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어 배울 수 있는 곳 없나요? 티베트어에 관심이 있어서 배우고 싶은데 정보 좀 주십시오. 교재를 구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우선 저희 편집국에서 조사해서 알려드리는 것보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싸이월드(www.cyworld.com)에는 티벳을 생각하는 사람들(thinktibet)이라는 클럽이 있는데, 그곳에 ‘따시델레’라는 티베트어 공부모임이 있습니다. 이곳에 문의하시면 티베트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불교계 언론에 취업하려면? 저는 내년 2월이면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입니다. 우연히 법보신문을 읽고 불교계 언론에서 종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불교계 언론에 종사하려면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하나요? 가령 언론사에 보는
복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보문품』의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해보면 무심코 지나쳤던 의미가 참 새롭게 다가옵니다. 첫째, 아이가 없는 사람이 아이를 원한다면…이라는 내용에서는 남들이 세속적이라고 비난해도 좋으니 마음속에 소망을 품으라는 암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들은 육근(六根)을 가진 중생입니다. 육근이란 눈, 귀, 코, 혀, 몸과 함께 마지막에 나오는 의지[意]를 합한 말입니다. 이 의지는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의지를 지닌 사람이 바람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지요. 그리고 마음속에 간절한 바람을 품어보아야만 세상살이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나와
나고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만일 또 중생이 관세음보살을 공경하고 예배하면 복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으리니, 그러므로 중생은 모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들어야 하느니라. 며칠 전 아주 가까운 분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고인은 평생을 기도로 일관해오신 참 독실한 불자이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언제나 기도를 올린 것은 물론이요, 며느리가 법회에 참석하는 날이면 손수 집안일을 도맡아주시며 마음 편하게 공부하고 오라시던 분이셨지요. 떠나시는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하시다가 손주의 이름을 부르며 “이제 가야겠다. 나무 지장보살마하살”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본 손주가 가족들에게 연락하였고 보살님은 일가친척들과 조용히 작별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 분의 얼굴은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괴로움을 겪을 때 신음하거나 살려 달라 외치면 그 소리를 듣고 즉시 자비로운 구제의 손길을 취하기에 관세음이라고 이름합니다. 그러니 자연재해를 당하거나 어둔 밤길을 걷는다거나 법을 어겨 묶이거나 억울하게 죽임을 당할 지경에 놓이거든 큰 소리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외치십시오. 시도 때도 없이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차오를 때면 그 번뇌의 마음자리에다 관세음보살의 이미지를 올려놓으십시오.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그 바라는 마음만큼이나 간절하게 관세음보살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어떨 때에 관세음보살을 기도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지장보살기도가 더 영험이 있을 것 같다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관세음보살님 한분을 향해 지극한 마음
룸비니 동산에 있는 승원터. 아쇼카 대왕 석주 발견 돼 붓다 탄생처로 확인 마야데비 사원 공사 한창…사라수엔 힌두신상 삶이란 무엇일까. 선택의 이어짐은 아닐까. 살아가면서 부딪쳐야 하는 숱한 양 갈래길들. 그 순간마다 내린 판단들이 삶의 질을 가르는 기준일 것이다. 이런 이치로 한 사람의 인생은 자연히 그가 한 평생 동안 해온 선택의 옳고 그름에 따라 그 성패가 갈라진다는 등식도 성립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종교도 철학도 우리들의 삶에 있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지침이나 가치관 중의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 바르게 종교에 귀의하는 것은 그 교주의 가치관과 선택의 원칙을 잘 알아차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룸비니 동산에 서서 ‘붓다의 선택’을 생각해 보았다. 8
