 천재로부터 좋은 작품이 나오는데 타력문의 범인(凡人)이야 더 말
2. 우리들은 어떻게든 미(美)의 나라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인간의 억제할 수 없는, 마음의 바람인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몇몇 물건이 우수하다고 해서 미의 왕국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민중들의 그릇에도 골고루 구원이 미쳐야만 한다. 말하자면 물건에 있어서도 중생제도가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생을 어떻게 제도하는가? 이를 진지하게 고민해 온 것이 정토문(淨土門)의 고승들이다. 염불종은 무엇보다도 민중을 상대로 한 종교이다. 그것은 재가불교를 표방하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미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서는 그 가르침을 우선 염불종에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민중적 물품의 제도가
이렇게 붓을 들게 된 것은 오래 전부터 정토사상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기에, 그 감사의 뜻을 표현하고 싶어서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사상의 깊이를 맛보게 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종래에 불교와는 인연이 적었던 젊은이들을 상대로 말하고 싶다. 서론이 다소 길어졌으나, 왜 내가 구태여 정토사상에 마음이 끌리게 되었는가 하는 인연에 대해서 말해 두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인연은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성질의 것일 터이므로 얼마간 보탬이 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한 번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젊은 시절에 쓴 몇 권의 저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나는 종교적 진리를 찾는 일에 일찍부터 마음을 두었다. 그러고 보면 타력문의 사상에 전혀 인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를 먼저 접한
이 ‘취지’에서 서술한 것을 좀 더 개괄하여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정토종·진종·시종이 서로 다르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기보다는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라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혹은 원래 하나인데 세 가지 측면으로 스스로를 드러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앞에서도 비유한 것처럼, 주춧돌과 기둥과 들보는 서로 다르지만 그 하나하나가 없이는 하나의 건물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하여 완성된 건물이 부분보다도 더욱 의미가 있는 것처럼, 세 종파는 서로 다른 존재이면서도 굳게 결합하여 일본의 염불문이라는 큰 가람을 이루고 있다. 장관(壯觀)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르면서 같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다름만을 보고서 우열을 다투는 시각이나 감정에 나는 개입하고 싶지 않다. 다르면서 또한 같은 그
염불문의 존재의의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길을 자타의 둘로 나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야를 여기서 멈추고 말면, 자력과 타력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며, 서로 다투고, 서로 유리되어 있는 것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두 길은 다툼과 반목을 계속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자타의 두 길이 각각 그 길의 궁극에 이를 때 어찌 서로 접점이 없겠는가? 단지 다른 것은 오르는 길이 다를 뿐, 다 오르고 나면 동일한 정상에 이르게 될 것이다. 높은 산봉우리는 두 개의 길을 하나로 만나게 하지 않겠는가? 나의 두 번째 경탄은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른 종문의 묘미는 마침내 모두 궁극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정토문이 호넨에서 신란으로, 그리고 잇펜으로 나아갈 때, 마침내 성도문, 특히
나는 호넨·신란·잇펜의 세 분을 세 가지 서로 다른 위치에 두고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분의 내면적 발전의 과정으로 보려는 점에 대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고 싶다. 세 분이긴 하지만 동일한 인격의 서로 다른 표현으로 생각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이 얼마나 필연적이며 유기적인지를 서술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나는 정토종보다 진종이 우월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진종보다 시종이 우월하다는 식의 생각을 강조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 중에 한 분만 없더라도, 세 분은 서로 그 역사적 의의를 잃어버린다는 점을 서술하려는 것이다. 호넨이라는 초석 위에, 신란이라는 기둥, 잇펜이라는 대들보가 세워져 있는 것이므로, 호넨 없이 신란이나 잇펜은 있을 수 없고, 또한 신란이나 잇펜 없이는 호넨도 그
호넨은 “오직 선도(善導, 613~681)에 의지한다”라고 해서 당나라의 선도 스님을 존경했다. 신란은 오직 호넨에 의지했으며, ‘구전초(口傳抄)’와 ‘탄이초(歎異抄)’에 스승에 대한 그의 경건한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호넨으로부터 신란에 이르는 것은 실로 맥맥히 서로 전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진종이 정토종의 이파(異派)나 별파(別派)인 것은 아니다. 원래 신란은 정토종의 본질을 충실히 전승하여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똑같이 하나의 염불종이라 이해해야 할 터인데, 두 종파가 서로 다투는 것은 본의를 벗어난 것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도 서술한 것처럼, 일본의 정토문은 호넨·신란·잇펜 세 분의 힘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잇펜은 오늘날까지 지극히 불우하여, 그에 관한
도쿠가와 시대에 반케이(盤珪, 1622~1693) 선사가 선을 설하는 데, 이른바 ‘평민의 말[平話]’을 가지고 시도했던 것은 한자 술어가 초래하는 폐습에 대항하는 용감한 개혁이었다. 흔히 말하는 ‘풀어쓰기[延書]’의 시도도 당연히 민중을 위하여 준비해야 할 일본어로 읽기[和読]의 결과였다. 근년에 ‘국역대장경’의 편찬과 구어체에 의한 ‘신역불교성전’의 출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국민의 자각에 의한 것인지 한학 지식의 쇠퇴에 의한 것인지, 메이지 이후 점차로 일본어로 불교를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인습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한문은 버렸어도 한자어에 의한 술어는 여전히 번거롭게 쓰이고 있다. 이것이 아직도 일반 독자와 불교 사이에 간극을 만들고 있음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이다. 그러므
