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어떤 사람이 만일 해를 입게 되었을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그들이 가진 칼이나 막대기가 곧 조각조각 부서져 능히 벗어날 수 있으며 『보문품』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 재난(七難) 가운데 무기의 재난 즉 도장난(刀杖難)을 말하는 부분입니다. 남에게서 해를 입지 않고 평생 지내기란 참 어렵습니다. 크든 작든 나는 남에게 해를 입히고 남도 나에게 해를 입힙니다. 그런데 해를 당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에는 대체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억울해하고 분노하며 당장 똑같은 무기를 들고나서는 반응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맞서 싸울 힘이 없어 그냥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 비는 반응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은 ‘더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는데 이 정도에서 그치니 고맙다’라며 도리
혹은 삼천대천국토에 가득한 야차와 나찰들이 와서 사람들을 괴롭히려 하더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만 부르면 여러 악귀가 악한 눈으로 보지도 못하겠거늘, 하물며 어찌 해칠 수 있겠느냐. 악귀의 난에 대한 설명입니다. 삼천대천국토에 가득 찼다는 말은 온 세상에 송곳 꽂을 틈도 없이 가득 찼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많은 야차와 나찰들이 수시로 찾아와 괴롭히려든다는 말입니다. 야차와 나찰은 결코 기분 좋은 상대가 아닙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야차에 대해서 사람을 잡아먹는 난폭한 귀신이라는 부정적인 설명과 함께 팔부신중의 하나로서 착한 이들을 수호하는 신이라는 긍정적인 내용의 설명이 실려 있습니다. 야차와 나찰같은 악귀들은 평소 우리가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할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죄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 수갑과 쇠고랑에 손발이 채워지고 몸이 묶였을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만 부르면 이것들이 다 끊어지고 풀어져 곧 벗어나리라. --------------------------------------------------------------------------------- 가쇄난(枷鎖難)입니다. 신임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다 옥에 갇힌 춘향의 목에 채워진 형구를 가(枷)라고 부르고 죄인들의 몸과 몸을 잇는 형구를 쇄(鎖) 즉 쇠사슬이라고 부릅니다 (『관음의소』참고). 그런데 ‘죄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라는 말이 들어 있군요. 이 부분을 읽다보면 “어, 그래? 그럼 실컷 못된 짓이나 하며 살다가 정작 붙잡혀서 고초를 당하게 될 때면 관세음보살-이라고 염불만 하
네티즌이란 단어는 최근에 생긴 신조어이다. 그 말에 붙여진 합성어가 바로 ‘네티즌불자’이다. 말 그대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불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에서 1위를 달릴 정도로 전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그만큼 인터넷과 생활이 불가분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네티즌 불자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인터넷 불교카페의 회원이 많게는 1만명이 넘는 거대한 집단부터, 몇십,몇백명의 회원들이 존재하는 카페나 커뮤니티가 성행하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이런 첨단을 걷고 있는 네티즌 불자들의 성향과 의구심을 충족시켜줄 만한 장치나 시설이 연계되어 있는지 한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네티즌 불자들의 특징은 온라인(On line)과 한달에 한번정도의 정기적인 오프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오죽하면 목숨을 끊을까’라고 말하던 것이 이젠 ‘그랬군’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자살 신드롬’이라는 신종어가 탄생할 정도니 자살에 대한 기준이 오묘해진지 오래다. 법보닷컴이 지난 8월 21일부터 28일까지 ‘자살을 생각해 본적이 있었습니까’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93명 가운데 78.5%인 73명이 ‘생각해 본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살 소식이 언론매체나 영상매체로 알려지면서 ‘자살’에 대한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하여 조선시대 단발령에 맛서 극렬하게 싸우던 최익현을 비롯한 조선시대 선비들의 의식은 요즘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생각해보지 않았다’라고 답변한 사람은 21.5%(20명)로 나
개호(蓋護)라는 이는 중국 산양(山陽) 사람으로 옥에 갇혀 죽게 되었습니다. 사흘 낮 사흘 밤을 마음에 조금도 쉴 틈 없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불렀더니 곧 관세음보살이 광명을 내어 그를 비추셨습니다. 이어 쇠사슬이 벗겨지고 옥문이 열려 광명을 찾아 그 곳을 떠나 이십 리를 갔더니 그제서야 광명이 멎었다고 합니다.(『응험전』, 『관음의소』에서 재인용) 1968년에 입적하신 금오(金烏) 대선사께서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1920년대 초기 금오 스님은 당대의 선지식인 수월스님을 뵙고 지도를 받으려고 만주 봉천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땅에서 공교롭게도 스님은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결백을 주장 해보았지만 모진 고문만이 가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찌된 일인지 러시아 경찰들