부처님 가르침 체현은 법을 묻는 사람 몫 그때 지지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 나아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이 이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자유로운 업과 널리 보이고 나타내는 신통력을 듣는다면, 그 사람의 공덕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좥보문품좦을 설하실 때 대중 가운데 8만4천 중생이 모두 비할 바 없이 평등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어느 덧 좥보문품좦의 마지막에 도착했습니다. 중생을 향한 관세음보살의 일, 그리고 관세음보살의 자유자재한 능력을 듣기만 하여도 그 사람은 한없는 행복과 이익을 얻으리라는 지지보살의 감탄을 마지막으로 좥보문품좦 법회는 막을 내립니다. 그런데 지지
그때 부처님께서 관세음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이 무진의보살과 사부대중과 하늘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들을 불쌍히 여겨 그 영락을 받으라.” 곧 관세음보살이 사부대중과 하늘 용과 그리고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 영락을 받으시더니, 둘로 나누어 한 몫은 석가모니불께 바치고 남은 한 몫은 다보부처님의 탑에 바쳤다 “무진의야, 관세음보살은 이와 같이 자유스러운 신통력을 가지고 사바세계에 노니느니라.” 부처님과 무진의보살이 관세음보살에 대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우리의 주인공은 곁에 조용히 머물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 성품이 없어 텅 비었음(空)을 누구보다도 환히 깨달은 관세음보살이었기에 자신을 찬탄하는 무진의보살
우 판디타 사야도는 엄격하면서도 자비로운 지도로 대중들을 평화로움으로 이끈다. 1991년 7월, 필자는 한국에 위파사나를 처음으로 소개하신 거해스님의 추천과 소개로 여름 안거를 지내기 위해 미얀마로 떠났다. 처음 미얀마에 도착해서 찾아간 곳은 바로 생긴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판디타라마 수행센터였다. 이 센터에 도착해보니 한국인 몇 분이 수행을 하고 있었고, 도착한 날 바로 우 판디타 스님을 뵙고서 바로 수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 판디타 스님은 당시 세수 70세였고, 간단하게 수행법을 일러주셨는데, 그 내용은 내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우 판디타 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는데, 스님이 가르쳐주신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수행을 제대
무진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관세음보살을 공양하겠나이다.” 하고, 목에 걸었던 백천 냥이나 되는 보배 구슬과 영락을 끌러 받들어 올리며 또 여쭈었다. “어지신 이여, 법으로써 드리는 이 보배 구슬과 영락을 받아 주옵소서.” 그때 관세음보살이 이를 받지 않거늘 무진의는 다시 관세음보살께 여쭈었다. “어지신 이여,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 영락을 받아 주옵소서.” 만약 당신과 제가 영원히 중생으로만 살아갈 팔자라면 관세음보살은 아마 절대로 구원의 손길을 뻗치지 않을 것입니다. 손 내밀어봤자 구제불능인데 뭐 하러 힘들여 그런 고생을 하겠습니까? 관세음보살이 그렇게 분주하게 몸을 바꿔가면서 중생들의 부름에 응하는 까닭이 뭐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들 한 사람 한
두려움 없애주는 보살 당당한 용기 샘솟게 해 무진의야, 이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공덕을 성취하여 갖가지 형상으로 여러 국토에 노니시며, 중생을 해탈케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공양할지니라. 이 관세음보살마하살이 두렵고 급한 환난 가운데 능히 두려움을 없애주므로, 이 사바세계에서는 모두 ‘두려움을 없애주는 이’라고 부르니라. 관세음보살은 부처님·벽지불·성문·범천왕·제석천·자재천·대자재천·천대장군·비사문·소왕(小王)·장자·거사·관리·바라문·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장자의 부인·거사의 부인·관리의 부인·바라문의 부인·소년·소녀·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집금강신이라는 33가지 몸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33응신(應身)입니다
내 몸에 다른 사람 살을 붙였으니 이 몸은 내 몸인가 남의 몸인가 어떤 사내가 길을 걷다 낡은 오두막을 발견하였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자.’ 들어서기가 바쁘게 뜻밖에도 귀신 하나가 뒤따라 들어섰습니다. 사내는 몸을 숨겼지요. 귀신은 금방 죽은 듯한 시체 하나를 어깨에 짊어지고 와서 집안에 있던 침상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귀신이 좇아 들어와서는 그 시체를 내놓으라며 소리쳤습니다. 둘 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그러자 먼저 온 귀신이 제안하였습니다. “이렇게 싸우기만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증인을 세워 결판을 내자.” 뒤에 온 귀신도 찬성하고는 몸을 숨기고 있던 사내를 끌어내었습니다. “너는 처음부터 다 보고 있었지? 말해봐라.