어떤 전문용어는 이미 역사적인 훈김[薰習]을 받아 왔으며,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친숙해져 왔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모든 전문용어를 완전히 내쳐버릴 필요는 없고, 도리어 어떤 것은 앞으로도 친숙하게 쓰고 싶은 것이 있다. 또 어느 정도의 불교용어는 나도 기꺼이 사용할 터이지만 기이한 것, 난해한 것은 장래를 위해서 내버리고 싶다. 이러한 용어의 문제는 불교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종문의 특수한 표현에 붙잡혀 있어서는 불교를 현대적인 것, 미래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종문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관습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깨뜨려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종문의 사람들을 대신하여 내가 이 한편의 책을 쓰게 된 데에도, 뭔가 사명
나무아미타불의 의미는 당연히 종학을 하는 사람이 취급할 만한 것이고, 또 실제로 많은 저술이 출판되었지만, 애석하게도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세상의 보통사람들에게 친밀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하나는 번잡한 교학에 기울어진 경우가 많고, 다른 하나는 난해한 술어가 굉장히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첫째, 종문(宗門)의 사람, 특히 학식이 있는 승려가 쓴 것을 보면 서술하고 있는 진리가 교학에 깊이 천착(穿鑿)함에 따라, 지나치게 전문화되어 문외한에게는 소원한 느낌을 일으키기 쉽다. 게다가 지엽적인 문제를 세밀하게 다루다 보면 자칫 본질적인 것을 간과하기 쉽다. 오히려 학문을 위한 종론(宗論)이 되어서 살아있는 신앙과는 동떨어져 버린다. 종학은 그 자체로 훌륭한 존재 이유를 가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지식의
‘후세에 왕생하는 일은 세간의 삶을 사는 것과 같은 일이다.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지만,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일없이 지났다. 한 해가 얼떨결에 지나가 버리고, 일생도 멍하게 있는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밤에 잠들 때는 오늘 하루 아무 일도 하지 못한 것을 울어야 하고, 아침에 깨어나면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마음이 해이해 질 때는 생사가 무상함을 생각하라. 나쁜 생각이 들 때는 소리내어 염불하라. 귀신이나 악마에 대해서는 자비의 마음으로 이익케 하고, 항복시키려는 생각을 일으켜서는 아니된다. 가난은 보리의 씨앗으로 아침마다 불도로 나아가게 하며, 부는 윤회의 고삐라 부유한 사람은 매일 밤마다 악업을 더하게 된다.’ (‘일언방담(一言芳談)’에서) ‘카고(賀古)의
잇펜(一遍, 1239~1289) 스님은 “염불이 염불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실로 금쪽같은 말씀이다. 인간은 어떤 일을 해도 좋지만, “일이 일을 한다”는 경지까지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결국 염불의 지극한 경지라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일을 진실하게 하는 것이 모두 염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비의(秘義)를 가장 단순하고 쉽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칭명의 한 길[一道]이다. 그렇기에 칭명에 철저한 것이 인생에 철저한 까닭이 된다. 특히 이것이 범부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이라는 것은, 모든 성스러운 스님들이 몸소 맛보았으며 모든 묘코닌들이 목숨을 걸고 보여주신 사실이다. 이 사실 앞에서는 누구라도 경건한 마음을 더욱 깊이 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보잘 것
일본의 마을들을 걷다보면 ‘나무아미타불’의 여섯 글자가 새겨진 비석을 흔히 만나게 된다.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염불종의 절들은 물론, 길가에서도 숲속에서도 이런 비석들이 쉽게 눈에 띈다. 교토히가시야마[東山]의 구로다니(黑谷)라도 찾아가 보면, 육자(六字)를 새긴 비석의 무리들이 마치 숲처럼 우뚝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안에 그 수가 전부 얼마나 되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아마 어떤 비석도 육자를 새긴 비석의 수에는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나무아미타불’은 전적으로 범음(梵音)이지만, 지금은 일본의 언어에 녹아들어, 어느 한 사람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그것이 “무량수(無量壽)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의미임을 모르고 있을 정도이다. 그 정도로 범음 ‘나무
우리에게는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는 것은 고차원의 법문이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는 것은 낮은 차원의 법문이라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염불수행은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죄악이 많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서, 바로 그렇기에 염불수행이 낮은 차원의 법문이라는 생각으로 비약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선이나 염불이나 다 똑같이 높은 차원의 법문이다. 다만 염불은 예비적인 수행을 많이 쌓지 않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이렇게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참선에 대한 학문적 담론인 선학(禪學)에 비하여 염불에 대한 학문적 담론인 정토학은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하는 느낌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것으로 보인다.내가 야나기 무네요시
야냐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 선생은 당대 최고의 미술평론가로 그가 만년에 불후의 걸작 ‘나무아미타불’(1955년)을 집필했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본지는 일본불교사연구소(소장 김호성)의 번역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매주 게재하며,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김호성(동국대 불교대학 교수) 소장이 2회에 걸쳐 ‘나무아미타불’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편집자 왜 “나무아미타불”이라 염해야 하는 것일까? “나무아미타불” 염불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산스크리트 문법지식을 동원해서 살펴보면,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 말이 책 속에서 잠잘 때의 뜻일 뿐이다. 내가 “나무아미타불”이라 일컫는 순간 그 의미는 무궁무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