‘한국종교공동체연대’가 곧 출범한다고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공동체들이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는 공동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손을 잡는다고 한다. 불교계에서는 도법, 법륜 두 스님이 발기인으로 나섰다. 매우 의미 있고 새로운 작업이며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슴이 헛헛하다. 이런 기분 좋은 소식과 함께 좋지 않은 소식이 올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꽃동네 오웅진 신부가 국고보조금 횡령으로 불구속 기소되었고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도 공금횡령으로 구속되었다는 소식이다. 불교계에는 범어사 전 재무국장 스님이 국고보조금 횡령으로 징역3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것이 지난해 말의 일이다. 이런 범죄행위는 4바라이죄로 불교공동체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멸빈에 처해져야 하는 것임에도
대부분의 네티즌 불자들은 현 불교방송의 구성과 내용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보닷컴’이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불교방송(BBS)의 구성과 내용에 만족하십니까’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79명 가운데 전체 51.9%(41명)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또 32.9%(26명)가 ‘그저 그렇다’고 답변했다. 반면 ‘만족한다’는 15.2%(12명)에 그쳤다. 이 같은 결과는 본지가 지난 7월 16일 보도한 바와 같이 불교방송에는 찬불가 등 불교적인 내용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이 저조하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한참 들어야 불교방송인 것을 알 수 있다’, ‘불교음악을 자주 선곡해 들려달라’는 기타 의견 등이 게재돼 불자들은 불교방송에서 찬불가, 불교음악 등 불교
보시를 해보셨습니까? 어떤 것들을 베푸셨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손쉬운 보시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일일 것입니다. 돈도 안 들고 그다지 힘도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말 한 마디 건네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입술만 몇 번 달싹거리면 가능한 일이건만 아무래도 말은 그냥 말이 아니라 마음이 담기는 것인가 봅니다.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 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들 인간입니다. 그에 비하면 차라리 재물의 보시가 쉽습니다. 좀 아까운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나에게는 또 생길 테니…’, ‘또 벌면 되지…’ 하는 마음이 들면 제법 큰돈도 흔쾌히 내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재물의 보시에는 마음이 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돈으로 때우면
만일 또 삼천 대천 국토에 도둑이 가득 찬 속을 한 상인의 우두머리가 여러 상인을 이끌고 귀중한 보물을 가진 채 험한 길을 지나갈 때, 그 중에 한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 선남자들이여, 무서워말고 두려워 말라. 그대들은 진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를지니라. 이 보살이 능히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 주리니, 그대들이 이 이름을 부르면 이 도둑들을 무사히 벗어나리라’하고, 이에 여러 상인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소리를 내어 ‘나무 관세음보살’ 하니 곧 그 난을 벗어났느리라. 무진의야, 관세음보살마하살의 위신력이 이와 같이 훌륭하니라. ----------------------------------------------------------------------------------- 도둑의 난 즉
“무서워말고 두려워 말라.” 읽을수록 저에게 힘을 주는 대목입니다. 두려움이 엄습하거든 큰소리로 관세음보살을 외치라는 이 대목은 『보문품』의 절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밖에서 오는 위협이나 고통 그리고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두려움도 오로지 ‘관세음보살’이라고 크게 외치면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세음보살은 우리들 마음속의 두려움을 없애주어 떳떳하게 그 대상과 맞서도록 일러주는 부모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틈새를 일러주고 도망갈 길을 열어주고 숨통이 트이게 해주는 존재. 이런 관세음보살을 가리켜 석가모니 부처님은 ‘시무외자[施無畏者]’ 즉 중생에게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를 베푸는 자라고 딱 집어서 일러주십니다. 앞서 우리는 두 가지의 보시에 관해 경전들을 살펴보았습
또 만일 중생이 음욕이 많더라도 관세음보살을 항상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음욕을 여의게 되며, 혹은 성내는 마음이 많더라도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그 마음을 여읠 수 있으며, 혹은 어리석음이 많더라도 관세음보살을 항상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그 어리석음을 여읠 것이니라. 무진의야, 관세음보살이 이런 위신력으로 이롭게 함이 많으니 중생은 마땅히 마음으로 항상 생각할 것이니라. --------------------------------------------------------------------------------- 참 중요한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관세음보살을 항상 생각하라’ 즉 염불(念佛)이라는 말과 ‘삼독심’입니다. 염불은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니 여기서는 염보살이라고 해