“무진의야, 만일 어떤 사람이 62억 항하의 모래 같은 보살의 이름을 받들어 목숨이 다하도록 음식과 의복, 침구와 의약 등으로 공양한다면 너의 생각에는 어떻겠느냐? 이 선남자 선여인의 공덕이 얼마나 많겠느냐?” 무진의가 대답하였다. “매우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항하는 갠지스강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동쪽에 자리한 경포 해수욕장을 상상해보면 이 부분이 좀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경포에는 모래가 과연 몇 알이나 있을까요? 질문 자체가 우스꽝스럽습니다. 여하튼 그런 백사장이 62억 곳이나 있으며 62억 곳의 모래알이라면 그 수는 또 얼마나 될까요? 상상을 초월한 어마어마한 숫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아주 많은’이라고 표현하는 게 차라리 편합니다. 이렇게 많은 숫자는 우리가 믿고 의
왕자는 순전히 장자를 놀려볼 심산이었건만 장자의 마음은 오직 부처님이 가득 들어차 있었기에 티끌만큼의 농이 깃들 수는 없었습니다. 장자는 이내 자신의 전 재산을 수레에 가득 실어서 왕자에게 보냈습니다. 나는 그저 장난으로 한 말이니 수레를 몰고 돌아가라는 왕자. 이미 당신은 동산의 값을 말하였으니 그건 팔겠다는 의사가 있는 거라며 부득부득 우기는 장자. 급기야 재판으로까지 가게 되었고, 현명한 노인들은 장자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제 장자는 손수 금화를 내려서 동산을 덮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서 』보문품『에서 “62억 항하의 모래 같은 보살의 이름을 받들어 목숨이 다하도록 음식 등으로 공양한다면”이라는 부분을 읽을 때면 저는 언제나 급고독장자가 왕자의 동산에 금화를 까는 모습이 떠오릅니
무진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어떻게 이 사바세계에서 노니시며, 어떻게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시며, 방편의 힘은 그 일이 어떠하나이까?” 무진의보살은 』보문품『에서 딱 두 번 부처님께 여쭙습니다. 첫째는 관세음보살의 이름에 담긴 뜻을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이름을 설명하시면서 저와 같은 중생들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쉬지 않고 부르라고 답하셨습니다. 즉 구제를 바라는 중생의 입장에서 설명한 부분입니다. 이제 두 번째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에 머물고 계신가, 중생을 위해서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법을 설하시는가, 어떤 수단(방편)을 쓰고 계신가하는 것입니다. 구제를 펼치는 관세음보살의 입장을 설명하시는 것이지요. 그런
아주 큰 부잣집에 어린 외아들이 있었는데 무단으로 가출하여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한 시도 잊지 않았지만 아들은 자신의 신상에 관해서는 죄다 잊어버리고 거지처럼 떠돌아 다녔습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우연히 자신이 태어난 고향거리에 들어선 아들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갑부의 행차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고작 ‘어쩌면 왕보다 더 부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세력도 막강할 텐데 만일 내가 왔다갔다 하는게 눈에 거슬리기라도 하면 나를 붙잡아다 학대하고 종처럼 부릴지도 모른다. 도망가자.’ 이렇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도망치려던 아들을 알아본 아버지는 너무나도 반가운 나머지 아랫사람을 불러 무조건 잡아오게
당신은 지금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영업직에 몸담고 있다면 실적을 올려줄 고객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꼭 이상형은 아니라도 좋으니 그럴듯한 이성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헤어진 피붙이나 첫사랑, 내 일손을 덜어줄 사람 등등 지금 만나고 싶은 사람을 손꼽으라면 참 많은 이들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거나 만날 예정이 되어 있는 사람은 대상에 맞게 스스로를 가꾸고 내보일 준비를 깔끔하게 합니다.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큐 사인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텔레비전 뉴스 앵커처럼 말입니다. 상대를 만나면 정중히 명함을 건네고 깍듯하게 인사를 합니다. 가급적 고운 말을 쓰고 적당히 양보하며 최선을 다해 상대한 뒤에 그의 호주머니에 넣어진 내 명함이 그
사기꾼을 만날 때는 더 큰 사기꾼으로 부처를 만날 때는 더 큰 부처로 나투리라 어제오늘 사이 당신이 만난 이들…. 책상을 마주 놓고 일하고 있는 직장 동료, 옥신각신 물건값을 흥정하다 헤어진 시장 상인, 어젯밤 술자리에서 내 옆에 앉았던 사람, 지하철에서 좌석 하나 놓고 잠깐 신경전을 벌인 여자… 앞서 원효 스님의 경우를 비추어 보면 이런 사람들 가운데 어쩌면 관세음보살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관세음보살이 누구에게나 불쑥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다른 문제는 없는데 이성에게 자주 끌려.’ ‘다른 건 관심 없어. 내 가족만 행복하면 되.’ ‘왜 나는 운전대만 잡으면 거칠어지는지 모르겠어.’ ‘주겠다는데 왜 돈을 거절해야해? 일단 받고 보자.’ ‘그러
이미 위없는 깨달음을 이룬 후에도 중생 제도를 위해 이 땅에 나투시다 그런데 보십시오. 관세음보살이 부처의 몸으로 나타나기도 한답니다. 우리는 ‘보살’에 대해서 이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보살은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사람. 보살이란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 보살이란 본래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불하기 전 과거세에 수행하던 몸을 가리키는 말. 보살이 이런 자라면 부처님과는 격이 한참 떨어지는데 어떻게 그런 보살 신분에 감히 부처의 몸으로 나타난다는 말일까요? 이런 의심을 짐작이나 하고 있었는지 여러 경전에서는 친절하게도 관세음보살이 아직 수행해야 할 수행자의 신분이 아니라 이미 부처를 이룬 뒤에 중생을 위해 다시 보살의 몸으로 내려온 분이라는 설명을 곳곳에서 하고 있습니다.
꽃이 법답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법답지 못한 것임을 성문은 가르침의 소리(聲)를 듣고서야(聞) 수행이 진전되는 단계입니다. 사리불이나 목련존자처럼 부처님 당시 뛰어난 제자들이 모두 성문이라 불리는데 그것은 바로 스승이신 부처님에게서 법을 듣고서 진리에 눈을 떠갔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다 보니 자신에 대한 통제가 엄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된다, 저것은 안 된다, 그러면 큰일난다…라는 식으로 세상에 대해 여러 가지 잣대를 이리저리 맞추느라 그것을 넘어선 경지는 엄두도 내지 못하였던 것이지요. 그 잣대는 진리에도 적용되어 깨끗한 경지(열반), 더러운 경지(사바세계)에 대한 차별심에 얽매이는 폐단을 떨어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자들입니다. 대승경전에서 부처님의 성문제자들을
현실에는 우리와 같은 인간 세계가 존재하는가 하면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세상도 존재합니다. 착한 일을 아주 많이 한 사람이 가게 되는 욕계의 여섯 하늘과, 참선을 부지런히 닦는 이가 차례차례 나아가는 선정의 하늘인 색계의 열여덟 하늘과 무색계의 네 하늘이 그것이지요. 그러니 지금 하나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해도 범부에게는 서로 뺏고 빼앗기며 작은 행복에 흡족해하고 작은 슬픔에 세상이 끝난 것처럼 몸부림을 치는 사바세계이지만 선업을 닦은 이들은 온통 즐거움이 가득 찬 세계를 누리고 있으며, 수행을 많이 한 이는 숨쉬는 한 찰나가 그대로 참선의 단계인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이렇게 하늘의 몸으로도 나타나서 구제의 가르침을 베푸십니다. 범천왕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범천왕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